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01화 (201/308)

[201]

* * *

서지영은 공항에서 멀찍이 떨어져 최강철이 떠나는 장면을 지켜봤다.

몰려든 기자들과 방송국 사람들, 그리고 그의 열혈 팬들까지.

공항은 그를 보러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했다.

그는 자신의 남자이기도 했지만 만인의 우상이었다.

“안녕, 잘 가요…….”

공항에 들어선 순간 슬픈 인사만 남기고 그를 보내주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 지금까지 그와 보낸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머나먼 한국에서 공부를 했고 미국으로 건너와도 훈련을 하느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보고 싶었으나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여자로서 남자가 가는 길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그러나 그가 떠나면 언제나 슬픔이 몰려왔고 이렇게 그를 보내고 돌아설 때면 언제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그를 사랑한다, 내 목숨보다 더.

그를 떠나보내고 돌아올 때면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난다.

벌써 8년이란 시간이 자났음에도 그때 그 순간을 생생하게 잊을 수 없다.

그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미국이란 넓은 땅에서 그것도 한국인이 거의 없는 펜실베이니아에서 그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신비로운 남자.

천재라고 소문 난 그녀를 바보로 만들 만큼 놀라운 식견을 가졌고, 그가 투자했던 기업과 주식은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급상승을 보이며 무서운 속도로 자산이 불어났다.

벌써 그의 자산은 전부 합하면 30억 달러가 훌쩍 넘는다.

그것도 추정치일 뿐 상세하게 합산한다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다.

더 무서운 건 지금 이 순간도 그의 자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창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복 오빠들은 돈 때문에 그녀와 엄마를 머나먼 미국으로 내쫓으며 다시는 돌아오지 말란 협박을 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쫓겨 왔다.

그녀가 경영학을 공부한 것은 돈을 벌어 이복 오빠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천문학적인 돈을 운동하면서 점점 그런 마음이 희석되기 시작했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인생은 남을 미워하는 것만큼 자신의 불행이 커진다고 했다.

나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지금 간절히 그녀가 원하고 있는 것은 그와 함께 숨을 쉬고 그의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녀의 마음에서 돈에 대한 욕심이 부서지기 시작한 것은 최강철의 행동을 보고 난 후부터였다.

그는 천문학적인 자산을 지니고 있어도 언제나 검소했으며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벌써 그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의 고아원이 22개나 된다.

그것도 미국에 있는 어떠한 시설보다 훌륭한 고아원을 지어 철저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매년 엄청난 금액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웃었다.

번 돈을 의미 있게 쓴다는 것도 행복의 하나란 말을 하면서.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일까.

카지노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행동.

친구를 위해 몸이 불편한 데도 1시간 반이나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행동으로 간절하게 친구의 잘못을 만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우정, 그리고 최강철이 보여준 배려.

자신이었다면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일들이다.

오랜만에 엄마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외로움과 슬픔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최강철이 떠날 때면 언제나 집을 찾았다.

“우리 딸 왔네. 또 울었니?”

“그럼요. 울보 딸이 어디 가겠어?”

“에휴, 만나도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나 그 고생이니. 일단 들어와. 울었으니까 물 마셔. 수분을 보충해 놔야 이따 또 울지.”

“오면서 다 울었어. 이젠 괜찮아요.”

“거짓말하지 마. 이따가 침대에서 또 울 거잖아. 커피 줄까?”

“응.”

수선을 떨었으나 엄마는 서지영의 눈치를 보면서 부지런히 움직여 두 잔의 커피를 타왔다.

그러고는 소파에 앉아 있는 딸에게 커피 잔을 넘겨주며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오늘 갔어?”

“아까, 아침에. 시험 봐야 한데요. 그리고 한국 국민들이 빨리 들어오라고 성화가 대단한가 봐.”

“그 사람이 한국에서 영웅이라고 불린다며?”

“엄청나다네요. 대통령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에요.”

“휴우……”

서지영의 대답에 엄마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직감으로 딸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거란 걱정 때문이었다.

여자의 행복은 돈과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사랑과 가정의 화목에 있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한숨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더 무서운 건 버림받는 것이었다. 바로 자신처럼…….

여자로서 남자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는다는 건 평생을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사는 것처럼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지영아, 그 사람 이번에도 프러포즈하지 않았니?”

“막내 누나가 먼저 결혼해야죠. 그리고 학교도 졸업해야 되거든요.”

“또, 그 소리. 넌 그 말을 진짜 믿는 거야?”

“엄마, 그 사람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성실하고 속이 깊은 사람이에요.”

“유명하다며, 그리고 돈도 많고 잘생겼잖아. 그런 남자한테는 여자가 꼬이는 법이다. 네 나이가 벌써 내년이면 스물아홉이야. 잘못하면 이것아, 노처녀로 늙어죽어!”

“늦어도 2년 전에는 결혼할 수 있을 거야.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수도 없이 들은 소리다. 너도 생각해 봐. 결혼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 인사조차 오지 않았잖아. 엄마는 그 사람 텔레비전에서 겨우 봤어.”

“그 사람 정말 바쁜 사람이에요. 그런데 엄마, 그 사람 보고 싶어?”

“그럼 안 보고 싶겠니? 그 집에서는 널 봤다며?”

“응.”

“나는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알았어요. 다음에는 꼭 데려올게요.”

“진짜지?”

“정말요. 약속할게요.”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엄마보다 그 사람을 먼저 걱정했기 때문에 인사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시합이 끝나면 휴식이 필요했고 그다음에는 회사 일을 챙기느라 정신없이 보냈기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는 꽤나 야속했던 모양이다.

