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64화 (264/308)

< 제37장 마지막 승부 - 3 >

피닉스 전자의 '영웅상'은 전 국민에게 화제가 되어 퍼져나갔다.

시상식은 3대 방송사와 언론 대부분이 참여해서 보도했기 때문에, 피닉스 전자의 ‘의인상' 수상식은 순식간에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피닉스 전자의 홍보실이 작정하고 언론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국민들이 놀란 것은 '의인상'으로 선정된 사람에게 준 상금이 무려 3억이었다는 것이었다.

3억이면 강남에 새로 지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더불어 망가진 차를 대신해서, 최신 SUV와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유럽여행권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과 부상이었다.

하지만 혜택이 주어진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박종용의 자녀가 성장해서 피닉스 전자에 입사하고 싶어 한다면, 무조건 취직을 보장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피 닉스 전자는 대한민국 젊은이 라면 누구나 입사를 원하는 최고의 직장이었으니 이건 상금이나 부상과 비교할 일이 아니었다.

남을 위해 목숨을 건 영웅에게는 그런 자격이 중분하다는 게 피닉스 전자 즉의 설명이었다.

더군다나 시상식에 나선 사람은 피닉스 전자의 사장이 아니라 국민 영웅 최강철이었다.

최강철은 시상식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의인이란 정의로운 마음으로 남을 돕는 사람을 말합니다. 생각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박종용 선생님의 희생정신이 빛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 남을 구하는 희생정신, 이 정신이 사회에 가득 찼을 때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국가로 거듭날 거라 생각합니다.”

피닉스 전자를 필두로,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는 피닉스 그룹 24개의 계열사가 '의인상'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달 2개 계열사가 의인상을 선정했는데, 사회 전 분야에서 타인을 위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든 사람들을 위로했다.

상금과 부상내역은 피닉스 전자가 한 것과 똑같았다. 대한민국 전체가 피닉스 그룹의 행동으로 인해 들끓었다. 남을 돕는 것이 결코 헛된 게 아니라는 생각을 국민들이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정부였다.

정부 역시 ‘정의로운 인물상’을 만들어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언론과 발을 맞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란 주제로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여나갔다.

최강철의 뜻은 피닉스 그룹 전체로 이어졌고 곧 정부와 언론이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위적인 사회개편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건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면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 * *

밀레니엄.

한 세기가 바뀌는 터닝포인트.

21세기에 들어서는 2000년 새해를 맞으며 사람들은 영광된 미래를 꿈꾸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벤처버블이 무너지며 수많은 사람을 통곡 속으로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무시무시하게 치솟았던 코스닥의 열풍은 새해를 맞으며 고꾸라지기 시작했는데 그 바닥을 알지 못할 정도로 급락을 거듭했다.

상장하는 대로 끝없이 상한가 행진을 반복하던 벤처기업들은 새해에 들면서 차가운 이성의 잣대에 칼질을 당했는데, 연일 하한가의 지옥 속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신규성은 그 모습을 보면서 길게 한숨을 내리 쉬었다.

개미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증권사와 외인 투자자들까지 대부분 물렸을 정도였으니 이번 폭탄 돌리기의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알만하다.

최강철의 지시로 작년 10월부터 주식을 팔기 시작한 마이다스 CKC는 새해를 눈앞에 둔 12월 중순까지 모든 주식을 매도했다.

확보된 현금은 정확하게 9조였는데 무려 45배에 달하는 이익을 얻었던 것이다.

쉴 틈이 없었다.

신규성은 코스닥에서 얻은 이익을 가지고 피닉스 그룹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바로 최강철이 제시한 미래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위함이었다.

* * *

최강철이 대한정의당의 정우석 대표를 만난 것은 미국으로 출발하기 2주일 전이었다.

혹독한 음식조절과 체력훈련으로 최강철의 몸은 눈으로 확인될 만큼 마른 상태였다.

“아이고, 회장님.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갑자기 전화를 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회장님 때문에 사회가 많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정우석의 칭찬에 최강철이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최강철의 진정한 신분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정우석 대표였기에, 그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회정의구현 운동이 최강철의 작품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대한정의당은 당 차원에서 정부와 협조하며 적극적으로 정풍운동을 도왔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훈련이 고된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체중조절을 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조금 가는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 걱정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서로 간의 안부를 묻고 이것저것 주변 이야기도 나눠가며 빙빙 돌려야 정상이겠지만, 정우석은 더 이상 변죽을 올리며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최강철이란 특수성.

그는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고, 자신과 대한정의당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사람이었다.

“대표님, 제가 오늘 대표님을 찾아뵌 것은 은퇴를 결정한 이유를 말씀드리기 위해섭니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회장님 말씀해주시죠.

그 이유가 뭐였습니까?”

“저는 내년 종선에 나설 생각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최강철의 대답에 정우석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정우석은 금년 6월에 벌어지는 종선에 대비해서 전략을 수립하느라 골머리를 않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마당에 최강철이 본격적으로 가세한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다름없었다.

반대?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의 당에 대한 영향력 같은 건 어차피 헛된 망상에 불과했고, 욕심조차 버린 지 오래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대표로 활동한 것은, 주인이 잠시 비운 집을 지킨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해 놓은 곳이 있습니까?”

