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29화 (229/308)

[229]

* * *

회사원 윤서정은 친구들과 신촌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맥줏집에 도착했다.

이 시간이면 신촌은 북적인다.

젊은이들의 거리였기에 이미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그녀들은 언제나 모임이 있으면 이곳으로 왔다.

연세대 경영대를 졸업한 그녀들은 대기업에 취업한 지 벌써 3년이나 되었지만 신촌에 대한 향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매달 한 번씩 모인다.

사회로 나와 직장에 다녔지만 친구들과 만난다는 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에 그녀들은 한 달에 한 번은 꼭 모여 수다를 떨었다.

여자가 셋만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건 빈말이 아니다.

그만큼 여자들은 모이면 서로의 이야기를 하느라 잠시도 입을 쉬지 않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미처 못 했던 말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연신 쏟아져 나왔다.

그녀들의 대화 주제는 많다.

직장에서 벌어진 일부터 남자 친구에 관한 이야기, 심지어 기르고 있는 강아지에 관한 것까지 쉴 새 없이 나온다.

내일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편했을 것이다.

일요일이 주는 여유는 토요일을 가장 행복한 요일로 만들어준다.

윤서정은 친구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영선이 정치 이야기를 불쑥 꺼내자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가급적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게 친구들 사이의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정치를 싫어했다.

아니, 싫어했다기보다 아예 관심을 두려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과 정부가 하는 짓들을 보면 실망투성이였기 때문에 가급적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서영선이 꺼낸 총선 이야기가 주제를 바꿔 최강철로 이어지자 윤서정의 찌푸려졌던 얼굴이 다시 펴졌다.

정치 이야기는 싫지만 최강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사람 결국 정치를 할 것 같아. 난 그게 싫은데…….”

“왜?”

서영선이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흔들자 윤서정이 의문을 나타냈다.

최강철이 대한정의당에 입당한 사실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상당한 사람들이 그가 대한정의당을 선택한 걸 두고 잘했다는 칭찬을 하고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그나마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건 오직 대한정의당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영선의 얼굴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난 그 사람이 잘못될까 봐 걱정돼. 우리가 좋아했던 많은 사람이 정치판에 들어가서 엉망이 되는 것을 많이 봐왔잖아.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응…….”

이유를 알게 되자 의문을 나타냈던 윤서정과 황민경의 얼굴도 금방 어두워졌다.

그녀들은 오래전 서울대의 축제에서 최강철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최강철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지 못했던 자신의 상황을 미안해하며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더 나은 조국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이어진 노래.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른다.

2만에 가까운 학생들과 함께 부른 그의 노래는 그녀들의 가슴에 깊고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겨주었었다.

서영선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최강철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웅이었지만 정치판에 들어서는 순간 정치꾼들의 공격에 의해 망신창이로 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윤서정은 서영선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영선아, 괜찮아. 난 그 사람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판을 흔들어놨으면 해. 우리 모두가 봤잖아. 그 사람의 격정적인 노래를 말이야. 그 사람은 다른 정치인들과 다를 거야. 진정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그의 행동을 볼 때마다 나는 최강철 선수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누가 자신이 번 돈을 전부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수 있겠니. 그것도 매를 맞아서 번 돈을 말이야. 난 그 사람이 23평짜리 전세에 살고 있는 장면이 텔레비전에서 나올 때 눈물이 다 나오더라. 더군다나 서울대 경영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던 사람이라 누구보다 똑똑하잖아.”

황민경이 맞장구를 쳤다.

그녀는 누구보다 최강철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에 그에 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친구들의 말에 서영선의 얼굴에서 쓴웃음이 떠올랐다.

무슨 말인지 안다.

하지만 그녀들이 세상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정신을 홀려 대한민국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최강철을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한국기획의 사장 권오철은 임원진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텔레비전에서는 피닉스그룹의 지주회사인 피닉스건설 광고가 흐르고 있었는데 모델로 나선 최강철은 피닉스건설이 가진 기술력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을 꿈꾸는 피닉스건설. 피닉스건설은 미래를 대비하며 전진해 나갑니다. 꿈과 희망을 현실로, 피닉스건설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당당한 약속입니다!

침묵.

광고가 끝나자 권오철과 임원들은 한동안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광고의 내용은 최강철이 레너드를 무찌르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기업을 설명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는데 한 편의 홍보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이 정도의 퀄리티는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광고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다시 말해서 꽤 커다란 비용이 들었다는 뜻이다.

권오철의 입이 열린 건 임원들의 표정이 굳어질 대로 굳어진 걸 확인하고 난 후였다.

“왜 말들이 없어?”

“죄송합니다.”

대표로 기획실장이 대답을 하자 권오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그 말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임원들의 잘못보다 자신의 잘못이 더 컸다.

최강철이라는 지상 최대의 대어를 놓친 것이 어찌 임원들의 잘못이란 말인가.

그랬기에 그의 음성은 날이 서 있지 않았다.

“최강철의 광고 모델료가 얼만지 알아봤나?”

“대일 측에 알아봤더니 자신들은 모른답니다. 최강철의 모델료는 피닉스 쪽에서 직접 지급했다는데 얼마를 줬는지 전혀 노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제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돈 때문에 출연한 것 같지 않습니다. 광고 모델료래 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최강철에게 그 정도는 껌값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요. 레너드와의 대결에서 3,00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그런 놈이 돈 때문에 출연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뭐냔 말이야!”

