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09화 (209/308)

[209]

* * *

최강철은 김도환의 보고를 들은 후 입술 끝을 끌어 올렸다.

개새끼들. 하는 짓을 보면 양아치가 따로 없다.

거대 그룹의 회장이란 놈이 그까짓 돈 때문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장까지 조작한단 말인가.

“그럼 유언장이 하나 더 있다는 말이군요?”

“원본을 2장 만들었답니다. 서길영 회장이 아들들을 못 믿었던 것 같습니다. 1장의 원본은 서지영 씨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은행 비밀 금고에 넣어놨답니다. 비밀번호는 오직 서지영 씨만 알기 때문에 서병진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서지영 씨 모녀를 추방하고 들어오지 못하게 발악한 건 전부 그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복싱 영웅 최강철의 연인이란 것을 알면서도 무리한 짓을 저지른 건 전부 그 유언장 때문이었습니다.”

“이상하군요. 그런데 지영 씨는 왜 유언장을 찾지 않았을까요?”

“어렸잖습니까. 그때 서지영 씨의 나이는 14살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쫓겨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받은 충격이 너무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 유언장이 나오면 유산을 찾을 수 있단 말이죠?”

“전문 변호사에게 의뢰해 봤더니 충분히 가능하답니다. 하지만 서병진과 그 동생들은 처벌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지났거든요.”

“비자금은 알아보셨습니까?”

“지금 정동의 자금 흐름을 샅샅이 훑고 있는 중입니다. 놈들이 하는 짓을 보면 분명 상당액의 비자금이 조성되었을 겁니다. 그것만 확인하면 횡령으로 처넣을 수 있습니다.”

“정동을 우리가 장악하기 위해서는 놈들을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서병진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조성될 거예요. 더불어 유산을 찾는 과정에서 모든 언론을 동원하세요. 서병진의 도덕적 가치가 땅으로 떨어지면 정동그룹 전체가 흔들릴 겁니다. 그때 본격적으로 우리는 정동의 주식을 떨어뜨릴 겁니다. 양동작전, 아시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저는 일 때문에 곧 미국으로 건너갈 생각입니다. 아마, 2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마이다스 CKC의 신 사장님과 협의해서 진행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들어오시기 전까지 기초 작업은 전부 끝내놓겠습니다.”

경기가 없는데도 미국으로 넘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밀리에 움직였기 때문에 공항에는 예전과 같은 인파와 언론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용하게 떠나기 위해 모자와 안경으로 변장까지 했기 때문에 번잡스러움을 피할 수 있었다.

서지영과 만난 후 곧바로 집으로 향하며 최강철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여자 강하다.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받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자신의 불행을 지금까지 한 번도 꺼내지 않았으니 그 속이 오죽 답답했을까.

“지영 씨, 나 할 말 있는데…….”

“응, 뭔데?”

“정동에 관한 일이야.”

최강철의 입에서 정동이란 말이 튀어나오자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절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던 단어였다.

첩의 자식.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애써 스스로 위로하며 살고 있었지만 그 사실은 언제나 그녀의 가슴속에 대못처럼 박혀 있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자란 여자로 비춰지고 싶었다.

최강철을 사랑한 순간부터 언젠가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자신의 불행이 그에게 상처가 될까 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정동이란 말이 튀어나오다니…….

머리가 텅 빈 것처럼 충격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침착하려 노력했다.

“정동을 말한 건 나에 대해서 알았다는 뜻이야?”

“응.”

“어떻게 알았어?”

“저번에 호텔로 찾아왔던 놈들을 추적하다가 알게 되었어. 그놈들 정동에서 보냈더라.”

“…그렇구나. 다시 들어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더니 그렇게까지…….”

서지영이 슬며시 눈을 감았다.

새삼스럽게 오빠들에 대한 분노가 솟구쳐 올라 몸이 떨려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게 있다고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괴롭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도 상처를 받았겠지만 그녀는 더욱 커다란 상처를 받지 않았던가.

가슴이 묵직하게 아파오며 먹먹한 슬픔이 몰려들었다.

그냥 가만두면 잊고 살려 했는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도대체 왜!

