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9장 고 아니면 스톱! - 2 >
최강철은 여의도 대한정의당 당사로 들어가 그의 최측근인 이병창, 혀윤회, 지석훈, 박훈도를 사무실로 불렀다.
그들은 대한정의당 창당멤버들로서 최강철이 가장 먼저 영입한 인물들이었다.
“회장님,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놀란 눈들이다.
아직도 그들은 사석에서 최강철에 대한 호칭을 그대로 불렀는데, 갑자기 콜을 당했기 때문에 궁금증이 눈에 가득했다.
“앉으십시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대통령 연설에 관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네 사람이 자리에 앉자 최강철이 천천히 그들을 한 번씩 바라본 후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차갑다.
그 미소에 담겨 있는 의지는 분명 시리도록 냉정한 것이었다.
“지금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를 하고 있는 우리당 의원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20여 명 정도입니다. 그 선두에 있는 건 박기철과 정용환 의원입니다.
그들은 예전 정권에서 썼던 수법을 대통령이 다시 쓴다며 이를 갈고 있어요. 국민들을 속여 세금을 낭비하면서 인기를 얻기 위한 수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한민족당, 집권당 일부 의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자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지랄하는 거지만, 우리당 사람들은 정책의 효용성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
“알고 있습니다.”
“그건 정우석 대표와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지만, 대통령의 뜻에 다른 의도가 있다며 불쾌해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행동이고 생각들입니다.”
“회장님,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신 겁니까?”
“당이 사분오열되는 모습을 국민들한테 보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먼저 정리합시다. 저는 오늘 오후에 대한정의당 이름으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선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지선언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말씀하신 두 가지는 대한민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안들입니다. 지금에서야 말씀드리지만, 제가 대통령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아이고!”
네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정상회담에 대통령이 야당의 국회의원을 대동한 적이 언제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정치와 경제에 뛰어난 감각이 있는 네 사람은 놀람 속에서도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은 생각을 동시에 떠올렸다.
그렇구나.
대통령은 이미 피닉스 그룹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그런 제안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단순한 원조가 아니군요. 대통령께서 회장님을 대동한다는 건, 원조가 아니라 경제협력인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경제협력은 원조보다 훨씬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자들이 변심을 하게 되면 자금을 한 푼도 빼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공장과 장비가 볼모로 잡히는 순간, 천문학적인 손해가 발생됩니다. 그런 일을 회장님께서 혼자 하시기에는 무립니다.”
“제가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차차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지금은 무엇보다 당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리당 사람들은 남북정상회담에만 반대를 하고 있는 거죠?”
“그렇습니다. 미사일 사거리 변경협약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 분께서 소속의원들을 설득해 주십시오. 저는 정우석 대표와 지도부를 만날 테니까요. 평화와 공존이라 대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제가 정상회담에 참석한다는 말을 하셔도 됩니다.”
“그런 극비 사항을 미리 말해도 괜찮겠습니까?”
“언젠가는 알게 될 테니까요.”
“왜 참석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저를 보고 싶어서 불렀다고 하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네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적절한 변명이다. 아직도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인 최강철이라면, 북한의 지도자가 충분히 보고 싶어 할 만하지 않겠는가.
* * *
대한정의당에서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들에 대해 지지선언이 터져 나온 건 오후 5시 무렵이었다.
이현석 대변인이 당의 이름으로 지지선언을 했는데, 주요 지도부가 전부 배석해서 당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언론에 알리고 있었다.
대통령의 정책에 찬성하지 않던 정우석 대표는 최강철을 다시 만난 후 완전히 돌아서서 직접 의원들을 설득하며 돌아다녔다.
최강철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남북경협방안의 커다란 밑그림을 설명해주자, 정우석 대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한정의당의 공식 지지선언과 달리, 최강철은 그다음 날 마이다스 CKC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언론들을 불러 인터뷰를 했다.
정도일보와 한수일보, 시사한국 등 10여 개의 일간지와 주간지들이었다.
신문 기자들은 펄쩍펄쩍 뛰면서 달려왔다.
최강철은 아직도 국민들의 영웅이었고 가장 큰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슈의 핵심인물이었으니 불러주는 것만으로 황송할 정도다.
잠깐의 변죽.
국회의원의 당선 소감을 비롯해서 총선과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답한 최강철은, 오늘 기자들을 불러 모은 목적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북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에 대해 대한민족당을 포함한 여러 인사들이 반대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남북정상회담이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정상이 만나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면 무슨 일을 못 하겠습니까?”
“대한민족당은 대통령이 또다시 퍼주기를 한다며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 아닌가요?”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못하는 주장입니다. 그럼 이대로 우리가 휴전선을 경계에 두고, 서로 총을 겨누며 영원히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한다면 무슨 수를 쓰든 만나야죠.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 대통령께서 무조건적인 원조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추측해서 국민들을 호도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무조건 적인 반대를 하고 있는 대한민족당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당리당략을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공당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는 걸 엄중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
* * *
MBC 사장인 이창래는 신문을 보면서 한바탕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며칠 동안 대한민국을 휩쓸던 혼란이 대한정의당의 지지선언과 최강철의 인터뷰로 인해 찬성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단하다.
대한정의당은 그동안 대한민국 정당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섰는데, 정의를 앞장세운 그들의 행동은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더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게 바로 최강철이다.
