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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환생-127화 (127/308)

[127]

* * *

다행히 부모님의 건강검진 결과는 큰 이상이 없었다.

아버지는 위에 작은 용종이 몇 개 있을 뿐이었고 어머니는 고혈압 증세가 있어 최강철이 직접 약을 타서 드렸다.

다행이다.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암세포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니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는다면 더 오래 사실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 복학해서 한 달 반 동안 그야말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작은형을 위해 압구정동에 상가를 샀고 분당에 수시로 내려가 20만 평을 추가적으로 매입했다.

다행스럽게 아직 분당의 땅값은 개발 계획이 발표되기 전이라 그가 샀을 때보다 크게 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윤성호의 체육관이 준비를 마치고 오픈한 것은 그가 분당 땅의 매수를 전부 마치고 등기 이전까지 완료했을 때였다.

“야, 최강철. 너 너무한 거 아니냐? 우리 체육관 간판스타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 거야!”

“요즘 조금 바빴어요.”

“뭐 하느냐고?”

“청춘 사업 하느라 그렇죠. 학교 다니다 보니까 날 찾는 사람들이 많네요.”

“지랄한다.”

윤성호가 뻔뻔하게 대답하는 최강철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는 혼자서 체육관 오픈 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에 고사를 지내는 날이 되어서야 어슬렁거리고 나타난 최강철에게 연신 잔소리를 해댔다.

빵빵하게 좋다.

예전 영등포에 있었던 체육관에 비한다면 대궐 같은 크기였고 시설도 완벽하게 갖춰놔 한국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체육관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사를 지내기 위해 내려가자 이성일과 코치진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윤성호는 처음부터 관원들이 몰려들 거라고 확신했는지 경험 있는 코치들을 3명이나 구했는데 전부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자식아, 왜 이제 왔어! 혼자서 고사 준비하느라고 뺑이 쳤잖아.”

“시비 걸지 마라. 넌 인마, 통합 챔피언을 뭘로 보는 거야. 그럼 챔피언이 돼지머리나 날라야 되겠어?”

“쩝, 듣고 보니 그것도 이상하네.”

“준비 다 끝났으면 시작하자고. 오다가 보니까 벌써 관원들이 기다리고 있더라. 우리 관장님 대박 나겠어요. 돈 많이 버실 것 같습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여기서 챔피언들이 팡팡 쏟아졌으면 원이 없겠어.”

“잘될 겁니다.”

절차에 따라 고사를 진행했다.

사회는 이성일이 봤고 제주는 관장인 윤성호였다.

일부러 손님들을 초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호체육관이 문을 열기 위해 고사를 지낸다고 알렸다면 기자와 복싱 관계자들까지 백 명도 넘게 몰려들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윤성호와 최강철, 이성일이 나란히 절을 하며 체육관이 발전하기를 빌었다.

그러나 최강철은 안다.

자신이 복싱을 그만두는 순간 윤성호도 이 체육관을 접어야 한다는 사실을.

최강철은 일주일 전부터 서서히 로드워크를 시작했다.

학교에는 끌고 가지 않았지만 너무 불편해서 그랜저를 뽑았는데 아침 6시만 되면 여지없이 한강으로 나가 10㎞씩 뛰었다.

혼자다.

이성일은 아침잠이 많아서 깨워봤자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한강변을 달렸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은 엄청 부지런한 민족이다.

그 새벽에도 한강변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니 동남아시아나 유럽 사람들보다 3배는 더 열심히 산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있다.

불과 30년 만에 가난을 떨치고 일어선 한국 경제를 바라보며 세계인들이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틀렸다.

대한민국의 30년은 그들의 시간으로 봤을 때 200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24시간 동안 한시도 쉬지 않는 민족이고 다이내믹한 부지런함과 성실함까지 감안한다면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보다 최소 6배는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저녁 6시만 되면 사무실과 상점들이 전부 문을 닫았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아침 9시에 겨우 일어나 활동하는데 낮잠까지 자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최강철이 로드워크를 시작한 것은 몸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태해져 가는 자신의 정신을 추스르기 위함이었다.

조만간 듀란과의 시합 날짜가 잡히는 것 때문에 운동을 시작한 건 아니다.

그의 몸은 피지컬이 완성되었기에 한 달 정도만 근육을 강화하면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뿜어져 나온다.

