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59화 (159/308)

[159]

공식 계체량 행사는 아무 일도 없이 끝났다.

이곳이 일본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돈 킹은 최강철의 신변 보호를 위해 이전보다 훨씬 경호를 강화했는데 그가 저울에 올라갈 때까지 빽빽하게 인간 방패를 형성했다.

체중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었고 이번에도 피지컬을 어느 정도 끌어 올렸기 때문에 계체량은 무사히 통과했다.

양측이 펼친 신경전은 없었으나 감시하는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콩나물시루처럼 혼잡했다.

곧이어 공식 기자회견 계획이 잡혀 있음에도 수많은 기자가 계체량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어댔고, 관계자들이 서로 소리를 질러 대며 움직였기 때문에 계체량이 벌어진 홀은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기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뉴스 거리였으니 이곳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이성일은 윤성호가 엔도의 계체량을 지켜보기 위해 자리를 비웠어도 최강철의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기에 그는 두 눈을 빛내며 가깝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감시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모든 행사가 끝나자 이성일이 옆에서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을 뒤로 배치하며 길을 트도록 지시했다.

누가 보면 경호 책임자로 알 만큼 최강철을 지키려는 이성일의 행동은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경호원들의 눈살이 찡그려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이성일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는데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른 체하며 길을 트고 앞으로 나가는 경호원들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계체량이 벌어졌던 홀은 물론이고 복도까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기 때문에 경호원들은 힘들게 길을 트며 겨우겨우 움직였다.

이제 복도를 통과해서 코너만 돌면 공식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경호텔의 컨벤션 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이 불쑥 튀어나온 것은 경호원들이 사람들을 제지하며 기둥을 빠져나갈 때였다.

기자로 보였는데 손에는 카메라를 들었고, 머리에는 빵모자를 깊게 눌러쓴 30대 후반의 사내였다.

그는 뒷사람들로 인해 균형을 잃었는지 꼬꾸라지듯 다가오며 최강철을 안으려는 시늉을 했다.

그때 최강철의 앞쪽에서 눈에 불을 켜며 걷던 이성일이 그의 옆구리를 들이박았다.

사내가 죽는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나가떨어졌으나 이성일은 최강철의 앞을 두 팔로 가로막은 채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소리를 질렀다.

“비켜, 아무도 다가오지 마. 다가오면 죽일 거야!”

인상을 무섭게 굳힌 이성일의 모습은 암습을 해온 닌자를 격퇴한 호위 무사와 비슷했다.

그 모습을 기자들이 정신없이 찍었다.

비록 작은 해프닝일지 모르지만 기자들에게는 이것 또한 기사 거리가 될 수 있었다.

쇼타는 이를 악문 채 멀어져 가는 최강철 일행을 노려봤다.

가장 최적의 타이밍에 접근해서 거의 성공했다고 느낀 순간 이상한 놈이 끼어드는 바람에 노렸던 곳을 정확하게 찌르지 못했다.

손에 든 만년필을 확인하자 사용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붉은색 표시가 떠올라 있었다.

문제는 사용하는 순간 나가떨어졌기 때문에 최강철의 몸에 주사가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미키, 요원들 어디 있나?”

“둘은 기자회견장에 들어가 있고 나머지는 복도에서 대기 중입니다.”

쇼타가 가래 끓는 목소리로 묻자 좌측에 서 있던 사내가 은밀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왔다.

미키는 정보국의 제5팀 부팀장으로서 쇼타를 보좌하기 위해 이곳에 온 인물이었다.

이곳에 배치된 인원은 다섯.

쇼타가 요원들을 집중 배치 한 것은 자신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칙쇼!”

“실패하셨습니까?”

“놈에게 주사가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만약을 대비해서 스기야라에게 준비하라고 전해.”

“팀장님, 이미 한 번 주사가 되었다면 더 이상 하면 안 됩니다. 만약 다시 강행해서 주사를 추가로 놓는다면 최강철은 링에 오르기도 전에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알아, 그런데 불안해. 만약 실패했다면…….”

