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77화 (277/308)

< 제39장 고 아니면 스톱! - 5 >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정보들은 실시간으로 CIA 국장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대통령까지 신경 쓰고 있는 사안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를 보이게 된다면 즉각 보고를 해야 했다.

남북의 실무협상에 관한 세부내용을 보고받으며 웃었다.

북측은 거지처럼 현금을 줘야 만나겠다며 우겼고, 남측은 어떡하든 한 번이라도 만나기 위해 안달을 부리는 과정이 예전과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정말 불쌍한 자들이다.

남북정상은 그런 과정을 통해 성사된 것이니 나올 수 있는 게 뻔했다.

아직 남쪽에서 얼마나 줬는지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결국 북한이 제시한 5억 달러 이상을 퍼부어 주었을 게 분명했다.

남한의 대통령은 늙었음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지지율이 바닥을 치자 예전 정권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걸 보면 썩어 빠진 이전의 대통령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의 지도자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재밌는 이야기다.

그깟 북한지도자를 한 번 만났다고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그럼에도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엉뚱한 곳에서 로비하는데 귀재였고, 미국 역시 그의 수상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당근 전략이다.

그까짓 노벨평화상 하나 주어 한국을 순한 양처럼 다룰 수만 있다면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CIA에서 비상이 걸린 건 북한 방문자의 이름 속에 최강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최강철이라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뭔가 예전과 다른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최강철이 지닌 영향력은 CIA조차 긴장시킬 만큼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던 것 같았다.

어젯밤 들어온 공동선언문의 초안 내용은, 예전과 대동소이한 것뿐이었다.

이산가족상봉, 경제협력, 평화유지.

크크크…. 그러면 그렇지 다른 게 나올 리 있을까.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국제정세와 북한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이번 정상회담 역시 쇼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똑, 똑!’

급하게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CIA 국장 마이클 존스는 인상을 긁으며 문을 노려봤다.

아침 일찍부터 이렇게 급박하게 방문을 두드린다는 건 급한 일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예상대로 1급 정보관 존 헉스였다.

그는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는데 분명 홍콩에서 날아온 정보문서일 것이다.

“뭐야?”

“국장님. 새로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남북정상이 비밀리에, 무려 3시간이나 독대를 했답니다.”

“뭐라고!”

“새벽 5시부터 8시까집니다. 그런 후 양측 실무자들이 미친자들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쪽에 나가 있는 우리 애들은?”

“새벽 무렵부터 북한 보위부 놈들에게 압류되어 있답니다.”

“우리 애들은 한국측 사절단 일원으로 따라갔잖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미 북한 쪽이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

“최대한 알아보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나, 나오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남측 놈들도 전부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에 알아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놈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알아봐, 빨리 알아보란 말이야!”

“예, 국장님…….”

헉스가 그의 불호령을 듣고 미친 듯 빠져나갔다.

하지만 폐쇄적인 북한에서 보위부가 동원되었다면 어떤 정보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CIA 국장 마이클 존스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와 정보부서는 CIA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모든 정보를 공유했고, 미국이 원하는 쪽으로 움직였는데…. 최근에 들어와서는 엉뚱한 행동들을 계속하고 있었다.

미사일 사거리 증가에 대해 미국의 협박에도 끝끝내 고집을 피워 성과를 얻어내더니, 그동안 정상회담 과정에서의 협의도 원활치 않았던 것이다.

* * *

워싱턴 포스터지의 윌리엄은 백화원으로 아침 일찍 나와 자리를 잡은 채 남북정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제 곧 두 정상의 공동선언문이 발표될 것이다.

벌써 20년이나 아시아 전담 기자 생활을 했기에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그래서 시큰둥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불 보듯 뻔할 것이다.

남북정상이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두 나라의 특성상 나올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랬기에 옆에 서 있는 뉴욕 타임지의 로건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심상치 않다.

대부분 기자는 자신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중간중간에 있는 몇 놈의 얼굴에서 로건과 비슷한 긴장감이 읽혀졌다.