“예.”

“어디지요?”

“종로에 나가고 싶습니다.”

“헉!”

단호한 최강철의 대답에 정우석 대표의 입이 벌어졌다.

종로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로 불리는 곳이었는데 제1야당의 최고실세이자 4선인 민강호의 근거지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침묵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수많은 상황과 조건이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며 최강철이 종로에 나섰을 때의 결과를 분석했다.

쉽지 않다. 최강철이 국민 영웅으로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건 알지만, 무려 20년 가까이 종로를 다져온 민강호와 단판 승부를 벌이면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입이 다시 열린 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회장님, 꼭 종로로 하셔야 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왕 정치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이상 당당하게 나서고 싶습니다.”

“걱정이 돼서 그렇지요. 회장님이 나서면 이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변수들이 너무 많고 상대가 너무 강합니다. 정치라는 세계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거든요. 정치라는 괴물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잡아먹습니다. 더군다나 회장님께서는 선거전까지 미국에 계셔야 하잖습니까. 그 지역 주민들은 보수성향이 강하고 민강호에 대한 충성도와 결집력이 뛰어납니다. 그러니 회장님, 다른 곳을 고르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종로는 제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곳입니다. 제가 그곳을 고른 것은 국민들이 가진 저에 대한 생각을 정확하게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표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져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최강철의 입을 보며 정우석이 작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여전히 당당하다.

져도 괜찮다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콱 막히는 충격이 다가왔다.

오랫동안 정치를 해 온 자신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며, 정우석은 가슴 한편이 서늘하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것이구나.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지.

그런 투지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영웅이 되었을 테지.

* * *

최강철이 마지막 경기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던 날 공항은 그 어떤 때보다 차분했다.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과 마지막이라는 슬픔이 공존했기 때문이었다.

성황리에 배웅을 받으며 최강철은 일행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윤성호와 이성일의 표정 역시 굳어져 있었다.

그들 또한 이번이 마지막이란 사실 때문에 떠나는 게 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

최강철이 은퇴와 챠베스와의 결전에 대해 말을 꺼냈을 때, 윤성호와 이성일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차분한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오랜 세월을 최강철과 함께 했으니 그의 생각은 곧 그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난, 체육관을 정리할 생각이다.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에서 터전을 잡을 생각이야. 인혜 씨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잘하셨네요. 인혜 누나가 무척 좋아하죠?”

“그래, 좋아 죽으려고 하더라.”

“미국에서는 뭐할 겁니까?”

“글쎄,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럼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만드세요.”

“그게 뭔데?”

“영화에 전문으로 투자하는 회삽니다.”

“인마, 난 영화에 대해서 잘 몰라. 영화를 본 적이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가르쳐 드릴게요. 그리고 마이다스 CKC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겁니다.”

“정말이나?”

“그럼요. 성일이도 마찬가지야. 너도 특별히 할 일 없을 테니까 한국에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려.”

“나, 부자 되게 만들어 줄 거야?”

갑자기 자신을 언급하자 이성일이 반색을 하며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이 많았는데, 최강철이 아이템까지 제시해주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내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대한 정보하고 창립절차에 대한 건 모두 준비해줄 테니, 이번 경기 끝나면 거기에 올인 해.”

“영화만 하는 거나?”

“영화와 음악, 그리고 공연까지.”

“그게 될까? 괜히 돈만 날리는 거 아니지?”

“이 자식아. 넌 돈도 다 까먹어서 얼마 없잖아. 내가 빌려줄 테니까 그거 가지고 열심히 해 보卜 "아우… 또 그 소리. 이 자식은 꼭 공짜로 빌려주는 것처럼 말 한다니까. 이자 꼬박꼬박 받을 거면서.”

“크크크….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최강철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들에 대한 생각을 해 둔 건 오래전의 일이었다.

자신이 은퇴하면서 이들을 그냥 방치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 *

2000년 5월 27일.

세계가 숨을 죽였다.

무려 20년 동안 링을 누비며 폭풍처럼 싸워 온 허리케인 최강철의 마지막 시합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신이 빚어낸 복서,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홀리오 세자르 챠베스였다.

챠베스는 시합이 결정된 후 언론에 이런 말을 남겼다.

“솔직히 말해서 허리케인과 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웰터급으로 올라간다면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가 체급을 내리겠다는 말을 했을 때 한없이 부끄러워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지 못한 그의 용기와 끝없는 도전정신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저 역시 슈퍼라이트급에서라면 영광스럽게 그와 자웅을 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오십시오, 허리케인. 나는 그대의 마지막 상대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드디어 결전이 다가온 MGM 호텔 주변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허리케인의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 부자들은 자신들의 지갑을 아낌없이 열었는데 링사이드의 암표가 2만 달러를 호가할 정도였다.

뉴욕의 불빛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MGM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조명이 들어 온 순간부터 사람들의 함성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흥분과 전울.

영웅들의 마지막 전쟁을 보기 위해 들어 온 사람들은 잠시도 자리에 앉지 않고 두 영웅의 출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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