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 * *
“듀란, 또다시 라이트 훅! 대단합니다. 듀란 선수, 절대 물러서지 않는군요. 최강철 선수의 공격이 정확하게 들어갔는데도 압박을 풀지 않고 있습니다! 불리한 경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강철 선수의 원투 스트레이트를 더킹으로 피한 듀란, 라이트 보디! 윤 위원님, 계속 최강철 선수가 몰리는 경기를 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장기전을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난타전을 펼친다면 오히려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일단은 소나기를 피해야 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최강철 선수, 강한 라이트 훅을 허용했습니다! 비틀거립니다. 위험합니다! 피해야죠, 반격하는 최강철 선수. 안 됩니다! 지금은 반격하는 것보다 피해야 합니다! 대미지가 커 보이는데 맞서 싸우면 안 됩니다! 다행입니다. 물러서는 최강철 선수. 아, 그러나 로프까지 몰렸습니다! 듀란의 강한 공격. 레프트 보디에 이은 라이트 훅. 최강철 선수 위빙과 더킹으로 피합니다. 빠져나가야 합니다. 저기서 저렇게 대주고 있으면 안 됩니다!”
“듀란 선수가 못 빠져나가게 막고 있습니다. 저렇게 붙잡고 늘어지면 안 되는데요. 심판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윤근모가 정신없이 떠들었다.
하지만 그도 안다.
지금 듀란이 펼치고 있는 기술들이 아웃복서를 때려잡기 위해 인파이터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고급 기술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심판 운운 하며 떠들고 있는 것은 최강철이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아, 다행스럽게 최강철 선수 로프에서 빠져나와 전력을 다시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듀란, 놔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최강철 선수 레프트 잽에 이은 원투 스트레이트. 아직 날카롭습니다. 데이지가 그리 큰 것 같지 않습니다!”
“듀란은 돌주먹이라 알려질 정도로 대단한 펀치력을 가진 선숩니다. 지금쯤 최강철 선수는 정신이 없을 겁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잘 버텨주길 바랍니다.”
“외곽으로 도는 최강철 선수. 계속해서 뒤로 물러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공 울렸습니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잠시 광고 보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김종엽이 말을 마친 후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동안 최강철의 경기를 중계방송하면서 계속 서서 중계했지만 이번 경기는 위기가 연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들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며 즐거워하는 관중들을 노려봤다.
관중들은 누가 이겨도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윤 위원님, 아무래도 힘들어 보이지 않습니까?”
“이제 3라운드야.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듀란이 너무 강하네. 지독하게 훈련했다더니 전성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쓰는 펀치마다 허투루 나오는 게 하나도 없어. 더군다나 전부 예리해서 마치 칼을 휘두르는 것 같단 말이지.”
“걱정이네요. 이번 경기에서 지면 우리나라 국민들 실망이 클 텐데요.”
“최강철 쪽에서도 여러 전략을 준비해 온 것 같은데 제대로 통하지 않는구만. 그만큼 듀란이 강하다는 뜻이야.”
“그래도 믿어봐야죠. 최강철은 우리의 영웅 아닙니까!”
* * *
학생회관에 몰려 있는 학생들의 입에서 연신 탄식이 흘러나왔다.
4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최강철은 특유의 인파이팅을 버리고 외곽으로 돌면서 시합을 했지만 듀란의 압박 전술에 말려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김철중과 일당들의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텔레비전의 광고가 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빅 이벤트를 맞이해서 방송국은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4개의 광고를 돌렸으나 학생들은 아예 광고는 쳐다보지 않고 경기를 분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철 선배, 왜 자꾸 외곽으로 도는 거야. 속 터지게시리!”
“인마, 듀란 주먹이 보통 주먹이냐? 난타전을 벌이면 위험하니까 그렇지.”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붙어봐야 되는 거잖아. 이러다가 지면 정말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고!”
“스태프들이 작전을 잘못 짠 거 같아. 저게 뭐냐. 아우, 속 터져.”
