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40화 (240/308)

[240] 링의 난폭자 - 10

광란에 젖어 버린 시저 팰리스 호텔 특설링.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보기 위해 몰려든 3만여명의 관중들은, 최강철과 바스케스의 시합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누가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말했는가.

복싱팬들이 최강철의 시합에 열광하며 극도의 흥분과 전율에 젖는 건 그가 보여주는 투혼과 경기스타일이 혼을 빼놓을 정도로 치열하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처음부터 난타전에 돌입한 최강철은 특유의 몰아치기로 바스케스를 압박하며 관중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스케스의 강력한 어퍼컷에 적중되며 관중들을 경악 속에 빠뜨리더니 라운드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영웅의 몰락은 이처럼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찾아오는 것일까.

경기장을 가득 채운 최강철의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벌벌 떨어댔다.

국적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최강철의 복싱을 사랑했으므로 간절하게 승리를 기원하던 팬들은, 링의 난폭자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관중들이 광란에 빠져든 것은 2라운드가 끝나고 난 후부터였다.

기적처럼 그로기에서 빠져나온 최강철이 폭풍처럼 바스케스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관중들이 그를 사랑하는 건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불의의 일격에 적중되어 그로기에 빠졌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으며 버티는 불굴의 정신.

그리고 기적처럼 되살아나 상대를 압박하는 끈기와 집념.

3라운드를 지켜본 관중들의 입에서 경기장이 떠나갈 것처럼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3라운드부터 시작된 최강철의 아트복싱이 바스케스의 난폭함을 무너뜨리며 화려하게 되살아났던 것이다.

이것이 그들을 미치게 만드는 이유다.

* * *

힘들었던 2라운드가 끝나고 3라운드에 들어 와 최강철이 무섭게 몰아붙이자, 이종엽은 경기 내내 아예 두 손을 번쩍 들고 마음껏 소리를 질러댔다.

눈치, 캐스터로서의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 이런 건 아예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건 하나뿐.

바로 최강철이 바스케스를 쓰러뜨리고 승리해주길 바라는 염원이다.

“최강철 선수. 라이트 스트레이트. 바스케스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계속 도는 최강철, 마치 바람처럼 움직입니다. 그토록 강하다는 바스케스의 압박이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또다시 터지는 레프트 잽, 날카롭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잽. 바스케스의 라이트 단발. 그러나 최강철 선수 여유 있게 피하고 콤비네이션 펀치를 터트립니다. 라이트 스트레이트! 바스케스 맞았습니다. 아, 아깝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3라운드가 끝났습니다.”

“종이 살렸습니다. 아주 좋은 펀치가 들어갔는데 아깝네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최강철 선수 정말 훌륭합니다.”

“대단합니다. 3라운드 내내 최강철 선수가 바스케스를 링 중앙에 가둬 놓고 펀치를 퍼부었습니다. 윤 위원님, 최강철 선수가 완벽하게 되살아났는데요.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작전을 바꾼 게 주효한 것 같습니다. 적정거리를 유지한 채 바스케스를 링의 중앙에 가뒀습니다. 최강철 선수가 스피드를 최대한 살리면서 압박을 해소하는 작전이에요. 코너쪽에서 아주 훌륭한 작전을 지시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잠깐 광고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미친 듯이 말을 끊으라는 PD의 싸인을 보면서 이종엽이 아쉽다는 듯 마이크를 내렸다.

방송국에 종사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순간이 되면 언제나 PD를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생각해 보라.

이런 경기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얼마나 열 받을 행동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이종엽은 PD의 지시에 두말없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물병을 들어 목구멍에 처박았다.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목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건 윤근모도 마찬가지였는지 주저앉는 모습에서 진이 다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위원님, 강철이가 살아났어요. 3라운드처럼만 해주면 이길 수 있겠죠?”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바스케스, 저놈 맷집이 워낙 좋아서 말이야. 좋은 펀치가 많이 들어갔는데도 끄떡 안 하잖아.”

“강철이 주먹을 저렇게 많이 맞았는데도 괜찮은 걸 보면, 괴물은 괴물입니다.”

“괜히 10차 방어전까지 성공했겠어. 자세히 보면 정타를 안 맞아. 아주 미세하게 펀치를 흘린단 말이야. 터프한 것 같으면서도 정교해. 그리고 아직 주먹이 생생하게 살아있단 말이지. 3라운드에서 강철이가 일방적으로 공격했지만, 그 와중에도 섬뜩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

“이거 살 떨려서 수명이 10년은 단축될 거 같아요. 강철이 경기만 중계하면 가슴이 벌렁거린단 말입니다. 이러다가 심장병 걸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나도 그래.”

