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80화 (180/308)

[180]

* * *

쉬익!

링의 중앙에서 만나는 순간 최강철은 번개처럼 레프트 잽을 갈겼다.

그런 후 빠르게 우측으로 돌았다.

그러자 위빙으로 잽을 흘린 허니건의 라이트 훅이 지체 없이 안면을 노리고 날아왔다.

슬쩍 물러서자 놈의 신형이 흔들거리는 것처럼 바뀌며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는 직선으로 접근해 들어왔다.

그냥 접근해 온 게 아니라 최강철이 움직이는 방향을 차단하고 더 이상 돌지 못하도록 레프트 훅이 날아왔다.

그대로 방향을 유지하면 걸린다.

물론 암 블로킹으로 막을 수 있으나 더 이상 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최강철은 펀치를 가딩한 후 뒤로 물러났다.

갈지자 전진.

듀란과 묘하게 다른 것은 앞으로 내밀어진 왼발이 최강철의 오른발과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최강철은 빠르게 접근해 오는 허니건의 펀치들을 피하며 다시 우측으로 돌았다.

같은 패턴의 공격.

놈은 자신의 외곽을 봉쇄한 후 접근전을 펼쳐 승부를 볼 생각이 분명했다.

최강철은 초반부터 무섭게 전진해 오는 허니건의 공격을 피하며 그가 준비한 것들을 예리하게 주시했다.

역시 제프 카터의 분석은 정확했다.

뭔지 모르지만 듀란전 때보다 더 답답하다.

뒤로 물러서면 물러설수록 허니건의 압박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바로 문제의 팬케이크 위력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듀란의 팬케이크 스텝은 상대의 방향 전환을 용인하고 최단거리 직선을 활용해서 압박을 가해왔는데 허니건이 준비한 건 아예 방향 전환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연속으로 잽을 던지며 허니건의 압박을 빠른 발로 피했다.

강한 압박을 가해왔으나 허니건 역시 무리를 하지는 않았다.

파악… 팡… 팡!

최강철이 그냥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사포처럼 날아오는 레프트 잽과 스트레이트의 조화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날카로웠기 때문에 허니건은 목을 잔뜩 움츠린 채 최강철이 물러서는 순간에만 공격을 가해왔다.

탐색전이다.

양쪽 다 상대가 준비한 전략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느라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

하나는 밀고 하나는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긴장감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하나하나의 펀치에 담겨 있는 살기가 관중들의 가슴에 서늘함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 관중들은 근본적으로 복싱을 좋아했기에 1라운드는 상대를 탐색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걸 충분히 알았다.

그럼에도 양 선수에게서 펀치가 나올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잠시도 쉬지 않는다.

탐색전을 펴면서도 두 선수는 모두 기회만 오면 상대의 목 줄기를 끊어놓을 것처럼 강력한 펀치들을 내고 있었다.

“어떠냐?”

“방향 전환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직선 공격이 아니라 갈지자로 움직입니다.”

“봤다. 압박은?”

“듀란보다 심해요. 이대로 진행하면 2라운드부터 힘들어질 것 같아요. 놈이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강하다는 게 느껴져요.”

“1라운드만 더 보자. 놈이 뭘 더 준비했는지 확인하고 시작해.”

“알겠습니다.”

“좋아, 목 축여라.”

윤성호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곧바로 물병을 들어 최강철의 입에 대주었다.

선수를 믿는다.

1라운드에서 보여준 허니건의 팬케이크 스텝은 듀란보다 훨씬 진화된 것이었으나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문제는 방향 전환을 못하게 만드는 놈의 왼쪽 훅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준비된 전략이 가동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놈이 준비한 것은 이것이 다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이성일의 입이 열린 것은 최강철의 얼굴에 윤성호가 바셀린을 발라줄 때였다.

“강철아, 저 자식 1라운드에서 한 번도 스트레이트를 쓰지 않았어. 아무래도 일부러 쓰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알고 있다.”

“느꼈다면 다행이다. 놈의 주특기가 양 훅이지만 스트레이트의 위력도 상당히 뛰어나. 일부러 쓰지 않은 것이라면 함정을 파고 있다는 뜻이야. 조심해야 돼.”

“오케이.”

