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40화 (140/308)

[140]

* * *

“할 만하냐?”

“충분합니다. 맞다보니 이제 견딜 만하네요.”

“아직 듀란의 체력이 살아 있다. 그리고 레이 아르셀이 어떤 지시를 내릴지 몰라. 만약 대비책을 마련해서 나오면 경기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어.”

“레이 아르셀이 아니라 더 한 사람이 와도 안 됩니다. 부딪혀 보니 준비하지 못했더군요. 물론 준비를 했어도 쉽지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강철아, 믿는다. 그러나 끝까지 봐야 해. 듀란은 백전노장이야.”

“그게 저 사람의 약점입니다.”

윤성호의 걱정을 뒤로하고 공이 울리자 최강철이 벌떡 일어서며 링의 중앙을 향해 튀어 나갔다.

부딪치는 순간 듀란의 강력한 펀치가 소나기처럼 쏟아졌으나 최강철은 위빙과 더킹으로 피한 후 그의 가슴팍을 몸통으로 들이박았다.

물러서지 않는다.

다시 바짝 접근한 최강철의 콤비 블로우가 시작되었다.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우처럼 셀 수도 없을 정도의 펀치 샤워였다.

몸통 공격에서 시작되어 안면으로 이어지는 최강철의 공격은 듀란이 공격하는 빈틈을 뚫고 끊임없이 작렬했다.

아무리 맷집이 좋은 듀란이라도 계속해서 정확한 공격이 들어가자 섣불리 주먹을 내뻗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허리케인 최강철의 진정한 무서움이다.

하지만 듀란은 임기응변에 능수능란한 백전노장이었다.

윙, 윙… 파바바방!

점점 최강철의 펀치가 안으로 파고들며 여러 번 안면을 가격하자 듀란은 가딩을 바짝 올린 채 펀치 숫자를 줄였다가 순식간에 십여 발의 공격을 퍼부었다.

공격을 흘려놓은 다음 듀란의 펀치가 쏟아져 나오자 최강철의 신형이 급격히 앞으로 쏠렸다.

나는 클린치를 모른다.

그러나 멍청히 당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다.

사이드로 돌며 암 블로킹과 숄더 블로킹으로 공격을 때려 막고 곧장 반격을 이어나갔다.

근본적으로 펀치를 피하기 위해서는 스웨잉과 위빙, 더킹이 가장 효율적이었으나 블로킹을 사용한 것은 듀란에게 잠시의 휴식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방어에 이은 반격.

잠시 떨어졌던 몸을 바짝 끌어당겨 다시 머리를 맞대고 좌우 어퍼컷을 난사했다.

접근전에서 가딩을 하고 있는 상대에게 가장 위력적인 공격은 바로 이 어퍼컷이었다.

최강철은 어퍼컷을 때려 듀란의 안면을 흔들어놓고 곧장 양쪽 보디를 공략했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아봐!

결국 라운드가 중반을 넘어서자 듀란의 스텝이 다시 후퇴하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펀치로 인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체력으로 밀어붙이는 최강철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건 이 경기에서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4라운드까지 밀리던 경기를 했던 최강철의 반격은 그야말로 태풍을 보는 것 같았다.

* * *

“죽여, 죽여!”

“그렇지. 그대로 밀어!”

“야, 인마. 그땐 어퍼컷을 썼어야지!”

“깡철아, 나 좀 살려줘라. 조금만 더 패. 저 자식 정신없다고!”

꽃다방이 난리가 났다.

그동안 밀리던 경기를 단박에 역전시키며 최강철이 무시무시한 반격을 계속하자 다방을 꽉 채웠던 사람들이 전부 들고 일어나 주먹을 휘둘러 댔다.

그 속에는 대머리와 곱슬머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머리는 류광일과 시비를 붙은 지 이제 겨우 십여 분이 지났을 뿐인데 어느새 까맣게 잊고 소리를 방방 질러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김영호가 류광일을 향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게 깡철이지. 난 이럴 줄 알았다.”

“막판에 다리 풀렸어. 봤냐, 봤어?”

“누가, 듀란이?”

