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61화 (161/308)

[161]

* * *

최강철은 2시간 전에 요요기 경기장으로 들어와 라커룸에 자리를 잡았다.

일이 계속해서 벌어진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돈 킹은 경호원들을 전부 해고시켜 버리겠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랬기에 오늘 최강철에 대한 경호는 대통령에 못지않았다.

돈 킹은 최강철의 경호 인력을 2배로 늘려 그야말로 철통처럼 에워싼 채 경기장에 들어왔다.

경기장에 도착한 후 일본 관중들이 들고 있는 일장기의 물결을 봤다.

차를 타고 들어올 때 경기장 밖에는 엄청난 인파가 일장기를 손에 들고 몰려 있었는데 요요기 경기장 안은 그야말로 일장기의 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성일의 표현이 압권이다.

“저런 쪼다 같은 새끼들, 뭐 하러 휴지 조각을 들고 돌아댕겨. 미친놈들 아냐?”

알면서도 그러는 거다.

워낙 압도적인 모습이었기에 최강철이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최강철은 물론이고 윤성호까지 그의 말에 대꾸를 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일본이었으니 그들이 광적인 응원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강철은 일본 관중들이 흔드는 일장기의 물결을 보면서 말없이 웃기만 했다.

두렵지 않았다.

너희들이 어떻게 나오든 나는 오늘 너희들이 나와 우리 민족에게 했던 짓에 대한 응징을 반드시 할 것이다.

요요기 경기장을 피로 물들여서 말이다.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적대감은 어쩌면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불행했던 우리 선조들은 열강의 힘을 얻은 일본으로부터 철저하게 망가지고 부서져 인간 이하의 모멸을 받으며 겨우 살아남았다.

근대에 들어와 대한민국에게 가장 큰 불행을 준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그리고 일본의 강합에 의해 겨우 연명했던 36년의 슬픈 세월들.

이 모든 것이 일본을 미워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결코 지지 않겠다는 결의를 갖게 된 대한민국 국민들의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본은 오랜 세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진정 어린 사과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극우자들은 역사의 정당성을 거론하며 일본의 행동에 대해 당연한 것이란 논리를 펼쳐왔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병합해 왔는데 최근에 벌어진 침략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왜 중국에게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느냐며 논리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한반도를 침략한 것은 중국이 숫자 면에서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는 것이 그런 주장의 배경이었다.

언뜻 듣기에는 맞는 말 같지만 그건 한마디로 개소리에 불과하다.

잘못한 놈들은 사과를 하면 그만일 뿐 다른 핑계를 대는 건 치사한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국?

마찬가지다.

일본이 말한 것처럼 중국역시 한민족에게는 둘도 없는 개새끼들이다.

할 수만 있으면, 힘을 길러 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복수해야 되는 족속들임에는 틀림없다.

최강철은 가볍게 움직이며 천천히 몸을 풀었다.

윤성호와 이성일이 긴장된 눈으로 지켜봤고 이번 주관 방송사인 NHK와 미국의 NBC 카메라가 그 모습을 정신없이 담았다.

어느 정도 움직이자 서서히 몸이 달궈졌다.

수많은 언론과 사람들이 그의 훈련 부족을 걱정하며 물어왔으나 한 번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흐으…….

내가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절대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너희들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오늘 보여준다.

불과 17일간의 훈련이었지만 사건이 벌어지기 전 한 달 동안 어느 정도 몸을 만들어놨었기 때문에 피지컬은 충분히 올라온 상태였다.

피지컬을 만들면서 자신의 주 무기들을 점검했다.

벌써 7년 동안 자신을 무적으로 구가하게 만든 그의 무기들은 훈련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잊어지는 게 아니었다.

문제는 엔도가 어떤 전략을 가지고 나올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놈의 행동을 관찰하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은 벌써 22전을 치르며 수많은 강자와 대결해 온 경험이 있었으니 상황에 맞게 전략을 수정해 나갈 생각이었다.

“출전, 10분 전입니다.”

WBC에서 나온 경기 진행 요원이 시간을 알려주자 최강철의 라커룸이 순식간에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마지막 점검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돈 킹과 톰슨이 먼저 룸을 빠져나갔고 경호원들과 카메라맨들까지 복도로 나갔기 때문에 라커룸에는 최강철 일행과 감독관, 그리고 진행 요원만 남았다.

“강철아, 긴장하지 않았지?”

