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07화 (207/308)

[207]

* * *

프레스 센터에 여당의 3선 국회의원 우정원을 비롯해서 이병웅, 민윤기 등 10명의 국회의원이 들어서자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4차로 9명의 의원이 합류하면서 원내 교섭 단체의 지위를 확보한 대한정의당은 마지막 괴력을 발휘하며 또다시 10명의 의원을 입당시켰다.

이 정도면 폭탄이 터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단숨에 제3당의 지위를 확보한 대한정의당은 스타 의원들도 득실댔기 때문에 모든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끌어모았다.

특히 오늘 입당하는 국회의원들은 10명 중 8명이 집권당과 제1야당 소속 의원들이었기 때문에 그 파괴력이 훨씬 컸다.

총인원 32명.

기존의 정당 중 28석을 차지하고 있던 국민당이 재벌 총수의 힘에 의해 탄생한 정당이었다면 대한정의당은 순수한 의원들의 결집체였다.

국민당은 상당수의 국회의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재벌 총수가 대통령에 낙선하면서 정계를 은퇴했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 탈당 러시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철새들의 집합체의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대한정의당의 당 대표 정우석의 소개로 의원들이 차례대로 소개되면서 기자들과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의원들의 말은 미리 짜놓은 것처럼 대동소이했다.

단 하나의 명분.

그것은 바로 국가와 민족을 우선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뿐이었다.

창당을 선언했던 정우석부터 입당을 했던 국회의원들 32명이 전부 같은 말을 했던 것이다.

당리당략은 없다는 것이 대한정의당의 신념이었다.

당은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고 국민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존경하며 모시는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

그 약속에 국민들이 환호를 보냈다.

대한정의당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이 면면은 그만큼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정우석이 창당을 한다고 했을 때 겨우 10명 남짓 모였던 기자들의 숫자는 지금 거의 50여 명이 몰려든 상태였다.

신문 기자들뿐만 아니라 양대 방송국이 전부 몰려왔다.

그만큼 대한정의당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한규복은 입당하는 국회의원들의 인터뷰가 전부 끝나고 정우석의 선창 아래 깨끗한 정치를 다짐하는 선언이 이어지자 옆에 있던 중앙일보의 선병일에게 불쑥 입을 열었다.

“갈수록 태산이란 말이 이런 데서 나온 모양이다. 선 기자, 너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냐?”

“네 생각부터 말해. 간 보지 말고!”

“난 당최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 아니냐. 정말 모르겠다. 이게 뭔 일인지.”

“그럼 우리 천천히 하나씩 생각해 보자. 먼저 정우석. 정 의원이 과연 저 사람들을 전부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걸까?”

“그건 절대 아냐. 정치는 돈이다. 그리고 대권이지. 정우석 의원은 똑똑하고 정치적 신념이 있지만 돈과 세력이 없었어. 그런 사람이 창당한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야. 정 의원은 독고다이였잖아!”

“크크크.… 그럼 저 사람들은 뭐야?”

“정치적 소신?”

“개똥 싸는 소리 하지 마라.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소신 하나 가지고 어떻게 살아남아. 돈이 없으면 정치는 한낱 공염불이나 다름없는 게 우리나라 정치 현실이다.”

“저 사람들이 언제 돈 가지고 정치한 사람들이냐. 대한정의당이 괜히 스타들의 집합소라고 하겠어. 내가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정치하는 자들 중에서 제일 깨끗하다는 사람들이 전부 몰려들었잖아.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저 사람들은 인터뷰 때 말한 것처럼 정치적 소신 때문에 몰려든 것일 수도 있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나라 정치는 썩을 대로 썩었잖아. 그 똥 냄새 가득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언뜻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절대 아니야. 정치인들의 가장 큰 목표가 뭔지 알아. 바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서 살아남아야겠지. 떨어지면 그날로 병신 되는 거니까. 그럼 국회의원이 되려면 어쩌야 되겠어. 그나마 괜찮은 의원들이 다 몰렸지만 저 사람들도 살아남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그런데 돈이 한 푼도 없는 대한정의당에 마치 약속한 것처럼 가담을 했어.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래서, 넌 뒤에 뭐가 있다는 거냐?”