“그래, 깡철이가 마지막에 로프까지 밀어붙였을 때 듀란 다리가 슬쩍 풀렸다니까.”

“네가 소머즈냐. 듀란 다리가 언제 풀려?”

“넌 이 자식아, 소리 지르느라 못 봐서 그래. 분명 다리 풀렸어. 이젠 됐다. 이 경기 깡철이가 이길 거다.”

“아직 반밖에 지나지 않았어. 그리고 점수상으로는 아직도 불리해.”

“우리 깡철이가 언제 판정으로 가는 거 봤어? 점수는 무슨…….”

김영호의 말에 류광일이 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얼굴이 슬쩍 굳어지는 건 막지 못했다. 김영호의 말대로 아직 점수상으로는 확실히 불리했기 때문이다.

* * *

“최강철 선수가 5라운드에 이어 6라운드에서도 듀란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윤 위원님,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광고가 끝나고 PD의 사인이 들어오자 마이크를 잽싸게 틀어쥔 김종엽이 묻자 윤근모가 물을 마시다 말고 급히 입을 열었다.

그들의 얼굴은 이미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비록 복싱 중계를 전담하고 있었지만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일어서서 미친 듯이 떠든 게 벌써 20분이나 지나자 얼굴에서 땀방울이 송송 배어 나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와 매끄러운 멘트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최강철 선수가 갑자기 이렇게 선전을 펼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서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할 때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동안 듀란의 주먹을 의식해서 아웃복싱을 펼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캐스터께서도 잘 알다시피 최강철 선수의 전매특허는 불꽃같은 인파이팅 아닙니까. 저도 사실 듀란이 워낙 강한 주먹을 가졌기 때문에 아웃복싱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전면전이 벌어지자 최강철 선수의 파워가 더 강하군요.”

“그럼 계속 이렇게 경기를 펼치는 게 맞을까요.”

“파워와 체력에서 우위를 가진 게 증명되었으니 더욱 강하게 몰아붙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공이 울렸습니다. 이제 7라운드가 시작됩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건아 최강철 선수, 링의 중앙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최강철은 링의 중앙으로 나오며 황소처럼 밀고 들어오는 듀란을 확인한 후 확실하게 뒤로 빠졌다.

듀란은 최강철이 또다시 접근전을 펼칠 것이라 예상했던지 선제공격을 가해왔는데 무자비한 롱 훅을 난사해서 접근을 차단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나 최강철은 접근 대신 외곽으로 돌며 속사포 같은 레프트 잽을 날린 후 곧장 거리를 확보한 채 그동안 수많은 선수의 목숨을 끊어놓았던 콤비네이션을 꺼내 들었다.

내 주먹이 더 빠르다.

당신이 지닌 펀치력의 파워가 어떤지 몰라도 내 펀치 스피드를 당해내지 못할 거야.

머리를 바짝 붙인 채 듀란의 주먹을 경계하며 경기를 펼치던 최강철이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번개 같은 콤비네이션 연타를 퍼붓자 듀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펀치의 강도가 접근전에서 펼쳤던 것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접근전에서 그의 펀치도 위력이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최강철의 펀치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잠시 잊었을 뿐이다.

파바바방… 팡, 팡… 빠바방!

거의 10발의 펀치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서 듀란의 전신을 두들긴 후 최강철의 신형이 듀란의 반격을 피해 멀찍이 벗어났다.

그런 후 다시 시작되는 공격.

5, 6라운드와 바뀐 공격 패턴.

완벽한 아웃복싱이 아니라 공수를 교대하듯 펼치는 미들 파이팅이었다.

콤비네이션 패턴 1, 2, 3이 불꽃을 뿜어냈다.

최강철은 듀란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면전을 피한 것도 아니었다.

아웃복싱과 인파이팅의 중간.

그 거리에서 자신이 지닌 모든 화력을 듀란의 전신에 쏟아부었다.

가딩으로 최강철의 주먹을 막아내는 듀란은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허둥댔다.

계속되는 최강철의 전략 변화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좋은 가딩도 결국은 깨진다.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선수들이 최강철의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것은 압도적인 펀치 스피드와 강력한 임팩트에 당한 것이었다.

