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59화 (259/308)

〈 제36장 미래 전략 - 3 〉

청와대는 여러 번 와 봤으나 올 때마다 경직된 분위기에 치여 한 번도 웃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청와대가 주는 압박은 대단했다.

비서실장이 직접 와서 대통령이 만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순간적으로 번쩍 뇌리를 스쳐 가는 게 있었다.

대통령은 그저 운으로 되는 게 아니다.

수많은 인멕과 정보, 그리고 자신의 역량들이 합쳐진 후 하늘이 준 기회를 잡았을 때야 가능하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으며 집무실로 향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 역시 대한민국 국민들이니 현관에서 또는 복도를 지날 때마다 최강철을 보면 지체 없이 눈인사를 건네 왔다.

천천히 걸어 거대한 문 앞에 서자, 비서실장이 먼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그를 이끌었다.

이미 대통령은 그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문으로 들어서자 노구의 대통령이 힘겹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냥 계세요. 제가 가면 됩니다.

다가오는 대통령을 향해 최강철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가 내민 손을 정중하게 잡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대통령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렇구먼, 우리 작년 초에 보고 처음이지?”

“예.”

“일단 앉아서 이야기할까?”

대통령이 손수 그의 손을 이끌고 소파로 향했다.

회의용 탁자가 아니라 소파다.

이건 공식적인 초청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불렀단 뜻이다. 대통령의 입이 열린 것은 최강철이 소파에 앉았을 때였다.

"비서실장, 오늘은 우리 둘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차만 들여보내 주고 아무도 들어오게 하지 마세요.”

“대통령님, 그건…….”

“최강철 선수는 정치인도 아니고 경제계 인사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괜찮아요.”

“예, 각하.”

잠시 뜸을 들이던 비서실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사를 한 후 문을 빠져나갔다.

대통령과의 독대는 금지되어 있다.

그것은 대통령 스스로 만든 규칙으로 밀실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국민과 한 약속이었다.

그것을 대통령은 처음으로 깼다.

부드러운 시선으로 최강철을 향해 안부 인사를 묻던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비서가 차를 가져다 놓은 후였다.

“최군, 자넨 내가 왜 불렀는지 알지?”

“대충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말해 줄 수 있나?”

“예…….”

이미 알고 있으니 최강철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인 그가 자신의 숨겨진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미국의 유력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동안의 일을 천천히 이야기 해 나가자 대통령의 얼굴이 수시로 변했다.

50년이 넘도록 정치를 하면서 독재와 싸워 온 그는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지만, 최강철의 말을 들으며 계속 신음을 흘려냈다.

“내가 자네의 신분을 안 건 대통령에 오르기 전이었네. 전임 대통령이 자네의 숨겨진 신분에 대해서 말해주더군. 처음에는 믿지 못했네. 복싱 영웅 최강철이 마이다스 CKC의 회장이란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어?”

“전임대통령께서 말씀하셨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그는 자네가 비룡의 주인이란 걸 처음에는 몰랐지만 금방 알았다더구만. 그래서 정동 그룹을 인수할 때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거야. 그걸 몰랐단 말인가?”

“저는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모른다고 대답했으나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마이다스 CKC에서 극비로 관리했으나 정보기관이 움직인다면 자신의 신분을 알아내는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쪽에서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 시나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 정보국의 수준이 그만큼 그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랜 독재정권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은 국민들을 때려잡는 것에 집중했지 국가를 위해 일한 적이 별로 없다.

“전임 대통령은 나와 쌍벽을 이루었던 인물이지. 비록 외환위기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퇴진했지만, 자네만큼은 철저하게 보호했어. 오죽하면 최측근한테도 자네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겠나. 그는 그런 사람이지. 하긴 나라도 그랬을 것 같구먼. 그렇게 거대한 방산업체가 들어왔는데 국가의 수반이 그냥 있었겠나. 무슨 꿍꿍이가 있었는지 당연히 알아봤을거야. 그런 와중에 자넬 알았을 거고. 나는…….”

