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70화 (170/308)

[170]

* * *

“입을 열었나요?”

“열었습니다. 지시를 한 건 유기춘이란 놈입니다.”

간단하게 보고했지만 놈의 입을 열게 만드는 데 꼬박 3일이나 걸렸다.

정철호의 특기 중에는 포로에 대한 고문 기술도 있었는데 얼마나 독종인지 입을 열게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외부로 전혀 상처가 남지 않게 만들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작정하고 족쳤다면 놈은 1시간도 버티지 못했을 테지만 놈이 필요한 이상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의 보고를 받은 최강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우측에 앉아 있던 김도환을 바라보았다.

“사장님, 돈 좀 써야 될 것 같죠?”

“아무래도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놈이 중요한 순간에 아가리를 닫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요.”

김도환이 대답했다.

그는 이제 회사에서는 최강철에게 말을 올렸는데 먼저 모범을 보여 기강을 세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최강철도 그에게 형님이란 호칭 대신 사장이란 표현을 썼다.

눈을 돌린 최강철이 이번에는 정철호에게 향했다.

“뭐 하는 사람들이던가요?”

“새롭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천룡파 식구들이었습니다. 제가 잡아온 놈은 행동 대장 역할을 하던 놈이었고요.”

“조폭이면 돈 가지고도 쉽지 않겠네요. 아무래도 천룡파 두목하고 면담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놈들은 그쪽에서 찍히면 죽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정 실장님이 해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가능한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들한테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회장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염라대왕 수염도 뜯어 올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철호가 웃음기 전혀 없는 얼굴로 말을 했다.

그게 오히려 더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사장님?”

“예, 말씀하십시오.”

“다른 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용범에게는 숨겨놓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유기춘도 마찬가지였고요. 둘 다 30대 초반인데 아파트를 얻어서 살림을 따로 차렸더군요. 요새는 그놈들 사이에 그런 게 유행인 모양입니다. 열심히 운동하는 걸 예쁘게 사진까지 찍어놨으니 꼼짝 못 할 겁니다.”

“다른 건요?”

“그들의 계좌를 추적해 보니 이상한 놈들에게서 정기적으로 거액이 입금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추적했더니 그자들의 친척들이더군요. 문제는 그자들 통장에 다른 놈이 돈을 보내고 있었다는 겁니다.”

“누구였죠?”

“일본 교포들이었습니다. 외형상으로는 일본에서 사업하는 놈들로 나오는데 아무래도 그놈들이 일본의 연락책인 것 같습니다.”

“더 추적 조사 하세요. 완벽하게 훑어서 스토리를 만들면 될 것 같군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요시다는요?”

“그 자식은 일본의 정치 대부로 불리는 히데끼 계열입니다. 히데끼 계열은 70명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요시다는 심복 중의 심복입니다.”

“뒤에서 움직이는 자가 히데끼라는 뜻이군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히데끼는 극우주의자로 대표적인 반한 인사거든요.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그자에게 포섭된 놈들이 우리 국회만 따져도 10명이 넘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언제 터뜨릴 생각이죠?”

“회장님이 미국으로 넘어간 다음에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이나 우리 쪽은 전혀 드러나지 않아야 되니까 그게 좋겠어요. 텔레비전을 비롯해서 신문과 잡지에도 뿌릴 생각입니다. 이 정도면 정부나 여당 쪽에서 막기 어려울 겁니다.”

“증인이 있고, 살인미수에 불륜, 거기에 일본에서 받은 불법 정치 자금까지. 충분히 죽일 수 있겠군요.”

“그럼요.”

김도환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 언론에서는 이 건과 관련해서 정부의 눈치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건 관련해서 워낙 국민들의 분노가 컸었기 때문에 어영부영 넘어갔다가는 언론도 뭇매를 받을 가능성이 컸다.

터지면 이제 정부 여당도 놈들을 버려야 한다.

당사자인 유기춘과 정용범은 물론이고 의혹을 받은 놈들까지 전부 싸잡아서 죽여야 정부 여당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친일주의자들이란 게 드러났는데도 감싸고돈다면 국민 봉기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최강철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그가 다음 보고 사항을 위해 서류를 넘길 때였다.

“그게 그겁니까?”

“예, 맞습니다.”

“몇 명이나 되던가요?”

