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76화 (276/308)

< 제39장 고 아니면 스톱! - 4 >

김정일은 한 잔으로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는 또 다사 와인 잔에 가득 술을 따른 후 다시 한번 입안으로 부어 넣었다.

그런 후 천천히 안경 너머, 최강철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내 아버지, 김일성 수령께서는 공화국을 나에게 물려주시며 이런 말을 남기셨소. ‘국가는 소유물이 아니다. 내가 너에게 공화국을 물려주는 것은 네가 호의호식하며 잘 먹고 잘살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라, 너라면 공화국을 번창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너보다 공화국을 먼저 생각하거라.

’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을 잘 몰랐지. 그냥 아버지가 한 것처럼 인민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군부만 확실하게 장악하면 공화국은 위세 당당하게 발전할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알 수 없는 증오와 인민들의 배고픔뿐이었소. 최 의원은 혹시, 우리 공화국이 이렇게 된 이유가 뭔지 아오?”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추측은 하고 있습니다.”

“말해보시오.”

“솔직히 말해도 되겠습니까?”

“괜찮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매우 불쾌하실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위원장님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실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란 말이지…. 그렇다면 한 잔 더 합시다. 나는 술이 들어가면 더 냉정해지는 편이니까…….”

김정일은 다시 술을 가득 따른 후 단숨에 들이부었다.

그런 후 안주로 놓여 있던 치즈를 손으로 들어 입에 가져가곤 아주 천천히 오물거리다가 삼켰다.

“자, 이제 준비되었소. 말해 보시오.”

“사람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외람된 말씀이나 북한의 정권은 인민들을 동물로 취급했기에 이런 가난과 고통을 겪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 썩을 대로 썩어버린 지도부의 비리가 이런 상황까지 만들어 낸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를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김정일의 말문이 막혔다.

권력을 잡은 후 지금까지 자신의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눈이 불타올랐고 가슴이 터질 듯하며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최강철을 쏴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간신히 참으며 다시 술잔을 잡았다.

“최 의원은 배포가 큰 사람이오. 감히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다니…….”

“그런가요?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지금 위원장님은 가슴을 여셨습니까?”

“음….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소.”

“그렇다면 여기 오신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기길 권해드립니다. 저는 위원장님에 대해서 모릅니다. 위원장님께서 저를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한테 감히, 라는 말씀은 쓰지 마십시오. 우리나라 대통령도 저에게는 그런 말을 쓰지 못하니까요.”

“뭐라고! 도대체…. 당신 뭐야?”

“저를 알기 전에 위원장님이 원하는 것을 말씀하세요. 그러고 나서, 저에 대해서 말씀드리죠.”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비록 조선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주인이었지만, 최강철은 꼬리를 말은 개처럼 김정일의 앞에서 기어 다닐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김정일도 만만치 않았다.

“두 달 전 미국과 미사일 사거리 변경 협약을 했드만. 우리 군부에서는 그 소식을 듣고 당장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자는 걸, 내가 간신히 달랬소. 당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야. 우린 남측에서 회담을 하자고 통 사정을 해서 만나줬을 뿐이야. 어때, 최 의원. 우리가 칼을 빼 들면 남한은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경제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오. 설마 그러길 원하는 건 아니겠지?”

“협박입니까?”

“내 말이 협박으로 들리나?”

“그렇습니다. 그것도 전혀 현실성이 없는 협박으로 말입니다. 위원장님, 저에게 그런 협박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진짜 가슴속에 있는 말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크크크…. 역시 대단하군. 지금까지 남한정부에서 온 자들은 내가 이렇게 나가면 언제나 꼬리를 말았는데, 최 의원은 전혀 다르구만.”

“위원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진솔한 대화를 나눠도 밤을 새워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젠 시작하시죠.”

김정일의 이상한 웃음을 들으며 최강철은 다시 한번 그대로 들이박았다.

엉뚱한 협박과 위협이나 받자고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었으니 김정일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자존심을 완전히 무너뜨릴 필요성이 있었다.

