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늘 그렇듯 최강철은 기업의 운영에 관한 것은 세부적으로 참견하지 않았다.
그림자 경영이란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기업이 가져야 할 철학과 기본 정신만 주지시키고 비전만 제시해 주면 그에 맞춰 전문 경영인들이 움직이면 된다.
자신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기업들을 관장하고 세부적인 일들은 마이다스 CKC와 전문 경영인들이 움직이는 게 그림자 경영의 근본적인 시스템이다.
이성일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가 직접 사회를 봤고 서지영과 함께 축가까지 직접 불렀기 때문에 언론이 호강을 했다.
최강철이 하는 행동은 전부 특종이기 때문이었다.
이성일은 확실히 미친놈이다.
신혼여행에 같이 가지고 떼를 썼기 때문에 놈을 보내느라 한동안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걱정되는 건 이 자식이 한 달 후에 있는 자신의 결혼식에 사회를 본다는 것이었다.
이놈은 엉뚱한 면이 있어 어떤 곤란한 짓을 만들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서지영은 정말 요즘 들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마이다스 CKC의 일만 가지고도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바빴는데 결혼식까지 다가오자 아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양가 부모의 상견례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부모님은 이미 서지영을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주도의 본가로 초대해서 같이 하룻밤을 보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강철의 결혼이 다가오자 대한민국이 흔들거렸다.
언론에서는 연일 그의 결혼에 대해서 특집 방송을 내보냈는데 별별 게 다 뉴스가 되어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있었다.
특히 그의 검소한 결혼식은 화제 중의 화제였다.
시합 한 번에 3,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슈퍼스타가 영등포의 작은 예식장에서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역시 최강철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금만 재산이 있어도 호텔 예식장을 찾는 요즘 젊은이들의 행태와 단연 비교되는 일이었다.
호텔 예식장은 결혼 한 번 하는 데 최소 2,500만 원이 소요된다는데, 결혼 시즌이 되면 예약을 못 잡아서 난리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과연 이제 막 결혼을 하는 젊은이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몇 년 연봉보다 많은 돈을 결혼하는 데 쓸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일이다.
문제는 자식의 결혼을 위해 호텔 예식장을 잡는 사람들이 어깨를 바짝 세우며 갖은 폼을 다 잡는다는 데 있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허례허식에 젖어 헐떡거리는 중이었다.
결혼식장에 도착한 최강철은 깔끔한 정장을 입은 채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자 거의 100여 명의 기자가 동시에 플래시를 터뜨렸다.
그들은 현관을 중심으로 로비에 반원형을 그린 채 서 있었는데 커다란 둑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기자들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식장으로 향했다.
기자들은 그의 걸음을 막지 않았다.
오늘은 그의 결혼식이었으니 기자들도 최강철의 결혼을 막는 짓은 삼가하기로 합의를 봤던 모양이다.
먼저 오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최강철은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서지영은 한국에 친구들이 없어 같이 날아온 클로이, 수잔, 그리고 황인혜만이 대기실을 지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서지영의 모습이 보였다.
긴장한 모습이었으나 너무나 아름다워 눈이 부셨다.
웨딩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은 채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 위해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은 천사와 다를 바가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지영 씨, 예쁘네.”
“강철 씨는 더 멋있는걸.”
“조금 있으면 나한테 오겠네. 사뿐사뿐 조심스럽게 걸어와. 하지만 너무 늦지 마. 내가 기다리다 목이 빠질 수도 있거든.”
“신랑 입장!”
이성일은 하객들이 모두 자리를 채우자 난데없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놈은 사회를 보라고 했더니 군대의 교관처럼 연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최강철은 열려 있는 문을 통해 보무도 당당하게 단상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성일의 영향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가 입장하자 식장을 가득 채운 하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왔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것도 민폐다.
영등포의 정원 예식장은 그야말로 동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최강철 같은 슈퍼스타가 결혼식을 하게 되었으니 주변이 온통 난장판으로 변했다.
하객들의 규모는 그야말로 매머드급이었다.
대한 정의당의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여야의 의원들까지 대거 몰려들었고 체육부 장관을 비롯해서 관계 부처의 고위 간부들과 복싱 협회 회장이 식장을 찾았다.
미국에서는 돈 킹과 마이클 델, 보삭 부부, 그리고 엠파이어를 맡아 회사를 끌고 나가는 제프 베조스 등이 날아왔다.
충격적인 것은 버락 오바마와 워렌 버핏, 그리고 MS의 빌게이츠, 레너드와 듀란까지 참석했다는 점이다.
하객들이 이랬으니 언론들이 극성을 부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방송국에서는 아예 최강철의 결혼식을 생중계까지 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의 결혼식을 지켜봤다.
최강철은 모든 것을 프리로 풀어놓았다.
