< 제42장 황제로 가는 길 - 3 >
최강철의 부친상을 맞이한 제주도는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10일 앞둔 시점이었으나 대한민국의 유력인사들이 전부 제주도로 몰려들었다.
정우석 대통령이 날아왔고, 정부의 주요인사들과 대한정의당의 국회의원들 그리고 민주연합의 대통령 후보 이정동과 야당의 국회의원이 모두 제주도를 찾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피닉스 그룹의 사장단을 포함한 정재계인사와 언론계는 물론이고 외국에서까지 수많은 인사가 몰려들었는데, 그중에는 최강철과 싸웠던 레너드와 듀란이 있었고 현재 미국 10대기업에 들어간 시스코, 호리즌, 엠파이어의 CEO와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유력국가들의 특사들이 문상을 위해 찾아왔다.
일반인들의 문상도 줄을 이었는데 전국 각지에서 날아온 사람들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중 상당수는 문상을 하지 못했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기 때문에 장례식장이 그들을 다 소화하기엔 불가능했다.
최강철은 제주도에서 움직이지 않고 5일을 꼼짝하지 않았다.
정우석 대통령과 대한정의당의 수뇌부가 설득했고 김도환과 신규성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러나 최강철은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애를 태웠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최강철은 점점 불리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의 부친상으로 인해 잠깐 멈추었던 언론의 공세가 다시 시작되었는데 점점 그 강도가 강해져 갔다.
결정적인 충격파가 국민들을 덮친 것은 최강철이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가족들과 함께 나머지 일을 상의하고 있을 때였다.
‘북한, 핵 개발 착수.’
- 북한은 남북경협에서 확보한 자금으로 핵 개발을 추진 중이며, 함경북도 문사리에서 1차 핵실험을 한 것으로 추정됨.
-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포동 2호의 개발이 끝났으며 휴전선에서 물렸던 병력의 재진입 움직임이 있음.
- 미국은 이런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미드웨이 항공모함 함대를 급파한 상태임.
- 북한의 움직임은 남북경협으로 군사자금을 확보한 것이 가장 결정적이며 강경파들의 주장에 의해 그동안 비밀리에 군사력을 키워온 것으로 추정됨.
* * *
언론이 온통 난리가 났다.
방송에서는 미국 CNN에서 보내온 북한 관련 영상들이 송출되고 있었는데 문사리에서의 핵실험 장면과 미사일 발사장면, 북한 병력의 이동 등이 담겨 있었고 미국 정부의 대응이 상세하게 보도되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남북경협 특혜로 시비 걸었던 보수언론들이 최강철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정우석 정권에서 추진한 남북경협이 원인이었으며, 최강철이 모든 실권을 쥐고 움직인 장본인이란 것이었다.
대한정의당측은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고 마이다스 CKC와 제우스도 손을 놓은 채 대처방안을 찾지 못하며 허둥댔다.
이건 돈으로도, 인맥으로도, 정치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선거캠프에 있던 신규성과 김도환 그리고 이창래는 텔레비전에서 거품을 물고 있는 이정동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창래는 MBC 사장 임기를 마친 후 2년 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정동은 민주연합의 의원들을 대동한 채 긴급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는데, 최강철에 대한 비난이 주 내용이었다.
북한의 군사력 증강은 최강철이 주도한 무분별한 협상이 벌인 참사란 것이었다.
“씨발, 이거 큰일 났네요.”
“비공식 여론조사에서 상당히 안 좋게 나왔어요. 이러다가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요?”
이창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신규성이 반문했다.
워낙 격차가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언론통인 이창래가 부정적인 말을 하자 안색이 급격하게 흐려졌다.
“어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황이 역전된 것 같습니다. 격차는 별로 없지만 확실하게 불리해진 건 사실이에요.”
“미치겠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공포심이 있습니다. 요즘 한참 남북경협으로 인해 화해무드가 조성되었지만, 국민들 마음속에는 북한에 대한 나쁜 기억이 많거든요.”
“그건… 그렇죠.”