“지영 씨, 당신 이복 오빠들이 아버지의 유언장을 조작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서길영 회장님은 지영 씨와 어머니께 많은 유산을 남겼지만 서병진이 유언장을 조작해서 전부 가로챘어.”

“정말이야!”

“아마 그자들은 그것 때문에 지영 씨가 한국에 들어오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것 같아.”

“그래서… 그래서 우릴…….”

“지영 씨의 유산은 아버지 유언장을 확인하면 되찾을 수 있어. 서길영 회장님은 지영 씨가 유언장을 볼 수 있도록 은행 비밀 금고에 보관해 놨대. 그 당시 변호사 말로는 지영 씨가 비밀번호를 알고 있을 거라던데. 혹시 기억나는 거 있어?”

“비밀번호?”

서지영이 최강철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생각은 길지 않았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아와 6자리 숫자를 가르쳐 주며 아버지가 무슨 일을 당하면 은행에 가서 물건을 찾으라는 말을 남겼던 것이다.

하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 그들 모녀에게 지옥 같은 일들이 수시로 벌어졌다.

상을 치르자마자 이복 오빠들은 무서운 남자들을 보내 납치하듯이 공항으로 데려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협박을 했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질 정도로 두려웠다.

다시 눈에 띄면 죽여 버린다는 말을 할 때의 서병진은 악귀처럼 보일 정도로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기억나, 비밀번호. 알고 있어.”

“그걸 나에게 가르쳐 줘. 그리고 위임장을 작성해 주기만 하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럼 정말 유산을 되찾을 수 있는 거야?”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반드시 찾을 수 있어. 내가 그놈들이 다시는 지영 씨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만들어줄게.”

“어쩌려고?”

“정동을 그놈들에게서 뺏을 거야. 그래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우려고 해. 서길영 회장님도 하늘에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을까? 당신의 피땀 어린 기업체가 아들들로 인해 망하는 것보다 분명 그걸 더 원하실 거야.”

최강철은 서지영에게 비밀번호와 위임장을 받은 후 한국의 김도환에게 보냈다.

나머지는 제우스가 움직여 처리할 예정이었으니 더 이상 그가 할 일은 없었다.

먼저 유언장의 내용을 확인한 후 전문 변호사를 고용해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언론에 뿌리면 세상이 온통 시끄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민사소송은 예상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다.

당시 유언장의 변조를 도왔던 이철성의 증언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병진이 아무리 빵빵한 변호사를 동원해도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는 없다.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마이다스 CKC의 신규성은 제우스와 별도로 정동그룹의 지주회사인 정동건설의 주가를 박살 내는 작전에 들어가 있었다.

이제 때맞춰 서병진의 유언장 사기 사건과 횡령 사건이 동시에 터지면 정동 전체가 흔들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 * *

최강철이 서지영의 본가를 찾은 것은 뉴욕에 도착한 이틀 후였다.

그가 미국에 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서지영의 어머니께 인사드리는 것이었다.

서지영의 엄마, 김선화는 최강철이 인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인 김미화와 함께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었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미국 음식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사윗감에게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중 그녀가 가장 신경 쓴 것은 불고기였다.

서지영으로부터 최강철이 불고기를 좋아한다는 걸 미리 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어제부터 재료를 사다가 갖은 양념으로 재워놓았다.

초인종을 누른 후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선화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허리를 정중하게 숙이며 머리를 마룻바닥에 닿을 만큼 수그렸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온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아직 화도 내지 않았는데 먼저 선수를 치면 어떡해요!”

인사를 하는 최강철을 향해 김선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최강철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할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먼저 바짝 꼬랑지를 내리자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최강철은 숙였던 허리를 끌어 올린 후 미소를 짓고 있는 김선화를 향해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께서 화를 내지 못하도록 제가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어머님께 잘 어울리는 선물입니다.”

“어머, 이게 뭘까?”

최강철이 들고 있던 상자를 앞으로 내밀자 김선화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에는 궁금증이 잔뜩 들어 있었는데 무척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손이 조심스럽게 움직여 포장지를 뜯었다.

그런 후 상자에 담겨 있는 내용물을 확인하고 입을 떠억 벌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상자에는 족두리와 비녀, 그리고 옥가락지와 기러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선물을 만지는 김선화의 손이 떨렸다.

