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72화 (172/308)

[172]

* * *

일이란 건 뼈대가 세워지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법이다.

최강철이 추진하고 있던 ‘비룡’은 정일환 박사를 필두로 유창석, 길인영 박사가 차례대로 귀국을 하면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미 국내에서는 김도환이 카이스트의 박사들과 삼성전자를 비롯해서 한화와 LIG의 전자, 전기, 기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차례대로 스카우트했기 때문에 천천히 조직이 구성되었다.

최강철은 정일환 박사의 조언을 받아 항공과 미사일, 두 개의 회사로 만들려는 계획을 ‘비룡’으로 통일했다.

정 박사는 항공과 미사일을 함께 연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회사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제일 먼저 연구 시설에 필요한 장비들과 공장, 그리고 자료들의 구축이 필요했고 연구원들의 충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당장 투입되어야 할 재원만 해도 100억 정도가 필요하다는 게 김도환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돈은 충분했고 앞으로도 무제한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으니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지원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장기적인 플랜이었다.

지금 당장 성과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고 체계가 구축되었으니 점점 발전해 나가면 된다.

아직도 핵심 연구원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었으니 시간을 두고 계속 영입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열정과 천문학적인 돈이 있으니 언젠가는 그들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인재만 가지고 안 된다면 어떤 수를 쓰든 강대국의 핵심 기술들을 빼 올 생각이었다.

세상에 안 되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이미 죽음을 경험했던 그에게는 어떤 두려움이나 양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일환 박사에게 말한 것처럼 자신은 죽을 때 다시 살면서 얻었던 어떤 것도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가족들은 행복할 정도의 재산만 있으면 된다.

서지영과 결혼을 꿈꾸고 있지만 자신으로 인해 태어난 생명에게도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

재벌들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발버둥치는 걸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진정으로 후회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건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게 만드는 것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란 걸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마이다스 CKC의 본사에서 넘어온 돈과 방어전에서 받은 파이트머니를 합해 별도로 5,000만 달러의 재원을 마련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했지만 어떻게 쓰느냐는 건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비룡’에 2,000만 달러를 예치시킨 후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게 만들었다.

‘비룡’ 사장에는 윤문호 교수의 도움을 받아 전문 경영인을 앉혔다.

사장으로 취임한 최인국은 윤문호 교수가 가장 신임하는 제자로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경력이 있었다.

그의 임무는 연구원들의 연구를 지원하고 각종 시설과 공장 설립, 그리고 체제 구축 후 방산 업체로의 승인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향후, 연구 결과로 인해 제품이 생산되기 시작하면 판매에 대한 것들도 그의 임무다.

최고의 시설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무실은 물론이고 연구 단지와 공장의 규모도 최대로 구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돈이 소요되겠지만 연차별 예산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지원할 생각이었다.

최강철은 남은 돈으로 8개의 고아원을 대규모로 만들었다.

개소당 300명씩 수용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서울 근교가 아니라 지방 대도시 근처에 마련했다.

그동안의 고아원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완벽한 시설과 체계를 갖춘 것이었다.

고아원을 관리하는 회사의 이름을 ‘헤븐’으로 바꾸고 직원들도 충원시켰다.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그가 고아원에 예산을 집중시킨 것은 불행하게 태어난 그들이 사회의 암적 요소로 자라는 걸 막고 훌륭하게 자라나 대한민국의 주춧돌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기본 구상은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정착할 때까지 돕는 것이었다.

머리가 뛰어난 아이들은 대학에 보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직업이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었다.

‘제우스’의 김도환에게 부탁한 건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 재단을 마련한 것이었다.

가정이 불우해서 뛰어난 성적에도 힘들어하는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여기에 1,0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자신의 생각과 신념은 확고하다.

국가가 어떻게 발전하느냐는 인재로 결정되고 그 인재가 풍요로울 때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변하게 될 것이다.

* * *

“최강철 선수, 반갑습니다. 내가 정우석입니다.”

“의원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싸구려 감자탕집에 들어온 40대 후반의 남자가 손을 내밀자 최강철은 정중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

집권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그는 야당의 공천조차 받지 못한 인물이었으나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당당하게 국회로 입성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독불장군이라 불렀다.

언제나 바른 말을 했고 청렴하게 살면서 정치계의 틀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는 김도환이 내밀었던 5명의 인물 중 가장 상단에 위치하고 있던 국회의원이었다.

그가 얼마나 허례에 구애받지 않는지는 약속 장소로 정한 이 감자탕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의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이 감자탕집은 서민들이나 드나드는 평범한 음식점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보좌관을 데려오지 않았는데 허름한 양복이 인상적이었다.

“국민 영웅 최강철 선수를 만나는데 이거 너무 내 생각만 한 건 아닌지 걱정이군요.”

“아닙니다, 저도 감자탕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아무래도 내가 실수한 것 같네요.”

정우석이 이쪽을 연신 바라보는 손님들의 시선을 확인한 후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오늘 만나는 상대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최강철이라는 것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습관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그는 손님을 만나면 대부분 자신의 지갑을 열었기에 비싼 곳에서 밥을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원님 오시기 전에 제가 손님들한테 부탁을 드려놨습니다. 중요한 분과 대화를 해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이죠.”