대학에 복학한 후 수업이 없을 때마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같은 학번 동기들은 물론이고 후배들과도 시간을 보냈는데 앞으로는 다른 과 학생들과도 교류의 범위를 넓혀갈 생각이었다.

4월의 햇살이 눈부시다.

어느덧 복학한 지 두 달이 지나자 학교생활이 익숙해졌다.

학생들의 옷차림은 점점 가벼워져 갔고 캠퍼스는 푸름으로 가득 차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김철중과 일당들은 이제 완벽하게 그의 심복이 되어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그의 주변에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최강철이 사람을 만나러 갈 때를 빼고는 언제나 함께했다.

“선배님, 심심한데 동아리나 가실까요?”

“윤주 보고 싶어서 그러냐?”

“하하하… 그런 거죠.”

“이 자식아, 넌 너무 솔직한 게 탈이야. 그래 윤주는 뭐라디?”

“생각해 보겠다고는 하는데 대답이 시원치 않네요.”

“그래도 많이 발전했네. 정성이 통하고 있나 보다.”

김현영이 머리를 벅벅 긁는 걸 보며 최강철이 부드럽게 웃었다.

전라도 무진장 지역 중의 하나인 장수에서 태어난 김현영은 덩치만 컸을 뿐 너무 착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촌에서 태어나 서울대까지 왔으니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실감 나는 놈이었다.

누가 봐도 남자로서의 매력은 후배 넷 중 가장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동아리에 가입했을 때 봤던 예쁜 여대생 최윤주에게만큼은 지극정성으로 대시하는 중이었다.

최강철은 놈의 어색해하는 얼굴을 바라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 가입했으나 지금까지 딱 3번만 갔을 뿐이다.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빴고 방과 후에는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 전혀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일당들과 함께 동아리를 향해 걸어갔다.

동아리는 언제나 학생들로 북적였다. 특히 클래식 기타 동아리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최강철이 가입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남녀 구분 없이 회원 숫자가 배는 많아졌다고 한다.

사무실에 가까이 가는 순간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어설프다.

지금 이 시간은 신입생들이나 기타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주로 연습했고 고학년 고수들은 방과 후에나 어슬렁거리고 나타나기 때문에 들려오는 화음 소리는 엉망에 가까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연습하고 있던 학생들이 기타를 내려놓으면서 벌떡 일어나는 게 보였다.

최강철의 명성은 둘째 치고 그는 복사꽃에 해당하는 학번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잘들 있었어? 너무 그렇게 대하지 말라고 부탁했잖아. 제발 편하게 좀 해주라.”

먼저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익살스럽게 말하자 학생들의 표정이 그때서야 슬그머니 풀렸다.

실내에는 20여 명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연습실에 10명, 동아리실에 10명 정도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슬쩍 김현영을 보자 놈은 이미 연습실 끝 쪽에 앉아 있는 최윤주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 나도 기타 연주를 해볼까. 현영아, 같이하자.”

옆에 놓여 있는 연습용 기타를 들면서 최강철이 최윤주 쪽으로 다가가자 눈치를 챈 김현영이 급하게 따라붙었다.

“윤주야, 안녕. 잘 지냈니?”

“선배님도 잘 지내셨죠. 오랜만에 오셨네요.”

“하하, 내가 좀 바쁜 사람이잖냐. 윤주는 훨씬 더 예뻐진 거 같네. 현영아, 안 그러냐?”

“그… 그렇습니다.”

“기타 많이 배웠어?”

“이제 겨우 주법 연습 중인걸요. 조금 있다가 신입생 연주회가 있다는데 걱정이에요.”

“나도 신입생인데 연주회에 참석해야 하나?”

“그러시면 좋죠. 같이해요, 선배님.”

“난 클래식 기타는 쳐보지 않았어. 더군다나 연습을 한 번도 안 했는걸. 통기타는 조금 치는데 클래식 기타는 다르잖아.”

“어머, 통기타 칠 줄 아세요?”

최윤주가 반색을 하면서 반응을 보이자 주변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기대감으로 반짝거렸다.

이미 연습실에는 최강철의 출현으로 동호회실에 있던 학생들까지 몰려들어 바글거리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물론이고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금방 한쪽에 서 있는 3학년 회장에게로 돌아갔다.

클래식 기타 동호회에는 금기가 하나 있는데 바로 연습실에서 가요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면 안 된다는 규칙이었다.

