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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환생-164화 (164/308)

[164]

닥터 체크가 끝나고 경기가 재개하려는 순간 공이 울렸다.

“저 씨발 놈, 개새끼. 일부러 그랬어. 일부러 박은 거라고!”

“으… 결정적인 순간에… 이것도 작전이라고 준비했어, 아주 작정하고. 우려했던 일이었는데 우리가 너무 방심했다.”

이성일이 화를 참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었고 윤성호는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버팅을 당하고 닥터 체크를 하는 순간 윤성호는 링으로 들어와 심판을 향해 거센 항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합 과정에서 벌어진 우연한 버팅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고의적인 버팅이었다.

엔도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가 주먹이 나오는 순간 틀어진 최강철의 눈을 그대로 들이박았지만 레퍼리는 윤성호의 어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정하세요. 아직 경기 안 끝났습니다.”

“아, 열 받아. 괜찮냐?”

“이 정도 피 흘리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괜찮아요.”

“씨발, 피가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바셀린 좀 더 바르자. 잠시라도 멈추게.”

윤성호가 바셀린을 왕창 찍어 바르는 걸 보면서 최강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 버팅이라면 시합이 시작하자마자 다시 피가 흐른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역시 쪽발이다.

이기기 위해서 모든 수를 동원하고 있으니 이것이 무사도 정신이냐고 묻고 싶었다.

때앵!

공이 울리며 최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링의 중심으로 나갔다.

지금까지는 너와 너의 민족에게 훈계를 주기 위함이었으나 지금부터는 공포를 심어주마.

다시는 덤빌 생각도 못 하게 말이야.

최강철은 겨우 대미지에서 회복된 것처럼 보이는 엔도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가며 선공을 퍼부었다.

엔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레프트 잽을 먼저 연사시켰던 것과 전혀 다른 강력한 공격이었다.

바로 지금의 허리케인을 만들어준 공포의 콤비네이션 펀치들이었다.

쾅, 쾅, 쾅!

최강철은 엔도의 주먹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전진했다.

엔도 역시 미친 듯이 펀치를 휘둘렀으나 최강철의 주먹이 훨씬 더 빨랐고 강력했다.

지금까지의 파괴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최강철의 펀치가 전신에 작렬하자 엔도의 펀치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 공격을 당하면 두려움을 느끼는데 그 반응은 방어에 치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다운을 당하지 않았을 정도로 강한 맷집을 가진 엔도였으나 정교하고 날카로운 펀치들이 연이어 들어가자 자신도 모르게 펀치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선택에 불과했다.

뒤로 밀린다.

펀치 숫자가 줄어들수록 최강철의 콤비네이션 펀치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지 시작했다.

아무리 가드를 올린 채 막으려고 노력했어도 상하를 가리지 않고 터지는 최강철의 주먹은 엔도의 방어를 뚫으며 연신 안면을 흔들어놓았다.

엉망이 되었던 엔도의 얼굴이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피로 물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최강철도 마찬가지였다.

찢어진 왼쪽 눈에서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흘린 피로 캔버스가 붉게 물든 건 오래전의 일이었다.

거듭 후퇴하던 엔도가 로프에 몰리자 최강철의 신형이 잠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은 본격적인 공격을 하기 위한 준비에 불과했다.

빠방! 파바바방!

완벽하게 가드를 올리고 있는 엔도의 전신이 샌드백이 되었다.

엔도는 최강철의 펀치가 터질 때마다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거대한 올가미에 걸린 메뚜기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얻어맞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은 건 결정적인 순간마다 최강철이 펀치를 거두고 뒤로 물러섰기 때문이다.

비틀거리며 겨우 서 있는 엔도의 모습은 초라함 그 자체였다.

당장에라도 몇 대만 더 얻어맞으면 그대로 쓰러질 만큼 엔도의 입은 반쯤 열린 채 헐떡거리고 있었으니 버티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7라운드에 들어와 난타전이 벌어지자 일어서서 응원하던 일본 관중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벙어리가 된 것처럼 조용해졌다.

