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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환생-216화 (216/308)

[216] 제29장 전설 대 영웅

산업 은행의 입찰 담당 책임자 김태성이 단상에 서자 무수한 플래시가 다시 터졌다.

지금까지는 연습이었고 지금부터가 진짜다.

김태성은 검은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파란색 넥타이를 매었는데, 은행원답게 무척 단정한 모습이었다.

“기다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먼저 자격 제한에 걸린 회사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로나는 3,200억을 투찰해서 저희들이 제시한 금액을 충족하지 못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정동그룹 매각에 대한 입찰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순위, 마이다스 CKC입니다. 입찰 금액은 6,000억입니다.”

“와아!”

김태성의 발표가 나오자 기다리고 있는 신규성과 김도환, 그리고 마이다스 CKC의 실무자들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서로를 붙잡고 기뻐했는데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진행 요원들이 그들을 자제시킨 건 김태성이 발표를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2순위는 블랙스톤으로 5,100억이었고, 3순위 론스타는 4,200억입니다. 입찰 금액과 기업 건전성 등을 고려한 종합 점수는 마이다스 CKC가 92점이었으며 블랙스톤이 87점, 론스타가 83점입니다. 따라서 이번 입찰은 마이다스 CKC가 낙찰자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김태성이 발표를 끝내고 뒤로 물러서자 또다시 기자들이 난리법석을 피웠다.

정말 충격적인 발표였기 때문이다.

이번 매각 금액 최대가 4,500억 선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결과는 놀랍게도 6,000억이었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 금액이라면 정동그룹이 정상일때도 M&A가 가능할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기자들이 김태성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질문을 했다.

그들은 얼마나 어이없었던지 발표 금액이 맞냐며 재차 확인까지 했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충격을 받은 건 블랙스톤 쪽이 훨씬 더 컸다.

그들로서는 모험까지 감행하며 5,100억이란 거액을 써 냈음에도 정동인수에 실패하자 허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특히 미카엘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신규성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동안 눈을 돌리지 못했다.

도대체 마이다스 CKC가 원하는 것이 뭐기에 이런 미친 짓을 했는지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최강철은 훈련을 끝내고 돌아와 입찰 결과를 들은 후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신규성은 흥분된 목소리로 결과를 알려왔는데 이야기 말미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걸 잊지 않았다.

인수 금액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신규성을 향해 웃어주며 수고했다는 말만 했다.

“사장님, 이겼으면 됐습니다. 그 돈은 국민들에게 돌려준 걸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향후 우리가 벌어들일 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까짓 1,000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지 마세요.”

“정말 통도 크십니다.”

“곧 언론에서 난리가 날 테니 사장님이 직접 인터뷰를 하십시오.”

“무슨 인터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먼저 정동그룹의 임직원들을 안심시키십시오. 절대 마이다스 CKC는 구조 조정을 하지 않을 거란 약속을 하란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업 사냥꾼들이 아니란 것도 알려주세요. 절대 기업을 다시 매각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발표를 하세요.”

“허어, 회장님. 그건 너무 성급한 판단입니다. 정동은 썩을 대로 썩었습니다. 잘라낼 가지들이 한두 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매각에 관한 부분도 마찬가집니다. 시장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고 그런 약속을 한단 말입니까. 재고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세요. 잘라내는 건 서병진에게 빌붙어서 회사를 말아먹은 놈들만 쳐내면 충분할 겁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직원들까지 효율성을 핑계로 잘라내면 안 된단 뜻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리고 사장님께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나는 정동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낼 겁니다. 그런 내가 정동을 매각할 것 같습니까?”

“음… 알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나면 인수 팀을 꾸려서 그룹을 접수하십시오. 그리고 내일부터 정동이란 이름은 쓰지 마십시오.”

“그럼……?”

“우린 피닉스란 이름을 사용할 겁니다. 정동은 사라지고 피닉스그룹이 다시 탄생하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회사명이 멋있죠?”

“아이고, 언제 또 그런 건 생각하셨어요. 훈련은 안 하시고 다른 것만 생각하시는 건 아닙니까?”