1분이란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스태프들과 주고받는 의견은 경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수없이 많은 난관을 뚫고 나온 윤성호와 이성일은 이제 어떤 트레이너 못지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경기를 보는 눈이 뛰어났다.

공이 울리고 링의 중앙으로 나오자 허니건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최강철은 마주 웃어주지 않았다.

대신 그의 면상을 향해 강력한 레프트 잽과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던졌다.

허니건의 가딩은 완고했다.

최강철의 레프트 잽이 상당한 위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가딩과 위빙에 대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 것 같았다.

그런다고 해서 레프트 잽의 효능이 완벽하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레프트 잽의 효능은 선제공격의 의미도 있지만 방어의 개념이 그 이상 중요했다.

적의 균형을 허물어뜨려 적극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강철은 레프트 잽을 아끼지 않았다.

번개처럼 빠른 레프트 잽을 연속으로 던지며 허니건의 접근을 막았다.

레프트 잽에 이은 라이트 스트레이트는 기본이다.

잽만 던졌을 경우에는 위빙이나 커팅으로 흘린 후 곧바로 공격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기에 최강철은 반드시 스트레이트와 훅을 병행시켰다.

하지만 허니건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허니건의 접근은 본능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최강철의 공격이 회수되는 순간 여지없이 펀치를 내면서 앞으로 파고들었는데 그 위력이 상당했다.

계속 물러났다.

링의 전체를 돌면서 허니건의 접근 기동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지금까지 서둘지 않으며 쫓기만 했던 허니건의 움직임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2라운드 중반이 훨씬 지났을 때였다.

부웅, 붕… 부웅… 붕!

원투 스트레이트를 때리고 뒤로 물러서는 최강철을 향해 허니건의 양 훅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단발이나 2, 3차례 펀치를 내는 것으로 그쳤던 그의 공격은 잠시도 쉬지 않고 터지기 시작했는데 방향 전환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뒤로 빠지며 위방과 더킹, 암 블로킹으로 펀치를 흘렸으나 순식간에 로프까지 몰렸다.

그때부터가 진짜였다.

허니건은 최강철이 로프로 몰리자 코앞까지 바짝 접근한 채 어깨로 상체의 움직임을 제어해 버렸다.

특유의 더티 복싱을 펼치기 위한 사전 공작이었다.

쐐액!

최강철은 자신의 상체를 제어한 허니건의 어깨를 털어내기 위해 몸을 옆으로 틀다가 강한 라이트 훅이 날아오자 급히 허리를 숙였다.

그걸 노렸던 모양이다.

상체를 숙이자마자 송곳 같은 어퍼컷이 올라왔다.

단발이 아닌 콤비네이션 어퍼컷과 쇼트 훅이었다.

피하지 못하고 맞았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천부적인 반사 신경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정신이 잠깐 멍해졌으나 몸은 그대로 있지 않았다.

맞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놈의 면상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쇼트 공격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자신 있었고 정신을 잃을 상황에서도 펼칠 만큼 훈련이 되어 있었다.

그런 자신감이 대미지를 키웠다.

허니건이 이 작전을 펼친 것은 자신의 쇼트 콤비네이션을 충분히 연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했고, 그의 더티 복싱이 상상 이상으로 위력적이란 걸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른팔이 묶였다.

놈은 교묘하게 자신의 어깨로 몸통을 밀며 오른팔을 제압한 후 위력적인 라이트 훅과 어퍼컷을 날려 왔다.

놈의 공격을 막기 위해 왼팔로 가딩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머리까지 써서 상체를 틀어막고 공격을 해왔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용이치 않았다.

거의 30초 동안 로프에 묶여 놈의 공격을 받아냈다.

원거리에서 정확한 공격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몸이 묶인 채 계속 공격을 당해 여러 차례 얼굴에 펀치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최강철의 얼굴에서 공이 울리자 웃음이 떠올랐다.

놈이 준비한 것들이 전부 보였기 때문이다.

공이 울리자 최강철은 링의 중앙으로 나가 허니건의 안면을 향해 레프트 잽을 갈기고 우측으로 돌았다.

역시 같은 패턴.

도는 순간 허니건의 레프트 훅이 강력하게 튀어나왔다.

더킹으로 피한 후 뒤로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었다.

원투 스트레이트를 치고 최강철의 몸이 다시 돌았다.