“내가 언제 긴장하는 거 봤습니까. 나는 이 순간이 너무나 즐거울 뿐입니다.”

“그래, 언제나 그렇지만 난 네 심장이 강철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배짱 좋은 너하고 같은 팀인 게 정말 다행일 정도야.”

“시합 끝내고 조금 쉬다가 미국에 가요. 이번에는 형수님하고 같이 식사하죠. 내가 멋진 해변에서 밥 살게요.”

“휴우, 일단 이겨놓고 생각해 보자.”

윤성호가 한숨을 몰아쉬면서 입을 닫자 옆에 서 있던 이성일이 나섰다.

그는 최강철의 밴딩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었는데 윤성호의 말이 끝나자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만 엔도 놈은 레프트 바디와 라이트 훅을 연사시키는 특성이 있어. 그리고 접근전에서 능하기 때문에 쇼트 펀치도 상당히 날카롭다. 놈은 네가 훈련량이 적다는 것을 아니까 체력전을 걸어올 거야. 놈이 뭘 노릴지 알겠어?“

“알아, 근접해서 복부 공격을 계속해 오겠지.”

“그걸 막아내는 게 최우선 과제야. 그런데 강철아, 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마지막이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줘라. 너 정말 체력 괜찮겠어?”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해. 다른 때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거니까 걱정 마.”

“그럼 말이야…….”

* * *

오픈 게임이 모두 끝나고 최강철의 경기가 다가오자 이종엽과 윤근모의 얼굴이 허옇게 질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긴장이 과하면 얼굴색이 변하는데 그걸 보고 질린다는 표현을 한다.

“윤 위원님, 이러다가 중계 못 할 거 같아요. 자꾸 침이 말라서 벌써부터 목이 아프네요. 위원님은 괜찮으세요?”

“나도 비슷해. 정말 긴장했나 봐. 내가 수많은 경기를 중계했지만 이렇게 긴장하기는 처음이야. 듀란하고 할 때도 이렇게는 긴장하지 않았어.”

“저도 그렇습니다. 일본 관중들과 우리나라 국민들 반응을 보니까 이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지네요. 어쨌든 무조건 이겨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믿어야지. 최강철이 언제 우릴 실망시킨 적 있었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니까 그렇죠.”

“그래도 믿고 싶어.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놓고 이겨주기를 바라는 게 부끄럽지만 그래도 어떡해. 허리케인은 영웅이잖아. 영웅은 원래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는 법이니까 이번에도 최강철은 극복해 줄 거야.”

“위원님, 이제 시작입니다. 엔도가 출전하는 모양이네요.”

광고가 나가는 동안 두 사람이 이야기 하는 걸 들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PD가 갑자기 미친놈처럼 팔로 원을 돌려댔다.

광고가 끝났으니 진행해 달라는 표시였다.

마침 화면에서는 일본 관중들처럼 일장기로 도배를 한 엔도와 10여 명의 스태프들이 당당한 걸음으로 링을 향해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지금 막 엔도가 출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투혼을 보여주겠다는 장담을 했던 것처럼 엔도 선수는 일장기를 온몸에 두른 채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상당히 매서운 눈초리를 지닌 엔도. 엔도의 표정은 비장함 그 자체로 보입니다. 그는 오늘까지 계속 최강철 선수를 KO시키겠다는 공언을 하면서 자신감을 보여 왔습니다. 윤 위원님 엔도 선수는 전승 KO승을 기록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18전 18KO승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경기 빼고는 동양권 선수들과 시합을 한 것이기 때문에 최강철 선수가 보유한 전적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최강철 선수는 미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수많은 강자와 시합을 하지 않았습니까. 최강철 선수가 쓰러뜨린 선수들은 세계 최강 수준에 있는 강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최근 벌어진 듀란전은 물론이고 마크 브릴랜드, 프레디 아두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의 강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강자들과 싸우면서 최강철 선수는 22전승 KO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적 면에서 본다면 엔도 선수는 최강철 선수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아악… 말씀드리는 순간, 최강철 선수가 출전하고 있습니다. 최강철 선수 측도 태극기를 들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최강철 선수는 태극기를 머리에 두르고 나오는데 오늘도 역시 그런 모습으로 출전하고 있습니다.”

“아… 언제 봐도 단출한 등장입니다. 최강철 선수의 스태프는 단 두 명뿐이죠. 엔도 선수의 등장에 비해 초라하게 보일 정도네요.”

