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89화 (189/308)

[189] 제25장 킹코브라

뉴스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담당 PD를 비롯해서 뉴스 룸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긴장감으로 인해 연신 침을 삼키고 있었다.

뉴스 룸에는 보도본부장을 비롯해서 보도국장, 이창래와 관계자 등 수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는데 사장까지 지금 달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이윽고 헤드라인 뉴스가 진행된 후 메인 앵커를 맡고 있는 허정환이 자세를 곧추세웠다.

옆에 앉아 있던 하수경은 침을 꿀꺽 삼키며 허정환을 잠시 바라봤다가 급히 질문서로 눈을 돌렸다.

시작은 허정환이 하지만 최강철과의 인터뷰는 그녀가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긴장이 잔뜩 된 모습이었다.

“시청자 여러분, 저희 스튜디오에는 아주 귀중한 분이 나오셨습니다. 저희 MBC 9시 뉴스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특정 개인에 대한 인터뷰를 가진 적이 없지만 이분에 대해서만은 예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토머스 헌즈와의 결전을 앞둔 허리케인 최강철 선수를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최강철 선수,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최강철입니다.”

“오늘 귀한 시간을 내주셨는데요.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상당한 망설임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출연을 결심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헌즈 선수와의 시합을 앞두고 국민 여러분께서 저의 근황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부터 하수경 아나운서가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허정환이 신호를 보내며 순서를 넘기자 기다리고 있던 하수경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9시 뉴스의 앵커답게 그녀의 목소리는 은쟁반에 구슬 굴러가는 것처럼 청아했다.

그럼에도 긴장으로 목소리가 떨리는 건 막지 못했다.

“최강철 선수, 최근 서울대 축제에서 노래를 하셨어요. 어떻게 된 건가요?”

“후배들이 강제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바람에 하게 되었습니다. 기타는 예전부터 쳤는데 제가 노래를 잘 못 부르기 때문에 학생들과 같이 불렀습니다.”

“저는 화면으로 봤지만 그때 참석한 학생수가 2만 명에 가까웠다고 하더군요. 그 많은 학생과 같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기타 솜씨가 상당하던데 언제부터 치신 거죠?”

“고등학교 시절부터 취미 삼아 쳤던 겁니다. 아나운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최강철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하수경은 그와 제대로 시선을 부딪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럼 헌즈 선수와의 시합에 대해서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헌즈 선수는 최강철 선수보다 키와 리치 등 체격 면에서 훨씬 유리한데요. 혹시 그에 대한 전략은 마련하셨나요?”

“그동안 시합이 계속 추진되어 왔기 때문에 개략적인 전략은 스태프들과 상의하고 있었습니다. 시합이 결정되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할 생각입니다. 헌즈 선수의 장단점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경기에 임하려고 합니다.”

“최강철 선수는 슈퍼 웰터급에 체중을 맞춰야 하는데 곤란한 점은 없을까요?”

“아무래도 많이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들을 중점적으로 먹으며 훈련하면 체중 조절은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하수경이 준비한 질문은 정확하게 열 가지였다.

방송에 들어가기 전 미리 상의한 것들이기에 대답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그녀의 질문에는 훈련 일정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최강철이 여기에 나온 이유는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국민들께서는 헌즈 선수와의 경기에 많은 우려와 걱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헌즈 선수가 워낙 강하다 보니 그런 걱정들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여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질문을 한 하수경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도 앵커석에 앉기 전 최강철이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합하기 위해서라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질문이 끝나자 최강철이 마주 잡고 있던 손을 풀면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런 후,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똑바로 던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변에 많은 분들이 너무 무리한 도전이 아니냐며 이번 경기에 대해 무척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싸워오면서 한 번도 상대를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겼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잘 아시겠지만 토머스 헌즈가 강한 건 사실입니다. 체격 면에서 저보다 훨씬 유리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그 어떤 선수에게도 지지 않는 투지와 자신감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에 대한 걱정이 저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텔레비전 방송에까지 출연한 이유는 너무 걱정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결코 패배자가 되어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승리의 영광을 국민 여러분께 드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반드시 승리해서 헌즈 선수가 가지고 있던 슈퍼 웰터급 챔피언 벨트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니 국민 여러분,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대한민국의 건아로서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최강철의 인터뷰는 국민 대부분이 지켜봤다.

