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66화 (266/308)

< 제37장 마지막 승부 - 5 >

“최강철 선수, 피하지 않습니다. 돌진하는 최강철. 이걸 뭐라고 해야 되나요…. 1라운드부터 양 선수 링의 중앙에서 격돌을 벌입니다.”

“아무래도 최강철 선수 체력 때문에 경기초반에 승부를 거는 것 같습니다. 체중조절을 실패한 것이 원인 인 것 같습니다.”

“아,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어떡합니까. 지금의 공격으로 챠베스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경기 후반이 어려워진다는 거잖습니까?”

“아무래도 그럴 공산이 큽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최강철 선수의 원투 스트레이트, 라이트 보디. 반격하는 챠베스, 교묘한 더킹에 이은 라이트 훅, 레프트 어퍼컷. 양선수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스텝이 없습니다. 링의 중앙에서 조금이라도 물러서면 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펀치를 교환하는 양 선수, 악! 최강철 선수의 크로스 카운터. 때

리고 맞았습니다. 하지만 챠베스가 휘청합니다. 어깨로 들이박는 최강철 공격합니다. 무차별적인 공격. 나왔습니다. 최강철 선수의 전매특허 허리케인 콤비네이션입니다.”

“정타가 몇 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도 챠베스선수 역시 냉정하군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더니 천천히 외곽으로 빠져나가 반격을 합니다.”

“잡아야 합니다. 어차피 경기초반에 승부를 걸었다면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이종엽이 일어나서 주먹을 휘둘러댔다.

윤근모의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급해져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이 확실하다.

체중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에 경기 초반 승부를 건 것이라면 이번 기회를 최강철은 놓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다.

그랬기에 이종엽과 윤근모는 기회를 잡은 최강철이 챠베스를 쓰러뜨려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결과도 그렇게 나타나고 있었다.

백전노장인 챠베스는 외곽으로 천천히 돌면서 방어막을 재정비하고 독사처럼 날카로운 반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라운드가 끝나고 최강철이 코너로 돌아오자 윤성호의 얼굴이 허옇게 변했다.

숨결이 고르지 못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체중조절에 실패해서인지 최강철은 이전 경기와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거칠게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힘들어?”

“후훅…괜찮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

“원래 이게 우리 전략이었잖습니까.”

“그건 체중조절에 실패하기 전 이야기지.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자식아, 경기 질 생각이야. 왜 말을 안 들어 쳐 먹어!”

"몸이 덜 풀려서 그래요. 이제 괜찮아질 겁니다.”

“믿을 걸 믿으라고 해. 씨발,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어차피 길게 끌어 봤자 승산이 없으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김빠지게끔.”

“하도 복장 터져서 그런다. 놈의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두 번이나 걸렸어. 그걸 조심해. 잘 못하면 데미지를 입어.”

“다 피하면 언제 공격합니까. 마지막 시합이니 제 방식대로 싸우게 그냥 내버려 두세요.”

“이 자식아 피하라면 피해. 나 속 터지게 하지 말고!”

“흐흐… 알았어요.”

언제나 윤성호를 놀리는 재미가 즐겁다.

뻔히 알면서도 속아주는 그도. 이 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농담을 하는 최강철도 정상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그나마 이성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강철아, 팬케이크가 막히니까 챠베스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아. 어차피 둘 중에 하나는 죽는다. 알지?”

“관장님은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말했지만 난 그것보다 복부 공격이 더 신경 쓰인다. 넌 체중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에 복부를 맞으면 금방 체력이 저하 될 거야. 복부방어를 철저히 해야 돼. 알았어?”

“오케이.”

“야, 인마. 성일이 말은 잘 들으면서 왜 내 말을 생 까는 거나!" "생 까긴요. 새겨듣고 있습니다.”

“맞지 마라. 네가 맞으면 내가 맞은 것처럼 아프다.”

“그런 말은 형수님한테 가서 하세요. 소름 돋습니다.”

2라운드의 공이 울리자 최강철은 성큼성큼 챠베스를 향해 다가섰다.

자신이 생겼다.

이성일의 말대로 팬케이크가 완벽하게 차단당하자 챠베스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패턴을 잃어버리면 상황이 변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완벽하게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챠베스는 그동안 수많은 전투를 하면서 팬케이크에 특화된 사람이었다.