윤근모가 최강철의 등장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자 이종엽이 왜 그런 이야기를 지금 하냐는 눈치를 보내며 말을 돌렸다.

지금은 그 어떤 불리함도 말하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최강철 선수는 언제나 이런 등장을 했지만 수많은 강자를 꺾으며 폭풍처럼 진격해 왔습니다. 오늘도 최강철 선수. 엔도를 꺾고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세워줄 것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 * *

김영호와 류광일은 소주를 다섯 병이나 준비했고 오징어도 세 마리나 구워서 잠실 야구장으로 들어왔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현지 연결이 되는 순간부터 그들은 소주병을 깠는데 긴장감을 참지 못하고 연신 소주잔을 비워 나갔다.

이윽고 화면을 통해 열광적인 일본 관중들의 모습이 보이자 그들의 입에서 거품이 흐르기 시작했다.

“쪽발이 새끼들, 많이들 쳐왔네.”

“우우… 강철이가 기죽으면 안 되는데… 우리가 이렇게 응원하고 있는 모습을 강철이도 봤으면 좋겠다.”

김영호가 잠실 야구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엔도에게만 응원하는 놈들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도, 여기에 수많은 국민이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일본 관중들과 요요기 경기장 밖에서 일장기를 흔들고 있는 일본인들을 확인한 후부터였다.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잠실 야구장에 모인 사람들은 일장기를 본 순간부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과거의 역사적 악감정은 둘째 치고 최강철이 훈련하지 못하도록 지랄한 놈들에 대한 분노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이 흐른 후 기어코 엔도가 입장하는 모습이 나오자 사람들의 입에서 연신 욕설이 터지기 시작했다.

“야, 이 고양이 새끼야. 너 오늘 죽어봐라.”

“일본의 투혼? 지랄하고 있네. 최강철이 정상이었으면 넌 한주먹 거리도 안 돼, 이 새끼야!”

“그러다 눈깔 뒤집히겠다. 얻다 대고 눈을 부라려. 뒈지려고!”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즐겁다.

전부 한편이기 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엔도를 향해 터뜨리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김영호와 류광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저 새끼들은 떼로 몰려다니는구만. 저게 다 스태프들인 모양이네. 뭐가 저리 많아?”

“엔도가 속해 있는 프로모션이 일본 최고란다. 거기에서 능력이 뛰어난 놈들은 전부 이번 경기를 위해 참여했대.”

“아주 작정을 했구만, 개새끼들.”

“야, 강철이 나온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터졌다.

화면을 통해 최강철이 당당한 걸음으로 링을 향해 다가서는 모습이 잡혔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표정.

최강철은 일본 관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었는데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오직 링을 향해서만 걸어 나갔다.

심지어 손조차 들지 않았다.

미국에서 경기할 때는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관중들과 심지어 야유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손을 들어 보였는데 오늘의 최강철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강철이, 이번에도 태극기 둘렀다.”

“당연하지, 한일전인데. 이번에는 반드시 이기고 태극기를 링 중앙에 꽂아놔야 해. 우리 스태프들이 드릴을 가지고 갔는지 모르겠네. 링 바닥에다 구멍을 뚫고 절대 못 뽑도록 만들어놨으면 좋겠는데.”

류광일이 떠들자 김영호의 얼굴에서 피식거리며 웃음이 떠올랐다.

이놈은 참 머리도 좋다.

어떻게 그런 절묘한 생각을 했는지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오는 최강철 일행을 보다가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십여 명의 인파에 둘러싸여 당당하게 들어온 엔도와는 다르게 최강철의 일행은 단출해도 너무 단출했다.

“아, 씨발. 저거 좀 어떻게 안 되나. 쪽수에서 밀리니까 괜히 뭔가 잘못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잖아.”

“캐스터가 말을 잘하는구만, 뭘 그래. 스태프들 쪽수 많다고 복싱 경기에서 이기면 강철이한테 사단 병력 붙여주겠다. 상관없어. 강철이는 쟤들만 가지고도 이겨왔잖아. 더럽게 많이 나왔다가 지면 저 새끼는 쪽팔려서 얼굴도 들지 못할 거다.”

“아이고, 강철아!”

류광일의 말이 끝나는 순간 김영호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런 행동 없이 묵묵히 링으로 들어온 최강철이 일본 관중들을 향해 손을 번쩍 치켜들며 보란 듯이 사자후를 질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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