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았다.
승리의 열풍은 생각보다 오래갔고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나라를 구한 영웅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시간은 결국 승리의 열풍을 서서히 잠재워 갔다.
최강철이 김도환을 만난 것은 국내로 돌아와 5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와는 국내에 들어와 두 번 통화했는데 여전히 대기 발령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형님, 놀아서 그런가 얼굴이 좋아졌네요?”
“그러지 마라. 마누라가 요새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돈 못 벌어오는 남자가 이렇게 초라해질 줄은 정말 몰랐다.”
“회사에서 돈 안 나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월급의 70%는 나온다. 아직 안 잘렸으니까 먹고살 정도는 주더라.”
“복귀는요?”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아. 모 회사 회장이 그쪽과 선이 닿아서 그런가 나를 죽이겠다고 공언했다네. 매국노와 결탁한 놈이 한둘이 아닌가 봐. 누가 누굴 죽인다는 거냐? 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새끼들이 염병을 떨고 있어!”
김도환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앞에 놓여 있던 소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최강철을 변호하느라 거의 매일 데스크와 부딪쳤고 권력층에 정면으로 대들었기 때문에 그는 괘씸죄에 걸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요원한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기가 죽지 않았다. 원래의 성격이 불도저 스타일이라 그는 여전히 성깔이 살아 있었다.
“형님, 그럼 회사 그만두세요. 뭐 하러 그런 놈들 밑에서 있어요.”
“크크크… 야,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먹고는 살아야지. 여기서 그만두면 그냥 죽는다고. 이쪽 세계가 워낙 판이 작아서 다른 곳은 날 받아주지 않아.”
“그럼 그쪽에서 놀지 말고 나를 도와주세요. 사실 오늘 형님을 만나자고 한 건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함입니다.”
“도와달라고, 뭘?”
김도환의 눈에서 의아해하는 시선이 흘러나왔다.
최강철의 말에는 그냥 돕는 것과 다른 뜻이 담겨 있었는데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최강철의 입이 열리며 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회사 하나 차립시다. 그래서 형님이 그 회사를 맡아주세요.”
“회사라니?”
“앞으로의 사회는 정보가 생명이 되는 사회로 변화할 겁니다. 누가 더 고급 정보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 날 거예요.”
“그래서?”
“언론이 떠드는 건 정보가 아닙니다. 진짜 정보는 언론이 취급하지 못하는 것들이죠. 골든 인포메이션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강철아, 도대체 너 뭘 하고 싶은 거냐. 그런 정보를 왜 얻고 싶은 거냐고!”
“내가 뭘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까?”
“음…….”
최강철의 반문을 들은 김도환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강철의 눈에 담겨 있는 야망을 보는 순간 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면서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최강철은 복서이면서 영웅이기도 했다.
이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사람이 정보까지 틀어쥐면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거기에 막대한 자금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최강철의 시선에 담겨 있는 의지를 보는 순간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간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형님, 정보와 관련된 사람들을 스카우트하세요. 안기부, 검찰, 기무사, 보안대, 언론 등 정보 관련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데려오란 말입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그 분야에서 최고들을 스카우트하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회사는 매출이 있어야 한다. 매출이 없는 회사는 유령 회사에 불과해. 그리되면 남들의 시선이 집중된단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회사에 보안 분야를 추가할 생각입니다. 해병대나 특전사, 그리고 무술 유단자들로 구성된 보안 회사로 위장하면 됩니다. 은행이나 돈을 다루는 곳, 그리고 잘사는 자들은 곧 보안 회사를 필요로 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매출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죠. 그때까지 필요한 자금은 제가 모두 댈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바쁘겠구나. 사람들을 스카우트하려면 정신없이 움직여야겠어. 언제까지 하면 되냐?”
“일단 회사부터 만드세요.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보 분야와 보안 분야에 최고의 정예들로 뽑되 신분 검증을 철저하게 하세요.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테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형님, 제일 먼저 그분에 대해서 알아봐 주세요.”
“누구?”