“이건 분명 미국의 작품입니다. 그놈들은 의도적으로 필름을 조작해서 방송국에 보내왔어요. 미국 정부가 나선 게 분명합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놈들은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창래의 대답에 그동안 잠자코 있던 김도환이 나섰다.
그는 제우스란 막강한 정보조직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창래가 한 말을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다.
“미국만 움직인 게 아닙니다. 우리쪽 정보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도 움직였어요.”
“그 새끼들은 왜요?”
“이대로 그냥 두면 대한민국이 위협적인 존재가 될 테니까요. 놈들은 회장님이 대통령에 오르는 걸 결사적으로 막고 싶어 합니다. 지금 떠들고 있는 언론과 인터넷에서 미친놈들처럼 회장님을 비난하는 자들 상당수가 놈들 작품이에요.”
“그래서요? 이대로 그냥 당해야 된단 말입니까!”
“그럴 리가요. 회장님은 그렇게 만만한 분이 아닙니다. 이미 회장님은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 계셨습니다. 곧 반격이 시작될 겁니다.”
“회장님은 언제 올라오신답니까?”
“내일 올라오실 겁니다.”
* * *
최강철은 발인을 마친 다음 날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어머니께 인사를 했다.
가족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최강철이 제주도에 내려와 있는 동안 나쁜 소식이 계속 전해져 왔다. 그래서 가족들도 좌불안석이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동생을 보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던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살아오면서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그저 그런 동생이었던 최강철은 어느 날 문득 다른 사람이 되어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복싱을 시작했고 전교 수석을 차지하더니 서울대에 입학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국가대표를 거쳐 세계 챔피언으로 성장하며 국민들의 영웅이 되었다.
동생이었지만 최강철은 동생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존재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대통령 후보까지 되면서 그들을 기쁨과 자랑스러움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인해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특혜시비에 이어 국가를 누란의 위기에 처하게 만든 주범으로 몰리며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었다. 그래서 최강철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러나 최강철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태연함을 잃지 않았다.
“형님, 어머니를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라. 제주도가 정리되는 대로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올라갈게. 그러니까 너는 빨리 서울로 올라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믿는다. 언론에서 지랄하는 건 전부 거짓말이야. 그게 어찌 네 책임이냐. 국가를 이 정도까지 만든 게 누군데 그런 소리를 해. 진실은 절대 변하지 않아. 사람들은 널 배신하지 않을 거다.
”
“분명 그럴 겁니다.”
최강철이 빙그레 웃으며 큰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큰형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정말 많이 울었다.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몰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큰형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허리를 부여잡고 수시로 눈물을 터트렸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아버지의 고생을 누구보다 많이 봐왔기에 큰형의 슬픔은 자신보다 훨씬 더 했을 것이다.
시선을 돌려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으셨고, 수시로 최강철에게 올라가라며 등을 떠밀었었다.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가정 일에 연연하면 안 된다는 게 어머니의 주장이었다.
“어머니, 이젠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려, 늦었다. 얼른 가.”
“선거가 끝나면 뵈러 내려가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계세요.”
“알았어. 에미야, 곁에서 아범 잘 챙겨라. 선거한다고 쫓아다니다 보면 힘들 거여. 옆에서 잘 걷어 매겨. 알겄지?”
“예, 어머님.”
그저 먹는 것을 챙기신다.
어머니는 평생을 자식들이 먹는 걸 걱정하셨는데 지금도 그 습관은 바뀌지 않으셨다.
“갈게요. 저는 가서 이길 겁니다. 반드시 이겨서 대통령이 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 * *
북한 주석궁.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북한의 최고 실세들이었고 그 중앙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인삼차가 놓여 있었는데 이미 싸늘하게 식은 상태였다.
“재밌는 놈들이구만.”
“그렇습니다. 아주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미제 놈들은 최강철 총리가 무척이나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호리에 그건 뭐야? 우리가 핵폭탄을 실험했다는 장면은 어떻게 만들어진 거야?”
“문호리에 광산이 있습니다. 저희가 확인한 결과 폭파장면을 조작해서 내보낸 것 같습니다.”
“푸하하……. 하는 짓 하고는… 쯧쯧.”
