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25화 (225/308)

[225]

* * *

최강철은 결혼했음에도 서지영을 한국으로 데려오지 못했다.

그녀가 맡고 있는 마이다스 CKC의 업무가 너무 중요했으니 한국으로 돌아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을 한 후 방어전을 끝낼 때까지 미국에서 머물다가 7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 머물며 그가 집중한 것은 호리즌과 엠파이어의 시장 확보에 관한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인터넷이 상용화되었기에 호리즌과 엠파이어의 시장 지배력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떤 사업이든 선점이 가지는 효과는 막대하다.

후발 주자가 선점한 기업을 이기기 위해서는 시장을 뒤흔들 만큼 대단한 기술력과 전혀 다른 패턴으로 승부를 봐야 하지만 그런 기업은 나타날 수 없었다.

호리즌과 엠파이어가 보유한 기술력은 20년 후의 미래에서까지 통용되었던 것들이었으니 현재의 기업들에게는 기적의 기술들이기 때문이었다.

후발 업체가 없다는 것은 호리즌과 엠파이어의 독점 체제 구축이 가능하다는 걸 의미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마이다스 CKC의 막강한 자본력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마이다스 CKC는 작년 말 기준으로 무려 25억 달러의 수익을 올려 미국 투자 회사 중 톱의 위치에 올라섰다.

가히 거침없는 전진이었고 무서운 성장세였다.

이 모든 것이 최강철 개인의 자본이었으니 언론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세계적인 이슈가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마이다스 CKC은 완벽하게 이 사실을 비밀로 부쳤기 때문에 언론은 물론이고 심지어 직원들조차 알지 못했다.

“어서 오십시오.”

최강철이 일식집 긴자로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신규성과 김도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석으로 그를 앉혔다.

무려 7개월 만에 보는 것이었기에 그들의 얼굴에는 슬쩍 긴장감이 흘렀다.

자리에 앉자 이미 준비되어 있던 음식들이 날아왔다.

최강철은 식사를 할 동안 업무 이야기는 일체 배제하고 신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술잔이 오고 가면서 분위기가 점차 풀어졌다.

그들은 최강철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술이 들어가면서 속에 있던 이야기들이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회장님,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쓸어 담을 생각입니까. 이번에 미국에서 하는 사업들도 아이템이 대단하더군요.”

“하하, 아마 꽤 큰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미국 마이다스 CKC 본사의 수익이 엄청나다면서요. 저번 달 경제 전문지들이 일제히 작년 말 실적을 보도했더군요.”

“아직 멀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돈이 들어올 거예요.”

신규성의 말에 최강철이 빙그레 웃었다.

신규성의 얼굴은 술이 들어가자 벌겋게 변해 있었는데 얼굴에 웃음기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정말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회장님, 우리는 회장님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계획 말입니까?”

“그 막대한 돈을 벌어서 어디에다 쓸 생각인지 알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밑 빠진 커다란 항아리들이 여러 개 있어요. 거기에 쏟아부을 생각입니다. 붓고 부어서 돈으로 새지 않도록 막을 생각입니다.”

“고아원 말씀이십니까?”

“고아원이야 몇 푼 들어가나요. 더군다나 최근 들어서는 여기저기서 후원금이 빗발치듯 들어와 우리 돈은 그리 많이 나가지 않습니다.”

“그럼 밑 빠진 항아리가 뭡니까?”

“비룡과 앞으로 설립해 나갈 회사들에 투자할 예정입니다.”

“음…….”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유일하게 최강철이 손을 댄 사업 중에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건 비룡뿐이었다.

더군다나 아직 사업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비룡의 연구 단지와 공장들은 금년 8월이나 되어야 완공을 하기 때문에 아직도 수익을 내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

더욱 한심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5,000만 달러 이상이 소요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사 비용은 둘째 치고 최강철의 지시로 세계의 유수한 기술진들을 계속 스카우트해 왔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김도환이 신음을 멈추고 다시 입을 열었다.

“회장님, 비룡을 어디까지 키울 생각이십니까?”

“한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비룡의 한계는 없습니다. 비룡이 대한민국의 미래니까요. 저는 비룡을 통해 록히드 마틴사와 보잉을 제압할 것이고 더 나아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세계 최고의 회사로 성장시킬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회장님은 정말 거대한 꿈을 가지고 계시군요.”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최강철의 자산 중 한국에 있는 것은 자신이 움직이고 있지만 미국 본사의 마이다스 CKC의 자금 흐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감각으로 안다.

비룡은 방산 업체이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다면 최강철이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이 그곳으로 흘러들어 가게 될 것이다

그랬기에 신규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두 눈을 끔벅거리기만 했다.

과연 최강철의 말대로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돈이 필요할까.

5백억 달러? 아니, 천억 달러?

추측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강철의 다짐이 헛된 망상으로 보이지 않은 건 그가 지금까지 이뤄온 일들이 전부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걸 옆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최강철의 의도를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비룡의 주력은 항공기와 미사일, 인공위성을 포함해서 우주 개척에 관한 것이었다.

최강철은 이것들로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생각인 게 분명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충격을 받은 두 사람은 연거푸 술잔을 들어 올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곧 신규성이 남아 있는 의문을 풀기 위해 입을 열었다.

“회장님, 비룡 외에 앞으로 투자할 기업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뭡니까?”

“자동차와 바이오입니다.”

“자동차는 지금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이 휘어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몇 개 업체가 있지만 전부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간신히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와중에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다는 건 무리한 짓입니다. 그리고 바이오도 마찬가지예요.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피닉스제약이 있잖습니까. 연구비만 잔뜩 들어가고 돈도 안 되는 바이오를 따로 건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일반 자동차는 생산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바이오도 마찬가지고요.”