“하하, 제가 정동을 인수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때부터 준비한 이름입니다. 불사조처럼 세계를 상대로 날아오른다는 뜻입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정상 궤도로 올려놓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런데 본사 대표님께는 제가 보고 할까요?”

“아닙니다. 그 사람한테는 제가 알려주겠습니다.”

“역시 훈련을 등한시하는 모양이군요. 이번 시합 정말 걱정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게으름 피우는 성격이 아니랍니다.”

최강철이 전화하자 서지영은 깜짝 놀랐다.

시합이 잡히면 언제나 연락을 끊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제 아예 연락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저녁에 전화가 와서 그녀의 놀람은 더욱 컸다.

그녀는 와달라는 최강철의 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어떤 이유도 상관없다.

헤어지자는 말만 아니라면 최강철이 부르는 곳으로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었다.

“미안해, 밤에 오라고 해서.”

“아냐, 자기 얼굴 보고 싶어서 마구 설레면서 왔는걸.”

집으로 들어온 서지영이 시선을 돌려 윤성호와 이성일을 찾았다.

그들은 언제나 최강철과 함께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찾았던 것이다.

“관장님하고 성일이는 레드불스에 있어. 난 지영 씨가 보고 싶어서 이곳으로 온 거고.”

“정말?”

“하하하, 지영 씨는 내 말을 잘 안 믿는 것 같아.”

“그동안 믿게 해주셨어야죠. 그런데 정말… 다른 이유는 없어?”

최강철의 농담에 농담으로 맞받았지만 그녀는 웃음 속에서도 의심을 풀지 않았다.

당연하다.

사귀어 오는 동안 최강철이 아무런 용건 없이 시합을 앞두고 그녀를 부른 건 한 번도 없었으니 그녀가 의심하는 건 당연했다.

“정말이야, 정말 지영 씨가 보고 싶었어. 그게 가장 커다란 이유야. 관장님한테는 다른 이유를 대면서 이곳으로 왔지만 나는 정말 지영 씨가 보고 싶었어.”

“히잉… 그렇게 말하니까 감동스럽잖아.”

“이쪽으로 와. 우리 지영 씨한테 내가 말해줄게 있어.”

“뭔데?”

서지영이 소파로 와서 가만히 앉으며 묻자 최강철의 표정이 더없이 부드럽게 변했다.

“정동그룹을 내가 인수했어. 오늘 결과가 나와서 지영 씨한테 직접 알려주고 싶어서 오라고 했던 거야.”

“그게… 정말이야?”

“응.”

최강철의 말을 듣고 서지영이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이미 한국 지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매일 보고를 받았지만 막상 정동이 마이다스 CKC의 수중에 들어왔다는 말을 듣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들의 기쁨과는 또 다른 눈물이었다.

비록 같이 살지 못한 아버지였지만 정동그룹은 아버지의 피와 눈물이 담겨 있는 기업이었으니 딸로서 기업을 지켰다는 생각에 눈물이 샘처럼 솟아났다.

“그리고 미안하단 말을 하고 싶었어. 나는 앞으로 정동이란 이름을 쓰지 않을 거야. 정동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

“무슨 말이야?”

“정동 대신 피닉스란 이름을 쓸 생각이야. 나는 완벽하게 정동을 새로운 기업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어. 미안해 상의도 없이 그렇게 해서.”

“강철 씨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자식들이 정동을 지키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잖아. 새롭게 인수했으면서 기존 이름을 쓴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피닉스란 이름 좋네. 꼭 강철 씨를 생각나게 만드는 이름이야.”

“이해해 줘서 고마워.”

“내가 고마워해야지. 강철 씨, 고마워.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줘서…….”

서지영이 눈물을 닦으며 최강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버지가 지켜온 정동이란 이름이 사라지는 건 아쉬웠으나 최강철에 대한 고마움이 훨씬 컸기에 그녀는 어떤 미움도 갖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은 피닉스란 이름으로 정동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줄 것이다.

그녀가 아는 최강철은 불가능을 모르는 사람이니까.