“창래 형님한테 전화 걸었던 여자 말입니다.”
“그 여자는 왜?”
“저를 위해 위험을 감수했으니 이젠 제가 돌봐줄 차롑니다. 지금쯤 고초를 겪고 있을지 몰라요. 최대한 빨리 찾아내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내 코가 석자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최대한 빨리 알아보지. 또 다른 건?”
“회사를 만들고 인원이 충원되면 천천히 그놈들에 대해서 알아보세요. 일본 쪽과 관련된 게 그놈들뿐인지, 아니면 그 뒤에 또 뭐가 있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이고, 좋다. 씨발, 이제 일다운 일을 할 것 같네. 그 새끼들 집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 철저하게 까발려서 가져올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런데 강철아, 그놈들 뒤를 캐서 어쩔 작정이냐?”
“매국노들은 어떤 수를 쓰든 단두대에 올려야죠. 나는 그자들을 죽일 생각입니다.”
“그놈들은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
“괜찮습니다. 권력은 국민이 만들어주는 것뿐이에요. 국민들의 믿음을 배신한 놈들은 철저하게 뿌리 뽑아야 됩니다.”
“으… 좋다. 씨발, 해보자.”
“회사가 만들어지면 법인 통장부터 개설하세요. 그 통장으로 우선 20억을 넣어놓을 테니 형님이 마음껏 쓰세요. 자금이 더 필요하면 저한테 전화하시고요.”
* * *
최강철이 미국으로 넘어간 것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 10일이 지났을 때였다.
같이 간 것은 윤성호였는데 그는 아내인 황인혜에게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얼굴에 웃음꽃이 흘러넘쳤다.
이번 일정은 보름을 머무는 것으로 계획했는데 마이다스 CKC의 실적과 투자사들의 추진 성과를 확인하는 것도 있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를 만나는 것이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윈도우를 개발하는 데 투자한 비용이 2년 동안 500만 달러가 소요되었고, 그 결과가 드디어 나왔으니 이제 빌 게이츠와 만날 필요성이 있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서지영은 최강철의 눈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검찰 조사를 받는 동안 매일같이 전화를 했는데 최강철이 조사 내용을 상세하게 말을 하지 않았어도 어떻게 알았는지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녀를 얕봤다.
언제나 여린 여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마이다스 CKC를 이끌며 벌써 뉴욕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 법률 체계를 지닌 미국의 변호사들을 동원해서 서지영은 한국 검찰의 움직임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봤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권력의 개들은 더 큰 권력을 가진 자에게 더없이 약하다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강철 씨, 눈은 괜찮은 거지?”
“응, 괜찮아.”
“이제 그만 미국으로 돌아와. 거기서 험한 꼴 당하지 말고. 학교는 이곳에서 다녀도 되잖아. 강철 씨가 결정만 한다면 어떤 학교라도 들어갈 수 있단 말이야.”
“나는 한국에서 반드시 할 일이 있어. 한국으로 돌아간 건 그걸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했잖아. 지영씨도 나와 결혼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
“나도?”
“그럼 신랑도 없이 여기서 혼자 살 생각이었어?”
“회사는 어쩌고?”
“하하하… 당장 돌아가자는 건 아니고 언젠가는 한국에서 살아야 된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렇게 눈 부릅뜨지 마.”
“아휴, 깜짝 놀랐잖아.”
“가자, 오랜만에 우리 둘이서 와인 마시자. 집 앞에 있는 강물을 바라보며 마시면 분위기가 좋을 거야.”
“어머, 분위기는 왜 잡아?”
“왜긴, 분위기를 잡아야 우리 지영 씨 황홀하게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그렇지.”
* * *
미국의 주식 시장은 3,200포인트 전후에서 횡보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강철의 자산은 불과 6개월 만에 7,000만 달러가 늘어 있었다.
애플과 나이키가 무상증자를 했고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가 20% 상승했으며 서지영이 이끄는 선물 팀이 800만 달러의 성과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정말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워낙 거대한 금액이 투자되어 있었으니 자산은 그 세를 불리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주식 시장에서 얻은 성과는 델 컴퓨터와 시스코에서 얻어낸 수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델 컴퓨터의 약진은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였다.
