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71화 (171/308)

[171]

정일환 박사는 그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그는 아직도 최강철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정 박사의 아들들은 최강철을 보면서 기절할 것처럼 놀랐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처음에는 사인해 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뒤늦게 사인을 받고 사진까지 찍은 후에야 펄쩍펄쩍 뛰면서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허리케인 같은 분이 저를 찾아온 이유가 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군요.”

“제가 박사님을 만나고자 한 것은 저희 회사로 와달라는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대한민국은 항공 분야 기술이 강대국들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미약한 상탭니다. 저는 박사님이 조국의 항공 기술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허리케인은 복싱 영웅입니다. 저 역시 당신을 무척 좋아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건 너무 엉뚱한 이야기군요. 제가 이분을 만나지 않으려 했던 건 혹시 제가 감당하지 못할 말을 듣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허리케인께서 그런 말을 하는군요.”

“박사님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박사님께서 조국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많은 기업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응하지 않았어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듣겠습니다.”

“저는 항공의 최첨단 분야 연구에 제 청춘과 남은 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한 사람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의 항공 기술은 낙후될 대로 낙후되어 있어요. 그건 제가 가서 할 일이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이곳 록히드 마틴사에는 제가 아직도 배울 것들이 많아요. 그리고 제 연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이곳의 시설들과 논문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저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제 연구를 포기할 순 없어요.”

“그 연구… 제가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박사님이 원하는 모든 것을 지원하겠습니다. 돈이 필요하다면 돈을, 장비가 필요하면 장비를 지원할 겁니다. 인력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 무슨 수를 쓰든 준비하겠습니다.”

“허리케인, 이건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에요. 록히드 마틴사의 한해 연구 예산이 얼만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금년에만 5,000만 달러가 넘었어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허리케인의 대전료 가지고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란 말입니다.”

“많군요.”

“그러니까…….”

“제가 대겠습니다.”

“뭐라고요!”

최강철의 묵직한 대답에 정일환 박사의 목소리가 허공에 붕 떴다.

그는 아직도 최강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 시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박사님, 연구에 필요한 돈은 제가 모두 대겠습니다. 그러니 한국으로 와주십시오.”

“이봐요, 허리케인. 혹시 당신 한국 정부에서 보낸 겁니까?”

“아닙니다. 저는 박사님을 저희 회사에 모시기 위해 온 겁니다.”

“도대체… 그 회사가 뭐 하는 회사요?”

“회사의 이름은 ‘비룡’입니다. 금년에 만들어진 신생 회사죠.”

“허어…….”

정일환 박사는 하품을 숨기지 못했다.

록히드 마틴사에서도 그는 탑5에 포함되는 선임 연구원으로 귀중한 자원이었다.

그가 받는 연봉은 무려 20만 달러나 되었고 집은 물론 차까지 회사에서 지원되었다.

그런데 이제 막 새로 생긴 신생 회사에 오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최강철은 그런 정일환 박사의 반응을 보면서 천천히 자신의 구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하나씩 채워 나가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는 게 ‘비룡’의 꿈이다.

그 꿈을 위해 정일환 박사가 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최강철은 정일환 박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금과 향후의 연구 계획, 시설 확충 등 그가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늘어놓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정일환 박사의 입이 벌어졌다.

단순한 복싱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었다.

당장 가지고 있는 자산만 20억 달러에 달한다는 그의 말에 두 눈이 번들거렸다.

“박사님, 저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박사님을 모셔가려는 게 아닙니다.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마음먹었다면 저는 다른 졸부들처럼 약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한평생 행복하게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사님의 꿈이 항공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것이라면 저의 꿈은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압박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이루었던 모든 것을 대한민국 사회에 환원하고 홀가분하게 갈 겁니다. 박사님, 조국의 하늘이 그립지 않습니까. 가을의 그 푸른 하늘 말입니다. 제 꿈은 오직 그 푸른 하늘을 지키는 것뿐입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오?”

“아닙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어떤 사랑?”

“그 땅에서 저를 사랑해 준, 그리고 나중에 남아 그 땅을 지킬 사람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당신은… 정말 별난 사람이군요.”

“저는 링에서 한 번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저를 보고 토네이도 허리케인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저를 보고 영웅이라고 부르더군요. 하지만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들이 오직 영웅을 갖고 싶기에 그렇게 불렀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들을 위해, 저를 영웅으로 불러주는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사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대한민국의 푸른 하늘을 지켜주세요. 그 하늘을 지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강대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간절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최강철은 말을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 정일환 박사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허리를 숙였다.

그의 몸에서 솟구치는 간절함은 보는 사람을 몸서리치도록 만들 만큼 뜨거운 것이었다.

깜짝 놀란 정일환 박사가 급히 말리려 했으나 최강철의 몸은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정일환 박사는 몸을 일으킨 후 멀건이 그의 숙인 등을 내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뭔가,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 * *

최강철이 스카우트 대상들을 만나러 다니는 동안 대한민국은 ‘제우스’에서 터뜨린 사건으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다.

유기춘과 정용범이 즉각 고소를 취하하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으나 윤미영이 오히려 그들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남자까지 대동하고 경찰서를 찾았기 때문에 강남경찰서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낯 뜨거운 기사가 전 언론에서 터져 나오며 유기춘과 정용범의 불륜 사실과 불법 정치 자금 수뢰를 폭로하기 시작했다.

