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14화 (214/308)

[214]

* * *

돈 킹이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정동그룹의 법정 관리가 무산되면서 언론이 그로 인해 난리가 났을 때였다.

기업은 법정 관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채권자에 의해 파산이란 절차를 밟으며 갈기갈기 찢겨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의 눈물이 흐른다.

당장 정동그룹 2만에 달하는 직원이 월급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받아야 하고, 최악에는 직장을 잃게 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그룹사의 파산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돈 킹의 입국은 정동그룹의 파산으로 몰렸던 언론의 시선을 단박에 끌어 모았다.

그의 입국이 최강철의 방어전과 관련이 있다는 판단을 가졌기 때문이다.

정동그룹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가져온 사건이라 해도 최강철의 방어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공항에 몰려든 언론들이 최강철의 방어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으나 돈 킹은 미소만 지은 채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공항을 빠져나갔다.

아직, 최강철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남기면서.

그게 언론을 더욱 안달하게 만들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돈 킹이 한 말은 최강철에게 동의를 받아야 발표가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언론은 그가 향하는 곳을 향해 벌 떼처럼 쫓아다녔다.

최강철의 경기는 단순한 복싱 경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영광을 위한 전쟁이었기에 국민들은 그의 일정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언론이 두 발을 편히 뻗고 쉴 수 있겠는가.

돈 킹과 최강철이 만난 것은 입국한 다음 날이었다.

그들이 만난 곳은 리버사이드 호텔이었는데 돈 킹이 입국한 후 묵은 곳이었다.

돈 킹은 아예 대놓고 언론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 또한 의미가 있다.

그가 최강철을 호텔로 오게 만든 건 언론을 피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최강철이 호텔을 가득 채운 기자들을 뚫고 객실로 올라가자 돈 킹이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허리케인, 어서 오게.”

“돈 킹 씨는 올 때마다 이벤트하는 방법이 점점 좋아지는군요. 기자들을 잔뜩 깔아놓은 걸 보니 좋은 소식이 있는 모양이죠?”

“일단 앉지. 이번에는 내가 커피를 타주겠네.”

최강철의 말에 돈 킹이 활짝 웃으며 호텔 룸에 마련되어 있는 바에서 물을 끓여 커피를 타 왔다.

그가 내민 잔을 받아 한 모금 입안에 머금자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향기로운 냄새가 입안을 적셨다.

“이 커피는 맛이 훌륭하네요. 무슨 커핍니까?”

“자메이카산 블루 마운틴일세. 세계 3 대 명품으로 알려진 커피라네.”

“정말 좋군요. 혹시 남는 거 있으면 저한테도 조금 나눠주시죠.”

“그렇지 않아도 자네 주려고 한 통 가져왔네. 하하하, 나는 언제나 자네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 아닌가.”

“그렇죠. 그럼 커피 말고 어떤 선물을 가져왔는지 들어볼까요?”

최강철이 마주 웃어주며 본론을 꺼내자 돈 킹의 얼굴에서 천천히 웃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윤성호와 이성일의 표정도 슬쩍 굳어졌다.

그들도 이미 돈 킹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가 뭔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 킹의 입이 열린 건 최강철 일행의 시선이 전부 자신에게 몰렸을 때였다.

“밥 애런과 1차적으로 합의한 것은 내년 3월 5일, 장소는 뉴욕의 MGM일세. 파이트머니는 자네가 3,000만 달러. 레너드가 2,000만 달러야. 역사상 최고의 파이트머니지. 자넨 복싱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거라네.”

“고생하셨군요. 그런데 경기 일자가 생각보다 너무 늦습니다. 나는 금년 중에 시합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요?”

“일정상으로 불가능했어. 밥 애런, 그 고집불통이 계속 시비를 걸었기 때문에 실무 협상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네. 또, 한 가지는 레너드 쪽에서 금년 중에는 어렵다고 주장하더군. 7월에 시합을 했으니 회복할 시간과 훈련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그때 듣고만 있던 윤성호가 불쑥 나섰다.

그는 돈 킹의 말에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돈 킹 씨, 챔피언은 우리요. 시합 날짜는 그들이 잡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잡는 거란 말입니다. 강철이는 레너드와의 시합 때문에 지금까지 방어전을 치르지 않고 있었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내년 3월이면 강철이가 너무 오래 쉬게 된단 말입니다. 복서가 1년 넘게 쉬게 되면 실전 감각을 잃는다고요. 우린 그런 불리한 조건에서 싸울 수 없소!”