“당연하지.”

“그게 뭔데?”

“지금부터 알아볼 생각이다. 과연 저 개성 있는 정치인들을 한군데로 끌어 모은 저력이 뭔지 말이야.”

“음…….”

한규복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맞다. 선병일이 내놓은 논리들은 정치에서 절대 변할 수 없는 진리였다.

정치란 개똥밭에서 구르는 참외들처럼 저절로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의감에 똘똘 사로잡혀 있던 정치인들도 정치 세계에서 몇 년만 구르면 그 나물에 그 밥이 되는 것도 정치가 가지고 있는 더러움이 그만큼 대단하기 때문이었다.

궁금했다.

과연 저들을 하나로 묶어버린 그 배경이 무엇인지.

“같이하자. 우린 어차피 한 몸이잖아.”

“당연히 같이해야지. 보통 일이 아닐 테니 각오 단단히 해야 될 거야.”

“지금부터 정치판이 재밌겠어. 과연 대한정의당이 그동안 지속되어 온 정치판의 틀을 깰 수 있을까?”

“어려울 거다. 정치는 구심점이 있어야 해. 지금 대한정의당에 입당한 사람들은 전부 국민들한테 인기가 있지만 커다란 한 방이 없단 말이지. 의석수가 32석이지만 그것 가지고 뭘 할 수 있겠어. 기껏 견제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야. 대한정의당이 살아남으려면 결국 차기에 대권을 잡거나 다음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야 돼. 하지만 영남과 호남으로 나뉜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그게 가능하겠어?”

“넌 그럼 저 사람들 생명을 3년으로 보는 거냐?”

“다른 뭔가가 없다면 그럴 거다. 저 사람들은 무소속도 꽤 있지만 반 이상이 기존 정당에서 지역을 등에 업고 된 사람들이야. 무슨 뜻인지 알지?”

“과연 그럴까?”

“넌 생각이 다르다는 뜻이냐?”

“응, 달라. 단 3달 가까이 대한정의당을 취재하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어떤 생각?”

“저 사람들로 인해 대한민국 정치판이 완전히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다. 어쩌면 그건 내 바람일 수도 있어. 우리도 이젠… 군사독재의 잔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잖아. 친일, 친미, 친중 이 더러운 자들도 완전하게 청산해야 돼. 씨발, 너도 봤잖아.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지랄들 떨면서 중구난방으로 사분오열되는 거. 그게 전부다 그런 새끼들 때문이야. 우린 우리나라를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들이 필요해. 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 *

이창래는 보도 본부장으로 올라섰다.

스포츠국에서 보도 본부장이 된다는 것은 MBC 개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보도 본부는 보도국 아나운서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며 계속 본부장 자리를 꿰찼는데 금번 인사에서 이창래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보도 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배경에는 최강철이 있었다.

최강철은 이창래가 보도 본부장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맥을 전부 동원했다.

물론 그동안 이창래가 MBC에 공헌한 실적은 상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도움을 준다 해도 본인이 자격이 없다면 그건 청탁이었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최강철이 이창래를 만난 것은 5월 중순 무렵이었다.

이창래가 보도 본부장에 취임한 지 한 달이나 지났을 때였다.

사람은 자신이 출세를 했을 때 누구보다 그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지 먼저 체크한다.

더군다나 보도 본부장이란 자리는 방송국에서 별을 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니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존의 보도 본부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장관의 빽으로, 누군가는 집권당 국회의원의 강력한 힘을 등에 업고 별을 달았다.

하지만 그는 보도 본부장에 오를 욕심이 전혀 없어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궁금했다.

배후를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을 보도 본부장에 오르게 만든 사람들이 먼저 그 이유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최강철. 도대체 자신은 최강철과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걸까.

“어쩐 일이냐. 그렇게 술 사겠다고 수없이 전화를 해도 꿈쩍 않던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왔어?”

“부탁 좀 드리려고 왔죠. 제가 형님 보러 그냥 올 리가 있겠습니까.”

“어이구, 지랄아. 그래, 뭔데?”

“형님, 보도 본부장 된 기념으로 저 좀 홍보해 주세요.”

“얼씨구, 널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홍보를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제가 고아원 운영하는 거 아시죠?”