기사의 내용은 워낙 증거들이 많아서 변명할 여지가 없을 만큼 완벽했다.

‘제우스’의 정보실은 유기춘과 정용법의 차명 계좌를 확인하고 그 뒤를 캐내자 일본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자들의 이름이 나타났다.

확증은 안 되겠지만 심증으로 삼기에는 충분한 증거들이었다.

정치권 전체가 폭탄을 맞은 것처럼 술렁거렸다.

집권당은 두 사람을 제명하고 철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면서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바로 최강철에게 했던 일본의 만행이 사실로 들어났기 때문이다.

시위가 다시 시작된 것은 유기춘과 정용범이 구속된 후부터였다.

복싱 경기에 일본 정치권이 움직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국민들은 대규모 규탄 대회를 확산시켜 나갔다.

정부에서는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고 급하게 성명서를 발표하며 일본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는 완강했다.

한국의 반일 감정이 정치 쟁점화로 나타나며 일본을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그 당시 유기춘과 정용범을 만났다는 요시다는 출국한 적이 없었고, 최강철의 조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정부가 선수들 간의 복싱 경기에 개입해서 국가 간의 분쟁을 일으키는 어리석은 짓을 하냐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더군다나 일국의 국회의원과 검찰총장이 일본 의원의 지시를 받고 그런 짓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를 되물었다.

막상 그렇게 나오자 할 말이 없었다.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내 얼굴에 똥을 퍼붓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었다.

정부도, 국민들도 일본 정부의 공식 반응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분노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매국노들을 그 위치까지 올려놓아 이런 사태를 만든 건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썩은 시스템과 도덕의식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랬기에 국민들은 일본의 분노를 가슴속에 삭이며 영웅을 죽이기 위해 일본의 개가 되어 앞장섰던 검찰과 국세청을 때려잡았다.

“일본의 개 검찰은 자폭하라!”

“정용범을 당장 목매달고 관련자는 전부 색출해서 감방에 처넣어라!”

최강철의 사태에 관련되었던 자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국세청장이 옷을 벗었고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검찰 라인과 세무 라인이 전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일단락이 되면서 사태는 천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가슴에는 일본에 대한 응어리가 뭉쳐져 깊이 도사려 꿈틀거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 치욕을 갚아주겠다는 그 한이 말이다.

* * *

최강철은 서지영이 준비했던 인물들을 전부 만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일환 박사를 비롯해서 모두 5명이었는데 록히드 마틴, 보잉, 레이시언 등에 근무하고 있던 항공과 미사일 분야의 선임 연구원들이었다.

그들을 스카우트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미국에서 한 달이나 머물며 끈질기게 그들을 설득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걸 허락받았다.

한 번이 안 되면 두 번, 그래도 안 되면 집 앞에서 물러나지 않고 밤늦게까지 버텼다.

최상의 조건을 제시했다.

미국에서 받았던 조건보다 훨씬 좋은 조건들을 제시했고 그들의 연구에 무조건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단순한 애국심에 호소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심을 가지고 있으니 그 이기심을 충족시켜 주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들이 귀국을 결심한 것은 한국 국적을 끝까지 고수했던 그들의 국가관이 커다란 이유였을 것이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모험을 선택한다는 건 가정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커다란 부담이었을 게 분명했으니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없었다면 어찌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거기에 덧붙여진 것이 최강철의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전 세계 복싱 영웅으로 칭송되는 최강철의 눈물 어린 호소는 그들에게 모험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최강철의 귀국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방어전을 또다시 KO승으로 이끈 것도 있지만 최근 발생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했다.

미국에 있으면서 계속 소식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공항에는 기자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고 최강철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최근 발생된 일들은 대한민국에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치욕, 한일 강합에서 벗어났으나 우리 스스로 일재의 잔재를 전부 치우지 못했기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의 자존심은 우리 자신이 지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들이 재발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강철이 귀국한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제우스’였다.

그가 들어서자 김도환과 정철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맞아들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최강철이 마주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미국으로 건너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중심에 있던 게 바로 이 두 사람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두 놈은 잡았는데 다른 놈들에 대한 건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먼저 터뜨려서 그런가, 이놈들이 꼬리 자르기에 들어갔습니다.”

“근본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 인간들은 일본에 의지해서 정치를 해왔으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건 곧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사장님, 이대로 대충 물러서면 안 됩니다. 끝까지 추적해서 놈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으로는 어렵습니다. 다른 방법을 동원해도 되겠습니까?”

“어떤 방법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건 저희한테 맡겨주십시오.”

“정 실장님을 쓰실 생각인가요?”

“음… 그렇습니다.”

“자칫하면 직원들이 위험해질 수 있어요.”

최강철이 얼굴을 슬쩍 찡그리자 그동안 조용히 옆에 앉아 있던 정철호가 슬쩍 나섰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회장님, 저희들은 그런 걸 위험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슬쩍 명단을 흘렸지만 정치권이 감싸고도는 바람에 그자들은 사정권에서 벗어났습니다.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8명이 남았습니다. 저희들은 회장님의 뜻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명령만 내리시면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죽이는 건 안 됩니다. 우리가 놈들의 목을 직접 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직원들의 안전에도 문제가 생기고요.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외에는 맡기겠습니다.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드세요. 내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몰락이지 놈들의 목숨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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