* * *

레너드는 오랜만에 휴일을 맞아 훈련지를 벗어나 가족들을 만났다.

아내는 세 달 만에 만나는 남편에게 진한 키스를 해주었고 아이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반가움에 펄쩍펄쩍 뛰었다.

휴일을 맞아 공원에는 휴식을 취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레너드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최강철과의 경기가 확정되기 전부터 훈련을 시작했으니 벌써 5개월째다.

지금까지 복싱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 열심히 훈련했던 건 몇 번 되지 않았다.

특히 챔피언에 오른 이후에는 길어봐야 3개월을 훈련하고 링에 올랐는데 전설들의 대결이라 불리웠던 듀란전과 헌즈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은퇴 후 다시 링에 올라 두 번의 경기를 치르는 동안 오직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건 최강철을 반드시 꺾어야 된다는 일념뿐이었다.

복싱의 역사에서 수많은 전설이 있었으나 그는 자신이 원 톱이라는 생각을 늘 가져왔다.

그것은 적수가 없다며 은퇴를 결심했을 때도 그랬고 은퇴 후 여유 있게 새로운 챔피언들의 경기를 보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강철이 최근 3년 동안 폭풍처럼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볼 때마다 진화되는 허리케인의 능력은 전율이 일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헌즈전 때 보여주었던 그 막강함에 기가 질렸다.

헌즈와는 두 번이나 싸웠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가 얼마나 강한 선수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최강철은 자신을 괴롭혔던 헌즈의 무기들을 전부 무력화시키며 무차별적인 맹폭을 퍼부어 KO로 경기를 끝내 버렸다.

두렵냐고?

그렇지는 않다. 그 경기를 보면서 그가 느낀 것은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투지와 흥분뿐이었다.

두 번째 재기전을 승리로 끝낸 후 최강철에게 시합을 하자는 말을 했을 때도 승리를 확신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컨디션은 전성기 시절에 거의 근접했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허리케인을 꺾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존 무가비와의 시합이 끝난 후 건강이 회복되자마자 다시 글러브를 끼면서 이를 악물었다.

최강철과의 승부는 체력에 달려 있다는 게 트레이너들과 밥 애런이 보내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최강철은 모든 복싱 전문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만큼 완벽한 기술과 스피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더욱 그를 높게 평가하는 건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무시무시한 인파이팅 능력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보다 기량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천부적인 반사 신경은 헌즈와 다르게 허리케인의 무차별적인 압박을 뚫어낼 만큼 날카롭다.

그랬기에 12라운드를 풀로 가동할 수 있는 체력 훈련에 집중하며 전략가들이 마련해 놓은 전술을 소화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레너드가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아내가 슬그머니 그의 손을 잡아 왔다.

“여보, 힘들죠?”

“아니, 괜찮아.”

“난 겁이 나요. 그 선수는 너무 강한 것 같아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걱정하지 마. 나는 모든 사람이 격찬했던 최고의 선수야. 그가 아무리 강해도 날 이길 수는 없어.”

“당신은 오래 쉬었잖아요. 하지만 그 사람은 현역에서 계속 뛴 선수라 사람들은 당신이 질 거라는 말을 하고 있어요. 그때마다 너무 괴로웠어요. 화를 내지는 않았어요. 다만, 그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질 수도 있으나 우리 남편은 그냥 지지 않을 것이고 지금 열심히 훈련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어요.”

“잘했어.”

“오늘 다시 훈련장으로 돌아갈 건가요?”

“응, 그럴 생각이야. 생각 같아서는 당신과 같이 자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참으려고 해. 그와의 시합은 내 인생에서 마지막 시합이 될 거야. 그도, 나도 이기는 사람이 복싱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는 전설이 되겠지. 그게 나였으면 해. 그를 꺾고 모든 사람에게 레너드가 진짜 최고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레너드가 아내의 손을 잡으며 뛰어놀다가 돌아온 아이들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이들은 그를 향해 밝게 웃고 있었는데 세상의 근심 걱정에서 벗어난 더없이 순진하고 깨끗한 것이었다.

이 아이들을 위해 이긴다. 나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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