“알지, 그런데 왜?”

“돈은 많이 들어가는데 좋은 일 하는 거에 비해서 얻는 게 별로 없어요. 방송국에서 보도해 주지도 않고요. 너무 억울합니다.”

“그래서?”

“시사초점에서 집중적으로 취재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직접 방송국에 나가서 인터뷰를 하게 해주십시오.”

“네가 직접 방송국에 나오겠다고!”

“안 됩니까?”

안 되긴 왜 안 돼, 이 자식아!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이놈이 또 무슨 짓을 벌이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자 올라오는 기쁨이 간신히 잦아들었다.

혹시 선물?

자신이 보도 본부장에 올랐으니 그 기념으로 방송국에 출연하겠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거 혹시 내가 오늘 밥 사주는 거에 대한 보답이냐?”

“그럴 리가요.”

“그럼 뭔데?”

“말했잖아요. 좋은 일 하고 칭찬 못 받는 게 억울해서 그렇다니까요.”

“장난치지 말고!”

“정말입니다.”

“너, 정치할 생각이냐? 그래서 미리 멍석부터 깔아놓는 거야?”

“아닙니다. 그런 오해하신다면 부탁한 거 거둬들이겠습니다.”

“이 자식아, 그냥 해본 소리다. 술이나 마셔!”

MBC의 시사초점에서는 최강철이 운영하는 22개의 고아원에 대해서 심층 취재 하면서 깜짝 놀랐다.

과연 고아원이 맞는지 믿기지 않을 만큼 시설이 훌륭했고 관리 체계가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이다.

1년 운영비가 무려 120억이 소요되었으니 장학 재단을 운영하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최강철의 파이트머니는 대부분 다 여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독지가들과 정부, 관련 단체의 지원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비용은 최강철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이창래의 지시로 MBC는 이례적으로 시사초점에 대한 예고 방송을 10차례나 때렸다.

일요일 11시에 방송되는 시사초점에 이런 예고 방송을 때린 건 당연히 최강철이 출연한다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최강철이 나오는 순간 시청률이 최소 50% 이상은 기록한다.

시사초점의 앵커 허경환은 벌써 5년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시사초점의 콘셉트가 사회의 부조리나 문제점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막상 최강철이 운영하는 고아원과 장학 재단에 관한 내용을 진행하면서 목소리의 톤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좋은 이야기를 방송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솜사탕이 굴러가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더군다나 스튜디오에 나온 사람이 국민 영웅 최강철이었으니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음성은 평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보여주었던 날선 목소리가 아니었다.

허경환은 고아원의 시설들과 장학 재단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스튜디오에 나온 최강철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시설에 관한 것들과 관리 체계 등등 궁금한 것들을 최강철에게 물어보는 방식이었다.

시사초점 측에서는 고아원과 장학 재단의 설립 과정부터 꼼꼼하게 취재했기 때문에 전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비춰졌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허경환은 최강철이 부탁했던 질문을 했다.

그는 최강철이 직접 스튜디오에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시사초점에서는 취재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 직접 당사자를 출연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의 선행을 보도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슬쩍 의심까지 들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건 결코 좋은 인상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허경환은 그가 오늘 출연한 이유를 알게 된 후 그런 의심을 가진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여기까지 최강철 선수가 운영하고 있는 복지 시설과 장학 재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최강철 선수에게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강철 선수, 마지막으로 국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서요. 말씀하십시오.”

“제가 오늘 방송국 스튜디오에 나온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제가 여기 나온 것은 잘했으니 칭찬해 달라고 나온 게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 아니거든요. 미리 앵커분께 그렇게 말씀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허경환 앵커께서 잠시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나이를 먹다 보니 잠시 깜빡한 것 같습니다. 그럼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국민 여러분, 특히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순간 실수를 저질러 태어나 버림받은 생명은 죽을 때까지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전 화면에서 보신 것처럼 대부분의 고아는 허기와 정에 굶주려 결국 문제아로 성장하며 사회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그들의 잘못일까요.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철없는 짓으로 생명을 잉태하고 버린 우리들 잘못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이런 잘못으로 인해 저 작은 아이들을 불행 속으로 몰아넣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분이 조금만 더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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