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74화 (174/308)

[174]

* * *

로이드 허니건.

현 WBC 챔피언으로 4차 방어전까지 성공했으며 32승 1패 25KO를 기록하고 있는 막강한 챔피언이었다. 자메이카 출신인 그의 별명은 ‘비스트’다.

워낙 경기 스타일이 거칠었고 상대를 압박하는 능력과 펀치력이 뛰어나 그와 시합을 한 상대들은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캔버스를 뒹굴었다.

듀란이 그에게 도전하는 대신 최강철을 선택한 것 또한 허니건의 피지컬이 워낙 뛰어났고 거칠었기 때문이다.

야수와 야수가 만나면 시합은 길게 가지 않는다.

뛰어난 인파이팅을 구사한 듀란이 그를 피한 이유도 바로 그런 것 때문이었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체력을 보완했어도 나이가 워낙 차이가 났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야수 허니건과 맞상대하기에는 불리하다는 게 듀란 측의 판단이었다.

물론 그것이 단순한 듀란 측의 판단에 지나지 않았다는 건 경기에서 증명되었지만 허니건은 듀란마저 피하고 싶어 했을 만큼 강력한 복서였다.

그는 경기를 하기 전 언제나 이런 인터뷰를 남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나와 싸우기를 결심하기 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 이 경기가 너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나와 싸우는 적의 목숨을 결코 동정하지 않는다.”

파괴.

그의 복싱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바로 ‘파괴’란 단어가 떠올랐다.

끊임없이 적을 몰다가 약점이 노출되는 순간 목 줄기를 뜯어 버리는 그의 잔인함은 야수라는 별명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폭풍 속의 고요 속에 빠져들었다.

엔도와의 시합에서 느꼈던 흥분과 전율과는 또 다른 긴장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진정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를 가려내는 승부, 최강철의 통합 타이틀전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복싱.

그중에서 웰터급은 복싱 팬들을 열광시킨 황금 체급으로 이 체급을 장악한 자들은 언제나 영웅이라 불렸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슈가레이 레너드다.

슈가레이 레너드는 양대 기구 통합 챔피언에 올라 숱한 도전자들을 쓰러뜨렸고 듀란과 헌즈까지 물리쳐 명실상부한 최강자로 전설이 되었다.

그런 챔피언 중의 하나가 바로 최강철이 상대해야 되는 로이드 허니건이었다.

이미 그는 5년 전 양대 기구 통합 챔피언을 거친 불세출의 강자로서 부상으로 타이틀을 내놓은 후 불과 2년 만에 다시 WBC 챔피언을 차지했으니 복싱 영웅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렇기에 국민들의 긴장감은 그 어떤 때보다 컸다.

로이드 허니건과 통합 타이틀이 결정될 때까지 국민들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판타스틱4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언론들이 떠들었고 그들이 만들어낸 명승부를 지켜보며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로이드 허니건은 그 당시 부상으로 인해 복싱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틀전이 결정되면서 그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긴장으로 연신 침을 삼켜야 했다.

33전을 치르면서 단 1패만을 기록했고 그것도 통합 타이틀 방어전에서 부상으로 인해 당한 것이란 게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상에서 회복된 후 지금까지 10연속 KO승을 거두며 4차 방어전까지 성공하고 있었기에 뒤늦게 정보를 알게 된 국민들은 긴장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 * *

“우와, 저 미친놈. 환장하겄네.”

“뭐 테크닉이고 뭐고가 필요없구만. 마구 떠밀면서 공격하잖아.”

부랴부랴 MBC에서 준비한 로이드 허니건의 3, 4차 방어전 녹화방송을 보면서 김영호와 류광일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1라운드부터 보여준 로이드 허니건의 맹폭은 최강철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의 반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난타전을 벌이다 힘에 부친 도전자가 클린치를 시도할 때마다 그는 상대의 몸을 패대기쳤는데 심판이 말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저 새끼 반칙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구만.”

“반칙에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라 클린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해. 자세히 보면 난타전을 벌일 때는 정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문제는 상대가 그걸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이지.”

“강철이가 견뎌낼까?”

류광일의 질문에 김영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것을 확신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저런 스타일의 경기를 펼치는 복서는 처음이다. 경기를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를 압박했는데 발도 빨라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도전자가 수시로 허니건의 추격에 잡히는 것이 보였다.

한 번 잡히면 허니건은 도전자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상체를 포박한 후 무차별적인 펀치들을 날려댔다.

더티 복싱.

