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65화 (165/308)

[165] 제22장 미래를 위한 준비

일본 관중들의 분노.

그들의 분노는 최강철으로 인해 짓밟힌 자존심 때문에 발생된 것이 분명했다.

철저한 농락.

복싱 경기를 보면서 이토록 비참한 마음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겠지.

시합이 시작된 후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우세한 경기를 펼치지 못했고, 마지막 순간에는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일방적인 진행이었다.

그러나 일본 관중들의 분노는 그것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쓰러뜨릴 수 있음에도 계속 경기를 진행시키며 엔도를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팬 최강철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분노한 관중들의 소란으로 인해 그동안 계속 진행되어 왔던 링 아나운서의 인터뷰가 생략되었으나 끈질긴 일본 기자들은 쫓아다니며 그의 행동을 거침없이 비난했다.

“허리케인, 당신은 스포츠맨십을 어기지 않았습니까. 한 말씀 해주시죠.”

“내가 무슨 스포츠맨십을 어겼다는 겁니까?”

“당신은 엔도가 그로기에 빠져 있는데도 경기를 끝내지 않고 지속시켰습니다. 엔도 선수의 얼굴은 그로 인해 처참하게 변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커다란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었어요. 그게 잘못이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당신들은 내가 일부러 엔도 선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게 아니면 뭡니까?”

“엔도 선수는 그동안 18전 전승 KO승을 기록했던 선수였습니다. 막상 부딪혀 보니 그의 펀치력은 제가 상대해 왔던 선수들 중 최정상급이었습니다. 자칫 무리한 공격을 하면 제가 당할 가능성이 있을 만큼 대단했죠. 그렇기에 조심스러운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화면을 보시면 알겠지만 엔도 선수는 끝까지 반격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엔도 선수의 마지막 반격이 두려워 그랬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엔도 선수의 얼굴은 피투성이였습니다. 같은 선수로서 불쌍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까?”

“기자님들은 전사가 피를 흘리는 걸 불쌍하게 생각하는 모양이군요. 엔도는 전사였습니다. 그리고 훌륭하게 싸웠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저 역시 그의 버팅으로 인해 눈이 찢어지며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비록 그의 버팅에 의해 피를 흘렸으나 저는 엔도 선수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복서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하기도 하니까요. 이것이 복싱이고 승부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혹시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까?”

“어떤 이유 말입니까?”

최강철이 질문해 온 일본 기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되물었다.

링에서 내려와 라커룸으로 들어왔을 때 쫓아온 일본 기자의 숫자는 50명이 훌쩍 넘고 있었다.

비록 경호원들에 의해 가로막혀 라커룸으로 들어오지 못했지만 그들의 얼굴은 일본 관중 못지않게 흥분된 상태였다.

그랬기에 질문하는 음성들이 잔뜩 격앙되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행동만 보면 누군가의 감정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금 일본 기자들의 행동이 그렇고, 자신이 링에서 엔도를 때려잡을 때 했던 행동에도 분명 감정이란 게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멍청하게 그걸 고스란히 나타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최강철이 되묻자 일본 기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들은 묻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에 당해왔던 한국의 불행했던 역사를 되갚고, 자신감에 흘러넘쳐 그동안 승리를 호언했던 엔도에 대한 감정들이 시합을 통해 분풀이된 게 아니냐며 질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최강철의 반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뒤따라왔던 한국 기자들의 입에서 거친 목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씨발, 기자라는 새끼들이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실력이 없어 진 걸 가지고 왜 지랄들이야!”

최강철의 통쾌한 승리로 인해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불리한 상황으로 인해 가슴을 졸이며 지켜봤던 국민들은 최강철이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며 승리를 하자 축제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통쾌함.

마치 이것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최강철은 8라운드 내내 엔도를 압도했고, 버팅을 당해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마지막 2라운드는 학살이란 표현을 써도 될 만큼 박살을 내버렸기에 국민들은 경기가 끝나자 덩실덩실 춤을 추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몰염치라는 말이 있다.

체면을 지키지 않은 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몰염치라는 단어다.

경기가 끝나고 일본 국민들이 물병을 던지며 분노하는 장면과 일본 기자들이 최강철에게 따라붙으며 질문했던 내용들이 한국 기자들에 의해 알려지자 국민들은 일본인들의 몰염치를 성토하며 이를 갈았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금방 일본인들의 몰염치한 행동을 잊고 축제 속으로 빠져들었다.

승자는 언제나 관대한 법이기 때문이다.

최강철은 시합을 승리로 이끈 후 기자들의 질문이 끝나자 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워낙 분위기가 험악했기도 했지만 언론에 노출되어 자극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선수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일본 언론의 질책처럼 스포츠맨십을 위배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후회는 않는다.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줘야 하고, 한번 결정한 후 실행에 옮긴 것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후회할 이유가 없었다.

일본인들의 감정은 호텔에서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최강철 일행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적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복싱 협회의 유광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돈 킹과 톰슨까지 모여 일행이 작은 맥주 파티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돈 킹은 최강철의 승리에 고무되어 그동안의 일을 잊은 채 연신 웃음을 흘려냈는데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사무장님, 어쩐 일이세요?”

-승리 축하하네, 정말 통쾌한 시합이었어.

“고맙습니다. 그런데 사무장님 목소리를 들어보니 축하만 해주려고 전화한 것 같지 않은데요?”

-이 귀신아, 너는 어째 그 모양이냐. 좀 알아도 모른 척해주면 안 돼? 본론은 축하 먼저 해주고 말해야 약발이 더 잘 먹히는 거잖아. 일단 축하 먼저 받아!

“하하… 그런가요. 그럼 마음껏 축하해 주세요.”

