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08화 (208/308)

[208]

* * *

텔레비전을 보던 황병삼은 최강철이 출연한 시사초점을 보다가 길게 한숨을 흘려냈다.

처음에는 색안경을 끼고 봤다.

최강철의 선행은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에 굳이 잘난 체하기 위해 텔레비전에까지 나오는 게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자신은 가진 게 별로 없어 남을 돕지 못하는데 최강철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편협한 마음이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은 최강철이 나온다는 것만 가지고도 전혀 보지 않던 시사초점을 보기 위해 거실로 몰려들어 전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처음에 가졌던 편협한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화면에 나오는 건물들은 고아원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훌륭한 시설들이었고 그 대부분이 최강철로부터 지원되고 있다는 게 상세하게 나왔던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버는 최강철이라 해도 가진 것을 털어 남을 돕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걸 가진 재벌들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눈에 불을 켜는데 최강철은 번 돈을 전부 털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아이들을 향해 쏟아붓고 있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개략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 너무나 다른 내용이었기에 그가 받은 충격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충격은 최강철의 마지막 부탁을 듣는 순간 감동으로 변했다.

이것이었구나.

그동안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추지 않던 최강철이 일부러 출연을 한 이유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호소를 하기 위했음을 아는 순간 그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연신 헛기침을 쏟아냈다.

“으이구, 정말 바보 같은 놈들이야.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어. 아이를 낳고 버리는 건 정말 커다란 죄악이야. 강철이 말이 백번 맞아. 안 그래, 여보?”

“그럼요, 당연하죠. 요즘 애들은 생명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어요. 지들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이 평생 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걸 왜 모를까요.”

“어른들 생각도 바꿔야 해. 유교 문화에 젖어서 결혼하지 않고 그런 짓을 하면 범죄자 취급을 해 왔잖아. 무엇보다 성교육이 중요하다니까. 정부에서 나서서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맞아요, 맞아!”

윤미순이 남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거품을 물었다.

그녀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동안 순진한 눈망울로 찾아온 사람들을 반기는 아이들을 보면서 여러 번 눈물을 글썽거렸다.

황병삼의 눈이 돌아간 것은 아들과 딸이 멍하니 앉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는 최강철을 보고 있을 때였다.

“니들도 강철이 이야기 들었지? 고등학생들도 사랑을 할 수 있어. 하지만 저렇게 불쌍한 아이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니?”

“저는 저런 짓 절대 안 해요.”

“이 자식아, 아빠는 개방된 사람이야. 사랑은 해도 돼. 젊은 애들도 사람인데 왜 사랑을 하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조심해야 된다는 걸 말하는 거야. 아이는 결혼했을 때 가져야 된단 뜻이라고. 지금 강철이가 말하는 게 그런 거잖아!”

* * *

최강철이 시사초점에서 사회에 던진 파장은 컸다.

각종 단체가 최강철의 선행에 동참했고 캠페인을 벌이며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 문화 조성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언론이 그 뒤를 따랐다.

언론은 최강철의 프로그램이 끝난 후부터 고아원의 실태에 대해 집중 취재 하며 고아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에 대해 보도했다.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국정 홍보실에서는 최강철을 홍보 대사로 임명한 후 대국민 홍보에 열을 올렸고, 교육부에서는 성교육을 강화시키며 콘돔 사용을 권장하는 내용까지 교육 내용에 포함시키는 걸 검토했다.

그동안 성교육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형식에 치우쳐 효과를 볼 수 없었지만 새롭게 추진되는 내용들은 한국 사회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들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내용들이었다.

오직 공부만 강요하며 청소년들을 압박했던 사회적인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계기.

그것은 최강철의 방송 출연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 * *

이철성은 서울 지검장 출신으로 나이가 78세였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를 닮지 않았던지 고등학교만 졸업한 후 사업을 한다고 덤벼들었다가 여러 번 망하고 지금은 동네에서 피자집과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화려했던 시절은 지나고 고난의 시간들이 다가왔다

이철성은 젊은 시절 검찰에서 가장 잘나가는 검사였고 서울 지검장을 끝으로 은퇴 후에도 변호사로 활동하며 거액의 돈을 벌어들였다.

검찰의 전관예우는 특별했고 그는 그 관행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밝음과 어둠이 상존하는 법이다.

아들놈들이 번갈아가며 사업을 한다고 돈을 뜯어가는 바람에 그 많던 돈이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노후를 생각해서 더 이상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진리를 실감하며 마지막으로 남았던 아파트까지 처분하고 말았다.

화려했던 시절.

그 영광스러웠던 순간은 파고다공원에서 하릴없이 거니는 그에게는 끝없는 고통의 기억들이었다.

걷다가 힘들어 벤치에 앉아 비둘기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는 홀로 비둘기를 바라보며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아내라도 살아 있다면 이 고통이 덜했을 거라는 생각.

언제나 자신을 믿어주며 의지했던 아내는 두 아들이 번갈아 가며 속을 썩일 때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기어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게 벌써 8년 전의 일이었다.

여러 마리가 모여 먹이를 주워 먹는 비둘기의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해 보였다.

아들놈들은 돈이 필요할 때만 미친놈들처럼 찾아오더니 더 이상 나올 구멍이 없자 발길을 끊은 지 오래였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자신이 살아왔던 화려한 삶이 이렇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될 줄은 상상조자 하지 못했다.

마지막 담배 연기를 하늘로 날려 보내며 꽁초를 주머니에 집어넣을 때 말쑥한 양복을 입은 자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영감님. 혹시 이철성 변호사라는 분을 아시나요?”

“당신 누구요?”

이철성이 사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되물었다.