“위에서는 최강철이 링에 반드시 오르기를 바랍니다. 우리로 인해 최강철이 링에 오르지 못한다면 오히려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철수하시죠. 우리는 할 만큼 했습니다. 최강철이 링에 올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되면 우리가 전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주사 한 방은 거의 노출되지 않지만 두 방이면 의사들이 즉각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칫 커다란 국제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단 말입니다.”

“으…….”

미키의 말을 들은 쇼타의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작전을 펴면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완벽하게 일이 처리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들자 찜찜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명석한 두뇌는 즉각적인 상황 판단을 마친 후 미키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맞는 말이다.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작전을 시행했을 경우 미키의 말대로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지체 없이 등을 돌려 컨벤션 홀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철수한다!”

* * *

최강철은 사내가 다가오는 순간 섬뜩함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워낙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사내의 오른손이 빠져나오는 걸 이상하게 느낄 때 이성일이 황소처럼 달려들어 그를 들이박았다.

사내의 손이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걸 느끼며 최강철은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사내를 향해 인상을 긁었다.

오른쪽 셔츠 한쪽에 전에 보이지 않았던 액체가 묻어 있는 게 보였기 때문에 최강철은 한동안 사내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천천히 이성일을 이끌고 걸음을 옮겨 나갔다.

불길한 예감으로 인해 뒤통수가 뜨끈거렸다.

워낙 민감한 상황이었고 이성일이 계속해서 불안감을 조장했기 때문에 든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알 수 없는 액체가 자신의 셔츠에 묻은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컨벤션 홀로 들어서자 자신을 반기는 플래시 불빛들이 유성처럼 터졌다.

여유 있게 손은 들어주고 단상을 향해 다가갔다.

이미 엔도 쪽에서는 단상에 놓인 탁자에 앉아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대단한 숫자다.

단순히 기자만 300명이 들어찼으니 단일 행사로 이만한 기자들의 숫자를 본다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기자들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심지어 남미와 동아시아의 기자들이 전부 몰려들었기 때문에 꼭 인종 전시장을 보는 것 같았다.

최강철은 윤성호와 함께 단상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기 전에 엔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면상을 갈기고 싶었으나 공식적인 자리였으니 최대한 예의를 지켜줄 필요가 있었다.

엔도는 최강철이 손을 내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손을 잡아왔다.

멋들어진 회색 양복.

행커치프까지 꽂아놨기 때문에 놈은 마치 카바레에서 활동하는 제비처럼 보였다.

웃어?

자신이 내민 손을 잡으며 엔도가 웃었다.

사람에게는 감각이 있고 상대의 웃음이 어떤 것인지 금방 때려잡는 눈치가 있다.

최강철의 얼굴이 슬쩍 굳어진 것은 놈의 웃음에서 알 수 없는 미묘한 경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천천히 자리에 앉자 사회자의 진행에 의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외신들의 질문은 최강철이 훈련을 제대로 못 한 것에 집중되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은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허리케인, 훈련을 보름 정도밖에 하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시합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요?”

“사람에게는 사정이라는 게 있고 그 사정이란 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저는 비록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싸울 거란 약속을 드립니다.”

“도전자 엔도 선수는 5개월 동안 피나는 훈련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불리한 시합이 될 것 같은 우려가 드는군요. 혹시 시합 연기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훈련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시합을 연기하는 건 전사가 할 짓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제가 해야 할 훈련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준비했기 때문에 절대 불리한 시합이 되지 않을 거라 자신합니다.”

최강철이 강한 톤으로 대답하자 기자들의 질문은 엔도에게로 돌아갔다.

“엔도 선수, 이 시합을 위해 정말 고된 훈련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챔피언인 허리케인이 제대로 시합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수는 스스로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훈련을 못 한 것은 주변 관리를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뿐이니 모든 결과는 스스로가 져야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패배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선수는 링에 오르는 순간 모든 변명에서 당당하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엔도 선수는 이번 경기를 승리할 것이라 자신합니까?”

“저는 일본의 혼 ‘후지산의 호랑이’입니다. 이번 경기에서 일본인의 투혼이 얼마나 무서운지 전 세계인들 앞에서 확실하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불어온 허리케인은 후지산의 호랑이로 인해 갈가리 찢겨질 테니 두고 보십시오.”

* * *

기자회견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일행은 이성일이 한 시간이나 시내로 나가 사온 초밥을 먹었다.

