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국세청장은 세무국장을 호출하며 인상을 바짝 긁었다.
벌써 몇 번째 전화인지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안 일인지 방귀깨나 뀐다는 국회의원들이 돌아가면서 윤성호의 체육관 설립 과정에서의 세금 포탈과 최강철의 부동산 취득 과정의 불법에 관해서 조사하라는 압력을 해오고 있었다.
전부 그와 연관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가 청장에 오를 때까지 배경이 되어준 의원들로서 그에게는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고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강철은 현재 일본의 영웅이라 불리는 엔도와 시합이 잡혀 있는 상태로 국민들의 관심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중이었다.
그들을 조사한다는 건 아예 시합 준비를 못 하게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시합이 두 달 조금 넘게 남은 상태에서 이런 압력이 들어온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그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다는 건 권력층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청장님, 부르셨습니까?”
세무국장이 서류철을 옆에 끼고 득달같이 달려와 앞에 서자 국세청장 전기웅이 손가락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서서 할 이야기가 아니란 뜻이다.
그랬기에 세무국장 임철훈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생겼어.”
“말씀하십시오.”
“최강철이 불법으로 분당 땅을 취득해서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스태프들도 마찬가지고.”
“복싱 선수 최강철 말입니까?”
“그래, 윗선에서 전화가 여러 통 왔어. 그러니 상황이 좋지 않지만 조사를 시작해야 될 것 같아. 자네 쪽에서 움직여 주게.”
“청장님, 최강철은 시합을 코앞에 둔 놈입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하던 임철훈의 음성이 커졌다.
그 역시 복싱광으로 열렬한 최강철의 팬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번 경기만큼은 무조건 이겨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일본 놈한테 진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않았고, 만약 그렇게 되면 한강에 가서 빠져 죽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이번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강철을 조사하라니, 그는 번개를 머리통에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오랜 직장 생활을 통해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를 너무나 잘 안다.
청장의 말대로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면 보통 일이 아니란 뜻이다.
그건 청장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더럽게 일이 꼬였어. 하지만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단 말이야. 내가 알기로 우리만 총대를 메는 게 아냐.”
“그럼요?”
“검찰 쪽에서도 움직이는 모양이더라. 최강철의 부동산 취급 과정을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 같아.”
“청창님, 이러면 최강철은 훈련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설마 최강철을 죽이려는 겁니까?”
“이 사람아, 나도 답답해. 그러나 우리 본분이 뭔가. 불법을 잡아내서 국민들에게 정의를 보여주는 것이잖아.”
청장의 말에 임철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말은 그럴 듯했으나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권력층에 있는 수많은 놈들이 불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은 채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그럼에도 국세청에서는 눈치를 보면서 아예 접근조차 못하고 있지 않은가.
사냥개다.
자신들은 사냥개에 지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공무원으로서의 본분과 충성은 말만 번드르르한 핑계일 뿐이고, 자신들은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수많은 사람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사냥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최강철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영웅이었고 다른 놈도 아닌 일본 놈과 시합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청장님, 최강철은 국민들의 영웅입니다.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시합이 끝난 후 하면 안 되겠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우린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안 됩니다. 도대체 이유가 뭐란 말입니까?”
“자네, 언제 윗선에서 사람을 죽일 때 이유를 대는 것 봤어? 그리고 우리가 언제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는가. 그냥 죽이라면 죽이는 거지.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잖아.”
* * *
최강철이 성호체육관에 캠프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한 것은 한 달 전부터였다.
언론을 통해서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겨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해오는 걸 보면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안다, 그들의 마음을.
나의 아버지도 일제시대 때 머슴살이를 하면서 일본인들에게 채찍을 맞았으니 어찌 그 원한을 잊을 수 있을까.
열풍의 원인은 간절한 복수심과 자존심의 회복이었을 것이다.
복싱 하나로 그런 것들이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겠지만 국민들은 자신의 경기를 통해 잠시나마 위안을 받고 싶은 게 분명했다.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으나 이번 경기는 더욱더 마음을 굳게 먹고 피지컬을 끌어올리기 위해 맹훈련을 거듭했다.
엔도와의 시합이 결정되자 미국에서 득달같이 날아온 윤성호의 마음가짐도 그와 비슷했기에 최강철을 독려하는 말 한마디마다 반드시 승리해야 된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사건이 터진 것은 체력을 바짝 끌어올린 후 본격적으로 엔도와의 시합을 위해 기량을 점검하기 시작할 때였다.
성호체육관의 3층은 전쟁에 출전하기 위한 진지로 변해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10여 명이나 들이닥쳤다.
“윤성호 씨가 누굽니까?”
“전데요?”
“우린 국세청에서 나왔습니다. 윤성호 씨가 세금 탈루를 했다는 제보가 들어와서 조사가 필요합니다. 매출 전표를 비롯해서 그동안 신고 자료, 그리고 건물에 대한 자료들도 전부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미안하지만 최강철 선수와 이성일 씨도 마찬가집니다. 분당 땅을 취득하면서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조사도 같이해야 되니까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날벼락이다.
훈련을 하느라 땀투성이로 있던 최강철이 사내의 말을 들은 후 입술 끝을 끌어 올렸다.
뭔가 냄새가 지독하게 고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금 탈루?
토지 보상으로 받은 돈은 그 출처가 명확해서 탈루를 할 방법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국세청이 덮쳤다는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윤성호까지 끌어들였으니 이들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갑자기 공항에서 카퍼레이드를 해야 한다며 자신을 강제하려던 양복의 말이 떠올랐다.
국가가 곧 정권이고 정권은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정권을 거역하는 순간 커다란 위험에 직면할 것이란 말이었다.
