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제19장 물결처럼
“최강철 선수, 엄청난 포화를 퍼붓고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원투 스트레이트에 이은 양 훅, 번개 같습니다. 정말 엄청난 빠르기의 펀칩니다. 듀란, 뒤로 밀려납니다! 최강철 선수의 별명이 왜 허리케인인가를 보여주는 공격입니다.”
“이전 라운드와 다르게 거리를 확보하면서 치고 있습니다. 최강철 선수는 이제 듀란의 펀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떨어졌다 접근하는 최강철, 강력한 펀치가 연속으로 듀란의 안면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아, 듀란이 반격합니다. 무시무시합니다! 하지만 최강철 선수, 외곽으로 피했다가 다시 들어옵니다! 듀란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다시 공격을 시작합니다. 전율이 피어나는 공격입니다. 윤 위원님, 듀란이 많이 맞았습니다. 당황한 것 같지 않습니까?”
“최강철 선수의 전략이 변화무쌍하게 바뀌고 있기 때문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최강철 측의 전략이 너무 단순했다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최강철 선수 측에서 이렇게 무서운 전략을 만들어놓았을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앗, 말씀드리는 순간 최강철 선수의 강력한 원투 스트레이트, 양훅! 듀란, 듀란, 쓰러졌습니다! 아악! 다운입니다, 다운! 최강철 선수의 펀치를 맞고 듀란이 쓰러졌습니다! 고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듀란이 다운되었습니다!”
“폭발적인 연타에 맞았습니다. 엄청난 맷집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알려진 듀란이 쓰러졌습니다! 아, 일어나네요. 아직 경기 끝나지 않았습니다. 침착해야 됩니다!”
일어나서 중계를 하던 김종엽이 다운을 당하는 듀란의 모습을 보면서 거품을 줄줄 흘려냈다.
하지만 그건 윤근모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연신 번갈아가며 정신없이 떠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두 팔은 하늘로 번쩍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 그대로 중계를 이어갔다.
입을 떠억 벌린 채 기뻐하던 그들은 듀란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자 또다시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듀란 선수, 다운을 당했다가 일어났습니다! 경기가 다시 재개됩니다. 무섭게 돌진합니다. 라이트 훅, 이어지는 스트레이트. 듀란 선수, 다운당한 게 억울하다는 듯 맹공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강철 선수, 맞상대하지 않고 물러납니다. 돌진합니다! 최강철 선수, 듀란의 공격을 받아낸 후 다시 돌진합니다. 원투 스트레이트! 깨끗하게 들어갔습니다. 듀란 선수 대미지가 커 보입니다. 뒤로 물러나는 듀란. 최강철 선수 따라 들어갑니다! 맹폭입니다. 최강철 선수, 엄청난 폭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듀란 선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횝니다! 최강철 선수, 여기서 끝내야 합니다!”
“악! 최강철 선수의 라이트 훅. 듀란 선수 침몰합니다! 일어서지 못합니다! 일어서지 못합니다! 레프리, 카운터를 셉니다!”
“끝났습니다! 일어나지 못합니다!”
“만세, 레프리가 경기를 스톱시킵니다! 최강철 선수가 이겼습니다! 고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최강철 선수가 이겼습니다……!”
김종엽이 말을 하다 말고 윤근모의 몸을 덥석 끌어안았다.
지금 그는 자신이 중계해야 된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 윤근모의 몸을 끌어안고 연속해서 만세를 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 * *
“만세, 우끼키키… 만세!”
학생회관이 난리가 났다.
불리한 경기를 하던 최강철이 어느 순간 불사조처럼 살아나며 듀란을 두들기다 기어코 7회전에서 다운을 시키자 김철중이 옆에 있던 박정빈을 붙잡고 만세를 불렀다.
맨 앞에 앉아 있던 교수들조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는데 여대생들의 비명 소리가 학생회관을 가득 적셨다.
“일어나지 마! 그냥 쓰러져 있어. 아이고, 안 돼!”
“치명타가 아니었나?”