MBC 9시 뉴스의 시청률이 무려 78%까지 치솟았으니 거의 모든 사람이 봤다는 게 과언은 아닐 것이다.

뉴스가 끝나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술집으로 향했다.

표정이 바뀌었다.

최강철이 헌즈와 싸운다는 게 확정된 뒤부터 왠지 모르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은은한 자신감과 투지가 불끈거리며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건 감자탕집으로 향한 대일물산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야, 오늘은 간단하게 한잔씩만 하고 들어가자.”

“그러자고, 내일 중국 바이어와 미팅이 있어. 그 자식 깐깐해서 트집을 얼마나 잡는지 미칠 지경이야.”

“난 일본 바이어를 만나기로 했다. 이놈은 정말 에프엠이야. 원리 원칙 그 자체라니까!”

“이번 달 실적 맞추려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해.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 걱정하지 않을 생각이야. 목숨을 걸고 덤비면 못 할 게 뭐가 있겠어. 안 그래?”

“당연하지. 우리가 뭐, 이 일 한두 번 하냐? 어떤 새끼가 와도 끄떡없어. 지금까지 이 두 주먹 가지고 버텨왔잖아. 앞으로도 우린 잘해낼 거야.”

“그래, 우리 이거 마시고 파이팅하자. 자, 최강철의 승리를 위하여. 그리고 바이어와 우리의 실적을 위하여!”

여섯 명의 대일물산 직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잔을 높이 치켜들며 파이팅을 외쳤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그들 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광경들이 보였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어두워져 있던 얼굴 속의 검은 그늘이 어느샌가 벗겨져 있었다.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최강철의 인터뷰를 보면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았다.

* * *

다시 사는 인생이 행복하냐고?

지난 12년 동안 수없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루시퍼에게 받은 재능과 미래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도 수없이 많은 것을 가졌다.

돌아오면서 이전 생과 다르게 멋지게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미녀들을 품는 꿈을 꾸었고, 거대한 빌딩의 주인이 되어 황제처럼 살며 수많은 사람을 하인처럼 부리는 상상을 했다.

복싱을 시작한 이유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돈을 벌기 가장 쉬운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반사 신경과 운동 능력을 가졌으니 스포츠 중에서 최고 인기 종목인 복싱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복싱은 쉬운 운동이 아니었다.

아무리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졌어도 신이 아닌 이상 상대를 완벽하게 압도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준이 올라갈수록 강자들이 등장했고, 최근 들어 상대한 자들은 인간의 능력 범위를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한 강자들이었다.

인간의 삶은 항상 이렇다.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뼈를 깎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진리.

그 진리가 옳다는 것을 나는 계속 경험해 왔다.

오리려 돈을 벌기가 훨씬 쉬웠다.

미래에 대한 기억이 있었으니 복싱으로 종잣돈을 마련하자 시간이 지날수록 폭발적으로 자산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돈이 모이면 복싱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대 기업의 회장이 되어 살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을 내쳤던 회사의 사장은 상자 하나 달랑 든 채 평생 다니던 회사를 나섰을 때 코빼기도 내보이지 않았다.

억울했다. 그리고 그자처럼 해보고 싶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그런 짓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건지 정말 해보고 싶었다.

내가 당한 것 이상으로 갑질을 하면서 세상을 마음껏 비웃고 거대한 부를 축적해서 자살까지 몰고 갔던 그자들에게 끔찍한 복수를 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서서히 부질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원인은 돈이었다.

전생에서는 그렇게 벌기 힘들었고 필요했던 돈이, 거짓말처럼 흘러넘치기 시작한 순간부터 처음에 가졌던 욕심과 욕망은 하나씩 사라져 갔다.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채워짐과 비움의 차이가 이와 같지 않을까?

