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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환생-238화 (238/308)

[238] 링의 난폭자 - 8

“아, 거 참 밀지 맙시다!”

류광일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옆의 사내들한테 소리를 질렀다.

추위 때문인지 소주병으로 나발 불고 있던 사내들이 비틀거리며 자꾸 자신 쪽으로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인파에 휩쓸렸으니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었지만, 자꾸 같은 현상이 반복되자 짜증이 몰려왔다.

지금 광화문에 몰린 인파가 20만이 넘는다고 했다.

말이 20만이지 눈으로 그 끝을 확인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고개를 높이 빼 들고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보이는 건 사람들뿐이었다,

김영호와 류광일은 식전행사에 이어, 링 아나운서가 나서며 양 선수의 전적을 소개하자 침을 꿀꺽 삼켰다.

대단한 전적들이다.

바스케스의 전적 안에는 웬만한 강자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었는데, 최근 벌어진 10번의 방어전에서 9번이나 KO승을 거뒀다.

하지만 최강철의 전적에 비할 수는 없다.

자막을 통해 흘러나오는 최강철의 전적 안에는, 복싱팬들이라면 전부 인정하는 불세출의 선수들이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강철이의 전적은 언제 봐도 무시무시해. 저런 선수들을 전부 KO로 꺾었으니 영웅 중의 영웅이다.”

“당연하지. 챔피언 출신이 무려 7명이나 들어 있어. 마크 브릴랜드, 프레드 아두, 거기다 허니건에 판타스틱 4에 들어있던 전설들까지 총 망라되어 있었으니 정말 어마어마하지.”

“김 과장, 저 새끼 눈빛이 정말 개떡 같지 않냐. 뭔 놈의 눈빛이 저렇게 살벌한 거야?”

“살모사를 닮았다. 쥐를 잡아먹을 때 그 살모사의 눈빛.”

링에서 최강철을 노려보는 바스케스의 시선은 두 사람의 말처럼 금방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것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섬뜩하다. 그리고 그 눈빛을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왔다.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데도 저런 정도니 막상 같은 링에 있는 최강철은 오죽할까.

하지만 모든 행사가 끝나고 레프리가 중앙으로 양 선수를 불러 모았을 때, 바스케스를 바라보는 최강철의 시선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흘려냈다.

최강철의 눈에서 바스케스의 살기를 압도하는 섬광이 줄기줄기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최강철이다.

저런 눈을 했을 때 최강철의 파괴력은 한층 더 강했다.

“류 과장, 오늘 경기 강철이가 이기겠다.”

“왜?”

“저 눈빛 봐라. 오히려 강철이가 바스케스를 압도하잖아.”

“난 또 뭐라고. 강철이 배짱이야 정평이 나 있잖아. 오히려 저놈이 쫄릴 거다.”

“강철이가 심판한테 뭐라고 그러는데?”

김영호의 말을 들은 류광일이 링의 중앙에 섰던 최강철의 행동에 눈을 크게 부릅떴다.

급하게 양 선수를 코너로 돌려보내는 레프리의 시선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최강철이 도발하는 모습이었다.

최강철은 도발하는 것처럼 대가리를 들이민 바스케스의 머리를 쓰레기 치우듯 글러브로 가로막았다.

20만에 달하는 응원단이 그 모습을 보면서 함성을 질렀다.

그들도 지금 이 순간, 바스케스를 눈빛으로 압도하는 최강철의 모습을 보면서 기가 살아난 게 틀림없었다.

레프리의 지시로 양 선수가 코너로 돌아갔을 때 광장을 가득 메웠던 함성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폭발 직전이다.

이제 양 선수가 다시 링의 중앙으로 나오는 순간 역사적인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때앵.’

공이 울리는 순간 마우스피스를 씹으며 이를 맞춘 최강철이 성큼성큼 링의 중앙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이미 주의사항 때부터 신경전을 벌였기 때문인지 레프리가 양 선수의 접근로 중앙을 가로막았다가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게 보였다.

바스케스의 강렬한 시선을 확인한 후 가드를 올려 기습에 대비했다.

놈의 눈빛에 담긴 적의로 봤을 때 주먹을 내밀어 인사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상이 맞았다.

레프리의 손이 단두대의 칼처럼 단호하게 떨어졌을 때 바스케스의 강력한 라이트 훅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위잉!’