로프에 기대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엔도를 보면서 그들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붉게 상기된 게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코너로 돌아왔을 때 윤성호와 이성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최강철의 상처와 땀을 닦아주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기만 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최강철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라운드가 시작될 때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윤성호의 입이 슬쩍 열렸다.

“강철아,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어. 이만 끝내.”

“알았습니다.”

최강철이 심호흡을 길게 한 후 눈을 슬그머니 감았다가 떴다.

아니, 아직입니다.

관장님의 뜻은 알겠지만 나는 조금 더 해야겠어요.

비틀거리며 엔도가 코너에서 걸어 나왔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눈에는 푸른빛이 흘러나오는 게 경기를 포기한 것 같지 않았다.

그게 무사도의 정신이냐.

좋아, 그 정도는 되어야 때릴 맛이 나지.

잘 버텨봐. 절대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들은 칼로 배를 긋는 민족 아니냐.

이까짓 주먹 때문에 두려워하는 시선을 보이지 말란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난 아마 실망할지도 몰라.

링의 중앙으로 걸어 나가며 레퍼리의 눈을 보자 그는 두 선수의 움직임을 보다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최강철의 시선에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너는 잘못했어.

저놈이 내 눈을 박는 순간 경기를 끝내는 것이 맞았다.

네가 무엇 때문에 경기를 지속시켰는지 모르지만 너로 인해 저놈은 남은 인생을 절망 속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최강철은 엔도가 링의 중앙으로 나서는 순간 다시 칼을 꺼내 들었다.

그 칼은 엔도가 지닌 다 찢어진 방패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날카로웠으며 강력했다.

경기가 시작된 지 불과 30초 만에 엔도는 자신의 코너에 몰렸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짐승.

최강철은 놈의 시선을 바라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표한 곳을 공략하다가 뒤로 빠져나왔다.

어디 그 시선에 담긴 결의를 끝까지 유지해 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갈 때마다 엔도의 몸이 움찔거렸다.

코너에 박힌 엔도는 빠져나올 힘조차 없는 것 같았는데 최강철의 폭발적인 펀치가 나올 때마다 전신을 웅크리며 맞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최강철은 레퍼리의 행동이 이상하면 즉시 공격을 멈추고 뒤로 빠져나왔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직 저놈의 눈이, 그리고 일본 관중들의 눈에서 공포감이 없잖아.

너도 느꼈으면 아직 말리지 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엔도는 빠져 나갔던 최강철이 다시 들어오며 펀치를 뿜어내자 가드를 내리더니 미친놈처럼 펀치를 휘둘렀다.

그 옛날 가미카제를 연상시키는 자살 공격이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항복을 하지 않겠다는 일본인의 정신. 이미 엔도는 최강철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수치스러운 항복보다 죽음을 택한 것 같았다.

최강철의 시선이 일그러졌다.

놈의 이중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주면서 자신만큼은 깨끗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건 무슨 논리냐.

그럼에도 최강철은 빠져나오는 엔도의 얼굴을 향해 미사일처럼 강력한 라이트 훅을 날렸다.

콰앙!

그래, 이쯤에서 끝내주마.

하지만 넌 아마 모를 것이다.

너는, 네 정신은 끝까지 살아 있었다고 주장하겠지만 지금까지 시합을 하면서 당해온 너의 모습은 더없이 비참했었다는 걸 말이야.

엔도가 쓰러지는 순간 요요기 경기장은 쥐죽은 듯한 정적에 사로잡혔다.

그 무서운 정적으로 인해 최강철의 승리가 확정되었지만 재일 교포들마저 마음껏 승리를 기뻐하지 못할 정도로 일본 관중들의 침묵은 무서울 정도의 분노를 담고 있었다.

최강철은 엔도가 레퍼리의 카운터가 끝났음에도 버둥거리며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걸 보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두 팔을 번쩍 들고 자신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일본 관중들의 무서운 침묵을 보면서 링을 거닐었는데 비록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몸에서는 승자로서의 당당한 위세가 올올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윤성호가 뛰어나왔고 이성일도 마찬가지로 링을 향해 구르듯 뛰어나왔다.