아니다, 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몸이 숙여지며 미사일 같은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폭발했다.

허니건이 최강철의 방향을 잡기 위해 레프트 훅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순간적으로 나온 최강철의 라이트 훅이 정확하게 허니건의 턱에 작렬했다.

콰앙!

허니건의 몸이 턱을 맞는 순간 뒤로 날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기다리며 기회를 노리다가 단발로 던진 주먹이 정확하게 얹히며 허니건을 다운시켰던 것이다.

“와아!”

2라운드에서 일방적으로 몰렸던 최강철이 다운을 뺏자 관중들이 함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조금 아쉽다.

약간 비틀어져 맞았기 때문에 허니건이 턱을 흔들며 일어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로써 충분하다.

놈의 예봉을 꺾어놨으니 함부로 방향을 제어하기 위해 덤비지는 못할 것이다.

최강철은 여전히 오른쪽으로 돌며 허니건의 레프트 훅이 나오면 여지없이 라이트 훅을 같이 갈겼다.

학습 효과다.

빗맞았으면서도 다운을 당했기 때문인지 허니건의 레프트 훅이 뜸해졌다.

그럼에도 인간의 본능은 무섭다.

최강철을 잡기 위해 지독한 훈련을 했기 때문인지 허니건의 레프트 훅은 습관처럼 방향을 틀지 못하도록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최강철의 라이트 훅이 허니건의 안면에 작렬했다.

최강철의 특성은 상대에게 펀치가 들어간 순간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섭도록 잔인한 콤비네이션 펀치.

알고도 막지 못한다.

턱이 돌아간 순간 최강철이 파고들며 빛살처럼 빠른 펀치를 연사시켰다.

복부와 안면을 번갈아 때리는 그의 펀치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다.

3회에 들어 몇 차례 클린히트가 터지자 허니건의 전진이 주춤했다.

그러나 그 타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방향 제어를 포기했을 뿐 여전히 그의 팬케이크 압박 전술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로프까지 끌려들어 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허니건의 발은 듀란보다 빨랐고 연타 능력도 절대 뒤지지 않았기에 결국 종반을 남겨놓고 그의 더티 복싱에 걸려들었다.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상대의 팔을 붙잡고 머리를 맞댄 채 휘두르는 허니건의 공격은 관중들을 열받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3라운드는 다운까지 뺏었고 공격이 여러 차례 들어갔으니 점수로는 이긴 라운드였다.

제프 카터가 준비해 준 전략대로 움직인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그것은 원천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놈이 계속해서 이런 전략을 펼친다면 결국 로프에 몰려 더티 복싱과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 *

“윤 위원님, 최강철 선수가 이긴 라운드였죠. 허니건 선수가 다운을 당한 건 20경기 만에 처음 나온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워낙 강력한 펀치였어요.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맞았기 때문에 금방 일어났지만 충격이 있었을 겁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클린히트가 들어갔잖아요.”

“그런데도 맷집이 대단하군요. 마지막 순간에는 최강철 선수를 몰아붙였잖습니까. 보면 볼수록 기분 나쁜 공격 패턴입니다. 저런 더티 복싱은 제재할 방법이 없는 건가요?”

“클린치가 아니기 때문에 레프리가 말리지 않는 겁니다. 더티 복싱도 엄연히 인파이팅의 하나죠. 복싱 팬들은 매우 싫어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복싱 기술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최강철 선수가 로프에 몰리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데요. 계속 이러면 불리해지지 않겠습니까?”

“저도 걱정입니다. 허니건의 팬케이크 압박 스텝은 상대의 체력을 급격하게 저하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요. 더군다나 허니건은 더티 복싱에 특화된 선수이기에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윤 위원님, 허니건처럼 압박 전술과 더티 복싱을 함께 쓰는 걸 막아낼 방법은 전혀 없는 건가요?”

이종엽이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15년 동안 복싱 캐스터로 살아왔으니 경기 보는 눈은 전문가 뺨친다.

비록 3라운드에서 다운까지 시키며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라운드 종반에 로프로 몰린 것을 생각하면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떡하든 저 압박 전술과 더티 복싱을 깨뜨리지 못한다면 이 경기는 후반으로 갈수록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때 윤근모가 그의 질문에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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