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공룡을 잡다 - 3
마이다스 CKC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김도환이 우호 언론을 동원해서 마이다스 CKC가 얼마나 건실한 기업인지 홍보했으나, 중앙일보와 몇몇 언론, 인터넷을 활용한 삼성의 끈질길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애국심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만약 애국심만 가지고 따진다면 이스라엘과 더불어 쌍벽을 이룰 것이라는 게 세계인들의 평가였다.
외환위기를 맞아, 금 모으기 운동을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해외언론들은 금 모으기 운동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의 이해하지 못할 애국심을 연일 토픽으로 터트리기까지 했었다.
그런 국민들이 한국의 대표기업을 외국자본이 장악하는 걸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더구나 광고 때문에 주춤거렸던 다른 언론들까지 서서히 문제를 제기하면서 마이다스 CKC의 한국진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자,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개인택시운전사인 김 씨가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떠드는 화제도 삼성전자에 관한 것이었다.
“글씨, 이게 말이 되냐고. 이 시끼들이 대한민국을 홍어 좆으로 보는 게 틀림없어. 가뜩이나 건실한 기업들이 팡팡 나가떨어지는 마당에 말이여. 그나마 삼성전자가 잘 버티는데 마이다슨가 뭐시긴가 낼름 집어 먹을라고 한다는데 말이나 돼?”
“그놈들이 그렇게 돈이 많다며. 이것들이 아주 통째로 한국을 집어 삼킬라고 하는 거여 뭐여. 이것 참 열 받아서 못 살겠구먼.”
“우리나라를 이렇게 만든 놈들하고 똑같은 놈들이여. 전부 끌고 가서 한강 물에 처넣어야 혀.”
김 씨와 최 씨가 주고받으며 목소리를 높이자 옆에 있던 택시기사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때 일행 중에서 가장 젊은 정씨가 나섰다.
“그래도 걔들은 기업운영 하나는 잘하는가 봐요. 피닉스 그룹 보세요. 마이다스 CKC가 인수하고 나서 주가가 3배나 뛰었어요. 거기 다니는 친척이 있는데 월급도 세고 직원복지도 최고수준이래요.”
“최고고 나발이고 필요 없어. 우리나라 기업은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해야 되는 거여. 그래야 우리나라를 위해 돈을 쓸 거 아녀. 그놈들은 돈을 벌어서 전부 지네 나라로 가져 간당께.”
“맞어, 맞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놈들 돈 벌어주는 기계로 전락하는 거여. 절대 넘겨주면 안 돼!”
여론이 악화 일로를 걷자 금산분리법에서 체면을 구긴 제1야당은 적극적인 정치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의 건전한 기업들이 외국자본에 침략당하는 사태가 계속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사실이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보를 시작으로 삼보, 대농, 기아차, 한라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들이 무너졌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은 현재의 집권당이 아니라, 이전 정권에서 호의호식하던 제1야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삼성의 지원 아래 필사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정부가 책임을 지고 삼성전자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을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임시국회가 열린 국회의사당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국민 여론이 악화되면서 제1야당이 재무부장관의 보고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재무부장관 엄영호은 국회로 들어와 삼성전자 사태에 대한 보고를 이렇게 했다.
“지금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자유경제를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다스 CKC가 지배권을 행사할 정도로 주식을 확보했다 해서 정부가 직접 나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약 정부가 나서서 그들을 제재 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압박이 거세질 겁니다. 또한…….”
장관의 보고가 끝나자 제1야당 소속 의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국민들의 여론을 모르고 하는 개소리라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은 여훈구였다.
그는 금산분리법을 결사반대하면서 단식농성까지 했던 삼성의 하수인이었다.
명문대 경제학과를 나와 군사정권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냈던 그는 제 1야당의 경제 분야 전담 공격수였다.
“장관,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대한민국은 자주국이에요. 미국과 강대국의 눈이 무서워 삼성전자를 내준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생각해 보세요. 외환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부도를 냈습니다. 그런 와중에 삼성전자까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간다면 우리나라는 뭘 먹고 산단 말입니까. 삼성전자는 우리나라의 상징이란 말입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무작정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봐요. 그렇게 말해도 모르겠습니까. 방법이 없긴 왜 없어요. 그들을 막을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내가 방법을 가르쳐 줄까요?”
“예, 가르쳐 주십시오.”
재무부 장관 엄영호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마치 자신을 어린애처럼 다루는 여훈구의 태도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장관이란 직책을 맡고 있기에 국회에 나와 죄인처럼 보고 하는 중이었지만 그 역시 3선을 지낸 국회의원이었다.
그럼에도 여훈구는 계속해서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참으로 일국의 재무부 장관이 한심하기 짝이 없군요. 좋습니다, 가르쳐 드리죠. 만약 정부에서 나섰는데도 그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아예 삼성전자를 침몰시키는 겁니다. 우리가 가질 수 없다면 외국놈들에게 주느니 자폭시키잔 말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된다고요? 오죽 답답하면 이럽니까. 정말 장관은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하고 삼성전자를 내줄 생각이란 말이요? 그러고도 그 자리에 있고 싶소. 자존심을 지켜요, 자존심을!”