어떤 면에서 봤을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내가 지닌 본성도 있었을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왔으나 나는 부모님께 넘치는 사랑을 받아온 사람이었다.

그것은 전생에서도 다시 인생을 살아가는 지금도 내 삶의 원천이었다.

아버지는 착한 성품으로 인해 남한테 멸시당하며 이용당하는 삶을 사셨지만 언제나 정직을 신념으로 삼으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벌어 오신 월급으로 6남매를 키우시며 근검절약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보여주셨다.

나는 그것을 보고 배웠다. 내 자신도 모르게…….

다시 물어본다. 지금 삶이 행복하냐고?

그렇다, 나는 행복하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순간부터 나는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가져왔던 번민들이 하나씩 사라졌고 욕심과 욕망들이 가라앉았다.

나는 성자가 아니다.

돈과 명예를 전부 가졌지만 갑질하면서 황제처럼 살고 싶다는 헛된 욕망을 버렸을 뿐이다.

이해되지 않는다며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당신도 다시 살아봐. 그러면 어느 순간 내 심정을 이해하게 될 테니까.

* * *

체급을 올리는 것은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절제해 왔던 고기를 마음껏 먹었고 각종 영양식들도 수시로 먹어주자 위장에서 매일 행복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훈련으로 한 바가지씩 땀을 흘려냈지만 식사 시간만 되면 힘이 불끈불끈 솟았다.

“너, 이 자식아. 복싱 그만두면 고기집이나 차려. 아주 욱여넣는구만. 그렇게 맛있냐?”

“음, 흐허허… 너무 맛있어. 너도 먹어봐.”

“이거,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관장님, 얘 계속 이렇게 먹여도 돼요?”

“응. 먹여야 해.”

시크하게 대답하는 윤성호를 향해 이성일이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복싱 선수가 이렇게 처먹는 건 처음 본다.

최강철은 텔레비전 인터뷰를 한 다음 날부터 훈련에 돌입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평상시보다 훨씬 더 잘 먹었다.

아직까지 평소 체중보다 불어나지 않았지만 이성일은 그가 오히려 체중이 오버될까 봐 걱정되었다.

“이러다가 네가 헌즈보다 체중이 더 나가는 거 아냐?”

“팔이 짧으니까 체중이라도 더 나가야지. 나는 그래봤으면 좋겠다. 그놈보다 뭔가 더 좋은 게 하나라도 있어야지.”

“우리 팔을 늘려볼까? 어디서 들었는데 요즘 팔 늘리는 기계도 나왔다고 그러더라.”

“아예 팔을 뽑지 그러냐? 넌 트레이너란 놈이 그걸 말이라고 해!”

옆을 지나가던 윤성호가 소리를 빽 질렀다.

음식 남기는 거 감시하라고 했더니 이놈은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선수를 유혹하고 있었다.

거기에 질 이성일이 아니었다.

“헌즈, 그 자식 팔이 너무 기니까 그렇죠. 세상에 팔 길이가 2m를 넘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강철아, 넌 인마, 걔한테 비하면 숏 팔이야.”

“그럼 넌 난쟁이 팔이냐?”

“갑자기 왜 내가 나와, 이 마당에.”

“넌 나보다도 더 짧으니까 하는 소리잖아.”

“내가 시합하냐? 내가 시합해! 인마, 지금 한 말은 트레이너로서 작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롱 팔과 숏 팔, 이 핸디캡을 극복하는 게 우리 작전의 주제라니까!”

“어이구, 대단하세요. 그래서 전략은 수립했고?”

“아직… 하지만 곧 나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때 다시 옆을 지나던 윤성호가 불쑥 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훈련하면서 썼던 장비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대화가 신경 쓰였는지 계속 관심을 두면서 참견을 했다.

“넌 오늘부터 잠자지 마. 이젠 정말 얼만 안 남았다고. 뭐가 나와야 훈련을 하든가 말든가 할 거 아냐. 빨리 가져오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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