“허허… 그랬나요.”

“의원님, 감자탕 시킬까요?”

“작은 거로 시킵시다. 괜히 큰 거 시키면 다 못 먹어요.”

“그러겠습니다.”

최강철이 빙그레 웃으며 주인한테 감자탕 작은 것을 시켰다.

밥을 먹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정우석은 고집불통으로 통했지만 머리가 뛰어난 사람이었고 국회의원답게 눈치도 빠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식사 동안만큼은 최강철이 왜 만나자고 했는지에 대해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최 선수, 나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만 물어봅시다.”

“말씀하십시오.”

“지금 사당동에 산다면서요?”

“예, 25평짜리 전세에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거요?”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들어보니까 고아원과 장학금으로 번 돈들을 전부 쓴다면서요. 그 돈이면 떵떵거리고 살 수 있잖습니까. 복싱은 무척 어려운 운동이죠. 남을 때리고 맞아야 될 테니 얼마나 힘든 운동이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번 돈을 전혀 상관도 없는 남들한테 쓰는 이유가 뭡니까?”

“의원님, 그건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야심이 있는 건 아니고요?”

정우석이 최강철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뼈가 있는 말이다.

청렴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였지만 최강철이 보여주는 행동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최강철의 일거수일투족은 전부 언론에 의해 감시되고 있기 때문에 그가 고아원을 만들고 장학 재단을 세워 파이트머니를 전부 쏟아붓고 있는 건 전 세계로 외신을 통해 알려졌을 정도였다.

“의원님, 제가 야심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걸 하지 않으면 제가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습니까?”

“허허…….”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지금 당장 정치 1번지라는 종로에 출마해도 당선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될 거요. 누가 허리케인을 이길 수 있겠소. 그저 이름만 걸어놔도 될 것 같구려.”

“하지만 저는 출마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왜 그렇소?”

“저는 학생이고, 복싱 선수가 제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중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거잖습니까.”

“정치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아니다?”

“밥을 다 드셨군요.”

정우석이 묻자 최강철이 빙그레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그것은 화제를 돌린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대화를 하자는 신호이기도 했다.

눈치가 빠른 정우석이 최강철의 의도를 알아채고 의자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상의를 들어 올렸다.

“여기서부터 국회까지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립니다. 밥 먹고 산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길이죠. 최 선수, 같이 걸으렵니까?”

“그러겠습니다.”

두 사람은 걸어서 국회로 향했다.

최강철은 차를 가지고 왔으나 주차장에 세워놓고 정우석과 함께 천천히 걸으며 그의 모습을 관찰했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다.

과거 군사정권에 의해 고문을 받았다고 하더니 그 후유증이 있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여긴 아무도 없으니까 본론을 말해볼까요. 최 선수, 나를 찾아온 진짜 이유가 뭡니까?”

“의원님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서 위원님을 뵙고 싶었을 뿐입니다.”

“거짓말하지 마시고… 최 선수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해요. 괜히 접근했다가 물 먹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소문이 났어요.”

“그건 그분들이 저를 이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나는 이용하지 않을 것 같아서 온 거요?”

“그렇습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난 꽉 막힌 사람이 아닙니다. 남들은 나보고 고집불통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내 신념에 따라 움직일 뿐, 융통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의원님을 이용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

“뭐라고요!”

“의원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허어, 이 사람. 내 힘이 뭐에 필요하단 말이요. 설마 힘든 부탁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힘든 부탁입니다.”

“그럼 하지 말아요. 나는 불법과 부정 비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것보다 허리케인의 명성 가지고 하는 게 빠를 거요.”

“의원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참, 도대체 그게 뭡니까?”

“대한민국을 구해주십시오.”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했는지 정우석이 걸음을 멈추자 최강철이 따라 걸음을 멈추며 한 자 한 자 끊어서 대답을 했다.

그러자 정우석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지는 게 보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부정과 불법 천지입니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을 할 뿐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려는 사람들이 드뭅니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죠. 공무원들은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의 개로 전락했고 기업인들은 사회에서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불을 켜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모든 것을 바라보며 슬픔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제가 의원님을 찾은 것은 이런 썩은 체제를 뿌리 뽑아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으…….”

정우석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최근 들어 깊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최강철이 번 돈을 전부 고아원과 장학금으로 써버리는 걸 보며 특별하다고 느꼈으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최강철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놀라움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무슨 소린지 알겠소. 하지만 나는 그리 힘이 많지 않은 사람이오. 나 역시 그런 것들을 뿌리 뽑기 위해 미친 듯이 싸우고 있지만 상대의 힘이 너무 거대하더군요. 이 사회는 내가 혼자 싸우기에 너무 많이 썩어 있어요.”

“압니다. 그렇기에 온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의원님이 결심만 굳혀주신다면 제가 그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현재의 정치 세계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 한 가지는 정치 자금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죠. 제가 그 두 가지를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그게 가능하단 말이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