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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철의 지시를 받은 보삭은 인터넷과 프로그램 전문가들을 대거 스카우트했는데 그 숫자가 30명에 달했다.
대부분 유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관련 분야에서 종사하던 그들은 보삭의 파격적인 제안과 신기술에 대한 연구 의지를 피력했기에 신생 회사인 호리즌과 엠파이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최강철이 작성한 자료는 1급 대외비로 취급되었고 연구 참여자들은 기밀 누설 시의 처벌에 관한 보안 각서까지 작성함으로서 연구의 비밀 유지를 극대화했다.
전문가들은 최강철의 자료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를 대비해서 준비해 놓은 최강철의 아이디어는 그들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기술들이었기 때문이다.
최강철은 호리즌의 신임 사장 브리티니 홀과 엠파이어의 사장 샘슨을 만난 후 미국의 공식 일정을 마쳤다.
다른 인물들은 몰라도 CEO들에게만큼은 정체를 밝히고 이 제국의 실질적인 주인이 자신임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장차 그의 제국을 이끌어 나갈 최측근 참모들이었으니 상하 관계를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었다.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마이다스 CKC 한국 지부장 신용석에게 자신의 정체를 아직 밝혀주지 않은 이유는 그가 한국에서 벌일 일들이 그만큼 민감했고 위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신용석은 믿을 만했지만 자신의 오른팔로 만들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짧았지만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보름간의 일정은 꿈결처럼 아름다웠고 엔도전을 치르면서 지쳤던 마음을 치유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미안했다.
일본에서 시합을 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밖에 같이할 수 없어 서지영은 최강철의 곁을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더욱 미안했다.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
이미 그녀의 친구인 클로이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고, 수잔 역시 2달 후면 결혼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다.
막내 누나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졸업하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 있겠으나 최강철은 그 시간에 대해 부담을 가졌다.
사람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녀를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 때 그녀를 데려오고 싶었다.
“지영 씨, 잘 있어.”
“잘 가.”
손을 흔드는 그녀의 표정에서 절절한 아쉬움과 슬픔이 묻어 나왔으나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안다.
돌아가는 길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아픔을 참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흘리며 아파할 것이다.
* * *
김도환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한국으로 돌아와 5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의 목소리는 꽤나 흥분에 차 있었는데 즉시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약속 장소는 종로에 있는 ‘제우스’ 사무실이었다.
김도환은 최강철과 상의해서 정보 보안 회사의 이름을 ‘제우스’로 짓고 종로에 사무실을 마련한 상태였다.
최강철이 들어서자 김도환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옆에는 검은 얼굴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형님, 그동안 잘 계셨죠. 사무실이 제법 근사하군요.”
“강철아, 찾았다.”
“그분 말입니까?”
“그래, 그 전에 먼저 이 사람부터 소개하자. 이름은 정철호, 앞으로 보안 쪽을 이끌어 나갈 사람이야. 너한테 보여주고 허락을 받아야 될 것 같아서 불렀다.”
“안녕하십니까. 정철호라고 합니다.”
손을 내미는 그의 손을 잡으며 시선을 확인했다.
복싱을 하면서 수많은 강자와 싸워왔으나 그의 시선을 받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다르다. 일반인과는 다른 특별함이 담겨 있는 시선.
그것은 사람을 죽여본 자에게서만 나타나는 살기, 그리고 그가 지니고 있는 기세가 시선에 함께 담겨 있었다.
“평범한 분이 아니군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저는 UDT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최근 3년 동안은 해병대 특수 수색대원들을 가르쳤습니다.”
“무서운 일을 하셨군요.”
“남들이 하지 않았던 일들이었죠.”
“무슨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뭐든 시켜만 주시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군에서 요인 암살, 폭파, 정보 수집, 경호 등 뭐든지 다 했습니다.”
“일을 그만둔 이유는 뭐죠?”
“아내가 아픕니다. 그래서 제가 옆에 있어야 했습니다.”
“나이는 어떻게 됩니까?”
“서른일곱입니다.”
“좋군요. 형님, 저는 이분이 마음에 듭니다.”
최강철이 흡족한 표정을 짓자 김도환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때 정철호가 최강철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기회를 줘서 고맙습니다. 충성을 다해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역시 군인 출신이라 그런가, 상하 관계가 분명하시군요. 하지만 나에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충성보다 의리를 원합니다. 그리고 부하를 원하는 게 아니라 평생을 같이할 친구를 원합니다. 그러니 정 실장님, 앞으로 나를 그렇게 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강철의 말에 정철호는 다시 한번 고개를 깊이 숙인 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의 소개와 인사가 끝났으니 이제 김도환이 용건을 말할 시간이었다.
김도환이 나선 것은 그가 뒤로 완전히 물러나 대화에서 빠졌을 때였다.
“그녀는 지금 우리 집에 있어. 경찰이 그녀를 쫓아다녀서 그동안 절에 숨어 있었다는군. 그 개새끼들이 무고죄로 고발했단다.”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경찰은 그녀를 해치기 위해 찾은 거지만 나는 돕기 위해 찾았던 거잖아. 누군가를 돕기 위한 사람에게는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 법이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젠 어쩌지?”
“어쩌긴요. 그녀를 ‘제우스’ 직원으로 채용하세요. 그리고 최고의 변호사를 붙여서 정식으로 대처하는 게 좋겠습니다. 언제까지 숨어 다닐 수는 없잖습니까.”
“정공으로 맞서자는 뜻이구만.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그 새끼들 힘이 워낙 세서 불리해.”