인기 연예인들처럼 극비 결혼을 하지 않았고 언론도 막지 않았으며 찾아오는 하객들의 축하도 고맙게 받아들였다.
왜 그랬냐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이뤄져야 하고 최강철은 그런 축복을 서지영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다.
최강철이 단상 앞에 서자 이번에는 이성일이 신부 입장을 외쳤다.
신랑을 부를 때야 그러려니 했지만 이 자식은 신부도 비슷한 목소리로 불러댔다.
웨딩마치가 은은하게 흐르며 서지영이 식장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을 잡아준 것은 윤성호였다.
천사다.
자신에게 사뿐사뿐 다가오는 서지영은 천사 그 자체였다.
보통 신부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아버지들은 신랑에게 신부의 손을 넘겨주며 이렇게 말한다.
“잘 부탁하네.”
아버지로서 딸의 행복을 바라는 간절한 한마디였다.
하지만 윤성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좋겠다. 이제 눈치 보지 않고 같이 살게 돼서. 그래도 시합 때는 안 돼. 알지?”
어이가 없어 입이 저절로 벌어졌지만 윤성호는 서지영의 손을 넘겨주고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결혼식의 절차는 차례대로 진행되었다.
오늘 주례로 모신 윤문호 교수는 아예 작정한 듯 주례사를 10분 넘도록 말씀하셨는데 얼굴이 벌겋게 변할 정도의 칭찬과 앞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조언들이었다.
윤문호 교수의 주례가 끝나고 양가 부모에 대한 인사를 했다.
서지영의 어머니는 벌써부터 이미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인사를 하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느라 제대로 인사조차 받지 못했다.
천천히 돌아서서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런 후 아들을 향해 웃음을 띠고 있는 부모님께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번에는 정말… 잘 살게요. 두 분의 가슴에 다시는 슬픔을 만들지 않도록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늘 아들을 걱정했던 부모님. 당신들의 은혜와 사랑을 저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으며 살아갈 겁니다.
그러니, 이제 울지 마세요.
같이 가자고 손을 잡아끌었을 때는 버틸 수 있었지만 따라오겠다는 놈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신혼 여행지로 잡은 곳은 하와이였는데 이성일과 윤성호는 아주 작정한 듯 막무가내로 따라붙었다.
“너 따라가는 거 아니야. 우리도 휴식하러 가는 거라고. 하와이가 전부 네 건 아니잖아. 안 그래요, 관장님?”
“당연하지. 인혜 씨, 갑시다. 그것참 공교롭기도 하지. 어떻게 비행기 시간이 똑같은지 모르겠네.”
저절로 입맛이 다셔졌지만 고개를 떨어뜨린 채 결국 항복을 하고 말았다.
이 인간들은 절대 말로 해서는 통할 인간들이 아니었다.
이제 막 결혼을 했다는 걸 알리려는 듯 승용차에는 온갖 장식품들이 매달려 있었는데 트렁크 뒤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깡통들은 이성일 작품이었다.
촌스러운 놈.
깡통이 사라진 게 언젠데 아직도 깡통을 매달아!
당황해하는 서지영을 옆에 두고 최강철이 눈을 부라렸으나 이성일은 뻔뻔하게 깡통이 잘 매달려 있나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성일과 윤성호가 다른 차를 타고 갔다는 것이었다.
“지영 씨, 힘들었지?”
“아니에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갑자기 왜 존댓말을 하는 거야?”
“결혼을 했으니까 강철 씨는 이제 제 남편이잖아요. 난 남편을 하늘처럼 존중하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우와… 갑자기 막 떨리네. 괜히 무서워지는데?”
“왜요?”
“아냐, 지영 씨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런데 저분들 호텔도 같은데 잡은 건 아니죠?”
“왜 아니겠어.”
“우씨, 그러면 안 되는데…….”
“쫓아낼까?”
“쫓아낸다고 나갈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냥 내버려 둬요. 어차피 같이 가는 건데 피크닉 가는 셈 치죠, 뭐.”
“그러자. 그래도 양심을 있을 테니까 이틀 정도는 우리만의 시간을 주지 않겠어?”
“응.”
“고마워, 지영 씨.”
“뭐가요?”
“나한테 시집와 줘서.”
“내가 더 고맙죠. 당신같이 멋진 남자와 결혼했으니까.”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최강철이 부드럽게 손을 잡았다.
그런 후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을 때까지 절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야.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며 당신 품에서 나머지 삶을 살아갈게.”
“나도 그럴 거예요… 나도…….”
1995년 3월.
시간은 미친 듯이 지나갔다.
최강철은 1월에 세계 랭킹 7위인 프랭크 블랑코를 4회에 KO로 잡고 방어전을 성공했다.
