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 * *
최강철은 델 컴퓨터보다 시스코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델 컴퓨터의 장래성보다 시스코의 미래가 훨씬 크고 밝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시스코는 사세를 확장하는 동안 은행 융자 대신 최강철의 자산이 집중 투자 되면서 마이다스 CKC의 지분이 76%까지 오른 상태라 그림자 경영의 모태가 되는 회사였다.
시스코는 작년 3,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420만 달러의 수익이 났지만 아직도 계속되는 공장 증설과 사무실 추가 개설, 고객 전용 웹사이트 개발 및 인원 충원 등으로 인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벌써 마이다스 CKC를 통해 투자된 금액만 해도 3,000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어 창업주인 레오나드 보삭의 지분율은 24%로 축소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전문 경영인 키애른 파크의 시스코 주식 상장 요청을 계속 유보시켰다.
지금은 아니다.
조만간 시스코는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어마어마한 실적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주식 상장을 늦출 필요성이 있었다.
최강철이 샌프란시스코의 시스코 본사를 찾은 것은 시합이 끝나고 15일이 지난 후였다.
마이다스 CKC의 대표 자격으로 서지영과 회계 담당 부사장 황인혜가 그를 수행했으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 키애른 파크는 최강철을 향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시스코의 실질적인 보스가 최강철이라는 사실을 아는 건 그와 보삭, 그리고 샌디러너 정도가 전부였다.
레오나드 보삭은 기술 담당 부사장을 맡았고 샌디러너는 고객 담당 부사장이었는데 최강철은 그들을 회의에 참석시켰다.
키애른 파크와 보삭 부부는 관계가 좋았다.
최강철이 유일하게 시스코의 사장을 맡고 있는 전문 경영인 키애른 파크에게 부탁한 건 보삭 부부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회사에 피해가 되지 않는 한 무조건 들어주라는 것이었다.
시스코를 창립한 보삭은 자신의 지분율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것 때문에 위축될 가능성이 있어 자칫 회사와 척을 지게 되는 걸 피하기 위함이었다.
“보삭, 샌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그럼요, 우리 부부는 이번에 벌어진 허리케인의 방어전을 맥주 마시면서 같이 봤답니다. 아주 열심히 응원했어요. 이번 경기도 정말 대단하더군요. 우린 허리케인의 절대적인 팬입니다.”
“고마워요. 회사일 하면서 불편한 건 없죠?”
“하하하… 사장님이 워낙 잘해주셔서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어떨 때는 제가 사장인 것 같아서 미안할 정도예요.”
“파크 씨가 능구렁이라서 그래요. 보삭과 샌디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눈치를 보는 거 아니겠어요?”
“맞습니다. 보스는 복싱하면서 어떻게 그런 걸 귀신같이 아시나요. 저야 경영만 할 뿐 보삭 부부가 실질적인 업무를 도와주지 않으면 허수아비잖아요. 그러니 받들어 모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최강철이 농을 던지자 키애른 파크가 맞장구를 쳐 왔다.
그는 최강철의 의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편하게 회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럼 간단하게 현안 사항만 들어볼까요. 마이다스 CKC에 요청할 사안만 말씀해 주세요. 오늘 저희가 온 것은 중요하게 상의할 일이 있어서 온 거니까 사장님이 추가로 필요한 투자 금액에 대해서만 말씀하는 것으로 회의를 진행하죠.”
“알겠습니다. 시스코는 매출액이 급격하게 신장되고 있어 주별로 생산 공장을 추가시켜야 합니다. 이미 주요 도시를 커버하기 위해 20개의 공장을 만들었지만 생산성을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20개의 공장이 추가로 필요해요. 더군다나 고객 지원 센터도 계속 확장시켜야 합니다. 우리 시스코는 제품의 특성상 서비스가 반드시 뒤따라야 됩니다. 더불어 인원도 대폭 충원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금액은 얼마죠?”
“올해 중으로 최소 3,000만 달러는 추가로 투자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꽤 많은 금액이군요.”
“지금까지 매출이 계속 상승하고 있지만 순이익은 420만 달러에 불과하거든요. 이 정도의 이익 가지고는 우리가 필요한 시설 투자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보삭 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도 사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 역시 동의해요. 제가 맡고 있는 고객 부문에서도 상당한 투자가 필요한 실정이에요.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고객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린 고객 전용 웹사이트를 운영할 계획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 투자가 필요합니다.”
최강철의 시선이 대답을 한 보삭에 이어 샌디에게 돌아가자 그녀 역시 지체 없이 동의를 해왔다.
최강철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금의 투자는 공짜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시스코는 돈을 잡아먹는 하마였고 이곳에 오기 전 미리 보고받은 것처럼 키애른 파크의 요청대로 추가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무려 6,0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이 들어간다.
보삭 부부에게 동의 여부를 물은 것은 단순한 의견을 물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를 내놓으면 상대도 하나를 내놓아야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보삭, 저는 시스코를 운영하면서 은행 융자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추가 투자가 결정되어도 융자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투자 금액은 너무 크군요. 당신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저희 부부의 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허리케인이 3,000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한다면 저희 부부의 지분은 당연히 줄어들어야죠. 하지만 저희 부부는 재무 쪽에 문외한이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회사에 적을 둔 상태에서 변호사와 상의하기는 싫습니다. 허리케인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레오나드 보삭의 표정은 편안했다.