시선이 차갑다.

그의 안경 너머에서 날아온 시선이 마치 송곳처럼 가슴에 꽂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무심한 눈으로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김정일의 무거웠던 입이 드디어 열린 것은 최강철의 태도에서 절대 꺾이지 않는 완강한 고집을 읽은 후였다.

“내 태도가 고압적이었다면 사과하겠소. 최 의원이 말한 가슴을 열라는 것은, 속에 있는 고민과 고충을 전부 토해내란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좋소,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서 계속 버틸 이유가 없겠지. 지금 우리 인민들은 굶주림에 배를 곯고 있소. 그것을 해결해 주시오.”

“어떻게 해결해 드릴까요?”

“현금으로 5억 달러를 달랬더니, 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다더군. 나는 그 진위를 확인하고 싶소. 언제, 어떻게 우리한테 주겠다는 것인지 말해 주시오.”

“먼저 한 가지 묻겠습니다. 위원장님, 위원장님은 아직도 적화통일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건 갑자기 왜?”

“저는 위원장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전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물어본 겁니다.”

“최 의원도 잘 아실 텐데?”

“위원장님의 입으로 직접 말해주십시오.”

“지금 전쟁이 나면 우리나 그쪽이나 전부 괴멸할 것이오. 아니지, 이젠 우리가 불리해졌어. 중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남한과 일대일로는 승산이 없다고 하더군. 그런 상황에서 전쟁은 쉽지 않은 일이지…. 적화통일이란 건, 말 그대로 인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오. 허나, 예외의 상황은 언제나 있는 법이지. 우리 체제가 위협받거나, 지금처럼 인민이 다 굶어 죽게 된다면 무엇이 두렵겠나. 그땐 우리도 사생결단을 해야 되지 않겠소? 전쟁에 이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한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도 있으니까.”

“그렇군요.”

“이젠 왜 물어봤는지 말해 주시오?”

“우리가 투자할 500억 달러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선행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태도?”

“적화통일이란 단어를 완전히 삭제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저희 대통령과 종전선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종전은 미국과 협의가 되어야 할 텐데?”

“당연히 그래야죠. 하지만 우리가 먼저 해도 됩니다. 우리 땅에서, 우리가 싸움을 끝내겠다는데 미국이 뭐라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가 먼저 종전선언을 하고, 미국에 추후 통보를 해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허어…….”

“우리 민족은 하납니다. 언젠가는 둘이 하나가 되어 한민족으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거야 당연하지.”

“위원장님, 저희 남쪽은 북한 인민들이 굶주림에 지쳐 아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아직도 북한 인민들을 같은 핏줄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용단을 내려주십시오.”

“음…….”

김정일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쉽게 최강철의 말에 수긍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남쪽 정권과 상대하면서 겪어왔던 경험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버티고 협박하면 남쪽 정권은 결국 꼬리를 말면서 돈과 쌀을 보내왔던 전례가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예전에는 총 몇 방 쏴주고 500만 달러를 받은 적도 있었다.

“먼저 남측이 생각하는 투자방안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그러면 나도 생각해 보겠소.”

“종전선언이 된다면…. 휴전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이 20km씩 병력을 물리는 것이 협의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남한의 기업들이 그 40km에 대규모 공장과 기업들을 짓겠습니다.”

“그래서?”

“그 공장과 기업들에 북한 인민들이 들어와 일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도시도 만들겠습니다. 북쪽 20km 범위에 근로자들이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짓고, 그곳을 북한 쪽이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성이나 원산 등에 투자하는 게 아니고?”

“우린 북한 땅으로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언제 마음이 변해서 북한 정부가 위협을 가해올지 모르니까요. 먼저 신뢰가 쌓여야 합니다.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공장과 기업들이 돈을 벌게 된다면, 차후에 북한에 대한 투자도 점진적으로 고려하겠습니다.”

“으…….”

김정일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최강철의 말은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북한의 싼 임금과 남한의 우수한 기술력이 합해져 제품을 만들어 내면, 시장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겠다.’는 심산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었다.