분위기가 무거웠다.

엔도가 기자회견에서 보인 자신감은 도전자로서 언제나 있었던 것이지만 생각할수록 기분 나빴다.

다른 선수가 떠벌인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 한국에서는 내일 벌어지는 시합으로 인해 전 국민이 초긴장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만약 경기에서 진다면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시합을 앞둔 상태에서 아무 잘못도 없는 국민의 영웅을 오랫동안 조사한 검찰은 물론이고 정권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기에 더욱 이겨야 한다.

한국은 경제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고 있는 상태였는데 자신으로 인해 다시 소요에 휘말리게 된다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 씨발 놈, 말 더럽게 싸가지 없이 하대. 하여간 일본 놈들은 성질 안 내면서 어떻게 그리 상대를 열 받게 만들 수 있지?”

“그것도 능력이다.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 사근거림과 뒤통수치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 자식들은 지들이 필요하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굴지만 약자라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칼을 휘두르거든.”

“관장님, 그 말씀은 지금 강철이가 약자라는 겁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넌 꼭 내가 뭐라고 그러면 시비를 걸더라.”

이성일이 신경질을 부리자 윤성호가 자신의 말을 후회하는 표정으로 꼬리를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워낙 훈련량이 적었고 심적인 타격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불리한 건 사실이었지만 자신이 해야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강철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비실비실 웃었다.

“이 초밥, 맛있네. 초밥은 일본이 원조라드만 제법 맛있는데?”

“넌 그게 목구멍으로 들어가냐. 아까 그 새끼 지랄 떨 때 왜 가만히 있었어. 외신 기자들이 네가 가만있으니까 전부 엔도가 이길 것처럼 질문하잖아!”

“설마 내가 그런 자식한테 지겠냐? 걱정하지 마라. 기자들이 떠드는 건 아직도 허리케인이 어떤 놈인지 몰라서 그래.”

“하여간 저놈의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몰라.”

여전히 자신감을 보이는 최강철의 태도에 이성일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워낙 험한 꼴을 봤기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질 만도 하련만 최강철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때, 초인종이 길게 울렸다.

이성일이 급히 일어나 문을 열어주자 돈 킹과 톰슨이 다급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허리케인, 자네 괜찮은가?”

“왜 그러십니까?”

“이거, 조사해 보니까 신경 둔화제더구만. 어디 보세, 혹시 찔린 건 아니야?”

손에 들고 있는 셔츠를 흔들면서 돈 킹이 최강철에게 다가왔다.

혹시나 몰라서 기자회견이 끝나고 셔츠에 묻은 액체 성분에 대해 조사해 달랬더니 돈 킹은 그사이에 확인해 본 모양이었다.

왜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 것일까.

돈 킹이 다가와 몸을 더듬으려 하자 최강철이 슬쩍 물러서며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를 들어 올렸다.

거기에는 빨간 선이 짙게 그어져 있었는데 액체가 묻었던 곳이었다.

“이런 개새끼들!”

“강철아, 괜찮냐!”

이성일과 윤성호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돈 킹이 가져온 셔츠를 뺏어 들며 이를 갈았는데 뒤늦게 상황을 눈치채고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신경 둔화제는 몸속에 들어가야 효력을 발휘해요. 그저 스쳤을 뿐이니 아무런 문제없을 겁니다.”

“시합 중단해. 이런 짓을 하는 놈들과 무슨 시합을 해. 안 그렇습니까, 돈 킹!”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지금이라도 이걸 가지고 제소할 수 있어. 비열한 짓을 하면서까지 타이틀을 따려고 하다니 정말 한심한 놈들이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윤성호가 떠들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돈 킹이 동의를 해왔다.

그는 거액을 주고 시합을 연기까지 하려던 사람이었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자 당장에라도 시합을 중단할 기세였다.

하지만 최강철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짙게 쓴웃음을 지었다.

“두 분 다 침착하세요. 그건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증거가 될 수 있다 해도 그자들이 인정할 리 없어요. 자칫 우리만 바보가 될 수 있단 말입니다. 훈련을 제대로 못해서 핑계를 대는 거라 주장하면 논리에서 밀리게 돼요.”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싸워야죠. 허리케인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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