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30화 (230/308)

[230]

“국장님, 정말 이걸 내보내잔 말입니까?”

“왜, 뭐가 잘못됐어?”

문영일보의 최두행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국장의 시선을 받으며 슬그머니 이를 악물었다.

냄새가 난다. 그것도 지독하게 더러운 냄새가.

정치판이 시궁창이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 자들을 볼 때마다 구역질이 치솟았다.

차기 국회의원을 꿈꾸는 국장은 분명 이 자료를 방귀깨나 뀌는 정치권의 인사에게 받았을 것이다.

아니, 집권당이 아닐 수도 있다. 최강철은 현재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의 공통된 적이었기 때문이다.

국장이 넘겨준 자료에는 최강철의 가족에 대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제주도에 있는 최강철 부모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과 큰형 최강휴가 보유한 빌딩,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의 여유 있는 삶에 대한 집중 조명이다.

하지만 진짜는 기사의 내용이었다.

기사에서는 최강철의 행동을 교묘하게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최강철은 고아원을 세워 없는 사람을 돕고 있는 것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가족들은 초호화 생활을 하면서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후 그의 현재 행동을 지목하며 고아원을 설립한 것을 정치에 대한 야망으로 몰아갔다.

작성되어 있는 기사는 3개였다.

차례대로 터뜨려 최강철 효과를 완전히 죽여 버리겠다는 심산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그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치하는 자들은 늘 권모술수들을 준비해 놓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알겠습니다. 정리해서 바로 내일부터 터뜨리겠습니다.”

최두행은 버티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서 버텨봐야 다른 놈들을 시킬 테니 자신만 병신이 되고 말 뿐이다.

그럼에도 기분이 더러웠다.

누군가의 검은손에 의해 작성된 기사를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야 한다는 이 현실이 정말 더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최강철이다.

가장 좋아했던 최강철을 자신의 이름으로 쓰러뜨릴 생각을 하자 눈앞이 꺼멓게 어두워졌다.

아픈 딸만 아니라면… 사랑하는 가족만 아니라면 당장에라도 이 기사를 국장의 면전에 집어 던지고 싶었다.

* * *

“회장님, 전화 받으십시오.”

“누굽니까?”

“김 사장님입니다.”

지원 유세를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온 최강철을 향해 정철호가 급히 다가와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정철호는 경호 팀을 대동한 채 벌써 한 달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최강철을 호위하고 있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회장님, 접니다.

“사장님이 전화를 해온 걸 보니 일이 생긴 모양이군요.”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내일 터뜨린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내용은요?”

-1차적으로 회장님의 가족에 관한 것입니다.

“치졸한 수법부터 쓰는군요. 좀 더 그럴듯한 것으로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효과가 클 테니까요.

최강철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다급한 음성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자신을 상처 내기 위해서는 가족들을 건드리는 게 가장 임팩트가 클 것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나타나자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긴 힘들겠죠?”

-그렇습니다. 작정하고 덤볐기 때문에 쉽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도 막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난색을 보이더군요. 높은 곳에서 내려온 지시랍니다.

“그렇다면 우리 쪽도 준비하세요. 내일 우리가 확보한 언론과 인터넷으로 대응하면 국민 여론이 그렇게 악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최강철은 전화를 끊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불쌍한 자들이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서슴지 않으니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자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급한 것은 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이다.

가족들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들은 점점 공격 수위를 높여가며 자신을 압박해 올 것이 분명했다.

다음 날.

신문과 방송에서 동시에 최강철 가족에 대한 보도가 터져 나왔다.

권력을 이용한 고의적 보도였으니 내용은 대동소이했고 집권층과 제1야당은 기사가 나오자마자 눈엣가시 같았던 최강철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최강철은 반성하라. 가족이 호화 생활을 하면서 지낼 동안 양의 탈을 쓰고 고아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선행을 홍보하는 파렴치한 짓을 해왔으니 국민 영웅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그의 행태로 봤을 때 엔젤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고아원을 집중 조사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당에는 정부 지원금과 기부금 등의 사용처가 사적인 용도로 사용된다는 제보가 들어와 있다. 철저히 조사해서 양의 탈을 쓴 그의 범죄를 낱낱이 밝혀낼 것이다.

기사를 읽은 많은 사람의 표정이 단박에 흐려졌다.

신문과 방송에서 나온 집과 빌딩, 그리고 가족들이 소유한 고급 음식점, 명품 옷가게가 조명되며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놨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보다 잘사는 자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적의.

그것은 없는 자일수록 더욱 강했고 대한민국은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흘러넘치는 나라였다.

“이제 보니 최강철의 가족들은 뻑쩍지근하게 살더구만. 그러면서 저는 아직 전세에 산다고 뻥을 쳐!”

“돈 있는 놈들이 다 그런 거지, 뭐. 난 예전부터 그 말 믿지 않았어. 최강철이라고 별수 있어? 그놈이 그놈이지.”

“그러면 말이라도 하지 말았어야지. 지가 무슨 성자처럼 번 돈을 전부 없는 사람한테 주느냐고.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맞아, 웃기는 얘기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모여 쑥덕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옆에 있던 민창길이 인상을 긁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부류가 나누어진다.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 배운 사람과 덜 배운 사람, 고향에 따라 쉬는 시간에 모이는 부류가 달랐다.

민창길은 서영대학교 정치학과 3학년이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아파트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었다.