압도적인 경기였고 압도적인 결과였다.
세계 랭커였음에도 상대가 되지 않자 경기를 하는 동안 따분함이 몰려왔다.
전력을 기울여 싸워야 할 상대를 원한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방어전을 끝내고 WBC 슈퍼 웰터급 챔피언인 홀리오 바스케스와의 통합 타이틀전을 공공연히 제안했다.
바스케스는 현재 8차 방어전을 성공하며 롱런 가드를 걷고 있는 강력한 챔피언으로 KO율이 90%에 달하는 강타자였다.
복싱 팬들의 피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복싱 팬들을 판타스틱4의 시대가 끝났다면서 새로운 4명의 선수들을 히어로4로 선정했는데 현재의 복싱계가 그들로 인해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최강철을 비롯해서 KO 아티스트 홀리오 바스케스와 신이 내린 복서라고 불리는 홀리오 세자르 챠베스, 그리고 공포의 스피드를 자랑하며 최강철이 떠난 웰터급을 석권하고 있는 피넬 휘태커였다.
판타스틱4와의 전쟁이 막을 내린 후 최강철이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자 복싱 팬들은 강력한 지지를 보내며 또다시 광란에 빠져들었다.
현재의 복싱 판에서 최강철은 태풍의 눈이다.
그가 움직이는 걸음마다 복싱 역사가 새롭게 써지고 있으니 전 세계 복싱 팬들이 그의 행보에 열광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
토머스는 일방적인 최강철의 방어전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레너드와의 경기를 통해 그가 얼마나 강한 선수인지 새삼스럽게 느꼈지만 블랑코를 거의 학살하다시피 때려눕히자 그의 능력에 대한 경외감까지 들었다.
슈거레이 레너드는 다시 은퇴를 했다.
더 이상 링에 남아 자신의 전설에 치욕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긴 채.
그는 최강철에게 진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허리케인을 상대하기 위해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었습니다. 무려 7개월 동안 12라운드 내내 전력으로 뛸 수 있는 체력을 키웠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허리케인을 잡을 수 있는 기술들을 연마했지만 결국 지고 말았습니다. 세월을 이길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대는 갔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영웅이 필요하고 나는 그 영웅들을 더 이상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미련 없이 은퇴를 하고자 합니다."
토머스 역시 그 현장에 있었다.
복싱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설의 영원한 은퇴가 가슴 한쪽을 아프게 만들었다.
헤글러가 떠났고 듀란이 떠났으며 그 뒤를 레너드가 따랐다.
그들을 취재하며 다녔던 자신의 젊은 날들이 그들의 은퇴와 함께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슬픔이 밀려왔다.
허리케인 최강철.
전설을 무찌른 영웅.
어이없게도 그 슬픔은 최강철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전 세계 복싱 팬들의 피를 들끓게 만들었던 전설들과의 대결이 끝나자 그는 새로운 전쟁을 선포했던 것이다.
블랑코와의 시합을 끝내고 그가 바스케스와의 통합 타이틀을 제안하는 순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쁨을 맛봤다.
이러한 기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슬쩍 옆을 돌아보자 자신과 비슷한 표정을 지은 채 사진기를 눌러대는 뉴욕스포츠의 콜먼이 보였다.
“콜먼, 우리 밥줄 당분간 끊기지 않겠다.”
“크큭, 나도 방금 그 생각 했어. 허리케인은 우리 생명의 은인이야.”
“바스케스가 받아들이겠지?”
“용기가 있다면 받아들이지 않겠어? 그는 오래전부터 허리케인이 최강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거든.”
“우리 밥줄이 오래갈려면 최강철이 이겨야겠다.”
“당연한 말을 왜 해. 그래야 계속 이벤트가 마련될 거 아냐!”
콜먼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 역시 베테랑답게 토머스의 말이 어떤 뜻인지 금방 알아챘기 때문이다.
바스케스가 이기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이겼을 때는 히어로4의 대결이 성사되지 않지만 최강철이 이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스케스는 체급까지 내리면서 강자들과의 대결을 원하지 않았으나 허리케인은 성격상 분명히 웰터급을 휘어잡고 있는 피넬 휘태커나 슈퍼 라이트급의 챠베스와의 일전을 벌일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바스케스와의 대결도 엄청난 빅 이벤트였지만 휘태커나 챠베스와의 대결도 그에 못지않은 빅게임이 될 것이다.
그들은 막강한 능력으로 도전자들을 무찌르며 롱런을 구가하는 챔피언들이었다.
특히 슈퍼 라이트급의 챠베스는 전문가들로부터 신이 빚어낸 복서라는 찬사를 듣고 있었다.
만약 최강철이 없었다면 그는 판타스틱4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현존하는 전설로 불렸을 만큼 무적을 구가하는 제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