듀란이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기 시작한 것은 반격을 하기 위해 칼을 꺼냈을 때부터였다.

무섭게 몰아치는 최강철의 펀치를 완벽한 가딩으로 방어하며 기회를 노렸으나 대미지가 점점 쌓여가자 그는 방어를 풀고 강력한 반격을 시작했다.

그것이 그를 지옥으로 이끌었다.

최강철은 듀란의 공격이 시작되자 맞받아치지 않고 외곽으로 멀찍이 벗어나 버렸다.

그런 후 그의 공격이 끝나는 순간 번개처럼 자신의 거리를 확보한 후 중거리 미사일을 날렸다.

쾅, 콰앙, 쾅, 쾅!

공격을 하느라 가드가 풀려 있던 듀란의 안면에 최강철이 퍼부은 펀치들이 고스란히 적중되는 순간 그토록 강한 맷집을 자랑하던 듀란의 신형이 비틀거리다가 뒤로 벌렁 넘어졌다.

듀란이 쓰러지는 순간 관중석이 미쳐 날뛰었다.

관중들은 이미 전부 일어서 있었는데 듀란이 최강철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자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광란에 빠져들었다.

레프리가 가로막으며 카운터를 세기 시작하자 뒤로 넘어졌던 듀란이 팔로 캔버스를 짚으며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최강철이 고개를 까닥까닥 움직였다.

멀쩡해 보였으나 지금 듀란의 정신은 지옥 문턱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펀치를 맞았기 때문에 대미지가 누적된 상태에서 강력한 주먹을 맞았으니 천하의 듀란이라도 쉽지는 않다.

듀란이 일어나 다시 주먹을 치켜세우자 레프리가 시합을 재개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뚜벅뚜벅.

서둘지 않는다.

맹수는 강력한 적의 목 줄기를 물어뜯어 치명상을 입혔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법이다.

다운을 당했던 선수들은 상대가 공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선공을 가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적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

하지만 그 본능은 겨우 남아 있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최강철은 일어선 후 맹렬하게 접근하며 공격하는 듀란의 펀치를 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의 호흡이 정지되었을 때 거리를 확보한 후 무차별적인 공격을 재개했다.

맹수의 마지막은 장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장렬함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울 때 새로운 역사가 탄생한다.

마지막 불꽃같은 공격을 끝낸 듀란은 최강철의 공격을 받으며 비틀댔지만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영웅.

그의 눈에 보인 최강철은 이미 자신의 역량을 벗어난 히어로였다.

처음에는 준비된 작전대로 경기가 흘러갔으나 어느 순간부터 예측을 벗어난 공격을 하는 최강철을 보면서 경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한 훈련을 해왔지만 자신의 나이는 벌써 39살이었고 맞붙어 싸우는 인파이팅에서 밀리는 순간 체력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인파이터가 체력에서 밀린다는 것은 경기를 포기해야 된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금까지 90전이 넘도록 싸우면서 이토록 자신을 밀어붙일 정도의 체력을 가진 놈은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최강철은 불과 3라운드 만에 자신의 숨이 목구멍에 차오를 정도로 체력을 깎아놓았다.

머리를 맞대고 날리는 놈의 펀치는 그야말로 전광석화.

권투의 상대성은 때리고 맞는 것이었으나 자신은 3라운드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펀치를 허용하며 뒤로 밀렸다.

잠시도 쉬지 않고 펀치를 내는 최강철의 체력을 보면서 기가 질렸다.

이놈은 진짜… 괴물이다.

최강철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듀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마지막 피니시블로를 터뜨렸다.

이미 그의 가드는 내려와 있어 온몸이 허점투성이였다.

몸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으나 자신을 바라보는 듀란의 눈을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눈을 보면서 슬쩍 가슴이 아파왔다.

듀란은 그의 우상이었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그의 안면을 향해 무쇠처럼 강력한 라이트 훅을 터뜨렸다.

명예를 지켜줘야 한다.

시대를 관통하며 영웅으로 살아왔던 그에게 수치를 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한 방에 로프에 기대 있던 듀란의 몸이 짚단처럼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잘 가시오, 듀란.

나의 영원한 우상이여.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