“이봐, 윤 관장. 그래서 내가 직접 온 거 아닌가. 나는 허리케인과 자네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싶어서 온 거라네. 금년 중에 방어전을 치르고 레너드와 5월경에 시합을 할 수도 있어. 여기서 결정되면 나는 다시 날아가 그렇게 협상할 생각이야. 허리케인, 자네 생각은 어때?”

“돈 킹 씨는 말을 자꾸 빙빙 돌리시는군요. 저와 함께할 때는 사업가가 되지 않기로 약속했잖습니까.”

최강철이 날카롭게 바라보자 돈 킹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했다.

물론 그렇게 약속을 했다.

최강철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했던 약속이었다.

하지만 사업가로서의 근본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기에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레너드가 비록 복귀는 했지만 언제 다시 은퇴할지 모르는 형편이었으니 무조건 이번 기회를 잡아야 했다.

조금 무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미안하네, 하지만 레너드란 존재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다는 보장이 없잖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자네는 레너드와 싸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이젠 협박도 하시네요.”

“협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릴세. 사실이야. 그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만든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기자들을 이렇게 모아놓은 건 일부러 그런 겁니까? 제가 동의하면 빼도 박도 못 하게 발표하려고요?”

“그건 아닐세. 내가 언론을 피하지 않은 건 한국 언론에 대한 배려 때문이야. 자네가 한국 사람이니까 이번에는 먼저 한국 언론에 터뜨려 줄 생각이었네.”

“그런 거라면 좋습니다. 돈 킹 씨가 준비한 대로 가시죠. 전설의 복서를 잡는데 그 정도 배려는 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계약서 주세요. 시원하게 사인해 드리겠습니다.”

최강철의 경기 일정이 발표되자 대한민국 언론이 전부 뒤집어졌다.

물론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설과 영웅의 대결.

국민들의 반응은 헌즈전 때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체급을 올려 헌즈와 싸운다고 했을 때 국민들은 걱정으로 인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강력한 파이팅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국민들은 레너드전이 발표되자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불리할 게 전혀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강철은 무적이다.

어떤 선수가 와도 이길 수 있다는 신뢰.

허리케인 최강철은 2체급을 석권하며 차례대로 전설들을 격파했으니 비록 상대가 레너드라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담겨져 있었다.

“휴우, 5개월 남았구만. 김 과장, 5개월이다.”

“강조하지 마. 네가 자꾸 그러니까 간신히 가라앉혀 놓은 심장이 다시 벌렁거리잖아.”

“크크크… 아우, 생각만 해도 미치겠네. 나는 정말 행운아다. 최강철 같은 놈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아마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부러워하실 거야.”

“미친놈.”

류광일이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자 김영호가 풀썩 웃었다.

그들은 올해 초에 과장으로 동시에 진급했는데 이젠 팀을 맡아 단독으로 해외 영업을 맡는 회사의 중추로 올라섰다.

그럼에도 최강철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최강철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빠짐없이 봤는데 레너드의 재기전 이 끝나고 두 선수가 영화처럼 시합에 동의하자 둘이 끌어안고 만세까지 불렀다.

듀란과 헌즈에 이어 레너드다.

비록 판타스틱4에 해당하는 헤글러가 4월에 타이틀을 반납하며 영원히 링을 떠났기 때문에 아쉬웠지만 레너드와 싸운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해했다.

헤글러가 링을 떠난 건 충분히 이해할 만 했다.

벌써 그의 나이는 40살이 넘었으니 챔피언으로 은퇴하는 영광을 남긴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한다.

“이번에도 이겨주겠지?”

“당연한 거 아니겠어. 무조건 이겨. 강철이는 무적이야. 레너드가 아무리 뛰어난 테크니션이라 해도 강철이의 불꽃같은 인파이팅은 당해내지 못해.”

“어쩐 일이냐. 맨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놔서 나를 열 받게 하더니. 이번에는 왜 그래. 너도 늙었니?”

“그럴 만하잖아. 난 이제 최강철에 대한 의심을 전부 버렸다. 무조건 이겨. 그 자식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놈이야.”

“좋은 뜻이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내가 비록 매번 불안해했지만 깡철이의 광팬이다. 그놈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돼야 해.”

“그거 좋은 생각이네. 교육부에 건의 해야겠다.”

김영호의 말에 류광일이 킥킥대면서 웃어댔다.

역사 교과서에 최강철의 이름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때 김영호가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춤에서 울리는 삐삐를 바라봤다.