그것을 최강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권이 힘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정권이 원하는 대로 살기는 싫었다.
사무실은 곧 난장판으로 변했다.
10여 명의 국세청 직원들이 체육관을 전부 뒤져간 후, 윤성호가 수시로 불려갔고 최강철도 3번이나 다녀왔다.
문제는 국세청이 손을 뗀 후 검찰에서 최강철과 이성일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검찰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검찰은 일주일에 한 번씩 불러 최강철과 이성일을 조사했는데 한번 부르면 기본이 이틀 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제시한 제목은 미리 국가의 신도시 계획을 알고 미리 땅을 사들여 엄청난 이익을 취했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그가 땅을 취득한 것은 개발 구상안이 나오기 훨씬 전이었으니 그들의 말은 전혀 신빙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지독하다. 그리고 집요했다. 집 안을 샅샅이 뒤졌고 심지어 본가와 압구정의 커피숍과 가족들의 재산 취득 과정까지 조사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유력 변호사를 선임해서 맞섰으나 검찰의 조사는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갔고 최강철은 훈련을 하지 못한 채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다.
돈 킹까지 나서서 움직였지만 한번 시작된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완벽한 올가미에 걸린 느낌이었다.
* * *
<최강철, 분당 땅 불법 투기 의혹. 검찰 조사를 받다>
조선일보가 먼저 터뜨렸고 그 뒤를 수많은 신문이 따랐다.
언론은 검찰에서 흘린 정보를 사실인 양 그대로 작성해서 올렸기 때문에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최강철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상관없다.
오직 결과가 중요할 뿐이었다. 도시가 개발되기 전 엄청난 땅을 사들여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국민들은 최강철의 행동에 비난을 퍼부었다.
세상 인심은 참으로 박하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엄청난 대전료를 받으며 떵떵거리고 사는 최강철이 땅을 사서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돈을 벌었다는 걸 사람들은 결코 이해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최강철은 침착하게 상황을 관조하며 주시했다.
자신의 캠프는 박살이 났고 훈련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검찰은 의혹만 계속 방귀처럼 뿜어내며 자신을 구속하지 않았다.
과연 이들이 원하는 게 뭘까?
정말 정권에서 자신을 타깃으로 움직였다면 시합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박살을 내야 하는데 조사만 지속할 뿐 구속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 * *
윤미영은 신문에서 계속 떠들고 있는 최강철의 기사를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그들의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그때는 최강철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술 시중을 드느라 그냥 흘려 버렸는데 막상 최강철의 이름이 연신 신문에 오르내리자 그들이 지었던 비열한 웃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황자연을 찾았다.
황자연은 그녀들에게 대모 역할을 해왔고 성격이 활달해서 아가씨들의 고민을 자주 해결해 주는 사람이었다.
“언니, 할 말이 있어요.”
“뭐니?”
대기실에서 커피를 마시던 황자연이 윤미영의 심각한 얼굴을 보면서 살짝 얼굴을 굳혔다.
비록 이곳이 최고급 요정이었으나 일하는 아가씨들에게는 거의 모두 불행한 현실이 있었기에 그녀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더군다나 윤미영은 ‘월영’의 마스코트나 다름없는 아이였으니 그녀가 찾아오는 순간 어떤 고민도 해결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윤미영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언니, 아무래도 최강철 선수 말이에요. 그 사람들의 올가미에 걸린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니?”
“저번에 유기춘 의원하고 검찰총장이 일본 국회의원 하고 술을 마셨잖아요…….”
윤미영의 입에서 그 당신의 이야기가 나올수록 황자연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오한이 돋았다.
최강철이 처한 현재 상황은 윤미영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우, 미영아. 이 말 다른 사람한테 한 적 있니?”
“아뇨, 없어요.”
“그럼 너는 가만히 있어.”
“왜요. 최강철 선수는 어떡하고요!”
“그 사람들, 무서운 사람들이야. 만약 네가 이야기했다는 게 알려지면 커다란 보복을 당할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알아요. 하지만 그럼 최강철 선수가 불쌍하잖아요. 이러다가 시합에서까지 지면 여론이 안 좋아져서 구속을 면하지 못할 거예요.”
윤미영이 안타까운 얼굴로 울먹거렸다.
요정에서 일하며 수없이 더러운 꼴을 봤지만 이렇게 억울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음모.
그것도 일본인이 껴 있는 이 음모는 너무 더럽고 치사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황자연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으며 몸을 움츠렸다.
그들이, 그 음모를 펴고 있는 자들이 가진 힘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황자연의 말처럼 나섰을 경우 그녀는 어쩌면 사회적으로 완전 매장되어 앞으로 창창하게 남아 있는 인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갈지도 몰랐다.
두려웠다. 그럼에도 이렇게 입을 닫은 채 살아가기에는 쉽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언니, 최강철 선수를 구하고 싶어요. 그 사람은 잘못이 없잖아요.”
“알아, 그러니까 넌 가만히 있어.”
“어쩌려고요?”
“내가… 해볼게.”
“언니가요?”
“이대로 손을 놓고 최강철 선수가 망가지는 걸 볼 수는 없어. 그 사람은 유일하게 영웅이란 칭호를 받고 있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무너지게 만들 수는 없잖니. 개 같은 놈들한테 무너지기엔 너무 억울하잖아. 그놈들이 원하는 게 최강철 선수가 지는 거라고 했지? 너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런 결과를 원한다고 생각해?”
“아뇨, 절대 그렇지는 않아요. 지금 사람들이 화를 내는 건 그 사람들이 파놓은 올가미에 걸렸기 때문이에요. 나는 최강철 선수가 꼭 이겼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래. 그러니까 최강철 선수는 반드시 이겨야 해. 그리고 이젠 정말 시간이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