빠른 스피드를 가진 자들을 압박해서 로프로 몰아넣은 후 발을 묶어놓고 제압하는 인파이팅 기술 중 하나였다.

답답했는지 류광일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웬만한 전문가보다 복싱을 잘 아는 김영호가 대답을 안 하자 불안감을 느꼈던 것이다.

“왜 대답을 안 해?”

“강철이의 특기는 인파이팅이지만 아웃복싱도 잘하는데 두 가지 다 우위에 있다는 말을 하지 못하겠어. 왜 미국의 도박사들이 5 대 5 라는 예상을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저 새끼가 아무리 인파이팅이 좋아도 강철이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내가 봤을 때 저놈보다 강철이의 스피드가 훨씬 빨라. 더군다나 강철이의 콤비네이션 펀치는 정평이 났잖아. 안 그래?”

“알아, 강철이의 콤비네이션 펀치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 그런데 말이야, 문제는 펀치의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상대를 죽이는 펀치가 정확하게 들어가냐는 거야. 허니건, 저놈은 펀치 숫자가 많지 않은 것 같지만 한 대 때릴 때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해.”

“야, 너 자꾸 불안하게 왜 그래. 그럼 강철이가 진다는 거야, 뭐야!”

“내가 언제 진다고 했냐. 저 새끼가 하도 강해서 걱정되니까 그런 거지.”

“지금부터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아무래도 안 되겠다. 김 대리, 그렇게 안 봤는데 너 그러는 거 아니다.”

“내가 뭘?”

“불안해도 무조건 이긴다고 말해야 되는 거잖아. 강철이는 우리 영웅이라고, 강철이가 보통 놈이냐? 저놈 전적도 좋지만 우리 깡철이는 24번을 전부 KO로 이긴 놈이다. 야수고 지랄이고 필요 없어. 우리 강철이가 이겨. 무조건 이겨!”

“아이고, 지랄아.”

류광일이 거품을 물자 김영호가 한숨을 길게 내리쉬었다.

누가 지기를 바라겠는가.

만약 최강철이 시합에 져서 링을 내려온다면 아마 자신은 오랫동안 술독에 빠져 있을 것이다.

어느새 최강철은 복싱광인 그에게 삶의 의미가 된 놈이었다.

반드시 이겨주기를 바란다.

이겨서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며 오랫동안 그의 영웅으로 남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상대가 너무 강하다.

* * *

정철호는 팀원들을 이끌고 이만석이 들어간 창고를 노려봤다.

집권당의 3선 의원인 이만석은 창원에 기반을 두고 있었는데 3공 시절에 정치에 입문한 후 내리 3선에 성공한 자였다.

그는 ‘제우스’에서 주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친일파 중의 하나로 정철호가 계속 감시한 자였다.

유기춘과 정용범이 당하고부터 바짝 몸을 사렸던 놈들이 서서히 움직인 것은 집권당의 비호 아래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의 뇌리에서 사건이 지워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저번 달부터 주시하던 의원들의 회동이 다시 시작되었고 총선이 다가올수록 그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졌다.

재밌는 것은 그들이 정체 모를 놈들과 만난다는 것이었다.

이만석의 움직임이 노출된 것은 놈의 사무실과 집에 도청을 해놨기 때문이다.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의 특성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별짓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만석은 움직일 때마다 비서관과 경호원들을 포함해서 차량을 2대로 움직였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오늘 그가 만나는 자들도 3명이 왔는데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분위기가 달랐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별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양국 사람들은 행동과 생김새만 봐도 정확하게 구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사전 도청을 통해 놈이 만나는 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철호는 3명의 팀원들을 데리고 이곳에 왔다.

일본인이되 평범한 신분으로 보이지 않았다.

몸매가 단단했고 차에서 내리는 모습에서 절도가 흘러넘쳤다.

“실장님, 혼자 들어가는데요?”

“일본 놈도 혼자 있지?”

“예, 따라온 두 놈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럼 일단 친다. 넌 저놈들을 제압해. 창고는 내가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정철호가 지시를 내리자 공수부대 출신인 정화용이 자리에서 벗어나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팀원들에게 손가락으로 사내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두 명의 팀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쪽으로 나뉘어 감시하고 있던 놈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정화용이 가담한 건 이만석의 경호원들이 있는 쪽이었다.

일본 놈들은 둘이었지만 그쪽은 넷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가서자 사내들 쪽에서 금방 반응이 나왔다.

“너희들 뭐야?”

“저승사자!”

정화용과 팀원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곧장 사내들을 덮쳤다.

빠르다, 그리고 파괴적인 공격이다.

