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96화 (196/308)

[196]

* * *

“잘했다, 강철아.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완벽한 대미지를 받은 건 아닙니다. 펀치의 대부분이 가딩에 걸렸어요.”

“그래도 충분해. 아마 지금쯤 정신이 없을 거다.”

“저 새끼 진짜 팔이 길군요. 완벽하게 커버링에 들어가니까 때릴 데가 없어요.”

“1라운드에서 혼쭐이 났으니 작전 변경이 있을지 몰라.”

“예.”

“맞은 건 괜찮냐?”

“괜찮습니다. 헌즈의 공격은 거리가 확보되었을 때 위력이 있지 완벽한 접근전에서는 견딜 만해요. 그런데 진짜 라이트 스트레이트는 강합니다. 들어가다가 슬쩍 비껴 맞았는데도 정신이 멍했습니다.”

“만약 놈이 전략을 바꾸면 이제부터 진짜야. 정신 바짝 차려!”

“그건 저쪽도 마찬가집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성일이 내민 물을 조금 받아 마셨다.

지금까지 싸워오면서 이렇게 지독한 1라운드는 처음이다.

탐색전이고 뭐고 3분 내내 펀치를 갈겨댔는데 잠시도 쉬지 않았기 때문에 라운드 막판에는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헌즈보다는 낫다.

헌즈는 마지막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라운드가 끝났을 때 숨을 헐떡거리기까지 했다.

자신보다 더 지쳤다는 뜻이다.

때앵!

2라운드를 알리는 공이 울리자 최강철은 스툴(Stool: 경기장에서 쓰는 간이 의자)를 밀어내며 벌떡 일어섰다.

그런 후 성큼성큼 맞은편에서 나오는 헌즈를 향해 걸어 나갔다.

쇄액, 쉬익, 쉭, 쉭!

경기가 시작되자 헌즈의 몸에서 레프트 잽이 빛살처럼 날아왔다.

왼쪽 팔을 내린 상태에서 각도조차 무시하고 날리는 플리커 잽은 그 위력이 상당하다.

하지만 더 심장을 움츠려들게 만드는 것은 조금이라도 잽에 적중되었을 때 날아오는 라이트 스트레이트였다.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했어도 헌즈의 플리커 잽을 완벽하게 막아낼 수는 없다.

연습 상대보다 헌즈의 레프트 잽이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천부적인 반사 신경을 이용해서 펀치를 흘려냈지만 의외의 각도에서 나온 헌즈의 잽은 최강철의 가딩을 연신 두드렸다.

잽이 적중되면 그때마다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날아왔다.

역시 윤성호의 예상이 맞았다.

헌즈는 원거리에서 계속 잽을 던지며 라이트 단발 공격을 해왔는데 얼마나 위력적이었던지 저절로 몸이 긴장될 정도였다.

잽을 피하면 접근할 때마다 헌즈의 백스텝이 가동되었다.

최강철이 잽을 피한 후 접근해 들어가면 헌즈는 이미 뒤로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고 연타를 퍼부어댔다.

강하다, 그리고 빠르다.

접근전에서 퍼붓던 펀치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력.

헌즈의 펀치는 허공을 찢어발기는 것처럼 파공성을 일으켰는데 위빙과 더킹, 슬리핑과 스웨잉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암 블로킹까지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방어술에서 암 블로킹은 최후의 수단이다.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펀치에 적중되지 않는 것인데 암 블로킹은 기본 방어술이 전부 돌파되었을 때 최종 방어를 위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헌즈의 원거리 공격은 미사일처럼 강력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팔이 저려올 정도의 파괴력을 지녔다.

뒤로 물러났다가 정지하며 창처럼 날아오는 헌즈의 펀치.

최강철은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날아온 스매시까지 신경을 써야했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헌즈는 자신과의 시합에 대비해서 새로운 공격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스트레이트와 훅의 중간 경계선에서 날아오는 스매시가 바로 그것이었다.

더불어 초퍼 펀치도 무서웠다.

헌즈같이 키가 큰 선수가 작은 선수에게 내리꽂아 버리는 초퍼 펀치는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최강철의 선택은 여전히 접근전뿐이었다.