최강철은 자신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펀치를 느끼며 오히려 앞으로 접근해서 연사 되어 나오는 레프트 보디 공격을 스토핑으로 틀어막고, 곧장 어깨로 바스케스의 몸통을 밀었다.

‘으윽.’

철벽이다.

얼마나 강한지 자신의 어깨가 오히려 튕겨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제야 알겠다.

수많은 선수가 접근전을 포기하고 외곽으로 돌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하지만, 최강철은 놈의 전진을 어깨로 차단한 후 근접된 거리에서 폭발적인 콤비네이션을 터트렸다.

상하를 가리지 않는 번개 같은 펀치들이었다.

이성일이 바스케스전을 맞이해서 그에게 주문한 전략의 핵심은 절대 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바스케스의 해일 같은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인파이팅이 효과적이라는 것과 아웃복서에게 사신으로 군림했던 바스케스가 강력한 인파이팅에 약할 것이라는 분석으로 인해서였다.

근거는 충분했다.

이성일은 바스케스의 초기 시합 영상을 여러 경기 분석한 후, 그런 결론을 내렸다.

물론 바스케스가 이겼으나, 상대의 수준이 형편없었음에도 인파이팅을 펼친 선수들에게 꽤 많은 펀치를 허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북미 랭킹 6위였던 해리슨에게는 다운까지 당했을 만큼 고전을 했었던 것이다.

최강철의 주먹이 복부에 이어 안면을 강타한 후 빠져나왔다.

워낙 순식간에 펼쳐진 공격이었기 때문에 미처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바스케스의 안면이 흔들거렸다.

최강철은 뒤로 물러나는 바스케스를 곧바로 따라 들어갔다.

당황한 모습.

그럼에도 그의 주먹에서 해머같은 위력을 가진 펀치들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본능적인 공격이다.

바스케스는 안면을 공략당하자 자신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났다가 최강철의 전신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펀치를 쏟아냈다.

하지만, 최강철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같이 펀치를 갈겼다.

‘위잉, 위잉, 위잉…….’

양선수가 갈기는 펀치들이 독사의 혓바닥처럼 상대의 급소를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손해를 보는 건 바스케스였다.

한번 부딪칠 때마다 최강철의 펀치는 반드시 바스케스의 안면을 훑고 나왔다.

비록 충격을 주는 정타는 아니었으나 조금씩 빗나갔을 뿐 바스케스의 안면이 연신 흔들거렸다.

반면에 최강철의 신형은 바람처럼 움직이며 그의 펀치를 흘렸다.

위빙과 더킹, 슬리핑, 스웨잉, 스텝 디펜스까지.

바스케스의 펀치에 맞서 최강철은 가지고 있는 방어기술을 전부 동원했다.

스토핑과 블로킹, 패링은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 푸르게 벼려진 장검처럼 날카롭게 움직이는 바스케스의 펀치를 완력으로 막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서 경기가 밀리는 게 아니다.

최강철은 야금야금 바스케스의 압박을 뚫어내며 계속 전진해 들어갔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링의 중앙에서 부딪친 후 미세한 거리의 우위를 확보하며 최강철이 밀어붙이자 바스케스의 눈이 흔들거리는 게 보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적과 상대하면서 자신의 무시무시한 압박을 감당하고 뒤로 밀려나지 않은 놈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최강철은 다르다.

여우처럼 자신의 펀치를 피해내며 접근전을 펼쳐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 대, 두 대, 세 대…….

충격을 받은 건 아니었으나 1라운드만 벌써 십여 차례나 펀치를 허용하고 말았다.

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놈은 아예 작정한 듯 전진을 거듭해 왔기에 자신의 공격패턴이 흔들렸다.

어이가 없다.

트레이너진에서 허리케인의 특성상 자신을 상대로 인파이팅을 할지 모른다며 하도 닦달했기에 준비는 했지만, 진짜 이런 접근전을 펼쳐올 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와아, 와아!”

또다시 예상이 틀렸다.

바스케스의 강력한 압박을 흔들어 놓기 위해 대부분 전문가는 최강철이 아웃복싱을 준비했을 거라 예상했지만, 1라운드부터 전혀 다른 경기가 펼쳐지자 관중들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허리케인의 필살기.

