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62화 (262/308)

< 제37장 마지막 승부 - 1 >

세월은 빠르게 지나간다.

최강철은 다시 한번 방어전을 치르는 것으로 결정되었는데 랭킹 8위 도널드 해리와의 시합이었다.

시합은 10월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최강철은 윤성호, 이성일과 함께 미국으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당연히 서지영도 같이 간다.

그녀는 벌써 아이를 가진 지 8개월이나 되었기 때문에 출산이 다가오고 있었다.

장모님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그녀의 곁에 머물며 최선을 다했고, 어머니가 수시로 올라와 음식을 해 먹였다. 그래도 장모님이 해주는 것보다는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를 출산하고 난 후가 문제였다.

제주도에 계신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와 돌볼 수도 없으니 아이와 산모를 장모님한테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정부는 또다시 4개월 만에 150억 달러를 IMF에 상환했다.

무디스를 비롯한 3대 신용평가사들이 대한민국을 투자적격으로 전환했고, 세계 언론들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올해 안에 벗어날 것으로 확신한다며 기적이란 표현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대통령과 정부, 기업과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국가의 위기를 현명하게 해쳐 나갔다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한국의 무한한 잠재성을 감안한다면 향후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거듭 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최강철은 정부와 부도 직전의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맡겨두었던 돈을, 경제가 살아나면서 차근차근 인출했다. 그리고 코스피에 있는 블루칩들을 쓸어 담았다.

SK텔레콤, 포철, 네이버, 현대차, 롯데제과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주식들의 지분을 확보해 나갔다.

현재 코스닥의 열풍에 밀려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음에도 코스피의 주가 상승은 미비했기 때문에 싼 가격으로 주식들을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주식만 산 것이 아니다.

강남의 고증 빌딩과 호텔, 서울근교의 땅까지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코스닥은 예상처럼 어마어마한 폭등세를 나타내며 전 국민을 열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끝없는 상한가의 행진.

웬만한 벤처기업들은 코스닥에 상장하는 순간 기본 상한가가 10방이었다.

전문가들은 그것이 거품이란 것을 알지만 오히려 장밋빛 청사진을 끝없이 제시하며 국민들의 투기를 부추겼다.

이미 마이다스 CKC가 투자한 자금은 원금의 30배가 넘는 6조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최강철이 제시한 데드라인, 10월까지 기다린다면 얼마까지 늘어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였다.

신규성이 피닉스 전자의 주식을 무자비하게 쓸어 담기 시작한 것은 삼성물산이 가지고 있던 4%의 지분이 시장에 흘러나왔을 때였다.

삼성의 총수는 현금 확보를 위해 삼성그룹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물량, 삼성물산의 보유주식을 전부 쏟아냈는데 마이다스 CKC의 매집으로 인해 주가가 1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올랐기 때문이었다.

총수가 보유한 주식을 처분할 때보다 무려 3배가 오른 가격이었고, 은행의 압박에 의해 삼성물산의 추가융자가 어려워지며 내린 결단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물량이 쏟아져 나오자 주가가 요동쳤다.

언제나 그렇듯 물산의 물량이 움직인다는 걸 안 증권사들이 먼저 던졌고, 그 뒤를 개미들이 따랐다.

결정적인 것은 외국의 투자 자본들이 차익을 확보하기 위해 매도에 가담했다는 것이었다.

신규성은 그 타이밍에 맞춰 무려 11%에 달하는 물량을 더 확보해서 65%를 달성했다.

하지만 최강철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남아 있는 주식들까지 확보하길 원했다.

이제 미국과 유럽의 화이트쉐도우 물량을 빼면, 남은 건 불과 20%의 개인 물량만 남았을 뿐이었다.

방법은 하나.

화이트쉐도우와 단판을 지어 그들이 소유한 15%의 물량을 인수하는 방법뿐이다.

물론 시중가 보다 펄씬 커다란 금액을 요구하겠지만, 최강철은 무조건 인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신규성은 미국과 유럽을 쫓아다니느라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였다.

그들의 물량만 해결한다면 나머지를 해결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개인들의 물량은 한 달 정도면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

밀고 당기는 순간 개미들은 절대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 * *

그해 10월.