“요정에 있던 여자들이 증인이잖습니까. 그 여자들을 확보하세요. 그놈들이 미리 손써놨겠지만 우리 쪽에서 접근하면 돌아설 겁니다. 돈이면 돈, 협박을 한 것이라면 형님이 그것을 무너뜨리세요.”
“경찰이 자연 씨를 구속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최고의 변호사를 대야 합니다. 검찰 쪽에 영향력이 큰 변호사를 선임하시고 구속만 되지 않도록 막으세요. 그런 후 형님이 그놈들의 약점을 캐내셔야지요. 단칼에 목을 벨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이제 조직이 서서히 갖춰지고 있으니까 금방 조질 수 있어. 조금만 기다리면 돼.”
“서두르셔야 됩니다.”
“알았어, 그런데 만나볼 테냐?”
“당연히 만나야죠.”
황자연은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하게 변해 있었다.
4개월 가깝게 절에 숨어 지내다 보니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불쑥 낮선 사내가 나타났을 때 경찰이라 생각하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차라리 경찰이 낫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결정적인 증언을 막기 위해 목숨을 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제대로 잠조차 자지 못했으니 차라리 경찰에 체포되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타난 사람은 경찰이 아니었고 그녀를 돕기 위해 왔다며 집으로 데려갔다.
서울로 돌아와 그의 집에서 보낸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절에서는 그토록 지겨웠던 시간이 이곳에 있자 무섭게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았다.
문 밖에서 초인종이 울리며 주인 언니가 뛰어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이틀 동안 자신을 친동생처럼 돌봐줬는데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었다.
긴장으로 인해 귀가 쫑긋 세워졌다.
오랜 시간 동안 쫓기다 보니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버릇이 생겼다.
그때 김도환의 목소리가 방문 밖에서 들려왔다.
“자연 씨, 잠깐 나와보세요. 자연 씨를 만나기 위해 온 사람이 있어요.”
나를 만나기 위한 사람?
그 소리를 듣자 단박에 윤미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절에 있다는 것을 아는 건 윤미영이 유일했고 김도환을 보낸 것도 그녀였으니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총대는 자신이 멨지만 그녀 역시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김도환에게 들은 바로는 경찰서에 여러 번 끌려갔는데 분명 일본 의원 옆에 앉아 있었다는 증언을 했지만 믿어주지 않았다고 들었다.
방문을 열고 나갔을 때 보인 건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그녀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남자, 바로 최강철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동안의 설움이 터지며 바보처럼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일면식도 없는 그를 위해 그녀가 위험을 뻔히 알면서 방송국에 전화를 한 건 최강철의 팬이기도 했지만 일본 놈들에게 대한민국의 영웅이 매장되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몸은 화류계에 머물고 있었으나 그녀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었고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했기에 매국노들의 행동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저는 최강철입니다. 도움에 감사드리고 싶었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군요.”
“흐윽…….”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고생 하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정말인가요?”
“그럼요, 그러니 이제 짐부터 싸세요. 자연 씨 명의로 서초동에 아파트를 사두었으니까 이제부터 거기서 지내세요. 그리고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며칠 쉬신 다음에 거기로 출근하세요. 경찰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우리나라 최고의 변호사에게 의뢰를 해놨으니 그분이 자연 씨의 무죄를 밝혀줄 겁니다.”
“저는… 저는…….”
황자연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울먹이자 최강철이 슬며시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황자연 씨, 당신의 도움을 저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저를 믿고 편하게 사세요.”
최강철은 미국에서 돌아와 학교를 다니며 조용하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외형으로만 조용했지 수면 밑에서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잘못된 권력의 힘이 얼마나 큰지 경험했으니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이제 조금 후면 군사독재의 잔재가 청산되지만 한국 사회는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끝없이 권력의 횡포에 시달릴 것이다.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그에 못지않은 힘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은 돈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인맥의 힘이었다.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다.
하지만 인맥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발로 뛰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젊은 층을 공략했으나 최강철은 권력의 힘을 맛본 후 기득권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그럼에도 얼마나 다행인가.
국민들이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자신의 명성은 인맥을 쌓기에 더없이 좋은 명분과 구실을 만들어줄 수 있었다.
* * *
김도환은 ‘제우스’의 조직을 빠르게 정비해 나갔다.
그는 최강철의 말대로 정보와 보안 분야로 나누어 직원들을 충원했는데, 워낙 좋은 보수 조건과 복지를 약속했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정보 쪽은 모든 분야를 망라할 생각이었다.
최강철이 원하는 것은 일종의 싱크탱크였기 때문에 경제, 사회, 문화, 정치는 물론이고 각 분야의 베테랑들을 끌어들였다.
보안 쪽을 맡은 정철호도 군에서 제대한 최정예 요원들을 스카우트했는데 전부 특수부대 쪽에서 최고라 칭했던 사람들이었다.
이것도 인맥이다.
김도환과 정철호는 자신과 ‘제우스’로 영입된 사람들을 통해 뛰어난 인재들을 계속 영입했기 때문에 금방 조직을 확충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최강철이 보유한 막대한 자금이 지원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도환이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유기춘과 검찰총장의 뒤에 누가 있는지를 캐내는 것과 요정에서 만났다는 일본 요시다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 가지 일을 더 했으니,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가들의 성향 분석이었다.
언론에서 알려진 일반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추적 조사를 통해 개인의 사상과 배경, 심지어 부정 비리 여부와 여자관계 등 사적인 움직임까지 전부 체크해서 깨끗한 인물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자들은 안 된다.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사익을 위해 탐욕을 부린 자들도 만날 이유가 없었다.
최강철이 원한 것은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더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봉사해 줄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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