그가 로건의 옆구리를 찌른 것은 기자로서의 직감이 발동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봐, 로건. 왜 그래. 배 아프면 얼른 화장실에 다녀와. 잘못하면 쌀 수도 있어.”

“농담하지 마라.”

“무슨 일 있어?”

“아직 몰라.”

“너, 나한테까지 이러지 마라. 예전 콘트라 사건 때 내가 도와준 거 기억 안 나?”

윌리엄의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로건을 노려봤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게 이 세계의 철칙이다. 그러니 뭔가가 있다면 로건은 자신에게 정보를 넘겨줘야 나중에 욕을 먹지 않는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오늘 뭔가 큰일이 터질 것 같아.”

“큰일이라니?”

“윌리엄, 자네 그동안 너무 편하게 지냈던 모양이야. 도대체 어젯밤에 뭐 했어?”

“하긴 뭘 해. 북한에서 할 수 있는 게 잠자는 것밖에 더 있어?”

“쯧쯧쯧…. 새벽에 CIA에서 나온 애들이 전부 구금됐다. 그리고 봐라. 보위부 애들이 완전무장한 채 철통같이 경비를 서고 있는 거 안 보여?”

“그거야…. 로건, 도대체 뭐냐? 답답하게 만들지 말고 빨리 말해.”

“아침에 양측 실무자들이 미친놈들처럼 뛰어다녔단다. 뭔가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해.”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지.”

로건의 대답에 윌리엄의 볼살이 밑으로 쳐졌다.

뭔가 있는 줄 알고 잔뜩 긴장했더니, 로건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일상에 대한 불협화음과 의심뿐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다시 시큰둥한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벌어지긴 뭘 벌어져. 나올 건 뻔한데. 괜히 설레발치는 거 아냐?”

“넌 아무래도 은퇴해야겠다. 기자의 감이 너무 떨어졌어.”

“이 자식이, 별소릴 다 하네…….”

윌리엄이 인상을 쓰다가 입을 멈췄다.

로건정도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들어 점점 일하기가 싫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때 문을 통해 남북의 정상이 나란히 손을 잡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머리끝이 쭈뼛 곤두섰다.

손을 잡아?

물론 인사를 하기 위해 악수를 할 수는 있지만, 남북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장소에서 연인처럼 손을 잡고 들어온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전 세계에서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며, 그들의 다음 행동을 지켜봤다.

윌리엄과 로건,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기자가 전부 입을 떠억 벌린 것은, 남북공동선언문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 * *

제1항 남북은 휴전상태에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종전을 선언하며 양측 모두 전쟁을 통한 통일 의지를 완전히 버린다.

제2항 남북은 한민족으로서 상호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해 나간다.

제3항 남북의 교류를 위해 현재의 휴전선 양쪽 20km 후방으로 병력을 철수시키며 그곳에 경제공동구역을 설치한다.

제4항 경제공동구역은 남과 북의 기업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공단을 세워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

제5항 금년 중에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을 추진하되 원하는 지역에서 만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제6항 …….

* * *

기자들이 미쳤다.

특히 대한민국의 기자들은 취재조차 잊어버리고 만세를 불렀는데, 자신이 이 역사적인 현장에 서 있는 게 믿기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한국 기자들 역시 이 정상회담에 그리 커다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노벨상에 욕심이 있어 돈을 주고 겨우 만났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고, 실무협상 과정에서도 북한은 예전과 달라진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양쪽이 협의한 선언문이 발표되자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만큼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일이…. 우리 민족에게, 이런 순간이 찾아오다니…….

공동선언문을 낭독 한 두 정상이 서로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들의 눈이 붉어졌고 끝내 이곳저곳에서 감격의 눈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영원히 적대하면서 살아갈 것 같았던 남과 북의 전격적인 화해와 용서는, 그들을 감격하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것은 텔레비전을 통해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대한민국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의 방북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화해 속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정상의 모습을 보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며 환호를 질러댔다.