그의 말에 최강철은 활짝 웃었다.

좋은 인연을 가진 사람들의 농담은 언제나 이렇게 즐거움을 준다.

-강철아, 이마 찢어진 건 괜찮냐. 봉합은 했어?

“시합 끝나고 바로 했습니다. 13방 꿰맸어요. 생각보다 큰 상처는 아니라서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다행이다.

“지금 맥주 파티 열고 있어요. 사무장님도 같이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오늘 내가 거기 있었으면 곤죽이 되었을 거다. 네가 이겨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거든. 난 아까 그 자식 쓰러졌을 때 덩실덩실 춤까지 췄어. 너무 기뻐서.

“알았으니까 그만하시고 본론을 말해보세요. 왜 전화하셨어요?”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했다.

“뭐죠?”

-국민들이 지금 난리다. 전부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어.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카퍼레이드 좀 하면 안 되겠냐?

유광호의 말에 최강철이 잠시 수화기에서 귀를 뗐다.

그도 자신이 카퍼레이드를 거부했다는 걸 안다. 유광호는 그 소식을 듣고 잘했다며 칭찬을 했었는데 이제 와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탁을 해오자 저절로 인상이 굳어졌다.

“사무장님, 정부 쪽에서 협박받으신 겁니까?”

“아니야, 간절하게 부탁받은 거다. 체육부에서 복싱 협회 주관으로 해도 좋으니까 카퍼레이드만 해달라고 통 사정하더라. 이번만큼은 일본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국민들한테 모습을 보여야 된다면서 애걸복걸해 왔어. 네가 저번에 하도 펄쩍펄쩍 뛰었기 때문인지 걔들은 아예 나설 생각도 하지 못해. 강철아, 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만 이번에는 내 얼굴을 봐서라도 국민들한테 네 얼굴을 보여주면 안 되겠냐?”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너한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 국민들이 너를 미친 듯이 응원한 건 아마, 그런 미안함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 그런 국민들에게 네가 용서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되지 않겠냐?”

시합이 끝난 다음 날 최강철은 바로 귀국을 선택했다.

워낙 가까운 일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시합 장소가 미국이었다면 치료를 하면서 피로를 풀다가 천천히 귀국했을 테지만 한국 국민들은 최강철이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라며 성화를 부리고 있었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영웅이 일본에서 불안하게 지내는 걸 원치 않은 모양이었다.

일본 언론은 최강철의 말을 그대로 내보냈다.

<최강철, 마지막 순간까지 후지산의 호랑이를 두려워하다>

<챔피언의 고백, 비록 졌지만 엔도의 펀치력은 세계 최고 수준!>

<엔도의 투혼, 챔피언도 인정!>

일종의 자기 위안이다.

그들은 엔도의 강한 주먹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다는 최강철의 말을 통해 조금이라도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뉴스 타이틀은 일본과 완벽하게 달랐다.

<허리케인, 후지산의 호랑이를 완벽하게 제압하다!>

<막강한 위력, 허리케인의 압승>

<후지산의 호랑이, 한국산 태풍에 날아가다!>

자극적인 타이틀 밑에 달린 기사들은 더욱더 경기 내용을 신랄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 언론에게 말한 최강철의 관용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국 관계를 너무나 잘 알았고 최강철의 훈련을 방해했던 배경에 일본 정치인이 있었다는 폭로까지 믿었기에 최강철의 분노가 시합에서 터졌다는 사실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

최강철의 출국 소식을 알면서도 일본 언론은 공항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일본으로 넘어왔던 한국 기자들이 그를 호위하는 것처럼 따라붙으며 당당한 위세를 뽐냈다.

스산했던 일본 공항과는 달리 김포공항은 최강철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을 찾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발적으로 최강철을 마중하기 위해 나온 열성 팬들까지 몰려들었기 때문에 공항 로비가 마비될 정도였다.

최강철이 입구 게이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입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흘러나왔다.

“최강철, 최강철, 허리케인, 허리케인!”

마치 시합이 벌어지고 있는 경기장에 온 것처럼 사람들의 함성은 끝이 없었다.

최강철은 그들을 향해 힘껏 주먹을 치켜들며 승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저는 이번 경기에서 혼자 싸우지 않았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을 너무나 잘 알기에 절대 지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싸웠으니 이 승리는 국민 여러분 전체의 승리입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최강철은 이런 말을 남긴 후 유광호의 안내를 받아 오픈카에 올라탔다.

이런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국민들과 기쁨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광호의 말대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의 퍼포먼스로 그들의 미안함을 더욱더 커다란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픈카에 오른 후 서울로 향했다.

앞에는 경찰 사이렌 카와 오토바이가 앞장을 섰고 오픈카를 호위하듯 수많은 차량이 뒤를 따랐다.

오픈카를 향해 반대쪽 차선에서 마주 다가오던 차량들의 경적 소리가 불을 뿜었다.

그들은 경적을 올리며 창을 내리고 손을 흔들어댔는데 최강철의 승리를 축하하는 V 자가 그려져 있었다.

시내로 들어오자 최강철을 환영하는 인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열렬한 환호를 보내왔다.

도로는 통제되어 앞길이 훤하게 비었으나 오픈카는 시속 20㎞의 속도로 달리며 최강철이 국민들에게 인사할 수 있도록 속도를 늦춘 상태였다.

장관이다.

그 누가 이런 환영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옛날 정권에 의해 동원되어 태극기를 흔들던 여고생들의 인파가 아니었다.

넥타이 부대부터 학생들, 심지어 길거리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들까지 모두 뛰어나와 최강철을 보기 위해 목을 길게 치켜들었다.

자진해서 이런 환영 인파를 만들었으니 최강철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받아보지 못했던 특별한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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