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56화 (156/308)

[156]

* * *

이창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며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온 국민의 관심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경기를 코앞에 남겨둔 채 최강철 죽이기에 나선 검찰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도 안다.

언론 쪽에 종사하고 있었으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누군가의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답답했다.

지금 방송국의 윗선 쪽에도 누군가의 압력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다는 정보가 들려왔다.

최강철에 대한 악의적인 뉴스를 반복해서 진행하라는 압력이었다.

정권의 칼날이 작용하면 방송국은 이를 거역하지 못한다.

기자의 양심.

그런 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군부독재로 인해 갈가리 찢겨진 지 이미 오래였다.

오늘도 이창래는 커피를 마시며 신문에 나온 뉴스를 봤다.

김도환이 속해 있는 스포츠서울을 비롯해서 몇몇 복싱 잡지가 검찰의 조사에 문제 있다며 최강철을 두둔했으나 대부분의 대형 신문들은 점점 더 원색적인 비난의 강도를 높여가는 중이었다.

어둠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다는 건 거품을 물며 최강철의 무죄를 주장하던 김도환이 보직에서 쫓겨나 대기 발령이 났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커피가 쓰다.

도대체 이놈의 나라는 영웅을 그냥 두는 꼴을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최강철과 만나 그동안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거품을 물고 분노를 터뜨렸다.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잘못이 있다면 신도시 계획이 구상되기 전에 거대한 땅덩어리를 샀다는 것뿐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놈들은 신도시 계획을 미리 알고 투자한 놈들도 있었으나 최강철이 땅을 산 시기는 그것보다 훨씬 전의 일이었으니 그의 말대로 단순 투자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여론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단순하다.

그토록 최강철을 열렬하게 응원하며 영웅으로 부르던 국민들은 단 한 번의 음모에 태도를 바꿔 원색적인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국민이 시합을 이겨달라면서 응원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검찰 쪽에서 흘린 정보를 언론이 반복해서 세뇌시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겠지만 이창래는 국민들의 반응을 보며 답답한 한숨을 숨기지 못했다.

따르릉, 따르릉…….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이창래가 인상을 썼다.

지금은 아무 짓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무기력함.

맞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이 몰려오자 모든 것에 짜증이 났다.

“여보세요?”

-이창래 국장님이신가요?

“그렇습니다만…….”

-방송국 기자님들한테 여러 번 전화했어요. 그랬더니 국장님과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는 대답을 하더군요.

“저와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거죠?”

-최강철 선수에 관해서 이야기를 드릴 게 있어요.

받고 싶지 않았던 전화를 받으며 심드렁하게 대답을 하던 이창래의 눈이 여자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번쩍이기 시작했다.

감이다. 그것도 이 여자의 전화가 시한폭탄처럼 강력할 것이라는 직감 말이다.

* * *

“국장님, 이건 우리가 다룰 주제가 아닙니다.”

“최강철은 세계 챔피언이다. 스포츠국에서 못 다룰 이유가 뭐냐?”

“잘 아시잖습니까. 저 위쪽에서 찍어 누르는 일인데 우리가 총대를 메게 되면 다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천 부장은 하지 말자는 이야기야?”

“그건…….”

“자네, 최강철을 잃고 싶은가? 그것만 말해.”

이창래가 타는 듯한 눈으로 노려보자 천신호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저는 최강철을 좋아합니다. 그 친구, 나이답지 않게 진중하고 소탈한 성격을 가지고 있잖아요. 국장님도 아시겠지만 이번 건만 아니었다면 고아원에 대한 뉴스를 내보낼 생각이었습니다. 벌써 거기에 10억을 썼더군요. 앞으로도 확장해 나간다고 하니 계속 늘어날 겁니다. 정말 미치고 펄쩍 뛸 일이죠. 돈 있는 놈치고 그런 짓을 하는 게 몇 놈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어쩔 거야?”