이성일과 제프 카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물러서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고 최강철 역시 그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막강한 공격력으로 아예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는 헌즈의 방어를 뚫을 방법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공격을 뚫고 전진하면 펄쩍 뛰며 뒤로 물러섰고 특유의 크랩 가딩과 숄더 롤로 방어했기 때문에 대미지를 입히는 게 극히 어려웠다.

여기서 이성일이 준비한 전략은 헌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당초보다 허리를 더 바짝 숙이는 것과 뛰어오르며 터뜨리는 상방향 스트레이트, 그리고 어퍼컷이었다.

그 옛날 일본의 복싱 영웅 와지마 고이치가 자주 썼던 전법.

누군가는 그걸 개구리 전법이라 부르며 평가절하 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전술이었다.

최강철은 허리를 굽힌 채 계속 접근했다.

2라운드 들어와 공격에 여러 차례 적중당했기 때문에 관중들과 심판들의 눈에는 헌즈가 유리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최강철의 대미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성일의 전략대로 허리를 숙인 채 접근한 것이 주효했다.

헌즈의 플리커 잽은 특별한 반사 신경과 허리를 숙이는 방법을 통해 무력화시켰고 나머지 공격들도 슬리핑과 가딩을 통해 정타는 전부 피했다.

그럼에도 경기는 비세다.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대미지는 피할 수 있어도 결국 끌려가는 경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스피드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텝이 빠른 선수들이 아웃복싱을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나 그건 선입견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다른 선수들이 헌즈의 롱 스텝을 따라잡지 못한 건 스텝의 빠르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란 걸 이성일은 정확하게 간파했다.

라운드 종반까지 원거리에서 날아온 헌즈의 펀치를 피하며 간헐적으로 공격하던 최강철의 신형이 갑자기 휘익 사라졌다.

헌즈가 던진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빗나가는 순간 특유의 번개 같은 스피드를 이용해서 최단거리까지 접근해 들어갔던 것이다.

사람은 상황에 적응하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헌즈 역시 사람이었기에 2라운드 들어와 자신의 생각대로 경기가 흘러가자 그 거리에 적응한 채 최강철의 펀치에 반응했다.

거리를 깨뜨리는 순간 놀란 헌즈가 미친 듯이 펀치를 날려 왔다.

송곳 같은 어퍼컷과 양 훅 보디, 그리고 졸트 펀치가 최강철의 전신을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정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한 느낌을 들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최강철의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그의 거리는 깨졌고 지금부터는 최강철의 시간이었다.

펀치의 스피드는 최강철 역시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가 지니고 있는 콤비네이션 펀치는 당대 제일이라고까지 불리고 있었으니 헌즈라고 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거리를 뺏은 최강철의 콤비네이션 펀치들이 불을 뿜었다.

한번 시작하자 그의 펀치는 멈출 줄을 몰랐다.

헌즈 역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펀치를 난사하고 있었지만 지독하게 파고드는 최강철의 스피드를 떼어내지 못했다.

잠시 앉았던 관중들이 다시 일어났다.

1라운드처럼 링의 중앙에서 맞붙은 건 아니었으나 링의 전체를 누비며 서로를 죽이기 위해 펼쳐지는 두 사람의 난전은 관중들의 피를 들끓게 만들기 충분했다.

최강철은 전력으로 달렸다.

헌즈의 롱 스텝을 때려잡기 위해서는 최대의 스피드를 끌어 올리는 방법밖에 없기에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리며 펀치를 난사했다.

안 맞아도 좋다.

오직 너의 잽과 긴팔에서 뻗어 나오는 위력적인 라이트 스트레이트만 봉쇄할 수 있다면 이 경기는 결국 내가 이긴다.

최강철은 크랩 가딩과 숄더 롤로 방어하며 반격을 가해오는 헌즈의 공격을 무시하지 않았다.

거리를 좁혔다 해도 헌즈의 쇼트에 걸려 쓰러진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올올히 곤두섰다.

극도의 긴장감과 흥분이 자신이 지닌 반사 신경을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헌즈의 펀치가 날아오면 정신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파바바방! 윙, 윙.