그의 입에서 천천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전임대통령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전임대통령은 자신에게 나라를 망쳐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였는데, 그 와중에서도 비룡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눈을 반짝였다.

다른 건 다 못했어도 비룡만큼은 철저히 지켰다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그는 '취임한 후 비룡에 대해 알아보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취임한 후 외환위기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비룡에 관한 보고를 받으며 입을 떠억 벌렸다.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때야 전임대통령의 얼굴에서 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거대한 사업이 외국 언론과 국민들에게 전혀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비룡에 대해서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역시 비룡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관리하며 미국의 압박을 버텨냈다.

미국 즉에서 IMF 지원거부를 들먹이며 비룡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에 대해 공개하라고 압력을 가해왔지만, 그는 끝까지 비룡에 대해서만큼은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의 설명을 듣자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나 역시 자네가 삼성전자를 접수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도왔던 거야. 자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세.”

“감사합니다.”

“최군, 신분을 숨긴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뭔가?”

“저는…. 제 행동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그림자 경영을 추구하며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를 말하는 건가?”

“대한민국입니다.”

“으…….”

최강철의 대답에 대통령의 입에서 또다시 긴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번 신음은 이전과 다른 뜻이 담겨있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자네에게서 이야기를 들으니 소름이 끼치는군.”

“죄송합니다.”

“이 사람아, 그게 죄송할 일인가. 그저 내가 부끄러울 뿐이지

대통령의 얼굴에서 희미한 웃음이 만들어졌다.

온갖 풍상이 들어 있는 그의 얼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함이 깃들어 있었으나 그의 눈만은 아이처럼 투명하고 맑았다.

“최군. 나는 비룡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일이 추진되었는지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네. 내가 궁금해 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웠네. 지금도 마찬가지야. 궁금해서 미치겠지만 극비리에 추진하는 일들이 니 외부에 노출돼서는 안 되겠지. 나중에 때가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 기다리겠네.”

“말씀드리겠습니다.”

“어허, 말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맑은 눈이 웃고 있었다.

대통령은 농담으로 이 상황을 풀어나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대통령님, 지금 비룡은 사거리 1,000km짜리 미사일 '천궁1호'의 기술 개발을 끝낸 상태입니다. 아직 실험은 하지 않았지 만, 워낙 막강한 기술진이 참여했기 때문에 금방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실험을 못한 건 미국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잘했네, 잘했어.”

“비룡은 ‘천궁 1호'에 이어, 사거리 2,000km 연궁 2호'를 개발 중에 있습니다. 조만간 그것도 완성될 것입니다.”

“장하구먼, 정말 장해.”

대통령이 무릎을 치면서 기뻐했다.

미사일이 가지는 의미.

핵과 더불어 미사일은 최첨단 무기의 상징으로 국력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미사일 한계 거리는 180km에 불과했으니 오히려 북한보다 못한 실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비룡이 2,000km짜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릴 듣자 대통령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리게. 내가 미국과 담판을 짓겠네. 우리나라가 자기들 식민지도 아닌데, 미사일 사거리를 제한하는 이유가 뭐야. 지금 사거리 가지고는 북한도 타격하지 못한단 말일세. 두고 봐. 내가 반드시 해낼 테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른 건?”

“대통령님, 비룡에서는 3년 이내에 국산 전투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사실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전투기가?”

“정일환 박사의 말에 따르면 미그21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답니다.”

“휴우…. 심장이 다 떨리는구먼. 정부에서 하나도 도와주지 못 했는데 벌써 그렇게나 했어. 정말 도깨비 같은 친구들이구먼…….”

이젠 더 이상 놀랄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또 입이 벌어졌다.

