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21화 (121/308)

[121]

모든 것이 똑같다.

언제 어느 장소든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이다.

최강철은 파티가 벌어지는 컨버터호텔 파티 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컨버터호텔은 뉴욕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정재계에서 벌이는 대규모 파티들이 이곳 파티 룸에서 벌어지곤 했다.

파티의 시작은 오후 6시부터였으나 최강철은 윤성호와 이성일을 대동하고 30분 늦게 도착했다.

호텔의 입구에서 파티장까지의 거리는 300m.

돈 킹은 호언했던 것처럼 성대한 파티를 열었기 때문에 파티장으로 가까이 갈수록 턱시도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최강철은 검은색 정장에 노타이 차림이었다.

복서가 다른 사람들처럼 턱시도를 매는 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강철이 그렇게 입자 윤성호와 이성일도 비슷하게 입었다.

“강철아, 관장님도 장가간다는데 오늘은 나를 적극 밀어줘라. 우리 인간적으로 너무한 거 아니냐. 전부 짝이 있는데 나만 없잖아. 이건 같은 팀으로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어떻게 밀어줘야 되는데?”

“내가 찍으면 네가 움직여. 가급적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사귈 수 있도록 해봐.”

“미친놈.”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은 게 잘못이다.

이놈은 자신의 주제를 너무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이날 이때까지 애인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걸 잠시 잊었다.

그들 일행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파티장에 들어서자 멀리서 돈 킹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늦게 도착한 그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사람아, 왜 이리 늦었어?”

“조금 늦을 거라고 미리 말했잖습니까.”

뻔뻔하게 말했다.

주인공은 원래 늦는 거라고 말했다가는 머리털이 전부 뽑힐지도 모른다.

돈 킹은 그가 들어서자 10여 명으로 구성된 악단의 음악을 중지시키며 무대로 이끌었다.

“여러분, 오늘의 주인공 허리케인입니다. 환영의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마이크를 잡은 돈 킹이 소개를 하자 몰려 있던 기자들이 마구 플래시 불빛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들은 밥벌이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들이다.

허리케인의 파티 장면은 그들로 인해 내일 신문지면을 가득 채울 것이 분명했다.

“부끄럽게도 돈 킹 씨께서 제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파티를 열어주셨습니다. 오늘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최강철은 짧게 인사를 마친 후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런 파티에서는 촌스럽게 여러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사람과 조용히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게 상류 사회 파티의 법도다.

돈 킹이 준비한 무대는 다양했다.

제법 유명한 가수들이 3명이나 초대되었고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댄스 팀까지 나왔기 때문에 참석한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최강철은 무대에서 내려와 돈 킹의 소개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정재계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자들을 소개받았지만 이름조차 외우지 않고 형식적인 인사만 나눴을 뿐이다.

화려한 파티장이 더욱 빛나는 것은 아름다운 미녀들이 득실거렸기 때문이다.

돈 킹은 정재계 인사들을 초청하면서 그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잘나가는 여자 모델들과 배우들을 파티에 참석시켜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아름다운 미녀들이 참석한 파티는 분위기가 뜨거울 수밖에 없다.

강한 힘을 가진 수컷들은 여자를 좋아했고 아름다운 여자들은 돈과 명예를 가진 자들에게 약한 법이니, 오늘 파티가 끝나면 주변의 호텔 룸은 이들로 인해 북적일지도 모른다.

최강철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모르는 자들과 오래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돈 킹의 안면을 세워주기 위해 주요 인사들과는 전부 돌아가며 인사를 했다.

어느 정도 인사가 끝나자 겨우 숨을 돌리고 한쪽 구석에서 화이트 와인을 들어 올렸다.

그때 사라졌던 이성일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강철아, 저기 봐라. 아그네스다.”

“어, 저 여자가 여길 왜 왔지?”

“아그네스만 온 게 아니야. 브리짓트와 프란시스도 왔어. 할리우드 스타들을 초대한다더니 꽤 많이 왔더라.”

“넌 여자만 보고 다녔냐?”