“그런 놈은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살려놔야 해요. 영웅이 없는 시대에서 그 친구는 유일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니 살려야죠. 저는 5번이나 최강철한테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까짓것 하죠. 밥값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씨발, 고맙다.”

“국장님, 생각해 놓으신 방법은 있겠죠?”

“당연히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잘려도 내가 잘리겠단 말이야. 그러니까 천 부장은 칼같이 움직여 주기만 해.”

“윗선은요?”

“모르게 해야지. 그게 우리 스포츠국의 장점이잖아.”

MBC에서 최강철 특집이 방송된 것은 시합이 한 달 조금 남았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특집 방송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안 좋았기 때문에 윗선의 제동을 받았으나 시간 때우기라는 이창래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강행되었다.

현재 최강철이 비난을 받고 있으나 시청률을 확보하는 데 최강철과 엔도의 대결에 관한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변명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되자 최강철과 엔도에 대한 분석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포문을 연 것은 이종엽이었다.

그는 최강철 경기를 여러 번 중계하면서 승리에 대한 감동으로 눈물까지 흘렸던 사람이었다.

“현재 최강철 선수가 국민들의 비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분당에 불법으로 땅 투기를 해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는 것인데요. 상당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시합을 앞둔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더욱 안타까운데 저희 방송국으로 이것이 음모라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천신호 부장님, 어떻게 된 일이죠?”

“맞습니다. 이틀 전 저희 방송국으로 익명의 제보자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여자의 목소리는 변조되어 있었으나 그녀가 말한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여당의 3선 국회의원과 검찰총장이 일본의 유력 국회의원과 술을 마시면서 최강철 선수가 시합에서 지도록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었다.

“천 부장님, 이 여자분이 누구길래 이런 엄청난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거죠?”

“그들이 자주 가는 요정에서 일하는 분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커다란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더군요.”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인데요. 천 부장님은 왜 그들이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로서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도 밝혀지지 않았고요. 다만, 제 생각에는 세계 최강인 최강철 선수를 쓰러뜨려 일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였지 않은가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실 확인은 해봤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저희는 스포츠를 담당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지금 최강철 선수가 겪고 있는 불행에 대해 나서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그가 우리의 영웅이란 점을 감안해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최강철 선수가 불법적인 투기를 했다고 계속해서 언론에서 뉴스가 나오던데 그것도 조사해 보셨다면서요?”

“조사해 봤습니다. 저는 불과 하루 만에 최강철 선수의 부동산 매입 과정과 토지 보상 과정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최강철 선수는 신도시 개발이 논의되기 훨씬 전에 이미…….”

천신호는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직접 보여주며 최강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아예 조사한 자료를 국민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현황판으로 만들어 나왔는데 정확한 수치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왜 검찰 쪽에서는 계속 최강철 선수를 조사하는 거죠?”

“그게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검찰에서는 조사를 한다는 이유로 최강철 선수가 훈련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까 전화를 해온 제보자의 말이 신빙성을 더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단 하루 만에 최강철 선수에 대한 자료를 조사했는데 많은 언론이 그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최강철 선수를 비난하는 논조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그런 커다란 음모의 과정이 아닐까란 의심을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최강철 선수는 영웅이라 부르기에 충분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여준 사람입니다. 이런 선수가 음모에 빠져 쓰러지지 않도록 반드시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명명백백 밝혀내야 합니다.”

MBC의 특집 방송이 나가자 전 국민들의 입에서 욕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아직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멘트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최강철에게 향했던 국민들의 분노는 방향을 돌려 무차별적으로 요정에 있었다는 자들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기춘과 검찰총장은 일국의 국회의원과 정부의 고위 관료가 그런 매국적인 일을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냐며 펄펄 뛰었다.