그가 투자한 후 지금까지도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 왔으나 금년 들어 보여준 델 컴퓨터의 성과는 어마어마했다.
주식 상장을 하면서 그의 지분은 17%로 줄어든 상태였으나 유, 무상 증자와 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그의 자산은 3억 달러를 초과하고 있었다.
시스코의 상승세는 오히려 델 컴퓨터보다 더했다.
델 컴퓨터는 상장하면서 대주주임에도 마이크 델에게 모든 경영권을 맡겼지만 시스코는 완전한 그의 회사였고 그림자 경영의 모태가 되는 회사였기에 더욱 그 폭발적인 성장이 기쁠 수밖에 없었다.
시스코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 운영되고 있었으나 회사의 재무 구조는 마이다스 CKC에서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중요 사안은 최강철의 허락을 받아야 실행될 수 있었다.
시스코는 델 컴퓨터보다 매출액은 적었지만 순이익은 오히려 훨씬 많았다.
이미 구축된 시스템을 기반으로 신규 고객들을 확보했기 때문에 투입되는 원가가 델 컴퓨터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마이다스 회계 팀에서 분석한 바로는 지금 당장 주식 시장에 상장해도 델 컴퓨터의 총액보다 더 많은 13억 달러의 자산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더군다나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했으니 시스코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와 다름없었다.
* * *
“두 분은 언제 봐도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그런데 허리케인의 상처는 아직 완쾌되지 않았군요. 버팅으로 인한 상처가 컸던 모양이죠?”
“그렇습니다. 이마가 제법 찢어져서 앞으로 2주 정도는 더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경기는 일방적인 시합이었습니다. 일본 선수도 상당히 강하다고 전문가들이 평해서 긴장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대도 되지 않더군요.”
“나를 응원하셨나요?”
“당연하죠. 나는 당신의 사업 파트너 이전에 허리케인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답니다.”
“고맙습니다.”
약속한 회의 장소에 들어선 최강철과 서지영을 향해 빌 게이츠는 한동안 복싱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서류가 잔뜩 놓여 있었는데 윈도우 개발 과정, 투자 금액의 사용, 향후 제품의 판매 전략 등이 담긴 것들이었다.
바로 이곳에 오기 전 최강철이 요청한 서류였다.
“윈도우가 시판되었다면서요?”
“2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반응은 어떻죠?”
“상당히 좋습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할 것 같아요. 워낙 획기적인 신기술들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고객들의 평가가 좋거든요.”
당연한 일이다.
마이다스 CKC에서 넘겨준 특허와 기술 자료들은 획기적인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어 단박에 윈도우의 체계를 상승시켜 놓았다.
아직 인터넷 사용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뿐 시간만 조금 지나면 경쟁자들을 완벽하게 물리치고 윈도우 제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최강철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빌 게이츠를 바라본 것은 그의 시선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눈을 통해 읽을 수 있고 그것은 경륜이 많을수록 더욱 정교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윈도우가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 빌 게이츠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질지 모른다.
마이다스 CKC로부터 신기술을 넘겨받았고 막대한 투자금을 사용했음에도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건 막대한 이윤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그가 알고 있는 빌 게이츠는 사업 쪽에서 냉혹한 킬러를 연상시킬 만큼 많은 파트너의 목숨을 끊어놓은 사람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윈도우 판매로 얻어지는 수익을 정확한 시간에 정산해 달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마이다스 CKC의 회계와 정보 팀은 세계 최고 수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분식 회계를 통해 다른 생각을 한다면 MS는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의 협약은 이미 계약서가 작성되었고 공중까지 받은 상탠데 그런 짓을 할 수 있나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빌 게이츠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펄쩍 뛰었으나 그 쓴웃음 속에서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최강철도 비슷한 웃음을 흘려냈다.
그래야 할 거야. 만약 한 푼이라도 삥땅을 치다가 걸리면 너는 지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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