북한 인민들은 지금 칡뿌리를 캐 먹으며 버티고 있는 중이었으니, 남한에서 대규모 공장을 지어 일하게 만들어만 준다면 고마워서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랬기에 김정일은 천천히 얼굴에서 미소를 만들어 냈다.

“무슨 소린지 알겠소. 그런데 말이야. 최 의원 말씀대로 그렇게 하기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갈 텐데, 그게 가능하겠소? 내가 슬쩍 그쪽 대통령에게 500억 달러 투자에 대해서 말했더니. 최 의원에게 전부 미루던데 그걸 어떻게 믿는단 말이오. 남한기업들은 정부가 요구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 위험을 감수할까?”

“제가 최강철이기 때문입니다.”

“…….”

“아까 위원장님께서 제 정체를 물으신 것에 대한 답변을 지금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 피닉스 그룹의 실질적인 소유자입니다. 더불어 미국 제1의 투자기업 마이다스 CKC의 주인이기도 하지요. 마이다스 CKC에 대해서 알아보시면 금방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최 의원이 마이다스 CKC의 진짜 주인이라고?!”

그토록 여유 있던 김정일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따로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그는 북한의 최고 권력자이기도 했지만, 세계 경제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이다스 CKC가 어떤 회산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베일에 싸인 신비의 한국인.

마이다스 CKC의 주인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로 알려진 사람이, 바로 최강철이란 뜻이었다.

“으…….”

연신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김정일은 술잔을 잡은 채 최강철을 바라보며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최강철이 말을 이어나갔다.

“500억 달러는 제가 구상하고 있는 기본비용입니다. 저는 위원장님께서 제 방안에 동의를 해주신다면, 북한이 남한만큼 잘 살 수 있도록, 계속 투자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위원장님,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민족은 영원해야 합니다. 한민족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위원장님께서 용기를 내주신다면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와 발전이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

대통령은 북한에서의 마지막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절대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북한 땅을 밟았고, 북한의 지도자와 악수를 하며 웃음을 나누었다.

일각에서는 자신의 업적을 칭송하며 노벨평화상을 운운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관심이 없었다.

바보 같은 자들이다.

명예는 한순간의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참모들은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벌써 이번 방문에 대한 업적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가 잠자리에 들지 못한 것은 오늘 밤 벌어지고 있을 김정일과 최강철의 단독면담에 온 정신이 가 있기 때문이었다.

최강철로부터 경협방안을 듣는 순간 소름이 끼치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 그의 말대로 진행될 수만 있다면 남과 북은 통일에 바짝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가 대한민국 땅이었다면 벌써 스무 번도 넘게 측근들을 회담장으로 보냈을 테지만, 대통령은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답답한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당신, 왜 잠을 자지 못하고 그래요.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어요?”

“아니오, 이제 5시밖에 안 됐으니 더 자요.”

손짓을 했지만, 영부인은 주섬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대통령의 노안을 바라보며 다가와 그의 앞에 앉았다.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그냥 물 한 잔 줘요.”

“아까 보니까 녹차 있더라고요. 따뜻한 물에 녹차 타 드릴게요.”

“그게 좋겠구려.”

영부인도 나이가 들어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하다.

행동도 느렸고, 움직이는 다리는 앙상해서 보기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녀가 타온 녹차를 입으로 호호 불며 천천히 마셨다.

영부인은 이제 더 이상 잠을 자기 어려웠던지 그의 앞에 앉아 두런거리며 북한에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그녀의 이야기가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의 말을 듣는체 해주었다.

갑작스럽게 방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 건 그녀가 어제 본 만수대 공연장면에 대해 이야기 할 때였다.

힘들게 일어나 문으로 다가가 열어주자 사색이 되어 있는 비서실장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오?”

“대통령님, 급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자고 하십니다.”

“지금 말이오?”

대통령이 자신도 모르게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5시 21분이다.

아직 새벽을 울리는 닭의 울음소리도 들리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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