“일단 찾아낸 건 5명입니다. 4달 동안 대충 훑었는데도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 의원들까지 대부분 나가떨어지더군요. 회장님이 찾는 인물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나라를 이끌어가는 국회의원들이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패거리 정치 때문입니다. 패거리에 포함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우니 소신을 가지고 정치하기가 쉽지 않죠.”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기준에는 못 미쳤지만 제법 강단을 가진 자들이 여럿 보였다는 것입니다. 주로 거대 계열에 속해 있지 않은 중도 의원들인데 국가관이 뚜렷하고 소신도 제법 있는 자들입니다.”

“몇 명이죠?”

“8명입니다.”

“그들이 기준에서 미달된 이유는?”

“돈입니다. 그들 역시 사이드로 기업들에게 돈을 지원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힘을 쓴 흔적이 여러 군데서 발견되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만큼 돌려준 거죠.”

“정치인한테 돈은 필수 불가결 한 거니까 그건 우리가 해결하면 됩니다. 전부 합해 13명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사장님은 그들에 대해 제가 돌아올 때까지 더 알아보세요. 앞으로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니 철저하게 다시 검증해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 * *

최강철이 프랭크 홀던과의 방어전을 위해 미국으로 넘어간 것은 시합 한 달 전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최소 두 달 전에 넘어갔겠지만 워낙 국내의 일이 바빴기 때문에 최대한 출국을 늦췄다.

그렇다고 훈련을 게을리 했던 건 아니다.

근본은 철저히 지킨다.

지금의 이 순간은 그에게 명예였고 향후에 다가올 미래의 영광이었으니 언제나 최선을 다해 임했다.

최강철의 경기는 상대가 누구든 전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버리는 그의 경기 스타일에 매료되어 스스로 그의 팬이라 자처한 숫자가 셀 수조차 없이 많았기에 그의 경기가 잡히면 전 세계 언론이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시저 팰리스 호텔 특설 링이 다시 한번 화려한 불빛을 뿜어냈다.

그 속에서 최강철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링으로 올라섰다.

상대인 프랭크 홀던은 이미 링에 올라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굴이 잔뜩 굳어 가면을 쓴 것처럼 보였다.

때앵!

최강철은 공이 울리는 순간부터 접근전을 펼치며 다가섰다.

프랭크 홀던의 전적은 무려 70전에 달했고 최근 랭킹전에서 2번을 연거푸 졌기에 랭킹 10위로 떨어졌을 뿐 승률이 87%에 달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70전 61승 9패.

두 번이나 세계 타이틀에 실패했으나 지금까지 꾸준히 랭킹에 머물며 호시탐탐 챔피언을 노리는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전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복서는 링에 마주선 순간 상대에 대한 기를 느낀다.

그는 36살이라는 나이를 감추지 못했는데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홀던을 압박하기만 했을 뿐 섣불리 들어가지 않았다.

어떤 선수도 얕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1라운드에서 끝내겠다고 서둔 적이 없었다.

상대의 전략을 확인하고 승리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

관중들은 그의 불꽃같은 인파이팅을 보면서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으나 그의 복싱은 더없이 정교했고 신중했다.

최강철은 1라운드에서 보여주었던 프랭크 홀던의 반격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베테랑답게 못 치는 펀치가 없었다.

특히 펀치를 내는 순간 날아오는 크로스 카운터는 자칫 방심하는 순간 커다란 대미지를 입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2라운드부터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아웃복싱을 펼치며 프랭크 홀던의 체력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아웃복싱은 압도적인 스피드로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는데 홀던이 아예 압박을 포기할 정도로 빨랐다.

아웃복서에게 압박을 포기한다는 건 경기를 반이나 포기한 것과 다름없었다.

빠르게 펀치를 날려 오는 적을 선 채로 맞이한다는 건 그만큼 위험한 짓이었다.

그럼에도 프랭크 홀던은 최강철의 작전에 대응하면서 끊임없이 크로스 카운터를 노리며 반격을 가해왔다.

웅… 우웅!

강력한 한 방.

프랭크 홀던이 노리고 있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동원해서 단숨에 최강철을 때려잡는 것뿐이었다.

일방적인 경기가 될 것이라 예상했으나 그의 펀치가 사정없이 최강철을 향해 날아갈 때마다 관중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노장의 투혼.