그는 돌아서기 시작한 국민 여론을 대한정의당의 지지선언으로, 완벽히 찬성 쪽에 설 수 있게 만들어 버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정연한 논리, 그리고 미래.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언젠가는 성취해야 할 평화와 통합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대한민족당의 논리를 뒤엎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때르릉… 때르릉.
전화벨이 길게 울린 것은 그가 보도본부장에게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특별프로그램 편성을 지시할 때였다.
“여보세요?”
“형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너 강철이… 아니지, 최 의원. 아이고…. 네가 전화를 다 주고 자다가 귀신을 본 것 같구나.”
“형님이 전화를 안 하니까, 제가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거 사장님 됐다고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야, 사장이 내가 되고 싶어서 된 거냐. 네가 시켜서 된 거지!”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시끄러워, 우리 밥 먹고 술 마시자. 너 국회의원 되신 거 내가 꼭 축하해 주고 싶었다.”
“그러시죠. 그런데 그것보다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뭐지?”
“이번 미사일 사거리 변경 협약에 대해서 특별프로그램을 하나 짜주십시오.”
“그거라면 이미 준비하고 있어.”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 겁니다. 국민들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음…. 대한민족당하고 친미주의자들이 가만 안 있을 텐데?”
“그러니까 부탁하는 거죠. 필요하면 제가 출연하겠습니다. 제가 나가서 떠들면 형님네는 공짜로 시청률을 얻게 될 겁니까. 욕은 제가 다 먹고요.”
“허어, 강철아. 너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비겁하게 본 거냐. 네 눈에는 내가 그 정도로 비겁하게 보였어?”
“하실 겁니까. 말 겁니까?”
“한다, 까짓거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우리 영웅께서 출연까지 하신다는데…….”
* * *
한미 미사일 협정.
처음에는 미국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ADD의 서한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비확산정책에 어긋난다는 불만에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180km의 제한을 두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협정서의 지위를 확보했다.
다시 말하지만, 미사일의 개발에 미국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 기술력이 확보된 상태라면 아무리 미국이 동맹국이라 해도 승인을 받아야 할 이유도, 통보도 필요 없는 게 국제현실이었다.
문제는 관성항법장치를 비롯한 주요기술과 제품들을 미국과 선진국에서 들여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미사일의 사거리 증가는 공염불에 불과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기술력이 부족함을 통감하며 눈물을 머금고 180km란 족쇄를 스스로 걸어 잠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정일환 박사가 이끄는 비룡의 연구진들은 무려 10년이란 시간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미사일의 주요기술들과 관련 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미국의 승인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에 협약을 변경하자고 요청한 것은 그들이 우방이라는 인식과 국제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최강철은 이런 사실들을 MBC가 마련한 특집방송에 출연해서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최강철의 입에서 폭탄선언이 터져 나온 건, 진행자가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했을 때였다.
“최 의원님, 지금까지 미사일 한미협정에 대한 역사와 배경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더더욱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을 때 사거리 800km의 미사일을 보유하지 못하게 되잖습니까. 미국의 기술과 부품들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아예 미사일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인데요. 그렇지 않나요?”
“맞습니다.”
“의문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로는 미사일 변경협약에 대해서 미국의 입장이 긍정적이라고 들었는데, 그것도 믿지 못할 것 같군요. 어차피 미국에서 협정에 동의해도 기술과 부품을 공급해 주지 않는다면 협정변경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정확한 지적입니다.”
날카로운 진행자의 질문에 최강철이 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어떤 당황함도 들어있지 않았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바로 그 부분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뜻이죠. 혹시 다른 방안이라도 있는 건가요?”
“국민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나라에는 비룡이라는 방산 업체가 있습니다. 그 비룡에서는 이미 사거리 800km의 미사일 기술개발을 완료해 놓은 상황입니다.”
사거리를 줄여 말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진행자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현재 2,000km짜리 미사일 ‘천궁2호’가 개발 완료 상태라는 걸 알았다면, 그는 놀라 기절할지도 몰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순수한 국산기술로 정확도 97%의 미사일 ‘천궁’이 개발된 상태입니다. 미사일에 필요한 모든 부품을 국산화했고 주요기술들도 전부 우리 기술진이 개발한 것입니다. 우리 정부에서 미국에게 협약을 변경하자고 제안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고…….”
“우리는 미국에게 구걸하기 위해 변경협약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우방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함이었음을 국민 여러분께 당당히 밝히는 바입니다.”
“그게… 그러니까 천궁이 언제 개발된 겁니까…….”
사색이 된 진행자가 최강철을 향해 미친 사람처럼 질문을 퍼부었다.
이미 약속된 시간은 지났지만, 어느새 쫓아 나온 이창래의 지시로 인해 촬영은 계속되었다. 담당PD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이 입을 떡 벌린 채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이건 완전히 대박이다.
특히 단순하게 미사일 변경협약에 대한 지지 프로그램이라 생각했던 이창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움직이지 못했는데 최강철을 향한 눈이 허공에 붕 뜬 상태였다.
내일 방송하는 것으로 예정된 이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방송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난리가 날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상회담이 문제가 아니었다.
미사일 독립국, 대한민국.
그 찬란하고 장엄한 자존심이 밝혀지게 된다면 국민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새롭게 다질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