“당연하지. 오늘 여기 물 좋네. 완전히 끝내줘.”

“이 자식아, 좋으면 뭐 해. 너한테는 그림의 떡인데.”

“그림의 떡은 무슨. 따라와. 그림의 떡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 테니까. 이 기회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 저런 할리우드 스타들과 이야기해 보겠냐.”

“야, 당기지 마. 술 쏟아져.”

“닥치고 따라와, 인마. 약속한 거 지켜야지!”

막무가내다.

이성일이 워낙 세게 끌어당겼기 때문에 최강철은 들고 있던 화이트 와인 잔을 얼른 내려놓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그네스가 있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과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친구로 보이는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최강철이 다가서자 묘한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아그네스는 지금 할리우드의 샛별로 각광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는 신인 배우로서 특유의 섹시함으로 남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짓자 기분이 이상했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성일도 막상 그녀와 가까워지자 슬그머니 최강철의 뒤로 빠졌다.

가까이 갈수록 그녀의 외모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선발 주자의 임무를 부여안고 어쩔 수 없이 멍청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아그네스죠?”

“미스터 허리케인, 저를 알아보시다니 고맙네요. 늦었지만 승리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더 매력적이시네요. 저는 허리케인의 광팬이에요. 당신의 경기는 안 본 게 없을 정도랍니다. 신문에서도 보도했는데 못 본 모양이네요. 제가 당신을 이상형이라고 말한 게 스포츠라인에 보도된 거 못 봤나요?”

“이런, 그걸 왜 내가 못 봤을까요. 봤다면 제일 먼저 당신에게 달려왔을 텐데요.”

“호호… 지금이라도 와서 다행이에요.”

“옆에 계신 분은 같이 오셨나요. 정말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제 친구예요. 코델리아라고 해요.”

최강철이 화제를 돌리자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우아하게 손을 내밀었다.

이 여자도 예쁘다. 유유상종이라더니 코델리아는 아그네스와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 이 친구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코치를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사하시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다.

뒤에서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보던 놈에게 멍석을 깔아주자 이성일이 즉시 나오며 두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때부터 둘은 그녀들과 함께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성일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지만 따분한 인사들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녀들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그네스의 입이 슬쩍 열린 것은 이성일이 코델리아와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확인한 후였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는데 이성일은 의외의 선전을 벌이며 코델리아를 연신 웃음 짓게 만들고 있었다.

“허리케인,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아까 말한 것처럼 당신을 보기 위함이었어요. 다른 스케줄이 있었는데도 취소하고 왔어요. 이만하면 제 성의가 기특하죠?”

“고맙군요.”

“그러니까 보상을 해주세요.”

“어떻게 말입니까?”

“난 허리케인과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면 해요. 오늘밤 당신과 함께하고 싶은데 그래줄 수 있나요?”

아그네스가 말을 마치며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핥았다.

너무나 고혹적이어서 금방이라도 낚아채고 싶을 만큼 뇌쇄적인 모습이었다.

왜 남자들이 그녀에게 미치는 줄 알겠다.

“나와 사귀자는 뜻입니까, 아니면 오늘 하루 즐겁게 섹스를 하자는 뜻입니까?”

“나는 둘 다 좋아요.”

“솔깃한 제안이군요. 그런데 어쩌죠. 나는 카메라 앞에서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녀의 놀라는 얼굴을 보며 웃었다.

나는 결코 고리타분한 남자가 아니다.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섹시 스타가 같이 자자는데 마다할 만큼 정조 관념이 뛰어난 남자가 아니란 뜻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자신의 삶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뇌쇄적인 몸을 안는 순간 귀신같이 따라붙은 기자들로 인해 내일이면 그녀와 묵었던 호텔의 전경 사진이 수많은 신문에 대문짝하게 나올지도 모른다.

* * *

김도환은 책상에 앉아 내일 기사로 나갈 허문석의 동양 타이틀전 경기 예상평을 쓰다가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통을 신경질적으로 붙잡았다.