조금씩이라도 밀면서 상대를 가두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사용해 야금야금 침몰시키는 전술이 그가 지금까지 해 온 팬케이크 인파이팅이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절대 밀리지 않았기 때문에 챠베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의 싸움이라면 자신이 이긴다.

최강철의 펀치 스피드는 현존 최강이었고 지니고 있는 무기들도 챠베스에 전혀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최강철에게는 적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는 엄청난 반사 신경이 있었으니 전면전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윤성호가 걱정하던 체력이다.

1라운드를 뛰어보니 예전과 다르게 급격히 호흡이 가빠왔다.

이것이 체중조절실패에 대한 영향 때문이라면 경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챠베스를 향해 거칠게 돌진했다.

접근전.

드디어 챠베스도 칼을 뽑아 들었다.

1 라운드의 비세를 의식한 듯 그는 특유의 회오리 펀치들을 줄기줄기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 펀치에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당했던 말인가.

챠베스의 회오리 펀치는 그가 지닌 콤비네이션 펀치들이 마치 회오리처럼 강하게 회전하며 상대를 압박한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스텝 쪽에서는 시간을 끌면서 장기전으로 가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챠베스는 트레이너의 지시를 거부하고 인파이팅을 멈추지 않았다.

비겁함과 부끄러움은 한번으로 족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당당한 승부.

이 전쟁만큼은 아무런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한 점 부끄럼 없이 싸울 생각이었다.

“위잉, 위임, 윙….”

끊임없이 주고받는 펀치들.

적의 목 줄기를 물어뜯기 위한 살벌한 펀치들이 공간을 찢으며 날아갔다.

관중들은 이미 두 선수의 포로였다.

그들의 펀치 하나마다 함성과 비 명소리가 난무했는데 어느 특정선수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두 선수가 보여주고 있는 복싱의 아름다움.

끝없이 펼쳐지는 공방전은 무시무시한 태풍이 되고, 폭풍이 되어 관중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었다.

“챠베스의 라이트 스트레이트, 최강철 선수 맞았습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최강철. 뭔가 이상합니다. 5라운드에 들어서면서 최강철 선수의 몸이 급격해 둔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체력이 서서히 고갈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걱정이네요.”

“벌써 지쳤단 말인가요?”

“혹독한 체중감량을 한 상태에서 4라운드 내내 끝없이 격돌을 했습니다. 최강철 선수가 오버페이스를 한 것 같아요.”

“아…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전진하는 챠베스, 몰아붙입니다. 특유의 회오리 펀치. 주먹이 예상치 않았던 각도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방어하는 최강철, 날카로운 라이트 스트레이트. 그러나 반격이 단발공격에 그칩니다. 속사포 같은 콤비네이션 펀치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반면, 챠베스 선수는 펄펄 납니다. 계속되는 챠베스의 공격. 무차별 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견뎌내야 합니다. 최강철 선수 이 위기를 일단 넘겨야 합니다.”

“휴우…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지친 것 같아요. 최강철 선수는 체중조절에 실패하면서 최악의 컨디션으로 올라왔습니다. 이 경기는 어차피 말도 안 되는 경기였습니다. 두 체급이나 감량을 해서 경기를 치르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최강철 선수 너무 무리한 도전을 한 것 같습니다.”

윤근모의 입에서 땅이 꺼질듯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최강철의 경기를 수없이 해설했지만 이런 시합을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무기력증에 걸린 사람처럼 최강철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체중조절에 실패한 선수는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발부터 경직되며 움직이지 못하다가 점점 상체로 올라와 숨조차 쉬기 힘들어진다.

최강철의 상태는 분명 한계에 도달한 모습이었다.

김영호와 류광일은 양손은 꽉 쥔 재 입술을 깨물었다.

눈은 화면에 나오는 최강철의 모습을 봤지만 마음만큼은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4라운드까지 선전을 하면서 챠베스를 몰아붙이던 최강철은 5라운드부터 서서히 밀리더니 7라운드에 들어와서는 챠베스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는 중이었다.

한눈에 봐도 체력이 고갈된 모습이었다.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펀치가 나오는 속도도 굼벵이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최강철이 계체량에 실패했다는 소릴 듣는 순간부터 이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곧 죽음이 다가오게 될 것이다.