그는 챔피언에 대한 열망을 감추지 못하고 최선을 다해 최강철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최강철의 펀치가 작렬할 때마다 빛이 바랬다.

무섭게 터지는 레프트 잽, 그리고 따라 들어오는 콤비 블로.

마치 섬광이 터지는 것처럼 최강철의 펀치들은 홀던의 방어막을 뚫고 사정없이 그의 안면을 흔들어 놓았다.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프랭크 홀던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복싱은 맞은 사람이 훨씬 더 빠르게 지친다.

뇌에서 전해지는 명령이 둔해지고 맞은 곳을 치유하기 위해 신체의 활동이 분산되면서 쓸데없는 곳에 체력을 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강철은 그가 쉬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움직이며 공략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최강철이 자신의 전매특허를 꺼내 들면서 다가서기 시작한 것은 5라운드 중반부터였다.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터지는 펀치들.

바로 허리케인이다.

프랭크 홀던이 지친 것을 확인한 최강철은 미사일 같은 펀치들을 쏟아부어 기어코 그를 코너에 주저앉혀 버렸다.

프랭크 홀던은 일어서지 않았다.

5라운드 중반부터 터지기 시작한 최강철의 펀치를 맞으며 그의 눈은 이미 체념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욕심으로 인해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경기 내내 느낀 최강철은 강철로 만들어진 벽처럼 느껴졌고 그의 펀치는 맞을 때마다 송곳에 찔린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누가 최강철의 펀치를 의심했단 말인가.

이런 펀치는 선수의 뇌를 마비시켜 단발로 KO를 거두는 둔중한 주먹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었다.

* * *

최강철은 서지영과 메릴랜드주의 베데스다로 날아갔다.

서지영이 찾아낸 인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최강철의 부탁으로 항공 쪽과 미사일 쪽에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명단을 체크하고 1차적으로 4명의 인재를 선정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은 그중에서 반드시 스카우트해야 한다며 섭외 1순위에 올려놓은 정일환 박사였다.

20살에 미국으로 유학 와서 MIT공대 전자공학부의 박사 과정까지 불과 8년 만에 해치운 그는 천재 중의 천재로 미국의 사이언스지뿐만 아니라 한국 방송에도 나왔을 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현재 록히드마틴사의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서지영이 2번이나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정 박사의 국적이 한국이야?”

“응, 내가 알아보니까 한국 국적은 죽어도 버릴 수 없다고 했다나 봐.”

“그런데 어떻게 미국의 방산 업체에 들어갔지. 이쪽은 미국 국적이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대단하니까. 정일환 박사의 논문이 스텔스 기능의 보완에 대한 것이었는데 엄청났대.”

“지영 씨가 못 만났다며?”

“통화는 5번이나 했어. 그런데 만나지는 않겠다네. 만날 이유도 없고 만나서 할 이야기도 없다며 단호하게 끊었어.”

“그럼 오늘은. 설마 허탕 치고 집에 가는 거 아냐?”

“그럴 리가요. 강철 씨가 만나고 싶어 한다니까 깜짝 놀랐어. 그래서 일단 간다고 하니까 아무 말도 안 하더라. 정 박사님이 나오는 건 이제 서방님 할 탓이에요.”

“그것참, 안 나오면 어쩌지?”

“이따가 저녁까지 기다려야 해. 연구실에 있을 때는 전화 연결이 안 돼.”

도착한 건 3시였는데 서지영의 말을 들은 후 저녁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최강철이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가 10번이 넘게 울렸을 때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강철입니다. 죄송하지만 정일환 박사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내가 정일환입니다……. 그런데 정말 당신이 최강철입니까?

“그렇습니다. 박사님, 지금 댁 앞에 와 있습니다. 잠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우리 집 앞이라고요!

“오늘 꼭 박사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무례인 줄 알지만 허락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음… 내가 나가겠습니다.

전화가 끊긴 후 잠시 기다리자 현관에서 불빛이 밝혀지며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대문 밖에 서 있는 최강철과 서지영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천천히 걸어왔는데 무척이나 긴장한 것 같았다.

결국 대문까지 걸어온 그의 시선이 최강철을 확인한 순간 급격하게 흔들렸다.

그런 후 그의 입에서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세상에… 진짜 허리케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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