이런 경우가 가장 싫다.

정신을 집중하고 기사를 쓸 때 전화가 오면 생각하고 있던 내용들을 까먹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자꾸 감퇴되어 방금 생각했던 것들도 되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보세요?”

-김 기자님, 잘 지내셨습니까. 저 강철입니다.

“허억, 강철아!”

김도환이 비명처럼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옆에 있던 기자들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의 무게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네가… 어쩐 일이야. 나한테 전화를 다 주고?”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김 기자님이 하도 전화를 안 해서 제가 했죠. 뭐 하시나 궁금해서요.

“뭐 하긴, 일하면서 지내지. 그런데 정말 뭔 일이니. 천하의 허리케인이 나한테 전화했을 때는 일이 생긴 거 아냐? 뭐야, 말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뭐든지 해줄 테니까.”

-부탁을 드리려고 전화한 거 아닙니다.

“그럼?”

-제가 김 기자님을 형님처럼 생각하는 거 아시죠?

“그야 당연하지. 우리 강철이가 그렇게 생각해주는 거 때문에 내가 요새 잘나가잖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고마운 건 제가 더 고맙죠. 그래서 말인데요. 다른 사람보다 먼저 김 기자님에게 알려줘야 될 것 같아서요. 저 일주일 후에 귀국합니다.

“정말… 정말이냐?”

-이제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하려고요. 이번 학기에 복학할 생각이에요.

“…그럼 한국으로 아주 들어오는 거네?”

-아뇨, 방학 때는 미국으로 들어갈 거예요. 시합이 방학 때 잡힐 것 같거든요.

“방학 때 시합을 한다고? 누구랑?”

-지금 돈 킹이 추진하고 있는 건 듀란입니다. 이야기가 잘 진행된다니까 아마 협상이 성사되면 8월 달에 시합이 잡힐 것 같아요.

“이거, 기사로 내도 되는 거니?”

-그러라고 전화한 겁니다. 우리 형님, 특종 한번 때리시라고요.

“아이고, 이 자식아. 고맙다.”

-이만 끊습니다. 나중에 들어가서 봐요.

“그래, 들어와서 보자. 내가 거나하게 맛있는 거 쏠게.”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도환이 손을 떼지 못하고 한동안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가 쓰던 기사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 국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옆에 있던 기자들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같이 뛰었다.

그들 역시 허리케인이란 이름을 들었기 때문에 김도환이 뛰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급하게 따라왔다.

콰앙!

국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서자 전화를 하고 있던 국장이 놀란 눈을 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게 보였다.

“국장님!”

“뭐야, 뭐, 전쟁 났어?”

“특종입니다.”

“특종? 어떤 특종!”

국장이 상대방과 통화하던 손을 급히 내려놓으며 급하게 다가왔다.

그는 김도환이 특종이란 말을 하자 잔뜩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도환이다.

김도환은 최강철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라 요즘 스포츠서울의 판매 부수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보물이었다.

그를 다음 달에 부장으로 승진시키는 것도 그동안 세운 공로 때문이었다.

“최강철이 다음 주에 완전 귀국한답니다. 귀국해서 서울대에 복학한다네요.”

“정말이야! 우와, 웬일이라냐!”

“그런데 국장님, 특종은 따로 있습니다.”

“숨 좀 돌리고 말해. 너 얼굴 시뻘개졌어. 이 자식아, 너 그러다 죽겠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허리케인의 다음 상대가 듀란이랍니다. 잘하면 8월 달에 시합을 할 수 있을 거래요.”

김도환의 말에 국장이 뒷목을 잡았다.

하지만 놀란 건 그뿐이 아니었다. 따라 들어온 기자들도 모두 기겁을 한 채 뒷목을 부여잡았다.

듀란과 싸운단다.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한 바로 그 전설의 돌주먹, 듀란과 말이다.

이건 특종 정도가 아니었다.

내일 아침 이 사실이 터진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벌집을 쑤신 것처럼 뒤집어질 만큼 거대한 핵폭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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