최강철은 뉴욕 MGM 호텔 특설링에서 랭킹 8위 도널드 해리를 2라운드 만에 쓰러뜨렸다.

정확하게 40전을 재웠고 전승 KO승의 무시무시한 기록을 이어나갔다.

전 세계의 언론이 다시 들썩거렸다.

압도적인 경기력.

이젠 그 누구도 최강철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의 불꽂 같은 인파이팅을 견딜 수 있는 선수는 전무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하지만 최강철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또다시 폭탄선언을 터트렸다.

“저는 이번 경기를 끝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하고자 합니다. 저의 마지막 경기를 홀리오 챠베스 선수와 하기 위함입니다. 챠베스 선수가 체급을 올리기 거부하고 있으니 제가 내려가서 싸우겠습니다.”

“허리케인…. 마지막 경기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 챠베스 선수와의 경기를 끝내고 은퇴할 생각입니다. 제 나이 벌써 36살이니 이제 은퇴할 때가 되었습니다.”

“안 됩니다. 그건… 허리케인, 재고해 주십시오. 당신을 사랑하는 전 세계의 복싱팬을 위해서도 그것만은…….”

“이미 제 결심은 굳어진 상태입니다. 복싱팬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이제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평온한 삶을 살아갈 생각입니다.”

“허리케인은 이미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굳이 불리함을 감수하면서 챠베스 선수와 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이 때문에 은퇴할 생각이라면 여기서 멈춰도 됩니다. 당신은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링 아나운서가 할 수 없는 말임에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내용이었다.

그는 너무 놀라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고마웠다.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강철은 그의 말에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지었을 뿐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사입니다. 전사는 패배가 두려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챠베스 선수와 싸우려는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부는 끝장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다.

외환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나며 자신감에 차 있던 국민들은 최강철의 폭탄선언에 전부 망연자실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영웅의 은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충격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컸다.

더군다나 마지막 경기를 챠베스와 하기 위해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하겠다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비명을 흘려냈다.

안 돼!

나이 때문에 명예로운 은퇴를 하고 싶다면 그냥 떠나도 된다.

최강철은 지금까지 로열로더의 길을 걸으며 수많은 도전과 투지를 보여줬고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사나이였다.

굳이 아래 체급인 챠베스와 불리함을 감수하면서 싸울 이유가 없었다.

그랬기에 국민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섰다.

영웅의 몰락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가슴속을 가득 재운 영웅, 그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며 추억으로 남겨야 한다는 열망과 의무감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언론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최강철은 오롯이 혼자의 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국민들의 영웅이었으니, 이런 결정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차라리 명예로운 은퇴를,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길!‘

'당신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챠베스지 허리케인 당신이 아니야. 당신은 이미 최강의 복서니까!‘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 언론이 발칵 뒤집혔다.

심지어 최강철의 존재를 질시하던 일본의 언론까지 이번 사태에 대해 옮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할 정도였다.

특종이 돌고 돌았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배경엔 체급을 올리지 않겠다는 챠베스의 고집과 최강철의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 * *

김영호와 류광일은 점심시간에 마주 앉았지만, 숟가락질이 굼벵이처럼 느렸다.

밥맛도 없고 살맛도 나지 않는다.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 위기까지 맞았던 대일물산은 적 직원이 피땀 흘려 노력한 끝에 훅자로 전환되었고, 향후의 수출전망도 밝았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입사한 후 이렇게 열심히 일한 적이 없을 정도로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그들만이 아니라 전 직원들이 마찬가지였다.

회사의 위기가 자신의 위기라는 공동의식 속에서 직원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한 몸이 되어 위기를 해쳐나갔다.

그 과정이 너무나 보람찼고 행복했다.

어려움 속에서 동료들과 힘을 합쳐 위기를 해쳐나가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되찾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웃음은 어제 벌어진 최강철의 경기로 인해 단박에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지, 경기가 아니라 인터뷰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대한민국의 영웅이자 그들의 희망인 최강철.

그런 그가 직접 은퇴를 하겠다는 선언을 해 버리자 그들은 한동안 충격으로 인해 움직이지 못했었다.