이제 문제는 헌즈의 저 패턴 방어를 깨뜨리는 것뿐이다.

이것 역시 이성일이 해결했다.

처음에 스태프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철없는 어린애처럼 어쩔 줄 모르더니 이제 놈은 최고의 전문가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성일이 헌즈의 크랩 가딩과 왼쪽 어깨를 이용한 숄터 롤을 깨뜨리기 위해 주문한 것은 바로 레프트 복부 공격과 레프트 더블 훅이었다.

헌즈의 크랩 가딩과 숄더 롤은 전부 오른손잡이의 라이트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선수가 그의 방어막을 깨지 못하고 무너졌던 것은 롱 스텝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강철에게는 헌즈의 롱 스텝을 감당할 만한 스피드가 있어 지금 현재도 헌즈를 따라잡고 있는 중이었다.

최강철의 레프트 보디 공격과 더블 훅이 쉴 새 없이 날아가 헌즈를 두들겼다.

전략이 마련되었다고 해서 100% 상대를 쓰러뜨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약점을 지닌 선수는 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헌즈는 레프트 훅에 노출되는 약점을 완벽에 가까운 슬리핑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상황이 변한 것은 경기를 20초 정도 남겼을 때였다.

레프트 보디 공격에 이어진 라이트 훅이 계속 헌즈의 슬리핑에 의해 무산되자 최강철은 그동안 아껴왔던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헌즈의 안면을 향해 기습적으로 던졌다.

콰앙!

아마 자신의 숄더 롤을 믿고 레프트 훅만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맞았을 것이다.

기습이자 급습이다.

최강철이 기습적으로 던진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적중된 헌즈가 휘청하며 뒤로 물러섰다.

방어막이 깨지는 건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원이 될 수도 있다.

헌즈가 몸을 휘청하며 뒤로 물러서자 최강철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퇴로를 차단한 후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했다.

1라운드 종반부와 비슷한 상황.

이해할 수 없다.

최강철의 능력은 도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 * *

잠실 야구장의 분위기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긴장감으로 가득 사로잡혀 있었다.

워낙 불리한 경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기에 이번 경기를 대하는 국민들의 심정은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며 혼란 속에 빠뜨렸다.

최강철이 텔레비전에까지 나와 강한 자신감을 보였으나 반드시 이길 거란 확신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헌즈라는 괴물은 무서운 강자였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된 후 1라운드부터 최강철이 화끈한 공격력으로 헌즈를 몰아붙이자 잠실 야구장은 광란에 빠져들었다.

일방적인 경기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경악과 기쁨이 교차되며 함성과 함께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2라운드 들어 헌즈가 전략을 바꾸며 상황이 바뀌자 사람들은 또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접근하고 있었으나 거리를 확보한 헌즈의 공격에 최강철이 고전하는 게 화면을 통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것이 헌즈의 승리 패턴이고 이러한 공격력에 대부분의 선수가 쓰러졌다는 걸 말이다.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사람들은 손을 맞잡은 채 계속해서 주문을 걸었다.

그 주문이 통했을까.

갑자기 중분부터 최강철의 스피드가 헌즈를 따라잡았고 마침내 라운드 종료를 얼마 안 남기고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하자 사람들의 목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강철아, 끝내자. 끝내!”

“헌즈는 턱이 약해. 제발 저 새끼 턱 좀 때려!”

“그렇지, 악! 맞으면 안 돼! 피해. 그래, 잘했어. 원투, 원투!”

어른이고 아이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전부 일어나 주먹을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는 모습은 광신도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결국 최강철이 라운드를 끝내고 코너로 돌아가는 순간 사람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좋은 기회를 또다시 놓치자 사람들의 가슴속에 불안감이 불쑥 찾아왔다.

벌써 2번째.

헌즈의 강력한 공격을 볼 때마다 몸이 움찔거렸고 그 펀치들이 최강철에게 적중될 때마다 머리털이 곤두섰다.

무서웠다.

최강철이 그 펀치를 맞고 쓰러지는 상상을 하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의 두려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슬금슬금 기어 올라왔다.

그랬기에 최강철이 연속해서 2번이나 기회를 놓치자 사람들은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고 자리에 앉지 못했다.

다시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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