미사일과 다르게 전투기는 아무런 제약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럼에도 추진하지 못한 것은 초기투자비용이 워낙 많이 들고,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룡이 그것을 해냈다고 하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최군, 정부에서 도와주고 싶지만 지금 사정이 어렵다네. 그건 알지?”

“알고 있습니다.”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아닙니다. 대통령님. 그동안 정부에서 암암리에 도와주었다는 것도 모르고 저 잘난 맛에 살았습니다. 이렇게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내 임기 중에 국가 재정이 다시 살아난다면, 나는 열 일 제쳐 놓고 비룡을 지원하겠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이야.”

“일단 대한민국은 경제부터 살려야 합니다. 비룡에 관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자네 비룡을 가지고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

“지금 비룡이 움직이는 걸 미국도 알 겁니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건, 우리의 기술 수준으로는 자기네들을 따라오지 못할 거란 자만심 때문일 겁니다. 대통령님, 그래서 저는 2,000km '천궁 2호'가 완성되면 비룡쪽에 스페이스 프로젝트를 가동할 계획입니다.”

“그건 또 뭔가?”

“우주개발을 시작하겠다는 겁니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 인공위성을 쏘아냈고, 달 착륙에 이어 화성 탐사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것을 할 생각입니다.”

“자네 혹시… ICBM 대신 그걸?”

“그렇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것이지요.”

“허어…….”

“정부에서 도와주시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희가 먼저 총대를 메겠습니다. 때가 될 때까지 대통령님이 외압만 막아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최강철이 두 눈을 빛내며 대통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런 기회는 만들고 싶어도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살아있는 정권의 비호 속에서 일을 추진하게 된다면 비룡은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쉽게 대답할 일은 아니다.

국제 관계부터 정치적 이해타산, 앞으로 비룡에 투자되어야 할 국가 예산 등 생각하고 고민할 일이 어디 한두 개란 말인가.

그럼에도 대통령의 입이 다시 열린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겠네. 이제 살 만큼 살았고 욕심도 없어. 군사독재와 싸우면서 팔다리가 병신이 되었음에도 이 자리에 연연한 것은, 마지막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네. 최군,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가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고 자네를 돕겠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이 사람아, 감사는 내가 해야지!”

고개를 숙이는 최강철을 향해 대통령의 손이 다가왔다.

쭈그러든 그의 손이 최강철의 어깨를 쓰다듬었는데, 그 손길에는 무한한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마주 본 시선에 담긴 웃음.

그 웃음이 너무나 기꺼워 두 사람은 한동안 웃음을 멍추지 못했다.

먼저 웃음을 엄준 건 대통령이었다.

“오늘 내가 자네를 보자고 한 건 부탁을 하기 위함이었어. 그런데 오히려 내가 부탁을 받았으니 이제 입이 떨어지지 않는구먼.”

“말씀하십시오. 대통령님.”

“비룡에 들어가는 돈이 한해에 10억 달러라며?”

“예.”

“그런데 어떻게 내가 염치없이 그 말을 꺼내겠나. 괜찮네. 나 혼자 해결할 테니 자네는 나랑 점심이나 먹고 가시게.”

역시 노련한 사람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이 있지만, 대통령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은 먼저 상황을 본다.

그렇기에 최강철은 빙그레 웃었다.

“대통령님, 아직 외환위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맞네, 고민이 많지. 달러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썼더니 기업이 죽을 쑤고 있어. 금리를 내려야 기업이 움츠리고 월 텐데, 실무자들이 극렬하게 반대를 한다네. 달러가 고갈되면 국가 부도까지 갈 수 있다는구먼.”

“절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뭐가 말인가?”

“대한민국은 반드시 되살아납니다. 대통령님, 우리 국민들을 믿으십시오.”

“금리를 내리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달러는?”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미국에 있는 모든 자산을 파는 한이 있더 라도, 국고가 고갈되는 일은 없도록 만들지요.”

“정말… 그렇게 해 줄 텐가?”

“대통령님, 저를 믿으십시오. 저 역시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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