“광일아, 국이라도 마셔라. 아침도 안 먹었다며?”

“밥맛이 안 나. 그냥 그만 먹으련다.”

“그러다, 탈 나.”

“어휴…….”

걱정하는 김영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본 류광일의 입에서 억눌린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는 세상을 다 일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마라. 강철이도 나이가 벌써 36살이야. 복싱선수로는 할아범이다. 따져봤더니 강철이가 복싱을 시작한 게 꼭 20년이나 되었더라.”

“알아, 그래도 강철이 경기를 더 이상 못 본다고 생각하니 잠이 안 와. 이제 무슨 낙으로 살지 정말 걱정이다.”

“왜 못 봐. 마지막 경기가 남았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 너 좀 이상하다. 어제는 팔팔 뛰더니, 그새 생각이 바뀐 거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강철이 말이 일리가 있더라고. 놈은 복싱으로 모든 걸 이룬 놈이야. 그런데 막상 은퇴를 하려니까 찜찜했던 거지. 마지막 남은 챠베스가 눈에 걸려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을 거야.”

“씨발, 그래도 안 돼. 차라리 그냥 은퇴해야 된다. 명예롭게, 자랑스럽게!”

“그냥 싸우면 이길 수 있을 텐데…….”

“우리가 권투경기 한두 번 보나. 너도 알다시피 챠베스 그 새끼는 슈퍼라이트급에서 무적이야 14차 방어전을 하면서 12번이나 KO로 이겼다. 아니지, 문제는 그런 게 아니야. 그놈이 아무리 뛰어나도 똑같은 조건이면 강철이를 이길 수 없어. 하지만, 한 쪽 팔을 묶어야 되잖아. 그런 경기를 왜 해. 할 이유도 없고 해서도 안 돼. 쪽팔린 건 챠베스지 강철이가 아니라고!”

“본인이 원하는데 어쩌겠냐. 벌써 해외언론에서는 서서히 그걸 기정사실로 하고 있는 모양이야. 우리나라만 안 된다고 방방 뛰는 거지.”

“이런 씨발, 좆도!”

* * *

최강철은 돈킹의 마지막 협상카드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챠베스는 슈퍼라이트급에서 싸운다면 언제든지 붙겠다며 공언을 했기 때문에 시합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돈킹에게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계획을 말했었기 때문에 또다시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돈킹의 얼굴은 어두웠다.

돈도 돈이지만, 더 이상 최강철의 경기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더 크다.

그는 최강철의 경기를 프로모션하면서 밥 애런에게 뺏겼던 넘버 원 자리를 이미 오래전에 되찾은 상태였다.

최강철의 경기를 프로모션하는 과정은 너무나 즐거운 것이었다.

세계 최고의 명성과 인기를 지닌 최강철은 그에게 커다란 자부심과 영광을 함께 주었기에, 마음껏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협상 테이블을 요리할 수 있었다.

시합일이 정해진 것은 협상이 시작된 지 불과 한 달 만이었다.

2000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앞으로 6달 후에 최강철의 마지막 경기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봐 허리케인, 자네 아이도 곧 출산한다면서 이렇게 빨리 시합을 잡는 이유가 뭔가?”

“사정이 있습니다.”

“무슨 사정?”

“그건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네요.”

“감량하는데 고생이 많을 거야. 6달 정도로 가능할지 모르겠어.”

“충분합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보게. 나는 정말…. 자네의 명예로운 퇴진을 원하네.”

“하하… 챠베스와 제가 싸우면 엄청난 거액을 손에 쥘 수 있을 텐데, 그 말 진심이십니까?”

“이 사람아. 그까짓 돈 필요 없어. 지금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자네는 모를 거야. 벌써 자네와 함께한 시간이 17년이나 되었네. 그런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다니 자넨 정말 못된 친구야.”

“농담입니다. 화 푸세요.”

“알아, 허리케인. 이왕 결정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생각은 없네. 대신 반드시 이겨주게. 나는 자네가 복싱 역사에서 불멸의 선수로 기톡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네.”

"그렇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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