“이 자식들아, 설레발치지 좀 마. 이제 겨우 4라운드 끝났어. 우리 강철 선배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냐.”
“조금 무기력하게 보이는데 혹시 수업 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김철중이 소리를 빽 지르자 박정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게 일행들의 얼굴을 단박에 어둡게 만들었다.
정말 그것이 원인이라면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일 것이다.
저절로 맨 앞에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학과장 윤문호와 교수들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씨발, 그러니까 수업 좀 빼주지. 꼭 그렇게 서울대 고지식한 거 티를 내야겠어. 만약에 강철 선배가 지기만 해봐. 내가 다 뒤집어엎어 버린다!”
* * *
4라운드가 끝나고 최강철이 코너로 돌아왔을 때 윤성호의 얼굴은 붉어질 대로 붉어져 있었다.
작전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그동안 듀란이 해왔던 경기들을 분석하며 최선의 전략을 짜왔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듀란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듀란의 공격은 준비해 온 전략들을 완벽하게 부수고 있었는데, 그 배경에는 레이 아르셀이 존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의 능력은 이것뿐인가.
슬쩍 곁눈질로 이성일을 바라보자 놈의 얼굴은 자신과 반대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레이 아르셀.
전설의 명트레이너라더니 최강철에 관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분석해서 전략을 마련해 온 것이 틀림없었다.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트레이너들의 능력이 부족해서 최강철이 어려운 경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당장에라도 뛰어나가 똥통에 빠져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관장님, 얼굴이 왜 그럽니까. 어디 아파요?”
“강철아, 괜찮냐?”
“뭐가요?”
“많이 맞았어. 대미지는 어때?”
“충분히 견딜 만합니다. 아직 시합은 시작도 안 했는데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요. 성일아, 이 자식아. 너 오줌 마렵냐? 오줌 마려우면 참지 말고 다녀와. 얼굴이 그게 뭐냐. 분칠한 것처럼.”
“미안하다. 내 능력이 여기까진가 봐. 돌아가면 사표 쓸게.”
“지랄한다.”
“정말이야, 이 자식아. 지금 네 시합을 보면서 난 죽고 싶은 심정이다.”
“웃기지 마. 아직 마지막 전략이 남아 있잖아.”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준비한 거야. 아직,,.”
“괜찮아.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다. 나를 믿어. 너 사표 쓸 일 없게 해줄 테니까. 그리고 인마, 네가 무슨 회사원이냐? 사표는 이 자식아, 좋은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나 쓰는 거야.”
최강철은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링의 중앙으로 성큼성큼 돌진했다.
그런 후 다가오는 듀란을 향해 바짝 다가서며 번개처럼 좌우 훅을 날렸다.
레프트 훅을 생략하고 곧바로 공격을 펼친 것이다.
그런 후 물러서지 않고 콤비네이션 펀치들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넘버 4.
프레디 아두와 시합할 때 썼던 초근접 난타전 콤비네이션이었다.
머리를 상대의 머리에 맞닿을 정도로 바짝 붙은 상태에서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전략.
이성일이 제안한 것으로 제프 카터가 재밌는 전략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듀란을 상대로 전면전을 펼친다는 말도 안 되는 전략이었으나 이 전략의 묘미는 듀란의 펀치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성공 가능성이 꽤나 컸다.
하지만 엄청난 위험도 같이 수반되어 있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강구해 놨던 것인데 최강철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칼을 꺼내 들었다.
최강철은 머리를 맞댄 채 펀치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특유의 전매특허인 콤비네이션 펀치들이 듀란의 전신을 두들기며 날아갔는데 거의 가슴팍이 붙을 정도의 거리에서 터진 것들이었다.
듀란 역시 피하지 않고 펀치들은 날렸으나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과의 경기에서 이런 전략을 들고 나온 놈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레이 아르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웃복싱을 벗어던진 최강철의 인파이팅이 시작되자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강철의 별명처럼 폭풍이 몰아치면서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 미친 듯이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당신과 나. 둘 중 누가 죽는지 두고 보자.