그랬기에 늙수레한 사람들이 최강철을 욕하자 친구들과 같이 앉아 빵을 먹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저씨들, 최강철 선수 욕하지 마세요. 최강철 선수가 잘못한 게 뭐가 있어요?”

“잘못한 게 왜 없어!”

“뭘 잘 못했는데요?”

“번 돈을 전부 없는 사람 도와준 것처럼 사기를 쳤잖아. 지네 가족들은 떵떵거리게 살도록 만들어놓고. 이게 말이나 되는 거야!”

“그럼 아저씨는 돈이 생기면 전부 남을 도와주려고 내놓을 수 있어요?”

“그거야 당연히…….”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가족들 잘살도록 만들어준 게 뭐가 그렇게 잘못된 거죠? 최강철 선수가 강도질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아저씨들도 돈이 생기면 가족부터 돌보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지만 그놈은 거짓말을 했잖아!”

“최강철 선수가 언제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요. 언론에서 떠든 거지, 최강철 씨는 한 번도 그런 소릴 한 적이 없다고요!”

“…그런가?”

“그리고 최강철 씨는 정말 많은 돈을 써서 사람들을 도왔어요. 당장 저부터 그분한테 장학금을 받았단 말이에요. 아저씨들, 착한 일 한 사람을 가족들이 잘산다고 욕하면 갑질하면서 떵떵거리고 사는 재벌들은 다 죽여야 돼요. 그렇지 않아요?!”

언론 보도에 주춤했던 여론이 급격하게 바뀐 것은 몇 군데의 석간신문에서 그동안 최강철이 복싱으로 벌어들인 돈의 내역을 고스란히 보도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부모님의 제주도 집과 가족들의 재산까지 전부 포함되어 있었는데 최강철이 가족들을 위해 쓴 돈은 전부 합해 30억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반면에 엔젤재단을 통해 고아원과 장학금으로 쓰인 돈이 500억에 달했다.

MBC에서는 9시 뉴스에 이런 사실을 특집으로 다루며 최강철에 대한 인신공격의 부당성을 보도했고 대한정의당에서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권당과 제1야당 측에서 총선을 위해 근거 없는 사실을 퍼뜨린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반대 언론들이 나서자 국민들은 단박에 최강철을 옹호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최강철도 사람인 이상 가족들을 챙기는 건 당연하다는 여론이었다.

그러나 집권당과 제1야당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들은 구체적인 자료까지 제시하면서 최강철이 운영하고 엔젤재단에서 정부 지원금과 기부금을 착복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터뜨렸다.

전부 조작된 자료들이었다.

검찰이나 경찰에서 조사하면 금방 드러날 거짓말이었지만 그들은 이런 루머를 사실인 양 언론에 연일 제보하며 국민들을 혼란 속에 빠뜨렸다.

최강철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파리 떼처럼 언론들이 달라붙었으나 최강철은 인터뷰를 사양한 채 칩거에 들어갔고 대신 다른 쪽에서 해명 자료들이 나갔다.

여론은 점점 좋아지지 않았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보도되었음에도 최강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은 반신반의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최강철의 가세로 인해 기세를 올리던 대한정의당의 인기가 흔들거렸다.

의심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대한정의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움직이지 않던 최강철이 대한정의당 기자실로 모른 언론을 끌어 모은 건 선거를 3일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동안 대한정의당의 수뇌부가 직접 나서서 해명해 달라고 계속 요청했음에도 꿈쩍하지 않던 최강철은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정교하게 계산된 행보였다.

어차피 최고 권력층에서 움직여 맹공을 퍼붓고 있으니 나서서 해명해 봐야 의혹만 커진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제우스를 움직여 자신을 타깃으로 음해에 가담한 언론사의 실질적인 책임자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천고의 진리는 여기서도 확실한 효과를 나타냈다.

그들을 제거한 것은 오늘 있을 자신의 발표가 여과 없이 기사로 나가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최강철이 입장 발표를 한다는 소식에 전 언론이 몰려들었다.

이번 선거의 태풍의 눈.

최강철이 직접 나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언론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최강철에게 적대감을 나타내던 언론사의 우두머리들이 차례대로 주요 보직에서 물러서자 언론의 태도가 점점 달라졌다.

오전 10신 30분.

정장을 입고 나온 최강철은 기자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후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 탁자에 앉았다.

준비된 원고는 없었고 그의 앞에는 오직 마이크만 있을 뿐이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강철입니다. 저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도 이제야 자리를 마련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저를 둘러싸고 나왔던 루머들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따로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저에 관한 루머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이 상황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제가 의혹의 중심에 선 이유는 오직 선거 때문이죠.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저를 정치에서 제거하기 위해 정정당당함을 잃는 행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거 문화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독재의 잔재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당리당략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아들을 돕고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 것은 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작은 소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더불어 저에게 베풀어준 국민 여러분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 가족들을 사랑합니다. 저희 가족은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면서 수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14년 동안 복싱을 해서 번 돈으로 그런 부모님과 형제들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한 게 잘못이라면 저에게 돌을 던져도 됩니다. 만약 제가 돈에 욕심을 부렸다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제 소망은 오직 하나. 대한민국의 푸른 하늘에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뿐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민 여러분께 부탁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선거에 꼭 참여해 주십시오. 선거에 참여해서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표를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은 하나입니다. 군사독재의 정치인들이 만들어놓은 지역감정에 얽매여 진정으로 조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을 버리지 말아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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