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28화 (128/308)

[128] 제18장 거대한 전쟁

사무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체육관을 개설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시합이 결정되자 윤성호와 이성일은 긴장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웰터급 통합 챔피언을 보유한 성호체육관이 문을 열자 관원들이 물밀듯 밀려들었는데 그 숫자가 일주일 만에 100명이 훌쩍 넘었고 지금도 매일 관원 숫자가 늘어나는 중이었다.

윤성호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시기였다.

하지만 윤성호는 톰슨과의 계약 내용을 말해주자 올게 왔다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체육관은 신경 쓰지 마. 코치진을 보강해서 운영해 나가면 돼. 문제는 시합이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야. 강철아, 너 학교는 어쩔 생각이냐?”

“학교는 다녀야죠. 학생이 학교를 빼먹으면 되겠습니까.”

“이 자식아, 그걸 말이라고 해? 상대가 듀란이야, 듀란!”

“대학교는 방학이 6월말쯤에 합니다. 시험 끝나면 바로 방학이죠. 그래도 2달이 남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진짜 훈련은 미국으로 넘어가 레드불스에서 소화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학교를 다니면서 체력 훈련은 끝내놓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수업을 하루 종일 받는 건 아니잖아요.”

“미치겠구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짓이야. 도대체 세계 챔피언이 대학교를 다닌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최강철이 여유 있게 말하자 윤성호가 인상을 박박 긁었다.

옛날 일제시대 때 학생 주먹이 있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도 복싱 세계 챔피언이 대학을 다닌다는 말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복싱 선수는 시합이 잡히면 정해진 스케줄에 의해 체계적인 훈련을 소화하며 최적의 컨디션으로 링에 올라야 하는데 학교 수업을 받으며 언제 훈련을 한단 말인가.

코치인 그의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절대 안 된다며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 것은 최강철의 말이 일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최강철은 시합하면서 체력 부족으로 고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매번 워낙 성실하게 훈련을 했기 때문이지만 그가 집중한 것은 자신의 주 무기를 완벽하게 가다듬은 것과 상대의 장단점에 의한 전략 소화에 관한 것이었지 체력 단련에 시간은 쏟아부은 것은 아니었다.

최강철의 체력은 타고났다고 봐도 된다.

한 달 만 집중적으로 훈련하면 놈은 12라운드 내내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는 스태미나를 보여줬다.

마크 브릴랜드의 대전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완벽한 아웃복싱을 보여주었던 마크 브릴랜드도 끝내 최강철의 폭발적인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쓰러지지 않았던가.

이성일이 슬그머니 나선 것은 윤성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할 때였다.

“그런데 강철아. 난 너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는 꼴을 못 봤다. 그래가지고 시험 보면 낙제하지 않을까?”

“너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하여간 코치라는 놈이 생각이 없어, 생각이.”

마침 잘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시빗거리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아 화풀이할 데가 없었던 윤성호가 두 눈을 부릅뜨고 이성일을 노려봤다.

하지만 이성일은 그 정도에 위축될 놈이 아니었다.

“걱정돼서 그러죠. 이 자식이 학교 다닌다면서 맨날 놀기만 했는데 이제 시합까지 잡혔으니 어떡합니까?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물어본 거예요. 내가 대신 시험 쳐주면 어떤가 하고.”

“어이구, 속 터져. 넌 듀란이나 때려잡을 전략이나 마련해. 서울대가 어디 동네 유치원이냐? 네 실력으로 무슨 시험을 대신 봐줘, 봐주기를!”

“이거 왜 이러세요. 내가요, 가끔가다 심심할 때 저놈 책을 본단 말입니다. 강철이가 본 것보다 내가 본 게 훨씬 많다니까요. 관장님도 들어봤죠? 토끼가 아무리 빨라도 낮잠을 자면 거북이보다 느린 법이라고요. 팽팽 놀면서 공부 한 자도 안 한 놈보다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본 내가 낫지 않겠어요?”

“알았다, 알았어. 그만하고 톰슨이 테이프 몇 개나 가져왔냐?”

“5개 가져왔더군요. 하지만 이미 다 본 것들입니다. 듀란에 관한 것은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어요. 그 사람이 오죽 유명한 사람입니까.”

“전략은?”

“대충 어느 정도 준비는 했어요. 듀란과는 어차피 만날 거라고 예상했잖아요. 한 달 정도만 지나면 완벽한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코쟁이 안 불러와도 되겠어?”