몸을 날린 팀원들이 사내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을 때 그 뒤를 따르던 정철호는 문을 열고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 안에는 이만석이 일본 놈과 함께 의자에 앉아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붉은빛 전등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음모의 냄새가 더욱 지독하게 느껴졌다.

정철호가 들어서자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게 보였다.

당황한 얼굴.

이만석의 시선이 정철호에게 급히 다가왔다가 바닥에 있는 두 개의 가방으로 향했다.

아마 본능적이었을 것이다.

바닥에는 제법 커다란 007가방이 두 개 놓여 있었는데 두 사람의 중간에 놓여 있었다.

이만석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으나 일본인의 표정은 금방 차갑게 가라앉았다.

“의원님, 아는 사람입니까?”

“나는… 모르는 사람이요.”

“그렇다면 불청객이란 뜻이군요. 너, 누구냐?”

일본인의 시선이 이만석 쪽에서 떨어지며 정철호에게 날아왔다.

날카로운 눈빛.

푸르게 터져 나오는 놈의 시선에서 무도자의 모습이 흘러나오는 걸 보며 정철호의 표정이 슬쩍 굳어졌다.

이미 밖은 정리가 되었는지 싸우는 소리가 멈춰 있었다.

“나? 지나가던 사람.”

“지나가던 사람이라, 용건이 없으면 그냥 가는 게 어떻겠나. 여기서 일을 키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밖에 똘마니들을 데리고 온 모양인데 그냥 가면 없었던 일로 하지.”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 정체가 뭐냐?”

“알면 죽어!”

“씨발 놈이, 좆 까고 있네.”

일본인이 불쑥 앞으로 나서는 걸 보며 정철호의 다리가 교묘한 각도로 꺾이며 놈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타격에 실패한 그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을 뿐이다.

어느새 뒤로 물러선 일본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며 얼굴을 향해 돌려차기 해왔던 것이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다.

방어와 공격의 연환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고 발길질에 칼이 찌르는 듯한 예리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정철호는 발길질 아래로 몸을 던지며 곧장 팔꿈치로 놈의 허벅지를 찔렀다.

빠악!

팔꿈치가 허벅지를 찌르는 순간 장작 나무가 도끼에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일본인이 팔꿈치 공격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신음을 흘려내는 순간 정철호의 몸이 불쑥 다가서며 놈의 얼굴에 다시 한번 팔꿈치를 작렬시켰다.

설명은 길었으나 단숨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본인을 쓰러뜨린 정철호는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이만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 후, 저벅저벅 다가가 007가방을 들어 올렸다.

정철호의 손에는 어느새 새파랗게 갈린 군용 단도가 들려 있었는데 그 끝이 이만석을 향하고 있었다.

“암호!”

“으… 2573…….”

대답을 들은 그의 손이 움직인 후 가방이 거짓말처럼 열렸다.

가방에 든 것은 예상했던 것처럼 돈이었다.

그것도 만 엔권 다발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는데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 정도면 5억은 충분했고 가방이 두 개였으니 10억이었다.

“총선 비용을 받은 거로구만. 계좌로 보내는 게 어려워서 그랬던 모양이지?”

“살려주시오… 나는 국회의원이오. 나를 해치면 큰일 날 겁니다.”

“아, 그러셔?”

“나와는 아무런 원한이 없으니 돈만 가지고 그냥 가시오. 나를 해칠 이유가 없잖소.”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국회의원 나리가 왜 이리 연약하실까, 왜, 이 칼로 당신을 찌를까 봐?”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손이 더러워질까 봐 그냥 갈 생각이었어, 하지만 내일이 되면 당신은 내가 아니라도 죽어.”

“그건 무슨 소립니까?”

“일본 놈들 돈이나 받지 그랬어. 늙은이가 돈 욕심을 부리니까 명줄이 줄어들잖아. 조양건설에서 3억, 정풍에서 2억, 삼일사에서 2억 등등 짧은 시간에 참 많이도 해 처먹더만. 오리발 내밀 생각하지 말고 그냥 죽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친일파라는 것까지 전부 까뒤집어서 자식들까지 죽여 버릴 테니까!”

“으…….”

이만석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흙빛으로 변하는 게 보였다.

자신이 근래 하고 있던 비리를 전부 알고 있는 걸 보면 이자들은 오랫동안 자신을 추적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묻고 싶었다. 도대체 뭐 하는 자들이냐며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정철호는 뒤쪽으로 다가온 정화용을 향해 이미 몸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화용아, 다른 놈들은 내버려 두고 저 새끼만 챙겨가자.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 정체를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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