윤근모가 한숨을 길게 흘리며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이종엽의 얼굴에서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국민들은 텔레비전을 보기 때문에 현장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혈투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양 선수가 내뿜는 거친 숨소리.

그리고 관중들이 터트리는 고막을 찢어 버릴 것 같은 함성.

그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캐스터라는 본분을 잊어버리고, 자신 또한 한명의 열렬한 최강철의 추종자가 되어 광란 속으로 빠져든다.

* * *

4라운드.

최강철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3라운드 내내 링의 중앙에 가두고 수많은 펀치를 터트렸지만 바스케스는 완강하게 버티며 결정적인 펀치는 허용하지 않았다.

역시 공포의 챔피언으로 군림할 자격이 충분했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링의 중앙으로 거침없이 나가며 레프트 잽을 꺼내 들었다.

좋아, 바스케스.

네가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 보겠다.

너의 방어력과 맷집은 존경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너 역시 나의 공격력에 대해 경의를 보내게 될 것이다.

‘쉬익, 쉬익…….’

화살처럼 잽을 던진 최강철은 바스케스의 왼쪽 훅이 연달아 날아오는 걸 보며 스텝의 패턴을 바꿨다.

바스케스가 최강철이 돌아나가는 오른쪽 스텝을 잡기 위해 레프트 더블 훅을 계속 던지며 진로를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왼쪽 훅과 복부 공격.

“부웅, 부웅!”

오른손은 방어에 치중하며 레프트만 쓰는데도 칼바람 소리가 귓가를 연신 스쳐 지나갔다.

코너에서 주문했는지, 바스케스는 오른손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 레프트 공격을 특화해 압박을 걸어왔다.

두 번의 펀치를 허용한 후 곧바로 백스텝을 밟고 다시 전진했다.

3라운드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으며 사이드 스텝과 방어기술로 들어오는 공격을 해소했으나, 이번에는 백스텝을 가미시켰다.

왼손 공격에는 백스텝만큼 효율적인 방어수단이 없다.

슬쩍 백스텝으로 물러났던 신형이 불쑥 다가오며 공격으로 전환되자 바스케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놈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백스텝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바스케스. 넌 내가 그리 만만하게 보였어?

난 말이야. 이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놈이야.

그리고, 너 못지않게 잔인한 심장도 가졌다.

뒤로 물러났던 예리한 레프트 잽이 얼굴을 훑고 나오는 순간, 최강철은 속사포처럼 원투 스트레이트를 직격시켰다.

바스케스의 머리가 슬쩍 옆으로 비틀어지는 게 보였다.

놈은 결정적인 순간 저런 패턴으로 자신의 펀치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고 있었다.

가소로운 놈.

이 자식아, 복서는 특성이 노출되는 순간 죽는 거야!

타깃의 조정.

최강철은 목표점을 바스케스의 머리가 돌아가는 지점으로 조금씩 변화시켰다.

펀치가 최대한의 강도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지점에 임팩트가 가해져야 발생한다.

누군가는 스쳐도 사망이라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아무리 강한 주먹이라도 스치는 것만으론 적을 쓰러뜨리지 못한다.

화면에서 스쳐 맞은 것 같은데도 선수가 쓰러지는 건 대부분 대뇌와 소뇌를 연결하는 후두부를 맞았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곳이 바로 인체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계적인 선수들의 글러브는 고개를 숙여 피하는 순간에도 후두부를 보호하는 것이다.

최강철은 임팩트 지점을 조정한 후 미사일 같은 펀치를 갈기기 시작했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감촉들이 조금씩 뻐근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들어가는 펀치들의 강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바스케스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는 것도 그 원인이었다.

바스케스는 번개처럼 움직이며 갈기는 최강철의 펀치를 맞을 때마다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는데 고통이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강철은 바람처럼 돌았다.

얼마나 빠르게 돌았는지 바스케스의 공격이 나왔을 때 거의 45도 이상 비켜나가 있을 정도였다.

단박에 끝내지 않는다.

내가 말했잖아.

맞은 것 이상으로 돌려준다고.

‘파바방, 팡, 팡…….’

강력한 연타.

피하기도 어렵고 반격도 쉽지 않다.

아마, 바스케스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이런 유형의 적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동안 수많은 시합을 하면서 그가 상대한 자들은 완벽한 아웃복싱을 하거나 불나방처럼 인파이팅을 하는 놈들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쉴 새 없이 주먹을 뻗으며 최강철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패턴으로 시합이 진행되면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갈수록 놈의 펀치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펀치가 안면을 가격할 때마다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고통이 전신을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최강철이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것은 무리하게 공격해 온 바스케스의 안면에 라이트 어퍼컷을 적중시킨 후부터였다.