보고 싶지 않았다.

실력의 차이로 발생한 일이 아니라 개떡 같은 컨디션과 체력고갈로 인한 것이었으니 역전이 생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랬기에 김영호와 류광일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싸늘하게 가라앉은 광화문 광장.

오직 들리는 것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떠드는 캐스터의 울부짖음뿐이었다.

“씨발, 싸우는 게 아니었어. 싸우는 게…. 크윽….”

“울지 마라, 그리고 강철이를 욕하지도 마. 강철이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어. 복서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투지였잖아.”

“그래서, 뭐! 저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랬어. 왜, 왜!”

“도전이었지,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걷고 싶어 했던 강철이의 도전. 그래서 나는 아파하지 않을 거다. 비록 강철이가 진다해도 절대 울지 않을 거야.”

거짓말이다.

벌써 그의 눈에는 떨어지기 직전의 눈물이 고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류광일은 그 모습을 보고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런 거지.

네 마음이 나와 같다는 걸 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강철이가 더 비참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강철.

그동안 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더 맞지 말고 그냥 쓰러져. 네가 맞을 때마다 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단 말이야!

“헉…헉…헉!”

7라운드를 끝내고 돌아온 최강철은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가슴이 터질 듯 했고 다리가 천근처럼 무거워 움직여주지 않았다.

다가오는 펀치를 뻔히 보면서도 피하지 못할 만큼 몸은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설마 이렇게 까지 문제가 생길지는 몰랐다.

아무리 체중조절에 실패했다 해도 이 정도로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되었다는 건 작전의 실패에도 이유가 있다.

평소처럼 1라운드부터 격렬한 인파이팅을 펼친 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윤성호와 이성일은 그런 최강철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몸에 흐르는 땀을 닦아 줄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고 그 말을 꺼내는 건 죽기보다 싫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윤성호였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뻔히 알지만 말리고 싶었다. 여기서 말리지 않으면 어쩌면 커다란 데미지를 입어 건강에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강철아, 그만 하자.”

“헉, 헉… 아직 괜찮습니다.”

“이 새끼야…..정후를 생각해야지. 너 잘못되면 지영씨하고 정후는 어쩌란 말이냐. 씨발, 너는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까 여기서 그만 해!”

“하지 마라. 만약 누구도 타올을 던지면 죽여 버릴 테니까 마음대로 해. 난 분명히 말했어. 죽어도 링에서 죽는다!”

최강철이 눈만 들어 윤성호와 이성일을 번갈아 바라봤다.

파랄게 쏘아져 나오는 시선에서 정말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항복을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다.

그랬기에 윤성호와 이성일은 그의 시선을 피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말았다.

8라운드.

많이 맞았다.

챠베스의 공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날카롭게 전신을 유린해 왔다.

필사적으로 결정타를 피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거의 대부분의 공격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체력이 완전 고갈되며 방어막이 무너졌고 펀치는 마치 굼벵이처럼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챠베스의 시선이 들어온 것은 강력한 라이트 훅을 가딩으로 간신히 막으며 뒤로 물러날 때였다.

자신을 동정하는 그의 시선.

챠베스는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그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불쌍한가.

후후… 그렇기도 하겠다. 천하의 허리케인이 병신처럼 이렇게 두들겨 맞고 있으니 얼마나 불쌍해 보였겠어.

뒤로 물러나다가 강한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걸렸다.

‘쿠웅!’

쓰러지지 않으려 했지만 쓰러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다리가 풀린 상태에서 맞았기 때문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쓰러진 재 움직이지 않았다.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이렇게 끝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복싱인생의 마무리는 화려하고 빛나는 투지와 함께여야 했다.

“루시퍼, 이 개새끼야. 약속을 지켜라. 나한테….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준다고 그랬잖아!”

눈을 감은 채 이를 악물며 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 다오.

만약 이렇게 나의 복싱인생이 끝나게 된다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너를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레프리의 카운터 세는 소리.

자신의 침몰에 충격을 받은 관중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일어나지 말라며 악다구니를 쓰는 윤성호와 이성일의 고함.

몸은 말을 듣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생생하게 들렸다.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고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한순간.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면서 참았던 숨을 길게 내려뜨리자 온몸에서 빠져나갔던 생기들이 서서히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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