울분에 찬 목소리.
회의장을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그 옛날 절대 조선을 일본에 내 줄 수 없다며 피를 토하던 충신들의 한 맺힌 음성과 비슷했다.
할 말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재무부 장관 엄영호는 더 이상 반박을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회의장에 들어온 수많은 기자가 그의 모습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더 나서면 죽는다.
국민들의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에서 자신이 마이다스 CKC를 옹호하는 것처럼 반박한다면, 당장 내일 국민들이 던진 짱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여훈구의 말대로 마이다스 CKC를 제재할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실질적으로 실무국장들이 회유와 협박을 수시로 했다는 보고도 들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이다스 CKC는 미국을 대표하는 투자회사였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그들을 불법적으로 커팅한다면 미국이 나서게 될 가능성이 컸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때 대한정의당의 최철성이 자리를 박자고 일어나 엄영호를 엄호했다.
“여훈구 의원의 주장은 시장경제에서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장관님의 말처럼 미국은 물론이고 강대국과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지금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로 인해 보유한 외환이 불과 30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여훈구 의원의 주장처럼 외국투자자본을 내친다면 우리나라는 커다란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어요. 외국의 투자자본이 정부의 지나친 간섭으로 빠져나간다면 자칫 IMF의 지원을 받고도 국가 부도가 날 수 있다는 걸 왜 모릅니까. 더군다나 마이다스 CKC는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건실한 투자회사라는 것이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기업들을 집어삼키는 기업사냥꾼들과 완벽하게 다른 회사에요.”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도 좋단 말이오!”
“만약 마이다스 CKC가 외국자본이 아니라면 어쩔 겁니까. 그래도 반대를 할 생각입니까?”
“지금 장난하자는 거요. 지금이 어떤 자린데 그런 농담을 지껄인단 말이오!”
여훈구가 펄펄 뛰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제1야당의 의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최성철을 성토했다.
신성한 국회에서 그것도 국가의 중요기업이 외국자본에 먹히냐, 마냐 하는 이 마당에 일국의 국회의원이 농담을 한다며 집단으로 들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런 소란에도 집권당과 대한정의당 의원들은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서 대응하지 않았다.
집권당이야 이 소란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것이었지만, 대한정의당 의원들은 사전에 묵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성철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국회의장의 중재로 인해서 제1야당의 의원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국회의원으로서 이곳에서 농담이나 하자고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마이다스 CKC가 외국자본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자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사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조용히 하세요. 그리고 대답을 하란 말입니다. 마이다스 CKC가 대한민국의 자본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그렇다면 우리가 미쳤다고 반대를 해. 당신 계속해서 이렇게 회의를 방해할 거면 당장 나가.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이 있을 자리가 아니야!”
“나는!”
여훈구가 다시 소리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성철이 벼락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쩌렁하게 회의장을 울렸는데 제1야당 의원들의 행태에 대한 울분이 담겨 있었다.
“나는 어제 미국의 지인으로부터 한 가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타임지의 편집국장으로 저와 하버드대에서 같이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이다스 CKC의 회장은 한국 사람이고, 마이다스 CKC의 자본은 전부 그의 자산이라더군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이번 주 타임지를 보면 알 거요. 그러니, 당신들이 직접 입으로 내뱉은 약속 반드시 지키시오. 나보고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다고 했지요? 내가 봤을 때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는 건 당신들인 것 같소.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는 이때 재벌의 주구가 되어 국민들을 호도하고 떡고물이나 바라는 당신들의 작태가 역겨워서 같이 앉아 있기도 싫습니다. 그러니 제발 정신들 좀 차리란 말이야!”
* * *
대학생이라면 집에 한 권씩은 꼭 있고, 누군가는 폼을 잡기 위해 들고 다니는 잡지가 있다.
바로 타임지였다.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잡지였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잡지가 바로 타임지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는 물론이고 환경과 과학 분야까지 안 다루는 분야가 없는데, 워낙 정확하고 심도 있는 기사를 썼기 때문에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타임지의 상징은 바로 표지타이틀이었다.
대표적인 기사를 나타내는 표지모델로 수많은 인사의 얼굴이 실렸는데, 표지에 실린 사람은 전부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주는 사람 대신 사람 얼굴 형상을 한 검은 표지 가운데 물음표가 담긴 것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표지를 보고 전부 갸우뚱거렸다.
이런 표지는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임지에 실린 사람형상의 그림자가 왜 실렸는지 알게 된 전 세계의 독자들은 전부 경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사의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는 마이다스 CKC의 회장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가 대한민국 사람이고 마이다스 CKC의 자산이 전부 회장 소유라는 사실과 대략적인 자산내역이 담겨 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
타임지가 추정한 마이다스 CKC 회장의 자산규모는 무려 700억 달러에 달해 세계부호의 순위가 지금까지 잘못되었다는 걸 알려줬다.
문제는 그의 정체가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그림자경영을 하면서, 오직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는 정체가 오리무중이었다.
남잔지, 여잔지는 물론이고 나이와 학력, 경력 등이 전부 비밀이었기에 타임지의 표지에서 물음표가 담긴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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