바로 상대에게 공포를 자아내는 폭풍 같은 인파이팅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당신들은 아는가.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두 선수가 링의 중앙에 맞붙어 무차별적으로 펀치를 주고받을 때 느끼는 소름 끼치는 긴장감을.

상대를 향해 쏘아지는 펀치들 속에 담겨진 살기.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독사가 먹이의 목 줄기를 물어뜯는 것처럼 치명적인 펀치들이 상대를 향해 우박처럼 쏟아져 나갔다.

수많은 펀치가 난사되었음에도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 못하는 것이 더욱 커다란 긴장감을 선사했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 게 아니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의 방어력은 작정하고 피할 생각만 가진다면 한 대도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방적인 공격과 방어가 아니었기에 관중들은 두 선수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숨이 콱콱 막혔다.

마치 정교한 기계가 엇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공격과 반격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수시로 최강철의 펀치가 바스케스의 안면을 흔들어 놓자 관중들은 일어서서 광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허리케인이다. 공포의 허리케인.

불가능을 모르는 파괴자는 오늘도 그들의 심장을 저격하며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바스케스, 정신 차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미꾸라지 같은 놈이라고. 공격이 잘 안 먹혀.”

“이 자식아. 그러기에 내가 뭐라고 그랬어. 저놈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고 했잖아.”

“소리 좀 그만 질러. 가뜩이나 열 받아 죽겠구만.”

“1라운드는 완전히 졌다. 준비한 것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성질대로 싸우는 놈이 어디 있어. 넌 이 자식아 그게 문제야!”

“하아, 귀신에 홀린 것 같아. 그냥 저 새끼가 앞으로 치고 들어오니까 너무 화가 나서 아무 생각도 안 났어.”

“좋아,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우리가 준비한 걸 쓰란 말이야!”

“걱정하지 마. 1라운드에는 내가 조금 당황해서 그랬지만 이제부터는 확실하게 죽여주지.”

“놈의 콤비네이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걸 잊으면 안 돼.”

친형이자 트레이너인 카라우의 지시에 바스케스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형의 말을 듣자 들끓었던 흥분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1라운드부터 미친놈처럼 덤벼드는 허리케인의 인파이팅에 말려들어 여러 번 안면을 허용했으나 충격을 받은 건 아니었다.

저놈도 이런 시나리오를 구성했겠으나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어떤 작전을 수립했는지 이제 확인했으니 지금부터가 진짜 시합이 될 것이다.

“강철아, 선제공격 조심해!”

최강철은 뒤에서 소리치는 윤성호의 음성을 들으며 링의 중앙으로 나갔다.

전면에서는 황소처럼 뛰어나오는 바스케스의 모습이 다가오고 있었다.

최강철은 그런 바스케스의 눈을 확인하면서 슬그머니 입술 끝을 끌어당겼다.

눈이 다르다.

1라운드에서 분노와 당황함으로 물들어 있던 그의 시선은 어느새 링의 난폭자가 되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기세부터 다르다.

본 모습을 되찾은 바스케스의 전신은 온통 난폭함으로 무장된 채 자신을 향해 물밀 듯 밀려왔다.

‘위잉, 위잉.’

링의 중앙에서 맞붙자 지체 없이 토네이도 양 훅이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본능적인 더킹으로 놈의 펀치를 피한 후 강력한 원투 스트레이트를 꺼내 들었다.

그때, 가슴으로 파고들던 자신의 어깨를 바스케스의 팔꿈치가 가로막으며 번개처럼 어퍼컷이 올라왔다.

막을 새가 없었다.

접근하는 중이었고 어깨가 밀착되었을 경우 전혀 나올 수 없는 각도였기에 예상조차 하지 못한 펀치였다.

덜컥!

펀치에 턱이 걸리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아, 성질만 지랄인 줄 알았더니 나에 대해서 철저하게 준비한 모양이구나.

잠깐 다리가 풀렸으나 최강철은 이를 악물며 버티고, 가로막았던 바스케스의 팔꿈치를 비틀어 젖혀낸 후 몸통을 끌어안았다.

불의의 습격을 당했으니 잠시 정신을 차릴 시간이 필요했다.

뭔가 준비한 것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음에도 당한 것은, 1라운드를 보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졌던 자신감이 원인이다.

방심.

세상사는 게 다 이렇다.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된다는 착각은 방심을 하게 만들고 그 방심은 결국 내 자신을 죽음 속으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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