그런 후 최강철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의 고생이 승리가 확정되자 물밀듯 밀려왔기 때문이다.

돈 킹과 톰슨이 올라왔고 최강철을 지키기 위해 경호원들이 링을 감싸며 관중들의 난입을 가로막았다.

그만큼 요요기 경기장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침묵에서 깨어난 일본 관중들은 스스로의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물병을 투척하기 시작했는데 그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최강철 선수, 정말 무섭습니다. 절대 무리하지 않는군요. 골라 때리고 있습니다. 저 선수를 어떻게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선수라고 하겠습니까! 엔도 선수, 코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쩔쩔 맵니다. 이미 완벽한 그로기 상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윤 위원님, 심판이 왜 말리지 않는 걸까요?”

“최강철 선수가 결정적인 순간 공격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계속 몰아붙였다면 레퍼리는 경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이러다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최강철 선수 다시 들어갑니다. 폭풍 같은 연타입니다. 이번에는 끝내주기를 바랍니다. 최강철 선수, 봐주면 안 됩니다!”

“한 방만 제대로 들어가면 끝납니다. 엔도 선수의 펀치가 나오는 순간을 잘 잡아야 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엔도 선수, 갑자기 코너에서 뛰어나오며 반격을 가합니다. 펀치가 큽니다. 어쩐 일일까요. 방어에 치중하던 엔도 선수의 공격입니다. 그러나 최강철 선수 엔도의 공격을 피하며 강력한 라이트 훅을 터뜨립니다. 쓰러집니다! 엔도 선수, 기어코 쓰러졌습니다.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엔도 선수가 쓰러졌습니다! 일어나지 못합니다. 일어나지 못합니다. 레퍼리, 경기를 중단시켰습니다. 만세, 최강철 선수가 이겼습니다.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최강철 선수가 엔도 선수를 KO로 무찌르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최강철 선수 별명인 허리케인답게 엄청난 경기를 보여줬습니다.”

“지금 일본 관중들 충격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요요기 경기장은 완벽한 침묵에 사로잡혔습니다. 최강철 선수 당당한 모습으로 링을 돌며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모습입니다!”

이종엽이 링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정신없이 떠들었다.

물론 경기 중에도 계속 떠들었지만 지금 그의 입은 모터가 달린 것처럼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기쁨은 뒤늦게 일본 관중들이 물병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그들 쪽으로도 날아오고 있었다.

죽일 테면 죽여봐.

이 새끼들아, 최강철이 이겼어. 우리의 영웅 최강철이 너희가 자랑하는 엔도를 박살 냈단 말이다.

* * *

김영호와 류광일은 일방적으로 엔도를 두들기는 최강철은 모습을 보면서 손을 꼭 잡고 있다가 결국 엔도가 바닥에 개구리처럼 쓰러지는 순간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몸부림을 쳤다.

“만세, 만세다!”

“최강철, 이 자식 최고다!”

이미 소주병은 전부 비워져서 바닥을 구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전혀 취하지 않은 것처럼 눈이 번쩍번쩍 빛났다.

잠실 야구장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 역시 자신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도 상관없었다.

오늘은 어떤 사람과 끌어안아도 성추행으로 고소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태극기 물결이 넘실거렸고 어른, 아이 구분할 것 없이 전부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최근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렇게 기쁜 일이 또 있었을까.

사람들이 진정으로 기뻐한 것은 불리했던 현실을 극복하고 믿어지지 않는 경기력으로 완벽하게 엔도를 때려잡은 자신들의 영웅 최강철을 지켰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서로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가슴속에 미안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한순간에 벌어진 어이없는 사건을 마주하며 진실도 확인하지 않은 채 최강철을 비난하고 죽이려 했던 자신들의 행동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것이었다.

이젠 되었다.

최강철은 영웅의 자리를 지켰고 자신들은 그의 승리로 인해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으니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더없이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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