지금은 궁핍하게 살고 있지만 과거의 그는 뛰어난 감각으로 각종 범죄를 해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던 사람이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내의 질문이 자신을 몰라봤기 때문에 던진 것이 아니라는 걸.

“변호사님, 제가 식사를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여기서 가까운 곳에 싱싱한 회를 파는 곳이 있더군요. 거기서 소주 한잔하시죠?”

이자는 누굴까.

사람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게 벌써 10년도 넘었다.

그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회를 먹으러 가자는 말에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회를 먹어본 것도 10년은 넘은 것 같았다.

이 사내가 누구든 상관없다.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 삶보다 더 나쁜 일이 생길 리는 만무했다.

“술을 사주겠다니 고맙구려. 갑시다.”

김도환은 허겁지겁 회를 집어 먹는 이철성에게 연신 술을 따라주었다.

미리 보고를 받았지만 막상 만나 보니 더욱 초라해 보였다.

사람의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지만 이철성의 인생은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은 곳곳에서 보였다.

“자, 이제 회도 다 먹었고 술도 어지간히 되었으니 젊은이가 나를 찾아온 이유를 말해봐요. 뭣 때문에 나를 찾아왔지?”

“정동 때문에 왔습니다. 영감님께서 정동의 고문 변호사였더군요.”

“맞아, 서길영 회장이 있었을 때 내가 그곳에서 5년 동안 일했지. 하지만 그 양반이 죽은 다음에 떠났어. 그런데 왜 그러는가?”

“왜 그러셨습니까?”

“허허… 뜬금없구만. 왜 정동을 떠난 건지 묻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야…….”

이철성이 말을 하다가 중간에서 멈췄다. 무언가 낌새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자네가 그럴 왜 묻지?”

“영감님은 서병진에게 10억을 받으셨더군요. 그 당시로 따지면 엄청난 거액이었습니다. 그자는 독사 같은 놈입니다. 그런 놈이 영감님께 그런 돈을 준 이유가 뭐죠?”

“내가 왜 그걸 자네에게 말해야지?”

이철성의 눈이 빛났다.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냉정함을 잃지 않고 김도환을 노려봤다.

“영감님께서는 서길영 회장의 유언장을 없애고 다른 유언장을 작성해서 서병진과 그 동생들이 정동을 날로 먹도록 도와줬습니다. 그 대가로 10억이란 거액을 받으셨고. 그렇지 않습니까?”

“이 친구가 밥 한 끼 사주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구만.”

“그래서 살림살이가 좋아지셨습니까? 그 결과가 이렇게 사는 거냔 말입니다.”

“난 그만 일어나겠네.”

이철성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김도환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앉으십시오. 지금 일어나시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우린 영감님을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두 아들이 지옥 구경 하게 될 테지요. 그걸 원한다면 그냥 가셔도 됩니다.”

“협박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다고 내가 말을 할 것 같나?”

“진실을 말씀해 주신다면 영감님께 1억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놈들이 가로챈 재산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면 거기에 10억을 더 드리죠.”

“음…….”

“잘 결정하십시오. 제안을 거부하신다면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곧 다른 사람들이 두 아드님을 찾아갈 겁니다. 아마 그리되면 지금의 이 결정이 얼마나 뼈저리게 후회스러운 것이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정말 그 돈을 줄 텐가?”

“저는 반드시 약속을 지킵니다.”

김도환이 술을 따라주자 이철성의 입에서 천천히 과거의 기억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서길영 회장이 죽은 후 공개된 유언장을 확인한 서병진과 동생들은 그에게 악마의 유혹을 보내왔다.

양심이 꺼려졌으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의 유혹은 그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달콤했다.

서길영 회장이 남긴 원래의 유언장은 정동건설 주식의 3%와 정동물산 5%, 청평 별장, 당진에 있는 5만 평의 땅을 서지영 모녀에게 주는 것으로 작성되어 있었으나 서병진의 제안에 따라 현금 10억과 미국으로 떠나라는 거짓 유언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김도환은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이제 와서 재산을 되찾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 뜻이다.

수많은 경로를 통해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변호사들은 공통적으로 증거가 없는 한 되찾지 못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랬기에 김도환은 마지막 방법으로 이철성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가 만약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재산을 환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영감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대부분 우리가 예측한 것과 비슷한 내용이군요. 그럼, 이제 마지막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서지영 씨의 재산을 되찾을 방법이 있습니까?”

“있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는 돈을 봐야겠네. 그렇게 해주면 그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지.”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영감님께 다시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린 겁니다. 다른 방법도 많다는 걸 미리 말씀드렸을 텐데요?”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나는 내일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이야. 우리 아들놈들은 나를 찾아오지도 않아. 그런 놈들을 죽인다고 내가 눈 하나 깜박할 것 같은가?”

“그럼 죽여주죠.”

“마음대로 해봐.”

“이해가 안 가네요. 자식들에게 지닌 재산을 전부 줄 정도로 사랑한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도 자식들이 어찌 되든 상관없단 말입니까?”

“자네도 늙어보게. 사람은 어느 순간이 되면 자신의 삶을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네.”

“그럼 왜 영감님의 치부를 드러낸 겁니까?”

“그건 말해줘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니까. 나는 갈 때까지 간 사람일세. 법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옛 이야기를 말해준 건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얻어먹은 밥값을 한 것이야. 하지만 유산을 되찾는 건 다른 이야기지. 안 그런가?”

늙었어도 인생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이철성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는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처럼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김도환을 바라보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선택권을 김도환에게 넘겼다.

그러나 김도환의 표정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이철성의 말이 끝나자 손을 올려 안주머니에서 두 개의 통장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그중 한 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이 통장에는 5억이 들어 있습니다. 나머지 5억은 일이 끝나면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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