아직 세부적인 안들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로써 충분했다.

종전선언, 그리고 어떠한 무력도발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

휴전선 양쪽으로 20km씩 병력을 후퇴하고 그곳에 공단과 주거지역을 설치한다는 건, 그에 대한 실질적인 시행방안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 * *

모든 일정을 끝내고 비행기를 탄 대통령은 매우 지친 모습이었다.

대통령 일행이 전용기에 탈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통령의 손을 굳게 잡으며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대통령 역시 최선을 다하겠다며 그의 몸을 끌어안고 등을 어루만졌다.

비행기에 탄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들을 전부 물리치고 최강철을 옆에 앉혔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최 의원, 고마우이. 정말 고맙네. 자네 때문에 내가 임기 중에 커다란 일을 할 수 있었구먼.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네.”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돌아가시면 대통령께서 중심을 잡고 일을 추진해 주셔야 합니다. 모든 국민들이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내신 대통령님을 지켜볼 것입니다.”

“아닐세, 나는 이 일을 추진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야. 그러니 자네가 해주게.”

“대통령님!”

“나는 돌아가면 국민들께 분명히 말할 것이네. 이 일을 위해 자네가 한 일들을 말일세. 그리고 자네가 누군지도 내가 밝혀주지. 이제 자네의 정체를 밝힐 때가 되었어. 그래야 이 일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이봐 최 의원. 그렇지 않아. 나는 자네가 국회의원에 머물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이쯤에서 모든 걸 털고 가야 해. 국민들에게 자네가 누군지 정확히 알려주고, 국가를 이끌어 나갈 자격을 얻어야 하네. 자네의 재산을 숨긴 것도 내 의지였다고, 국민들께 말하겠네. 이번 북한과의 협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말하면, 국민들도 이해해 주실 거야. 그리고 대통령 연임제도 우리 쪽에서 발의하는 것으로 하겠네. 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인물들이 해야 되고, 능력 있는 대통령은 계속 국가를 이끌 책임이 있어.”

“저는 많은 것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대통령님께서 너무 과분한 평가를 하시는 겁니다.”

“수십 년을 정치판에서 뒹굴었지. 그 많은 세월 속에서 내가 얻은 건 사람을 보는 눈밖에 없어. 자네야말로 대한민국의 보배일세. 그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네. 자네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이 과연 무엇 때문일까 라는 생각 말일세. 혹시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이지 않을까란 걱정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네. 하지만 이젠 아닐세. 돈과 명예를 돌같이 여기고자 그렇게 노력했어도 잘 되지 않더군. 독재와 싸우면서 목숨을 바친 인생이었음에도 말이야. 그런데 자네는 그렇지 않았어. 그것으로 충분하네. 최 의원, 조국을 위해 희생을 해주게. 나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자네에게 맡기고 싶네.”

“저는 야당의 국회의원일 뿐입니다. 정부에 능력 있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공동경제구역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지만 아직 정부는 그만한 여력이 없어.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아무리 혜택을 준다고 해도 쉽게 가담하지 않을 거야. 그동안 북한이 보여주었던 행태는 불신을 주기에 충분했거든.”

“약속드린 것처럼 피닉스 그룹이 먼저 나서겠습니다. 그러니 그건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단순히 그런 것 때문만이 아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수시로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한다네. 공동경제구역에 관한 것은 자네가 그에게 약속한 것이니 끝까지 책임을 져줘야 한다더구만.”

“그분이 보고 싶어 한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이보게, 늙은이 부탁 좀 들어줘. 나는 일단 통일부 장관에 자네를 앉히고 싶다네. 그러니 허락해 주시게.”

“참으로 난감한 말씀이군요. 일단 돌아가서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저의 당과 협의도 해야 할 테니 시간을 주십시오.”

“알았네. 하지만, 제발 내 소원 좀 들어주게. 내가 통일의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자네가 도와주시게. 그런 후 자네가 통일을 시켜. 그러면 되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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