자신이 시스코를 만들었지만 이렇게 커다란 회사로 성장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최강철의 마이다스 CKC는 회사가 자금을 필요로 할 때마다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자신의 지분율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없었다.
지금 그들 부부의 연봉은 둘이 합쳐서 30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었다.
미국 전체를 통틀어도 이런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욕심을 부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굳어졌던 최강철의 얼굴에서 웃음이 흘러나온 건 보삭의 대답을 듣고 난 후였다.
“황 부사장님, 보삭 부부께 설명해 주세요.”
“예, 보스.”
최강철의 지시를 받은 황인혜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런 후 데이터와 도표가 가득 들어 있는 보고서를 향해 시선을 잠깐 두었다가 보삭 부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시스코의 총 자산액은 4,000만 달러 정도예요. 그중 마이다스 CKC의 자본금이 3,200만 달러고 순이익으로 충당된 것이 800만 달러군요. 이런 상황에서 보삭 부부의 지분율은 24% 였어요. 재무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그동안 저희 보스께서 보삭 부부의 공로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견을 거듭 피력하시는 바람에 그 지분율이 유지되었어요. 인정하시나요?”
“인정합니다. 저희 부부는 원천 기술 외에 아무것도 투자한 게 없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저희 회사가 3,000만 달러란 거금을 투자하게 되면 시스코의 총자산은 7,000만 달러로 늘어나게 되죠. 반면에 마이다스 CKC의 투자금은 무려 6,200만 달러입니다. 산술적으로 보삭 부부의 지분율은 아무리 크게 잡아도 3% 수준 정도예요. 이건 회계 전문 변호사에 물어보시면 금방 아실 겁니다. 여기 분석 자료가 있으니까 필요하시면 가져가셔도 돼요.”
“저희 부부의 지분율을 3%로 줄이겠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물론 그렇게 건의했지만 보스께서는 그럴 생각이 없더군요. 보스는 보삭 부부의 지분율을 10%로 확보해 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음…….”
“회사의 규모가 배 이상 늘어나면서 매출은 앞으로 크게 올라갈 것이고 이익도 급격하게 상승할 거에요. 하지만 투자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어요. 시스코가 사업이 안정화 될 때까지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할지 몰라요. 그럼에도 우리 보스께서는 보삭 부부의 지분율을 더 이상 낮추지 않겠다고 하시네요. 두 분이 있었기에 시스코가 생겼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황인혜가 사무적인 얼굴로 바라보자 보삭의 얼굴에서 서서히 격한 감정의 물결이 자리 잡았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최강철에게 향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감정을 숨길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허리케인. 우리 부부를 이렇게 생각해 주니 최선을 다해서 시스코의 발전을 돕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오히려 제가 고맙군요. 자, 그럼 이 일은 그 정도에서 정리하는 것으로 하고 파크 씨는 필요한 자금 계획서를 세부적으로 작성해서 마이다스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검토가 끝나는 대로 곧 자금을 송금해 드리죠.”
“보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지금부터는 오늘 제가 온 진짜 이유에 대해서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서 사장님, 그것 좀 꺼내보시겠습니까?”
“예, 보스.”
최강철의 지시로 서지영이 가방에서 서류 더미를 꺼내 일행 앞으로 나눠주었다.
서류의 분량은 30여 쪽이나 될 정도로 두꺼운 것이었다.
“이 서류를 저와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최강철이 일행들에게 자신이 구상해 온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일반화되었을 때를 대비한 포털 사이트의 구축 방안과 체계를 형성시키는 TREE, 그리고 내용 구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만든 것으로 야후와 네이버의 장점만 골라 모아 작성했다.
하지만 최강철이 일행에게 이야기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라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인터넷 쇼핑몰이다.
이것 또한 기본적인 체계도와 시스템 구성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작성되어 조금만 보완되면 실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최강철의 설명을 들은 키애른 파크와 보삭 부부, 그리고 서지영과 황인혜까지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직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 최강철이 그들의 눈에는 귀신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파크 씨가 해줄 일이 있습니다.”
“뭡니까, 보스?”
“이 안들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저는 시스코와 별도로 두개의 회사를 만들 생각입니다. 모든 비용은 마이다스 CKC에서 지원할 겁니다. 그에 대한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실무적인 것은 보삭 부부께서 진행해 주세요. 제가 알기로 보삭 씨는 이쪽 방면에 뛰어난 인재들을 많이 알고 계시니까 최상의 조건을 제시해서 스카우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지금 대부분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조건으로는 스카우트하기 힘들 텐데요?”
“스카우트에 필요한 비용은 제가 다 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요한 인재들은 무조건 데려오세요.”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일은 3년 이내에 끝마쳐야 합니다. 연구가 끝나서 결과물이 나오는 대로 특허 출원까지 완료해야 된다는 거 잊지 마시고 최대한 서둘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보삭 씨, 뭐죠?”
“지금 상황에서 이 아이디어들은 상용화가 어렵습니다. 인터넷은 정부가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사용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조만간 인터넷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될 겁니다. 우리는 그때를 대비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보스는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그렇게 될 테니까요.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있는 정부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법입니다.”
확신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잠자코 있던 키애른 파크가 나선 것은 보삭 부부가 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을 때였다.
“보스, 회사를 차리는 건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먼저 회사의 이름이 필요합니다. 보스께서 생각하신 이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회사의 이름은… ‘Horizon’과 ‘Empire’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