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2장 황제로 가는 길 - 1 >
최강철은 시합을 끝낸 후 대통령과 약속한 대로 급히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미국의 언론이 최강철의 귀국을 막으며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오바마를 비롯해서 미국의 유력한 정치인들 그리고 경제계의 인사들까지 그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들하고만 시간을 가진 후 단 삼 일 만에 비행기에 올라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공항 전체가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한민국은 복싱 역사에 또다시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돌아온 그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국민들은 돌아온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기에 어색했지만 어쩔 수 없이 오픈카를 타고 공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예전 현역시절에 했던 카퍼레이드와 기분이 달랐고 국민들의 반응이 달랐다.
시청에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대한정의당의 대표인 최철한과 심지어 ‘민주연합’의 당대표까지 자리를 함께한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그를 놀라게 만든 건 광화문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시민들의 행렬이었다.
시민들은 최강철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광화문으로 몰려들었는데, 그 숫자는 5만 명을 훌쩍 넘고 있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돌아온 지 불과 10일 만에 대통령은 최강철을 국무총리에 앉힌 후 통일부 장관을 겸임케 만들었다.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의 선택에 반대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최강철에 관한 일이라면 어떤 것도 용인할 의향이 있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국무총리에 그를 지명한 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도권 분산화 정책 때문이었다.
그만큼 어렵다.
사회 전반에 걸쳐 반대여론이 형성된 수도권 분산화 정책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강철의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
최강철은 국무총리에 임명된 후 각종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수도권 분산화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향후, 대한민국의 영광스러운 발전을 위해서는 수도권 분산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그의 요지였다.
“그럼,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의 피해는 어쩔 생각입니까? 학교, 공기업 그리고 대기업 본사의 이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은 또 어쩔 겁니까? 애꿎은 직장인들이 두 집 살림을 하느라 허리가 휘어질 것이고,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될 겁니다. 총리께서는 이런 문제점들이 산적되어 있다는 걸 모르십니까?”
대담프로그램의 상대로 나온 ‘민주연합’의 손영두가 강한 논조로 따져 물었다.
그는 이번 수도권 분산정책의 저격수로 활약하고 있었는데 갖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통계자료까지 들먹이며 최강철을 압박했다.
그러나 최강철은 전혀 그의 반격에 당황하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분간 발생하는 작은 문제에 불과합니다. 주요 대학들이 전부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 교육 때문에 사람들은 서울에 사는 걸 고집하지 않을 겁니다.
두 집 살림이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가족들이 생이별을 하면서 고생을 한단 말입니까. 그것은 서울과 수도권에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의원님, 우린 작은 문제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의 예를 보십시오. 그들은 유수한 대학들이 국토 전역에 뿌리를 내린 채 좋은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기업과 주요 그룹들의 핵심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린 미국 보다 훨씬 국토의 면적도 작으면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현상을 방치한다면 지방은 점점 공동화 현상이 발생해서 국토의 상당 부분이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
“강제로 국민들을 지방에 이주하는 정책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총리님, 생각해 보십시오. 서민들은 힘들게 집을 마련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누군가의 외압에 의해 자신의 재산이 반 조각 난다면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수도권에 살고 있는 2천 5백만의 국민들은 절대 수도권 분산정책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 이러한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가능한 이야깁니다.”
“의원님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평균 집값은 지방 소도시의 3배에 육박합니다.
특히 일부 지역의 집값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쌉니다. 과연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겠습니까? 앞으로 우린 이런 현상을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수도권에서 집을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해야 함에도 집 때문에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현상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수도권 분산정책을 강행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희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국토가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대한민국은 더욱 탄탄한 기초 아래 번영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보세요, 총리님. 그런 번지르르한 말로 국민들을 현혹하지 마세요. 현실을 외면하지 말란 말입니다.”
“정말 제가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겁니까? 의원님, 저는 의원님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의원님이 생각하는 정의가 무엇이든 먼저 국가를 생각해 주길 바랍니다. 국가는 어느 특정계층, 특정 지역, 특정지위에 있는 사람들만 잘살게 되는 순간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 * *
최강철이 전면에 나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직접 국회로 나가 수도권분산정책의 타당성을 지속해서 설명하자, 지금까지의 반대 기조가 점점 찬성쪽으로 가닥을 잡아 나갔다.
먼저 지방이 움직여 정부의 정책에 강력한 찬성표를 던졌고 그런 분위기는 점점 수도권으로 번졌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 너무나 체계적이었고 현실적이었으며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최강철은 이주정책에 앞장서는 대학과 공기업 그리고 기업들에 각종 혜택을 주는 대신,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에겐 가차 없는 창을 겨누었다.
명문대학교로 꼽히는 유수한 대학들이 지방 이전을 반대하며 학생들을 동원해서 시위까지 벌였으나 최강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을 찾아가 직접 설득하는 방법을 택했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학교가 지방으로 이전했을 때 혹시 삼류대학으로 전락할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여러분의 모교가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는 걸 두려워 이렇게 시위에 나선 것인가요?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작은 인연과 이득에 연연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은 젊습니다. 끝없는 도전으로 인생을 개척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저는 학생 여러분을 선동해서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고자 하는 기성세대가 부끄럽습니다. 학생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학연에 얽매여 살아가는 시대를 버려야 합니다.
그대들이 있는 자리가, 그리고 학생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희망의 끈을 찾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판단과 가치관, 그리고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미래를 위해 정진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 * *
누군가의 힘이 사회를 이끌어 간다면 그는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최강철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그는 야당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찾아가 설득해 기어코 수도권 분산정책을 통과시켰다.
학생들은 최강철이 학교로 찾아간 이후 시위를 멈추고 학업에 복귀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국민들은 오히려 수도권 분산정책을 찬성했다.