그들은 제보자와 대면을 해서라도 자신들의 결백을 밝히겠다는 주장을 했고 일본 의원의 정체를 밝히라며 MBC를 향해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들의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MBC 특집 방송을 시작으로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각 신문의 기자들이 봇물처럼 최강철의 무죄에 대해서 주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워낙 자료가 명백해서 검찰 조사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언론의 특성은 누군가 총대를 메는 순간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처럼 폭발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누군지 알 수 없었던 권력층의 움직임이 드러났고 만약 일이 잘못되어도 총대를 멜 자가 나타난 이상, 그동안 최강철에게 호의를 가졌음에도 숨죽이고 있던 기자들이 봇물 터진 것처럼 일어섰다.

여당인 민정당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국민들의 여론이 악화일로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그냥 둔다면 정권 자체의 존립에 커다란 상처를 받을 만큼 국민들의 진실 규명 요청이 너무 거셌다.

민정당은 정치 공작으로 몰고 갔다.

유기춘과 검찰총장이 만났다는 일본의 국회의원은 한국에 들어온 적도 없었다면서 야당은 정치 공작을 그만두라는 주장을 펼쳤다.

야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최강철의 무죄가 분명함에도 훈련조차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사실을 들며 두 사람이 모두 동경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공세를 이어나갔다.

해답도 없는 지루한 공방.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지루한 정치 공방은 결국 해답을 찾아냈는데, 그 결과는 검찰총장의 해임으로 끝이 났다.

* * *

최강철은 검찰 조사실을 나서면서 쓴웃음을 뱉어냈다.

고개를 숙인 채 다시는 부를 일이 없을 것이라는 담당 검사의 얼굴이 더없이 불쌍하게 보였다.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거대한 조직에 포함된 개체는 명령을 거부하는 순간 죽음 속으로 내몰린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꼈다.

정의가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청렴하며 능력 있는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담당 검사도 그런 지도자가 이끄는 조직에 속해 있었다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쳐내며 사회 정의를 위해 봉사하고 있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윤성호가 맨발로 뛰어나왔다.

“어떻게 됐어?”

“이제 다시는 부르지 않겠답니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개새끼들, 생사람을 그렇게 때려잡더니 아무런 말도 없디?”

“미안하다더군요.”

“사람 죽여놓고 미안하다면 다야!”

윤성호의 얼굴이 단박에 붉어졌다.

생각할수록 열이 받아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체육관 운영 과정에서 탈세를 했다는 국세청의 조사를 당했지만 보름 만에 빠져나왔기 때문에 혼자 체육관을 지켰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놈이 어디 있을까.

국세청에서는 십 원짜리까지 탈탈 뒤져서 탈세 사실을 밝혀냈는데 그 금액이 백만 원을 훌쩍 넘었다.

돈을 내면서 악을 바락바락 썼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런 것 때문에 훈련을 하지 못하도록 체육관을 때려 막은 놈들의 행동이 너무 분해서였다.

일이 벌어지면서 돈 킹을 통해 시합의 연기를 건의했으나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일본 측의 대답을 들었다.

놈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법에 의해 신체적인 구속을 당하면 당연히 시합은 중단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의 시합 연기는 계약 파기 조항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말은 간단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워낙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시합이었으니 계약 파기를 했을 경우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내야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윤성호는 혼자 새카맣게 애를 태웠다.

그렇다고 검찰 조사를 받으며 힘들어하는 최강철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17일.

그나마 다행인 건 시합 장소가 바로 가까운 일본이라는 것뿐이었다.

“강철아, 어쩌면 좋겠냐?”

“뭘 말입니까?”

“이번 시합 말이다. 다시 한번 연기 신청해 볼까? 이대로는 안 돼. 필요하면 위약금을 무는 한이 있더라도…….”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린 지금까지 훈련다운 훈련을 하지 못했어. 더군다나 성일이까지 너와 같이 들어가는 바람에 전략조차 제대로 마련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이대로 시합을 할 수는 없어.”

“관장님, 관장님은 억울하지 않으세요?”

“씨발, 당연히 억울하지.”

“남자는 말입니다. 억울한 걸 참는 순간 병신이 되는 겁니다. 나는요, 그게 겁나요. 시합을 연기하면 내 분노가 지금보다 누그러들지 모른다는 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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