엄마의 서운한 표정을 보자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엄마의 표정이 굳어지며 그녀를 향해 불안한 시선이 다가왔다.

“지영아… 너한테 할 말이 있다.”

“뭔데요?”

“어제 한국에서 네 오빠한테 전화가 왔다.”

“그 사람이 왜 전화를 해요?”

“네가 경고를 어기고 한국에 여러 번 들어왔다며 불같이 화를 내더라.”

“미친…….”

“다음에 또 들어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어. 내가 일 때문에 잠깐 들어갔다 왔을 뿐이라고 얘기해도 막무가내야. 다시는 들어오지 말래.”

“한국이 전부 자기 땅이야? 왜 날 들어오지 못하게 해. 내가 언제 지네 재산 달라고 했어? 그 사람 정말 너무해!”

* * *

최강철은 김포공항에 도착한 후 입을 떠억 벌렸다.

매번 수많은 사람이 환영을 나왔지만 이번에는 규모부터 달랐다.

공항 전체가 사람들 천지였다.

빈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는데 최강철이 모습을 드러내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최강철, 최강철, 최강철!”

장관이다.

거의 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공항 안팎에서 연호하는 모습은 경기장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포토 라인에 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준 후 복싱 협회에서 마련해 준 인터뷰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카퍼레이드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몇 경기 전부터 부모님과 가족들을 공항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어차피 나와 봤자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으니 괜한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웃긴 일이 벌어진 것은 인터뷰가 끝나고 공항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세 방향에서 한 떼의 무리들이 다가왔는데 수십 명의 경호원이 따라붙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세 명의 거물들.

수십 명에 둘러싸여 들어오고 있는 사람들은 여야의 대통령 후보들이었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들의 얼굴을 보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가 되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하는 그들의 행동이 안쓰러웠다.

그건 아십니까.

이럴 시간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당신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떤 일을 준비했는지 알려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최강철은 자신을 향해 다가온 대통령 후보들과 차례대로 악수를 나누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 장면을 원했을 테니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후보들은 잠시 동안 덕담을 건넨 후 바라처럼 사라졌다.

그들 역시 이런 장소까지 온 것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점점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으나 최강철은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자신이 가야 할 길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자신을 찾아 공항까지 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한 달 후면 선거가 벌어진다.

선거에서의 승리는 국민들의 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자신은 그들에게 황금 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는 존재가 분명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대통령의 총청으로 청와대에 다녀왔고, 유광호의 부탁으로 복싱 협회가 마련한 축하 행사에 참여했으며 가족 행사와 인연을 만들었던 사람들과 시간을 가졌다.

그가 ‘제우스’을 찾은 것은 한국으로 돌아와 보름이 지났을 때였다.

수많은 인맥이 자신에게 손을 벌려 왔다.

예상했던 것처럼 여야 구분할 것 없이 선거를 도와달라는 주문이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최강철이 들어서자 직원들을 급히 내보낸 김도환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죠?”

“고생은요. 회장님 시합 봤습니다. 정말 대단한 시합이었어요. 헌즈를 그렇게 두들겨 팬 사람은 회장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친구는 괜찮던가요. 대미지가 꽤나 컸을 텐데?”

“뭐, 제 주먹이 솜방망이라서 그런가, 금방 정신을 차리던데요.”

“어이구, 그런 농담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KO율이 100%인 회장님이 그런 말을 하면 남들이 싫어해요.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하하, 그런가요?”

“앉으시죠. 연한 커피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최강철의 웃음에 김도환이 미소로 답하면서 인터폰을 눌렀다.

여전히 비서는 최강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온몸을 비틀면서 간신히 커피를 내려놨다.

최강철의 입이 열린 것은 여비서가 방을 나가고 난 후였다.

“사장님, 이제 선거가 보름 정도 남았는데 판세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여당이 이기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자체적인 여론 조사와 외국 유력 기관에서 흘러나온 정보, 그리고 제우스 팀의 분석 결과가 전부 여당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군요.”

“요즘 회장님께 선거를 도와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사장님 생각은요?”

“저는 집권당 후보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리의 활동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회장님이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저번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력과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어요.”

김도환이 빤히 쳐다보면서 신중하게 대답을 하자 최강철이 슬그머니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이 사람은 모른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흐르고 자신이 휘두른 칼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복싱 역사가 바뀌었듯이 정치와 경제판도 바뀌겠지만 그래도 역사의 진리는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손가락을 입에서 떼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저는 아무도 업지 않을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저의 정치를 할 생각입니다. 당리당략에 의해 움직이는 그런 정치가 아니라 국가를 위한 정치, 국민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정치를 하는 게 저의 소망입니다.”

“음…….”

“지금 우리 쪽 국회의원 수가 얼마나 되죠?”

“32명을 확보했습니다. 현역 국회의원들 중에서 가장 국가관이 뚜렷하고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잘하셨습니다.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군요.”

“회장님, 그 사람들은 전부 모래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김도환이 뭔가를 결심한 듯 말하며 최강철을 향해 강한 눈빛을 보냈다.

그의 말이 맞다.

그들의 소속은 여야 그리고 무소속으로 갈가리 찢겨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사안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최강철은 김도환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 이젠 칼을 빼 들 시간이었다.

“대선이 끝나고 나면 우리 쪽 의원들을 모아 창당을 하시죠. 당명은 ‘대한정의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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