듀란이 캔버스를 짚고 카운터 7에 일어나자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던 김철중이 두 손을 붙잡고 이를 악물었다.
최강철의 펀치에 의해 듀란이 다운을 당했지만 곧장 일어나자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더군다나 듀란이 일어선 후 강력한 반격을 하며 최강철을 몰아붙이는 걸 보며 숨이 멎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듀란의 다운으로 인해 소란스러웠던 학생회관이 듀란의 반격에 일시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정적은 최강철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아우성이 되어 학생회관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러던 한순간.
콰앙!
최강철의 마지막 강력한 라이트 훅에 의해 듀란이 고목나무처럼 쓰러지자 일시에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겼다!”
“만세, 강철 선배가 이겼다!”
김철중과 유상식이 서로를 끌어안고 미친놈들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옆에 있던 박정빈이 가세했고 김현영도 세 놈을 덮치며 뛰어올랐다.
학생회관이 난장판으로 변했다.
그토록 점잖았던 윤문호 교수가 학생들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교수들이 박수를 치면서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다.
최강철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학생회관은 모든 사람이 일어나 서로를 부여잡고 춤을 추는 축제의 현장으로 변해 버렸다.
* * *
최강철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포효를 내질렀다.
승리에 대한 기쁨이다. 그러나 더욱 그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성원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카운터가 끝나는 순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던 윤성호와 이성일이 미친 사람처럼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들을 보며 최강철이 움찔했다.
분명 윤성호는 자신을 덮쳐올 것이고 이성일은 대가리를 들이밀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들뿐만 아니라 곱슬머리 찐빵머리 돈 킹을 비롯해서 톰슨과 수많은 사람이 링 위로 뛰어오르고 있는 중이란 것이었다.
“강철아, 이 자식아!”
“잠깐, 스톱. 기다려요.”
달려드는 두 사람을 멈춰놓고 최강철이 글러브로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 침착하게 합시다. 일단 듀란한테 인사부터 하고 올게요.”
최강철이 멀뚱멀뚱 서 있는 두 사람에게 팔을 내밀어 다가오지 못하게 만든 후 겨우 일어서서 코너로 돌아간 듀란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 후 의자에 앉아 있는 듀란의 눈높이에 맞춰 한쪽 무릎을 내렸다.
듀란은 멍한 눈으로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듀란, 수고하셨습니다.”
“허리케인, 설마 나를 놀리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저의 영원한 우상입니다. 이렇게 멋진 경기를 펼쳐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왔을 뿐입니다.”
“후후… 그런가.”
“오늘의 제 승리는 운이 좋아서였습니다. 선배님이 전성기 시절이었다면 절대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겸손이 몸에 밴 친구구만. 아니, 자네의 말은 틀렸어. 내가 전성기였다 해도 자네를 이기지 못했을 거야. 자네는 내가 싸웠던 어떤 선수보다 훌륭했네. 자네는 분명 복싱 역사의 한 획을 그어버릴 영웅이 될 거야. 그런 선수와 싸웠으니 나는 후회가 없어.”
“감사합니다.”
“이제 그만 가봐.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잖은가.”
시합에 졌다고 해서 패배자가 아니란 걸 듀란의 시선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더없이 평온했고 아쉬움은 있었으나 후회는 한 올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듀란에게 물러나와 그때서야 윤성호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돈 킹이 다가와 두 사람의 등을 두드리며 웃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햇살보다 더 밝은 웃음이 담겨 있었다.
“푸하하… 허리케인, 잘했어. 훌륭했다.”
“축하하네, 허리케인.”
돈 킹에 이어 톰슨이 최강철의 손을 잡으며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의 축하에 웃음으로 답을 해주었다.
그들이 자신을 축하해 주는 이유가 Money라는 괴물 때문이라 해도 승리의 이 순간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성일이 불쑥 나선 것은 링 안에 양쪽 관계자가 바글거려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때였다.
“강철아, 이거 받아라.”
놈이 내민 것은 태극기였다.
무슨 뜻인지 안다. 놈은 태극기를 든 자신의 모습을 화면에 내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이 자식이 또 대가리를 들이밀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목말을 타고 태극기를 휘둘렀다.