회장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가장 강조한 것이 그것이었으니 학생들의 시선이 그를 바라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회장은 학생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잠시 어색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

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선배님, 얘들이 선배님의 실력을 꼭 보고 싶어 하는 눈치네요. 오늘만 예외로 둘 테니 한번 보여주시죠.”

“그래요, 선배님!”

회장이 허락을 하자 연습실에 몰려 있던 놈들이 전부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아, 말을 잘 못 꺼냈다.

괜히 김현영을 최윤주 쪽에 붙여주려고 하다가 꼼짝 못 하고 기타를 쳐야 할 판이다.

미국에서 살 때 윤성호와 이성일이 낚시에 빠졌다면 최강철은 기타를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제법 기타를 쳤기 때문에 6년이란 시간 동안 소일거리로 기타를 치자 상당한 수준까지 올랐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은 거의 없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기타의 현을 만져 조율을 한 후 자세를 잡았다.

“너무 놀라지 마. 그리고 앙코르는 안 돼.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연습실을 박차고 나가거나 야유를 보내면 난 자살할지도 몰라. 알았지?”

“네!”

현을 향해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통기타와 현의 굵기가 다르고 음의 색깔에서 차이가 났지만 막상 부드럽게 현을 쓸어내리자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평소에 자주 연주했던 곡, 바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였다.

도입부의 영롱한 스리핑거주법으로 기타의 현을 움직이자 단박에 학생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탄성은 곧 고요로 변했다.

최강철의 기타에서 흘러나오는 음률의 조화는 그들을 침묵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환상적인 것이었다.

노래를 하지 않은 채 손가락만을 움직여 연주했음에도 노래가 지닌 특유의 서정성이 한껏 묻어나오며 학생들의 시선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연주만 하던 최강철의 입이 슬그머니 열린 것은 전반부의 연주가 끝나고 후반부로 들어설 때였다.

And the people bowed and prayed

To the neon god they made

……

Whispered, In the sound of silence

전혀 예상치 못했던 최강철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여대생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기타 연주와 어울리는 부드럽고 달콤한 노래가 그녀들의 귀를 자극해서 더없는 감동을 심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노래를 끝낸 최강철이 기타를 내려놓은 것은 학생들이 전부 박수를 치면서 환성을 질렀을 때였다.

“거봐. 놀랄 거라고 했잖아. 앙코르는 안 돼. 아는 게 이것밖에 없거든.”

* * *

톰슨이 날아왔다.

거의 협상이 완료되어 가고 있으니 곧 연락을 주겠다던 톰슨은 계약서를 들고 직접 한국으로 날아와 최강철을 찾아왔다.

최강철은 그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고 그가 자신을 찾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말라 보이는군요.”

“요즘 밤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래. 이럴 때마다 항상 그랬던 거라 이제 이골이 나서 염려할 정도는 아니야.”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까?”

“내가 온 이유가 그것밖에 더 있겠나. 듀란 쪽과 협의가 모두 끝났어. 허리케인, 자네만 오케이를 해주면 모든 것이 끝이야.”

“들어보겠습니다. 말씀하시죠.”

“시합은 8월 23일. 장소는 우리 홈 링인 뉴욕 시저스 펠리스일세.”

“톰슨 씨는 항상 다른 것부터 말씀하시는군요.”

“자네 개런티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게 결정되어야 시합을 하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닙니까?”

“음… 돈 킹 씨가 그쪽과 합의한 금액은 1,000만 달러야. 듀란은 자네보다 적은 700만 달러를 받을 걸세. 이미 겪었지만 돈 킹 씨는 자네에게만큼은 돈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아니야. 최상으로 결정한 금액이라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어.”

“1,000만 달러라… 그 정도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최강철이 흔쾌히 받아들이자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톰슨의 얼굴에서 웃음이 활짝 피어올랐다.

하지만 웃음은 그에게서만 피어난 게 아니다.

돈 킹.

영악한 사람이다. 분명히 자신의 이윤은 충분히 확보해 놓은 상태에서 개런티를 산정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톰슨의 말대로 1,000만 달러라면 그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레너드조차 받아보지 못한 꿈의 대전료였으니 돈 킹이 얼마나 그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개런티 가지고 몇 푼 더 받겠다며 투덜거리는 건 그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다.

최강철은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본 후 거침없이 사인을 했다.

앞으로 4개월 후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꿈의 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기다려, 듀란. 한판 멋지게 놀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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