“그럼요?”

“연구에 집중할 겁니다. 차세대 자동차, 차세대 바이오 기술로 대한민국을 약진시켜 볼 생각입니다.”

“허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돈을 쏟아붓겠다는 최강철의 말이 이해가 갔다.

이 정도 꿈을 꾸고 있다면 최강철이 벌어들인 돈을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최강철의 입이 열린 건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규성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면서였다.

“사장님, 지금 삼성전자에 들어가 있는 돈이 얼마나 되죠?”

“5,000억 가까이 됩니다. 최근 2년 동안 미친 듯이 올랐거든요. 어제 종가로 14만 3천 원이었습니다. 우리가 산 평균 단가가 28,000원이었으니까 4배가 넘게 오른 겁니다.”

“좋군요.”

“저널들은 삼성전자의 미래를 엄청 밝게 보고 있습니다. 목표가를 25만 원으로 올려놓았는데 제가 봤을 때도 그 정도는 갈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삼성전자는 여기가 끝입니다.”

“…설마요.”

“내 말을 믿으십시오. 그러니 내일부터 삼성전자를 던지세요. 최대한 시장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파시란 말입니다. 앞으로 6개월 내에 우리는 삼성전자 주식을 전부 털어야 합니다. 금년 9월까지 전량 매도하세요.”

“정말입니까?”

“제가 언제 빈말하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신규성과 김도환은 최강철의 단호한 지시를 들은 후 얼굴을 굳혔다.

믿는다.

그동안 보여준 최강철의 판단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최강철은 분명 삼성전자를 마이다스 CKC의 수중에 넣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피력했기 때문이다.

“회장님, 지금 삼전의 주식을 전부 팔아버리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렇게 되면 회장님께서 지시한 일은 물거품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보유한 주식으로는 삼전을 먹을 수 없어요. 워낙 주가가 올라서 삼전을 먹으려면 1조 5천억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가가 우리가 산 가격으로 다시 하락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땐 3,000억 정도만 더 있으면 삼전을 먹을 수 있어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삼성전자의 전망은 더없이 밝습니다. 저널들의 평가뿐만 아니라 장래 발전성이 너무 뛰어납니다. 지금 반도체의 수요는 흘러넘치고 있어요. 아마, 원래대로 주가가 떨어지려면 우리나라가 망해야 가능할 겁니다.”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예?”

신규성의 말에 순순히 최강철이 수긍하자 두 사람의 얼굴에서 황당함이 묻어 나왔다.

대한민국이 망한단 뜻인지, 아니면 삼성전자의 미래가 평가와 다르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이야기만 듣고 있던 김도환이 슬그머니 나섰다.

“회장님, 뭐가 그렇다는 겁니까. 혹시 우리나라가 망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음… 도대체 저는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왜 망한단 말입니까?”

“경제가 완전히 박살 날 테니 망하는 것과 다름없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고가 박살 나면 망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는 단단합니다. 정부 쪽의 분석도 그렇고 주요 경제학자들도 우리나라 경제 기초가 탄탄하다는 걸 인정하고 있어요.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단 말입니다.”

“벌어질 겁니다. 이건 마이다스 CKC 미국 본사에서 분석한 결과예요. 한국은 몇 년 안에 디폴트 상태로 들어갈 겁니다.”

“으…….”

최강철은 그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IMF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이 얼마나 많은 고통에 시달렸단 말인가.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으니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IMF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의 재벌 집중과 금융의 부실 운영이 결정적이었지만 최강철은 미국 본사의 분석이란 핑계를 댔다.

거대 헤지펀드들이 달려들어 한국을 잡아먹은 것은 그들에게 빌미를 마련해 준 정부와 재벌들의 잘못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가 보유한 나머지 주식들도 내년까지 모두 매도하십시오. 부동산도 마찬가집니다. 96년 말까지 무조건 팔아서 현금으로 확보하세요.”

“회장님, 부동산은 안 됩니다. 지금도 우리가 확보한 빌딩들은 눈을 뜨고 나면 가격이 치솟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팔란 말입니까? 지금 팔면 다시 사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라가 망하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쓰레기로 변하게 됩니다. 나는 현금을 확보했다가 황금으로 변하게 될 쓰레기만 골라서 다시 주워 담을 생각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요?”

“그렇게 됩니다. 나를 믿으세요.”

신규성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5,000억에 달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전량 매도하는 것도 환장할 노릇인데 나머지 주식들과 빌딩들까지 전부 처분하라고 하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마이다스 CKC 한국 지부의 총자산은 1조 원에 달한다.

그동안 삼전의 주가가 무섭게 치솟았고 신규성이 자체적으로 운용했던 주식과 부동산 또한 몇 배씩 뛰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자산을 처분한다면 마이다스 CKC는 대한민국에서 현금 동원력이 가장 큰 투자 회사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아깝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묶어둔다면 계속해서 자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신규성의 얼굴이 잔뜩 흐려졌음에도 연이어 지시를 내렸다.

“현금으로 확보한 돈은 5 대 시중 은행에 분산 배치 하세요. 그리고 절대 움직이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날카롭게 쏘아보는 최강철의 시선에 결국 신규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언제나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던 최강철의 눈빛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건 그만큼 그의 의지가 강하다는 걸 의미했다.

“신 사장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를 믿어주시고 차질 없이 진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피닉스는 어떻게 돼가고 있죠?”

“아시겠지만 예전 정동그룹은 재계 서열 17위에 불과했습니다. 건설을 비롯해서 모든 계열사가 빠르게 예전 매출액을 되찾았으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전략들이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제가 나서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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