“이번에는 필요 없습니다. 나중에 미국으로 넘어갔을 때 조언만 얻으면 될 것 같아요.”

“오케이, 좋아.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강철아?”

“예.”

“어차피 여기에서는 스파링 파트너 구하기 힘들어서 일찍 레드불스로 넘어가야 해. 그러니까 우린 6월 말에 무조건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어. 그때까지 체력을 끌어 올리는 훈련에 집중한다. 학교 수업에 맞춰서 훈련 스케줄 짜놓을 테니까 끝나면 바로 체육관으로 와. 알겠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김도환은 사무실에 느긋하게 앉아 기자들이 가져온 내일 기사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부장을 달았더니 인생이 하룻밤 만에 달라졌다.

이게 모두 최강철 덕이다.

그 옛날 최강철이 코 흘리게 시절부터 온갖 정성을 기울여 대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람은 행운과 노력이 곁들여졌을 때 성공을 한다고 했는데 지금의 자신은 노력보다 행운으로 인해 성공한 사람이었다.

벌써 부장을 단 지 3개월이나 되었다.

동기들은 지금 일선에서 뺑이 치고 있었는데 뒷자리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고 있으니 이게 행운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앉아서 받아먹은 특종이 10개가 넘었다.

전부 최강철이 흘려준 덕분으로 터뜨린 것들이었다.

남들은 쌍방울이 닳도록 뛰어다녀도 얻기 힘든 특종을 때마다 알려주는 최강철은 아마도 전생에서 자신의 마누라였는지 모른다.

이제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마지막 기사만 넘기면 내일 신문도 마감이 된다.

오늘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외식을 할 생각이었다.

부장으로 진급한 지 3달이 다 되도록 그동안 고생한 마누라에게 밥 한 끼 제대로 사주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아주 작심하고 아침부터 손가락을 걸면서 맹세했다.

마누라는 좋아죽는 표정으로 여우 같은 웃음을 마구 날려대며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겠다는 알랑방귀를 뀌었다.

하아,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매일같이 일선에서 뛰어다닐 때는 잔소리 대마왕이었는데 진급으로 월급이 오르고 외식하자는 한마디에 자신을 황제처럼 받들어 모셨다.

기사 검토를 전부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양복을 걸쳤다.

이제 이 길로 회사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면 결혼하고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진정한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포스를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자, 나 먼저 들어가겠네. 오늘 외식이 있어서 말이야.”

“예, 들어가십시오. 부장님!”

멋들어지게 인사를 하면서 사무실을 가로질러 나오자 기자들이 일제히 인사를 해왔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이런 맛으로 진급도 하는 거지.

손을 흔들어주며 품위 있게 웃음을 진 채 사무실을 빠져나와 복도로 들어섰다.

오, 예.

흘러나오는 콧노래. 그의 18번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다.

“응응응… 흐응…….”

“부장님!”

이건 뭐야.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싸가지 없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김도환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부장님, 헉… 헉, 최강철 전홥니다!”

어이구, 씨부럴. 하필이면 이때.

이 자식이 무슨 일일까. 같이 만나서 밥 먹은 지 5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퇴근 무렵에 전화를 해 오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고민은 잠시에 불과했고 행동은 번개처럼 빨랐다.

최강철은 일이 없으면 절대 사무실로 전화하는 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 * *

<간절히 기다렸던 거대한 전쟁이 드디어 벌어진다>

스포츠서울 일면 톱으로 걸린 호외가 무차별적으로 뿌려지기 시작하자 전국이 삽시간에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기사의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충격적인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허리케인 최강철과 전설의 돌주먹 듀란의 대결이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양 선수의 파이트머니까지 자세하게 소개되었으며 이번 경기가 돈 킹의 주관으로 벌어진다는 것까지 실려 있었다.

스포츠서울은 최강철의 기사를 3면에 걸쳐서 내보냈다.

시합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과 양 선수가 계약서에 서명한 날짜, 뉴욕의 시저 팰리스 특설 링에서 어떤 시합들이 벌어졌는지 집중 탐구 했고 가장 충격적인 최강철과 듀란의 파이트머니에 대해서도 한 면 전체를 통째로 할애해서 기사를 작성했다.

파이트머니 1,000만 달러.

정말 말도 안 되는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 타이틀 최다 방어 기록을 수립해 나가고 있는 유명우의 개런티가 1억에 불과했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더군다나 최강철의 파이트머니가 전설의 돌주먹이자 판타스틱4의 일원인 듀란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부러움보다 자부심이 한국 국민들의 가슴을 적셨다.