삐삐에 적힌 번호는 부장의 집 전화번호였기에 들어 올렸던 맥주잔을 급히 내려놓으며 카운터를 향해 부지런히 뛰어갔다.

돌아온 그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져 있어 류광일도 덩달아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야, 부장이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야?”

“씨발, 정동그룹의 파산이 최종 결정 됐단다. 이거 큰일 났네. 일주일만 더 버텨주지. 삼 일 후에 정동모직에서 나오는 물품들을 최종 선적을 해야 되는데 차질이 생기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고, 우리 팀도 걔들 거 있는데. 우린 일주일 후에 실어야 돼!”

“부장이 급히 사무실로 들어오란다. 이거 아무래도 문제가 커질 것 같네. 회사가 파산된 마당에 걔들이 제대로 일정을 지켜주겠어?”

“너 같으면 지켜주겠냐? 빨리 다른 데를 알아봐야지. 바이어들한테 빌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네. 가보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대책을 마련할 것 아니냐.”

* * *

미국의 사모 펀드 블랙스톤은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했다.

유수한 기업들의 주식을 떨어뜨려 자금 흐름을 막고 부실을 키워 잡아먹는 것으로 악명 높았는데 그들은 지금까지 기업을 사냥하는 데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사모 펀드의 전략은 간단하다.

유망한 기업이 부실에 빠져들 경우 평가액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인수한 후 혹독한 구조 조정을 통해 기업의 몸집을 줄여 벌어들인 돈으로 은행 융자를 갚고 2~5년 사이에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블랙스톤은 오래전부터 정동그룹을 주시하고 있었다.

워낙 덩치가 컸기 때문에 쉽게 달려들지 못했지만 오너 일가의 무능으로 그룹이 서서히 휘청거리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정동의 숨통이 막히고 고사되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기회다.

정동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맛있는 먹잇감이었다.

감각적으로 누군가가 정동을 노린다는 걸 알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어디 임자가 따로 있단 말인가.

부실기업은 먼저 본 놈이 임자다.

그랬기에 그들은 산업 은행에서 정동의 매각을 발표하고 공개 입찰을 통해 인수 희망자를 공모하자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블랙스톤의 기업 M&A 사업 본부장 미카엘이 직접 전문가들을 이끌고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반드시 정동을 먹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실무 담당자 레오나드가 급히 뛰어 들어온 것은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다음 날 점심 무렵이었다.

“본부장님, 참여한 업체들이 전부 결정되었습니다.”

“그래, 몇 개 업체야?”

“4개 회사가 들어왔습니다. 우리를 포함해서 론스타와 제로나, 그리고 마이다스 CKC입니다.”

“응?”

레오나드의 보고에 미카엘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그의 표정이 벼한 것은 레오나드의 입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마이다스 CKC 때문이었다.

론스타와 제로나가 덤벼들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마이다스 CKC가 들어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마이다스 CKC는 기업 사냥을 하는 놈들이 아니라 유망 기업에 투자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화이트 섀도로 최근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면서 막강한 자금력을 확보한 투자 전문 기업이었다.

다시 말해 가는 길이 다르다는 뜻이다.

“레오나드, 당신 생각은 어때?”

“아무래도 우리 예측이 틀린 것 같습니다. 론스타도 당황하는 눈치였거든요.”

“제로나는 그런 짓을 할 배짱이 없어. 그렇다면 마이다스 CKC였군.”

“가능성이 큽니다. 소문이지만 마이다스 CKC의 최대 주주가 한국인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거 점점 재밌어지는구만.”

“본부장님, 론스타와 제로나의 전략은 뻔합니다. 놈들은 기껏 해봐야 3,000억~4,000억이 한계입니다. 하지만 마이다스 CKC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레오나드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미카엘을 빤히 쳐다봤다.

기업 사냥꾼들은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

가급적 예상 실사 금액의 60% 이상을 베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위험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으로 사모 펀드들의 생존 방법이었다.

그랬기에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마이다스 CKC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놈들은 블랙스톤과 근본이 다른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미카엘의 입술이 벌어진 것은 레오나드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꿈틀거릴 때였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반드시 정동을 먹기 위함이었어. 우리가 예정한 금액보다 20% 올린다. 마이다스 CKC가 정말로 정동을 해치운 놈들이라면 낙찰액은 훨씬 올라갈 거야.”

“본부장님, 그러면 위험합니다. 정동 보유의 부동산이 욕심나긴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집니다.”

“상관없어. 그 정도 금액으로 정동을 먹을 수만 있다면 최소 3,000억 이상은 건질 수 있다. 그러니까 내 말대로 진행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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