“…….”

조근거리며 말하던 권오철의 언성이 슬그머니 커졌다.

아직도 자신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고 있으니 슬그머니 짜증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한국기획은 지금까지 국내 톱의 위치를 뺐긴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한국기획과 대일기획, 주영기획을 합해서 3 대 광고 기획사라고 말하지만 톱은 언제나 한국기획이었다.

그런 지위가 흔들리고 있었다.

대일기획에서 최강철을 섭외한 것이 아니라 해도 그들이 광고 제작을 했다는 것은 향후 시장 판도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당연히 피닉스그룹에 대한 기득권을 갖게 될 것이고 다른 그룹의 제품들도 그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바로 최강철 때문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파괴력은 기업의 생사를 가를 만큼 엄청난 영향력이 있으니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대일기획을 찾게 될 것이다.

“내가 알기로 최강철은 피닉스그룹의 14개 기업 광고에 모두 출연했어. 이번에 나온 건 건설뿐이지만 순차적으로 터질 거라고. 무조건 찾아. 그래서 연결 고리 뭐였는지 가져오란 말이야. 그리고 최강철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전부 알아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예, 사장님.”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최강철을 잡아야 한다. 무슨 수를 쓰든 우리 광고에 출연시켜야 돼. 그러니까 당장 나가서 그걸 찾아와. 밥값을 하란 말이야!”

* * *

김영호는 회사에서 퇴근해 저녁을 먹은 후 딸과 놀아주다가 아내인 신경숙이 가져온 과일을 먹었다.

아내는 오랜만에 일찍 들어와 딸하고 놀아주는 남편이 예뻤던지 연신 웃음을 흘리며 황제 대접을 해주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광고가 시작된 것은 아내가 옆에 와서 딸과 함께 자신을 향해 애교를 떨고 있을 때였다.

“어, 최강철이 나오네?”

갑작스럽게 최강철이 레너드와 시합하는 장면이 나오자 김영호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혹시나 홀리오 바스케스와의 시합에 대해서 새로운 소식이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면에서는 복싱 장면과 함께 자막이 깔렸는데 꼭 영화처럼 생동감이 살아 있었다.

-위대한 용기, 그리고 도전. 이길 수 있다는 투지는 내일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입을 떡 벌리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미 아내와 7살짜리 딸도 화면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만들고 있었다.

“저거 광고야?”

“…그런 모양이네.”

아내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김영호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복싱 장면에 이어 정장을 차려입은 최강철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피닉스건설에 대한 홍보가 이어졌다.

거대한 교량, 터널, 아파트, 빌딩 등 피닉스건설이 그동안 시행해 왔던 사업들이 차례대로 소개됐는데 최강철의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꿈과 희망을 현실로, 피닉스건설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당당한 약속입니다!

광고가 끝났어도 김영호는 한동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이가 없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보, 당신이 좋아하는 깡철이가 광고를 다 찍었네. 그런데 저렇게 나오니까 멋있다. 정장을 쫙 빼 입으니까 복싱할 때보다 더 멋있는 거 같아.”

“이 사람아, 깡철이는 복싱할 때가 제일 멋있어.”

“호호… 복싱광다운 소리네. 그런데 피닉스건설이 저렇게 많은 일을 했었나?”

“원래 정동건설이 건설 쪽에서는 탄탄했어. 거기에 마이다스 CKC란 투자 회사가 인수했기 때문에 날개를 달았다는 소문이 돌았었지.”

“그렇구나.”

“확실히 광고 효과가 무서운 것 같네. 강철이가 나와서 이야기하니까 피닉스건설에 대한 믿음이 확 살아나는걸. 안 그래?”

“그거야 당연하지. 우리 강철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난 강철이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

“이 여자는 어째 나보다 강철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구만.”

“호호, 멋있잖아. 그리고 오늘 보니까 더 멋있네. 앞으로 깡철이는 계속 양복 입었으면 좋겠다.”

최강철의 광고가 방송되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은 즐거움을 숨기지 않았다.

비록 광고라 할지라도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의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어이가 없지만 사실이다.

사람들은 최강철의 광고가 나올 때마다 채널을 고정시킨 채 그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들이 국민들의 가슴에 따뜻함을 불어넣어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돈을 가진 많은 자들이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갖가지 불법을 저지르는 걸 수없이 봤기 때문에 국민들은 최강철의 행동에 감동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최강철이 본격적으로 총선 판에 뛰어든 것은 광고 촬영이 모두 끝난 후 부터였다.

그는 빡빡하게 짜인 일정 속에서 2달 동안 전국을 누비며 지원 유세를 펼쳤다.

박빙 지역을 중점적으로 지원했으나 전국을 사정권에 놓고 움직이며 기회가 날 때마다 대한정의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열풍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던 대한정의당은 최강철의 지원 사격을 받자 날개를 달았다.

국민들은 그가 지원 유세를 하는 곳마다 구름처럼 몰려들었는데 이름을 연호하며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빼 들었다.

모든 언론의 관심이 온통 대한정의당으로 몰렸다.

뉴스마다 매일 최강철의 지원 유세를 보여줬기 때문에 마치 최강철이 대통령 선거에 나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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