“이놈들이 진짜 항공모함전대를 이쪽으로 보냈습니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할 생각이구만. 놈들이 우리에게 준다는 돈이 얼마지?”
“현금으로 5천만 달러를 당장 지급하고, 5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지원하겠답니다. 경제 제제는 남한의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즉시 풀어주겠다는군요.”
“괜찮은 조건이구만.”
“그자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공동구역과 우리쪽 자치구도 그대로 두겠답니다. 다시 말해서 남한이 주축이 된 지금까지의 관계를 미국이 주도하고 싶어 하는 것이죠.”
“한반도를 자기들 손아귀에 넣고 흔들겠다는 심산이군.”
“그렇습니다.”
“그래, 당신들 생각은 어떤가?”
“상당히 괜찮은 제안입니다. 남한과 이대로 관계를 진행한다면 우린 그동안 유지해 온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나선다면 그런 우려는 없죠. 그자들은 한반도가 통일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그게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넘버 원 전략이지?”
“맞습니다. 적당한 긴장을 통해 세계가 미국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전략입니다. 실질적으로 미국은 그 전략을 통해 그동안 남한을 비롯해서 수많은 국가에 무기를 수출했고, 중동과 아프리카 쪽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크크크…….”
김정일의 입에서 이상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무력부장 류철한의 보고를 받으며 연신 손가락을 두들기고 있었는데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미국은 이틀 전 이번 사안에 대해 북한에서 침묵하는 조건으로 현금지원과 경제 제재를 풀어주겠다는 제안을 은밀하게 해 왔다.
조건이 좋다.
미국은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체제보장까지 언급해왔고, 현재 진행 중인 남북경협사업까지 그대로 진행할 수 있게 해준다는 약속을 했다.
다른 때 같았다면 두 말없이 받아들였을 제안이었다.
하지만 김정일은 안경사이로 파란 시선을 뿜어내며 손가락의 두들김을 멈췄다.
“준비하라우.”
“위원장 동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정치는 신뢰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최강철은 무려 8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에게 신뢰를 보여주었어. 놈은 나에게 했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그러니 나도 약속을 지켜야겠다. 그리고 미국 놈들의 약속을 나는 믿을 수 없어. 그자들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배신의 칼을 꺼내 들 놈들이다.”
“위원장 동지는 최강철 총리가 남한의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시는군요?”
“그래야 한반도가 산다. 그놈은 언제나 나에게 이런 말을 했지. 우리가 분단된 이유는 오직 하나, 외세 때문이라고 하더구만. 나도 인정했어. 이념의 차이는 이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주체사상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북한이. 그리도 나와 당신들, 모든 인민이 잘 먹고 잘사는 거야. 그래서 남한의 도움을 받아 중국식 개방을 서둘렀던 거다.
당신들도 지금 눈으로 보고 있잖아? 최근 8년 동안 우리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 이제 우리 인민들은 배가 고파 길거리를 헤매거나 산속에서 칡뿌리를 캐 먹지 않아도 된다. 최강철이 없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이었어. 그래서 나는 최강철을 믿는다.
그놈은 절대 약속을 어길 놈이 아니니까!”
* * *
KBS 9시 뉴스 담당PD 정호영은 숨을 헐떡거리며 보도 국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방금 들어온 화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담화문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화면에 잡힌 김정일은 뒤쪽에 당과 군부의 실세들을 전부 대동하고 나왔는데 전혀 예고조차 없었던 일이었다.
“국장님, 빨리 스튜디오로 내려오셔야겠습니다.”
“뭐야?”
보도국장 장호철이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그는 골머리를 썩고 있는 중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우익단체들의 시위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항의가 빗발쳤고, 여러 경로를 통해 현재 벌어지는 남북대치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보고하라는 압력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정부쪽이 아니라 다른 쪽이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은 막강해서 함부로 거부하기엔 부담이 너무 컸다.
그랬기에 그는 안색이 새하얗게 변한 담당PD의 얼굴을 확인했음에도 일단 소리부터 질렀다.
그러나 PD는 그의 고함을 듣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은 목소리로 미친 듯 떠들어댔다.
“국장님, 서둘러야 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금 특별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