그리고 눈을 물들이며 새어 나오는 눈물.

면사포조차 쓰지 못한 채 서지영을 낳고 길렀던 그녀에게 최강철의 선물은 커다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강철이 식사를 하는 동안 김선화는 잠시도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부드러운 시선.

마치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것처럼 최강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더없이 은혜로웠고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최강철이 서지영과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간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그 일주일 동안 마이다스 CKC에서 업무 보고를 받은 그는 미국 5 대 도시의 빌딩들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란 지시를 내렸다.

향후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화 산업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라는 주문도 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전생에서 그는 영화광이기도 했기 때문에 대박을 터뜨린 영화들에 대해서는 줄줄 외우고 있었다.

영화 산업은 의외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다.

흥행에 성공하면 적은 투자로 수십 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으니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마이다스 CKC의 경영에 대해서는 개략적인 보고만 받고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커다란 골격이 유지되는 한 그가 나설 이유가 없었다.

자동차는 엔진만 시동을 걸어놓으면 도로를 따라 쾌속 질주 하게 되어 있다.

괜한 참견으로 핸들을 조작하는 순간 자동차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릴 뿐이니 참견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컸다.

시스코에 도착하자 주요 임원들이 전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곳에서의 일정은 3일이다.

호리즌과 엠파이어에서 구축된 프로그램을 확인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봐줘야 할 부분은 포털 사이트에 구축된 내용들과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밑그림에 관한 것이었고, 대부분 그가 작성한 것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몇몇 추가할 내용만 보완하면 될 것이다.

대회의장에는 보삭과 샌디, 그리고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한 책임 기술진이 전부 참석했는데 보고를 한 것은 마이클 창이었다.

그는 중국계였는데 보삭이 스카우트해 온 프로그래머로 MIT 공대 출신이었다.

대형 화면에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보고서가 차례대로 올라오며 마이클 창의 입을 통해 설명되기 시작했다.

역시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뜨인다.

아직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소소한 단점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최강철은 호리즌에서 개발한 포털 사이트와 엠파이어의 쇼핑 사이트 프로그램에 하루씩 시간을 할애하며 철저하게 검증 과정을 거쳐 나갔다.

보고와 토론을 거칠 때마다 최강철의 노트에는 추가로 보완될 사항들이 빽빽하게 적혀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날.

최강철은 스스로 일어나 자신이 적었던 내용들에 대해 기술진들에게 하나씩 설명하며 보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에서 최고의 능력을 자랑하는 기술진들이 그의 지적에 수시로 얼굴을 붉혔다.

그들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복싱 선수에 불과한 허리케인이 세계 최고의 두뇌라는 자신들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지적하고 있었으니 연신 한숨을 내리쉴 수밖에 없었다.

최강철은 자신이 검토했던 내용들을 전부 설명한 후 마지막으로 보삭과 샌디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이 정도 수준으로도 특허를 내기에 충분합니다. 보삭과 샌디는 즉시 특허청에 서류를 제출하시고 최대한 빠른 시간에 완료토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보삭과 신디는 최강철의 지시에 한마디도 토를 달지 않았다.

지난 3일 동안 보여준 그의 능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승복을 한 지 오래였다.

“그리고 특허가 완료되는 대로 호리즌과 엠파이어의 CEO를 새로 선임할 생각입니다. 이 두 가지 사업을 제대로 이끌어줄 사람들이 필요하거든요.”

“그들이 누군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직 만나지 않았으니 결정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을 아직 만나지 않으셨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여기 일을 마치는 대로 저는 그들을 찾아갈 생각입니다.”

“오랜만에 오셨는데 그냥 가신다고요.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우리 부부는 보스를 모시려고 음식을 잔뜩 장만해 놨단 말입니다.”

“보삭, 당신도 알다시피 제가 무척 바쁩니다. 올해 중으로 시합이 열릴지 모르니 파티는 그때 합시다.”

“헉, 그럼 레너드와 싸우는 건가요?”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보삭의 질문에 최강철이 대답하자 앉아 있던 기술진들의 표정이 단박에 변했다.

허리케인은 그들의 보스 이전에 복싱 영웅이었다.

그들의 표정이 변한 것은 그들 또한 허리케인과 레너드의 시합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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