정부의 움직임은 빨랐다.
미리 준비한 대로 정부는 대학과 공기업, 주요그룹들의 이전도시를 결정했고 즉각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필요한 예산은 정부에서 지원했기 때문에 이전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최강철은 국무총리를 맡은 이후로 굵직한 정책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가 추진한 정책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출산장려정책과 노령화에 대비한 노인복지에 관한 것이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젊은이들이 출산을 꺼려한다는 걸 해결하기 위해, 최강철은 다자녀 가구에 혜택을 주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둘째부터는 고등학교까지 완전 무상으로 다닐 수 있도록 조치했고, 셋째부터는 대학 무상교육과 매달 5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65세 이상의 불우한 노인들에게 매달 100만 원씩의 생활자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자식들에게 버림받거나 각종 다른 이유로 혼자 사는 노인들이 대상이었다.
일각에서는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반대를 외쳤으나, 최강철은 강하게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충분하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세계시장을 휘저으며 성장하는 중이었기에 국고는 충분했고, 복지에 예산을 쏟아부을 정도로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상태였고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피닉스그룹을 필두로 수많은 기업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하며 전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세계는 대한민국의 약진을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외환보유고는 5,000억 달러가 넘었으며, 수출금액은 일본을 턱밑까지 추격한 상태였다.
정부정책과 별도로 최강철은 비룡과 피닉스 그룹의 일에도 바짝 신경을 썼다.
그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것은 국방 분야와 신기술 분야였다.
모든 것은 투자로부터 비롯된다.
마음껏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최강철은 국방 분야와 신기술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했는데 연구진이 필요로 하는 실험 장비는 물론이고, 유수한 인재들의 스카우트에 돈을 퍼부었다.
그 결과가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비룡에서는 차세대 전투기 ‘불사조- 3’과 전폭기 ‘삼족오-2’, 공중급유기, 조기경보기까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벌써 시험비행에 들어간 상태였다.
거기에 사거리 5,000km의 미사일이 개발되어 실험 대기 중이었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한 준비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피닉스 조선에서는 3척의 이지스함이 건조 완료되어 내년 상반기에 진수되는데, 앞으로도 향후 5년 동안 15척이 더 진수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첨단무기가 탑재된 이지스함은 전부 9,000톤급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구축함들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핵잠수함까지 개발하는 중이었기에 향후 10년 이내 동아시아 최강의 해군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는, 피닉스 조선에서 항공모함을 준비 중에 있다는 것이었다.
핵원자로로 추진되는 배수량 11만 톤급 함재명 ‘광개토대제’는 3차원 대공탐색레이더, AN/SPQ-9B 목표물 획득레이더, AN/SPN-43B 항공관제레이더, 4×Mk 91 NSSM 유도시스템 등 최신장비가 장착되었고 3,500명의 승조원이 탑승할 수 있는 매머드급 항공모함이었다.
피닉스 조선에서 최신예 구축함들을 계속 생산하는 것도 완벽한 항공모함 편대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정부에서 발주한 사업들도 있지만, 대부분 최강철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들이었다.
특히 핵잠수함과 항고모함의 건조는 정부에서 발주하지 않았음에도 최강철이 결정했는데 나중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긴,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공중급유기를 비롯해서 조기경보기, 인공위성추진사업들도 정부와 사전교감은 있었지만, 대부분 최강철이 먼저 투자해서 진행되는 사업들이었다.
* * *
돈 들어갈 곳이 점점 많아졌다.
워낙 거대한 투자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대한민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도 자금이 부족한 경우가 발생했다.
특히 미사일과 항공, 해군력 증강을 위해 매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고 있었기에 마이다스 CKC를 운영하고 있는 클로이와 신규성이 매일 징징거릴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북한쪽에도 천문학적인 투자가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돈 들어갈 곳은 천지였다.
이제 경제공동구역은 활기로 가득 차 생산된 물품들이 세계로 흘러나가는 중이었고, 공단의 규모도 점점 확대되고 있었는데 워낙 임금이 쌌기 때문에 30여 개의 외국기업까지 들어 온 상태였다.
서울과 평양을 잇는 고속도로는 준공단계에 이르렀고 철도도 내년이면 개통이 예정되어 있었다.
북한 전역에 설치되고 있는 자치구도 완성단계에 돌입되어 있었다.
남한 측에서는 이미 50여 개의 기업들이 내년부터 생산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팀이 파견되어 있었는데, 자치구에는 퇴역한 북한 군인들이 공장을 짓는 데 투입되어 있는 상태였다.
최강철은 자금이 부족하다는 클로이의 말을 듣고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가 국방사업에 투자하는 돈은 매년 100억 달러가 넘었지만, 충분히 버틸 수 있었고 자금을 확보할 방법도 부지기수였다.
그중의 하나가 암호화폐 비트코인이었다.
최강철은 2009년부터 비트코인을 쓸어 담기 시작했고 2010년 상반기까지 2백만 개를 확보했다.
비트코인의 총량이 2,100만 개에 불과했으니 무려 10%나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최강철은 신규성에게 계속해서 비트코인을 확보하란 지시를 내렸다.
신규성은 전혀 쓸모없는 비트코인을 확보하란 지시를 내리자 의문을 나타내면서도 계속 물량을 확보해 나갔다.
누구보다 최강철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을 거란 판단과 그리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단 이유 때문이었다.
정우석 대통령이 집권한 8년.
그동안 대한민국은 수많은 변화를 겪으며 세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 해왔다.
수많은 정책이 시행되었고 국민들의 의식은 성숙해질 대로 성숙하여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 지 오래였다.
대한민국이 다시 들썩이기 시작한 것은 정우석 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3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드디어, 최강철이 대한정의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며 모든 공직을 사임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