비록 자신이 받는 게 아니었음에도 한국의 영웅이 듀란보다 더 많은 파이트머니를 받는 게 알려지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숨기지 않았다.

* * *

“김 대리, 1,000만 달러면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냐?”

“80억 정도 되겠구만. 지금 환율이 800원 정도 되잖아.”

“휴우, 기가 막히네. 뭐, 하도 금액이 커서 그게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류광일이 담배를 깊게 빨아 당겼다가 하늘로 뿜어냈다.

대리 4년 차 월급이 이제 겨우 130만 원이었으니 80억을 벌려면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해도 500년이 넘게 걸린다.

그 모습을 본 김영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야, 그런 건 생각하는 게 아니야. 최강철이 어디 보통 놈이냐.”

“그건 그런데, 이거 너무 크니까 감도 안 와서 하는 말이지.”

“듀란이 약 좀 오르겠어. 커리어로 봤을 때 최강철이 한참 아랜데 더 많이 받잖아.”

“커리어가 많으면 뭐 해, 지금 챔피언은 최강철인데. 도전자 주제에 그 정도만 받아도 황공하게 생각해야 돼.”

“하긴, 우리 깡철이가 챔피언이지. 그것도 통합 챔피언.”

“김 대리, 우리 깡철이가 이길 수 있을까?”

“왜 걱정돼?”

“너는 안 그래? 다른 놈도 아니고 듀란이잖아, 그 돌주먹. 한 방 맞으면 전부 쓰러진다는 펀치를 가지고 있는 놈이라고. 저번에 봤더니 어떤 놈은 한 방 맞고 기절을 하드만.”

“걱정되긴 하지. 어디서 봤는데 듀란 펀치력이 알리 못지않다고 하더라.”

“야, 넌 뻥이 너무 세서 탈이야. 어떻게 알리하고 듀란하고 비교를 하냐? 이 자식은 하여간 내가 모른다고 마구 내지른다니까.”

“하아, 너 내 말 못 믿는 거야?”

“그럼 그걸 어떻게 믿어. 나도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알리는 작정하고 때리면 1톤의 위력을 뿜어낸다고 하드라. 측정기로 재는 것까지 보여줬어.”

“그런 게 나왔어?”

“그래, 텔레비전에서.”

“쩝, 미치겠네. 그럼 듀란도 그 정도 펀치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잖아.”

“비교하지 말라니까. 알리는 헤비급이고 듀란은 웰터급이야. 네가 본 건 듀란 펀치력이 그만큼 세다는 걸 강조한 걸 거다.”

“그런가?”

김영호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하긴 생각해 보니 류광일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아무리 펀치가 강해도 헤비급과 웰터급이 비슷하다는 건 상식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막상 시합이 정해지니까 왜 이리 심장이 떨리냐? 깡철이 이놈은 어째 시합할 때마다 나를 이렇게 긴장시키는지 모르겠네.”

“그놈이 워낙 카리스마가 있어서 그래. 사람을 미치게 하잖아.”

“미치게만 해? 수명도 단축시키지. 그놈 경기 보다 보면 내 수명이 1년씩 줄어드는 것 같아. 벌써 한 5년은 줄어들었을 거다.”

“이길까?”

“이길 거야. 깡철이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데 듀란한테 지겠어. 듀란은 내가 봤을 때 판타스틱4 중에서 가장 약해. 주먹하고 맷집이 강해서 그렇지 테크닉은 나머지 놈들보다 떨어져. 그리고 이제 나이가 있어서 그런가, 예전보다 못하잖아. 그러니까 깡철이가 이긴다.”

“그래주면 얼마나 좋겠냐.”

“이럴 때 아부지가 부자였으며 얼마나 좋을까. 아쉽다, 아쉬워.”

“그건 또 뭔 소리야?”

“뭔 소리긴. 아부지가 돈이 많았으면 미국으로 날아갈 거 아냐. 우리 깡철이 시합 보러.”

“지랄한다.”

김영호가 코웃음을 치며 혀를 찼다.

류광일이나 자신이나 시골에서 태어나 공부 하나 잘해가지고 겨우 대일물산에 들어와 이나마 밥 먹고 사는 처지였다.

더군다나 부모님은 그들을 공부시키느라 가지고 있는 땅마저 처분하셨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모시고 살아야 할 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거리며 웃었다.

“우리 깡철이 한국에서 시합하면 좋을 텐데. 그러면 나는 달러 빚이라도 얻어서 무조건 갈 거다.”

“하하…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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