‘휘청’

펀치가 적중된 순간 바스케스의 신형이 휘청이며 다리가 허공으로 붕 뜨는 게 느껴졌다.

3라운드에 이어 4라운드까지 쉴 새 없이 팼으나 용케 버티던 바스케스의 맷집에 균열이 갔다는 뜻이다.

한번 금이 간 항아리는 물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때부터 조심스럽게 경기를 운영하던 최강철의 막강한 콤비네이션이 터지기 시작했다.

바스케스. 너는 네가 사랑했던 공포의 압박 전술에 의해 죽게 될 것이다.

‘콰앙, 콰과광…….’

도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화력을 바스케스의 전신에 집중시켰다.

그의 회피 동작은 이미 눈에 익을 대로 익은 상태였기 때문에 바스케스는 우리에 갇힌 야수처럼 꿈틀거리며 몸부림쳤다.

견디던 바스케스의 신형이 뒤로 물러서며 휘청거렸다.

완벽한 가딩을 한 채 간헐적으로 펀치를 휘두르고 있었으나, 여러 차례 강력한 펀치에 가격을 당한 후부터 급격히 페이스가 흔들리고 있었다.

거리를 확보한 채 비틀거리는 바스케스를 따라 움직이며 일직선으로 전진했다.

놈을 자신의 코너로 몰아넣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빠바바방… 쾅, 쾅, 쾅.’

코너에 몰린 야수.

그를 향해 쏟아지는 허리케인의 강력한 콤비네이션 펀치들.

이 펀치로 얼마나 많은 상대가 쓰러졌던가.

숨을 헐떡이며 가딩을 올린 채 사력을 다해 막던 바스케스가 마지막 저항을 위해 펀치를 뻗는 순간.

그 틈을 뚫고 빠져나간 최강철의 라이트 스트레이트부터 양 훅, 그리고 어퍼컷이 순식간에 바스케스의 안면에 작렬했다.

바스케스의 눈이 돌아간 것은 라이트 훅이 적중되었을 때부터였고 레프트 훅과 어퍼컷이 들어갔을 때는 이미 정신을 반쯤 잃어버렸다.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던 바스케스의 몸이 앞으로 꼬꾸라지는 걸 보며, 최강철은 뒤로 물러났다.

쓰러지는 놈을 때릴 만큼 이성을 잃은 상태는 아니었다.

레프리가 카운터를 세는 동안 바스케스가 캔버스를 집고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으나, 경기는 이미 끝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글러브를 얼굴로 끌어올려 다시 싸우겠다는 투지를 보였지만, 바스케스의 얼굴은 이미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고민하던 레프리가 최강철을 흘끔 쳐다보다가 다시 경기를 속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워낙 중요한 경기다 보니 베테랑인 그로서도 쉽게 중단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관중들은 레프리의 신호로 인해 경기가 재개되자 발작적인 함성을 내질렀다.

인간은 잔인하다.

그 옛날 검투사가 상대를 쓰러뜨린 후 검을 치켜들었을 때, 죽이라는 함성을 질렀던 것처럼 관중들은 비틀거리는 바스케스의 처참한 최후를 바라는 것 같았다.

비참한 모습의 바스케스.

그러나 최강철은 조금의 동정조차 보이지 않고 곧바로 사형을 집행했다.

강자에게 어설픈 동정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주는 것이다.

거침없이 다가간 최강철은 힘들게 롱 훅을 던진 바스케스의 펀치를 피하며 그대로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그의 안면에 직격했다.

“콰앙!”

이것으로 끝이다.

잘 가라, 바스케스.

허리케인의 끝없는 질주.

또다시 펼쳐진 허리케인의 신화에 관중들과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환호를 아끼지 않으며 열광했다.

그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에서 링의 난폭자를 완벽하게 때려잡은 최강철, 그의 경이적인 전투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관중들은 끝없이 최강철의 이름을 연호하며 승리를 축하했다.

경기가 끝난 후의 인터뷰에서 최강철은 예상처럼 관중들의 기대에 부응했기에 그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못했다.

“저는 사랑하는 복싱 팬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영웅이라 불리는 웰터급 챔피언 휘태커, 슈퍼 라이트급 챔피언 챠베스 선수와 싸울 생각입니다. 이 자리에서 두 선수에게 제안하겠습니다. 누구라도 좋습니다. 당신들의 다음 도전자로 나를 선택하십시오. 이번 바스케스 전을 치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빠른 시간 내에 결정하지 않는다면 이번처럼 기다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나는 이미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들과 싸우고자 하는 것은 당신들에게 세계 최강의 선수와 시합할 수 있는 영광을 주기 위함임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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