무자비한 공격력.
양 선수가 링 한복판에 붙어 난사하는 펀치들이 관중들의 눈을 현혹시켰다.
얼마나 많은 펀치를 주고받았는지 모를 정도로 수많은 펀치가 상대의 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펀치의 숫자는 최강철이 훨씬 많았다.
한 번 공격이 시작되자 최강철은 잠시도 쉬지 않고 펀치를 날렸는데 마치 완벽한 기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와아, 와아, 와아. 허리케인, 허리케인!”
이걸 기다리고 있었던 거겠지.
폭탄처럼 함성 소리가 터지고 있었으나 최강철은 눈을 빛내며 듀란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팡, 팡, 팡, 파바방!
라운드가 거의 끝나가는 순간, 잠깐 거리를 두고 빠져나왔던 최강철의 펀치들이 듀란의 방어선을 뚫고 강하게 꽂혔다.
처음으로 물러서는 듀란의 모습을 보며 최강철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거봐, 당신 체력으로는 나에게 안 될 거라고 했잖아.
뒤로 물러서는 듀란을 따라 들어간 최강철이 또다시 머리를 맞댄 채 펀치를 내갈기기 시작했다.
글러브에 걸렸기 때문에 커다란 충격을 주지 못했겠지만 이 정도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한 번 밀린 자는 계속 밀리게 되어 있어.
그것이 바로 힘의 차이라는 거야.
철벽이 밀려오는 것처럼 파고들던 듀란의 압박이 깨지자 최강철의 폭풍 같은 연타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5라운드에 들어와 최강철이 날린 펀치의 숫자는 거의 400회를 육박하고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듀란의 몸을 향해 펀치를 날렸다는 뜻이었다.
우웅, 웅, 우우웅.
최강철의 쇼트 콤비네이션이 물러서는 듀란의 몸통으로 파고들며 미친 듯이 작렬했다.
듀란이 반격을 가해왔지만 펀치력의 위력은 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거리를 바짝 좁힌 상태에서 빠져 나온 펀치는 당연히 위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때앵!
5라운드가 끝나는 공이 울리면서 레프리가 중간으로 끼어들자 최강철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토록 강해 보이던 듀란의 숨결이 거칠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허리케인의 공격력이 살아났습니다. 최강철 선수, 무섭게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전면전입니다. 더 이상 피하지 않은 채 듀란과 치고받는 난타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강철 선수의 쇼트가 듀란의 전신에 작렬합니다. 화려합니다. 그리고 날카롭게 꽂히고 있습니다. 윤 위원님, 듀란이 당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이렇게 나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최강철 선수의 어퍼컷. 맞았습니다! 듀란, 계속되는 최강철 선수의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펀치가 나오고 있으나 확연하게 위력이 줄어든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래도 거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강철 선수의 쇼트 공격이 훨씬 날카롭습니다. 앗, 최강철 선수, 번개 같은 콤비네이션! 듀란, 물러섭니다. 듀란, 맞았습니다. 뒤로 물러서는 듀란. 최강철 선수 따라 들어갑니다. 다시 거리를 좁힌 채 펀치를 주고받는 두 선수. 하지만 듀란 선수, 조금씩 뒤로 밀려납니다! 듀란이 밀립니다. 최강철 선수 완벽하게 살아났습니다!”
“아무래도 최강철 선수가 작정을 하고 나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험합니다. 지금까지 잘 싸우고 있지만 듀란 선수와 정면승부를 벌인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한 것입니다. 최강철 선수 강약을 조절해 주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전 라운드에 비한다면 기적 같은 부활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최강철 선수 정말 무차별적인 폭격입니다. 단 한순간도 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공 울렸습니다. 공 울렸습니다! 레프리가 두 선수를 떼어내기 위해 몸으로 막는군요. 그만큼 무시무시한 싸움이었습니다. 아, 최강철 선수가 듀란을 보고 웃고 있습니다. 윤 위원님, 과연 저 웃음의 의미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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