그 옛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 태극기를 두른 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별짓을 다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이 처하자 가슴이 벅찼다.
싸늘하게 가슴이 식었음에도 조국이란 의미는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성일은 미친놈 같았다.
그를 태우고 사람 숲을 헤쳐 가며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오히려 자신이 더 힘들 지경이었다.
“야, 그만 내려!”
“조금만 더 하고. 너 이 자식아, 지금 부모님이 보시고 계실 거다. 자랑스러운 네 모습을 실컷 보여 드리란 말이야.”
“인마, 링 아나운서가 기다리고 있어.”
“에잇, 조금 더 해야 되는데…….”
이성일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링 아나운서의 따가운 시선을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최강철을 내려놨다.
확실히 돌대가리다.
얼마나 딱딱한지 가랑이가 얻어맞은 것처럼 묵직하게 아파왔다.
링 아나운서 로버트 버퍼가 다가와서 선 것은 그때서야 쪽팔림을 느낀 이성일이 윤성호 쪽으로 도망친 후였다.
“허리케인, 정말 엄청난 경기였습니다. 승리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경기는 복싱 역사에 남을 만한 명경기였습니다. 허리케인은 어떠셨습니까?”
“듀란은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 중의 한 명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저와의 경기를 위해 혹독한 훈련을 했기 때문에 힘든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반에 고전했는데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듀란은 위대한 복서입니다. 그의 압박 전술은 너무 훌륭해서 저의 아웃복싱을 완벽하게 무너뜨렸습니다. 제가 아웃복싱을 포기하고 접근전으로 바꾼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전면전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하셨습니다. 듀란의 펀치력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복서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글러브를 벗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듀란 선수의 펀치력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평소에 허리케인은 판타스틱4와의 대결을 수차례에 걸쳐 말씀하셨는데요. 그중 한 명인 듀란을 꺾었습니다. 이곳에는 판타스틱4가 전부 모여 있는데 다음에 싸우고 싶은 상대가 있나요?”
링 아나운서 버퍼가 링 사이드 VIP석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헌즈와 레너드, 헤글러가 서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관람하고 있었는데 카메라가 자신들을 가리키자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저분들은 전부 레전드라 불리는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그에 못지않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군요. 특히 헌즈, 난 은퇴해서 제대로 훈련하지 않은 레너드보다 당신과 싸우고 싶습니다. 당신이 나를 보고 꼬맹이 취급한 인터뷰를 봤습니다. 오늘 내 시합을 보고 어떻게 느꼈습니까. 아직도 내가 꼬맹이로 보입니까?”
최강철이 묻자 지목을 당한 헌즈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최강철의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내 시합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도전을 받아들였으면 좋겠군요. 나는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요.”
“꼬맹이,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나를 이긴다고? 건방진 자식. 날짜를 잡아라. 너를 박살 내주마!”
최강철의 도발에 성질이 급한 토머스 헌즈가 도발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전 세계의 매스컴이 동시에 클로즈업했기 때문에 아마 수십억 명이 봤을 것이다.
오늘 경기는 무려 25개국에서 생중계를 하고 있었기에 토머스 헌즈의 발언은 고스란히 전 세계로 흘러 나갔다.
* * *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최강철이 승리하는 순간 전국이 환호성으로 물결쳤다.
사람들은 최강철의 승리가 확정하는 순간 모두 일어나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한반도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단순한 복싱 경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걸린 시합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최강철의 승리를 진심으로 기뻐했다.
지금까지 국가의 명예를 위해 싸운 선수는 수없이 많았으나 최강철이 거둔 쾌거는 그 의미가 특별했다.
최강철은 대한민국의 자랑이었고 현재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웰터급의 통합 챔피언으로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히어로였다.
그가 든 태극기의 의미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세계의 변방에서 머물고 있는 대한민국의 처지를 중심에 올려놓을 만큼 최강철의 영향력은 대단했으니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영웅이다.
국가와 국민을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으니 그가 영웅이 아니면 누가 영웅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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