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16화 (116/308)

[116]

하나씩 부순다.

접근해 나가자 레프트 잽을 날리려던 마크 브릴랜드의 손이 움찔했다가 뒤로 빠졌다.

레프트 잽을 날리려는 순간 최강철이 번개처럼 카운터펀치,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갈겼기 때문이다.

펀치는 피했지만 마크 브릴랜드는 전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최강철의 후속 공격을 향해 반격을 선택했다.

레프트 잽이 꺾인 이상, 최강철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무기는 이제 빠른 스텝만 남았을 뿐이었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최강철의 접근을 막지 못했다.

다시 시작되는 접근전.

이 자식, 아직도 호흡이 살아 있는 걸 보니 엄청난 체력 훈련을 소화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몸이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그의 스텝이 보여준다.

경기 시작했을 때는 8기통 강력한 엔진을 단 오토바이처럼 달리던 스텝이 이젠 6기통으로 줄어 있었다.

가슴 쪽으로 파고들며 라이트 훅을 꺼내 들자 지체 없이 놈의 숏 스트레이트가 번개처럼 날아왔다.

정확하다. 그리고 예상했던 일이기에 최강철은 고개를 젖혀내면서 즉시 펀치가 빠져나와 비어 있는 적의 레프트 바디를 때린 후, 가다가 멈춘 라이트 훅을 변환시켜 놈의 안면을 향해 내리꽂았다.

습관적으로 연타를 퍼부으려던 마크 브릴랜드의 신형이 비틀하며 뒤로 물러났다.

파앙!

비록 중간에서 멈췄다가 때렸지만 감촉이 좋을 만큼 정확하게 들어간 펀치였다.

맹수는 한번 먹이의 목 줄기를 물면 결코 놓지 않는다.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말이다.

최강철은 마크 브릴랜드가 균형을 잃고 뒤로 물러서자 전광석화처럼 파고들며 미사일 같은 양 훅을 날렸다.

정확하게 맞히지는 못했지만 반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펀치였다.

펀치가 빗나가는 순간 최강철의 몸통이 상대의 가슴을 그대로 들이박았다.

로프로 밀린 마크 브릴랜드가 당황한 표정으로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으나 최강철의 머리가 먼저 퇴로를 차단했다.

그때부터 프레디 아두를 쓰러뜨렸던 최강철의 쇼트 콤비네이션이 터지기 시작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로프에 상대를 묶어놓은 채 터지는 최강철의 펀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크 브릴랜드의 전신을 두들겼다.

파박, 파바방… 팡, 팡, 팡!

리치가 길다는 것은 복싱에서 엄청난 장점이었으나 거리가 확보되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독약이 되어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다.

마크 브릴랜드는 로프에 등을 기댄 채 가드를 잔뜩 올린 상태에서 방어를 하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던지 최강철의 몸을 끌어안고 버텼다.

클린치 작전이다.

지금까지 아웃복싱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끌어안지 않았던 마크 브릴랜드는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자 팔을 붙들고 늘어졌다.

하아, 이 자식. 별걸 다하네.

* * *

“아, 아깝습니다. 마크 브릴랜드, 결정적인 순간마다 클린치 작전을 쓰는군요. 자꾸 공격의 흐름이 끊깁니다. 아무래도 마크 브릴랜드는 초반에 딴 점수를 지키면서 승부를 판정으로 끌고 가려는 것 같습니다. 답답한 상황입니다. 정 위원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인파이팅의 최대 적은 바로 저 클린치 작전입니다. 저렇게 붙들고 늘어지면 경기의 흐름이 자꾸 끊깁니다. 심판이 경고를 줬으면 좋겠는데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마크 브릴랜드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늘어지면 최강철 선수도 어쩔 수 없어요.”

“그럼 큰일이잖습니까. 아직 점수가 많이 뒤지고 있을 텐데요.”

“정말 치사한 작전을 들고 나왔어요. 초반에 그토록 강하던 마크 브릴랜드는 어디 간 겁니까? 저, 저, 또 붙잡는군요.”

“이제 3라운드밖에 남지 않았는데 걱정입니다. 이럴 때 강하게 뿌리쳤으면 좋겠는데요.”

김영국이 슬쩍 물병을 들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이 탔다.

7라운드부터 시작된 마크 브릴랜드의 클린치는 8, 9라운드부터는 아주 붙잡고 늘어질 정도로 집요하게 변해 있었다.

때리고 붙잡는 변칙 작전. 그야말로 더티 복싱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최강철은 여전히 앞으로 전진하며 공격을 시도했으나 긴 리치를 이용해서 붙잡고 늘어지는 마크 브릴랜드의 작전에 말려들어 효율적인 공격을 하지 못했다.

“강철아, 이러다 진다.”

“왜요?”

“인마, 점수가 한참 뒤져 있어. 이대로 판정으로 가면 진단 말이야. 벌써 10라운드다. 이제 3라운드밖에 남지 않았어!”

“저 개새끼, 어떻게 좀 해봐. 저 씨발 놈, 네가 유부녀로 보인다냐. 왜 붙잡고 늘어지는 거야. 붙잡을 때 불알을 차버려. 뒈져 버리게!”

윤성호와 이성일이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라운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으니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을 것이다.

아웃복싱을 하는 놈이, 그것도 신체 조건이 훨씬 좋은 놈이기에 클린치 작전으로 나올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그들은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강철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관장님, 저 자식 지쳤어요.”

“넌 안 지쳤고? 붙잡는 것도 뿌리치지 못하면서 무슨 소리야.”

“관장님은 눈 좋은 줄 알았더니 아닌 모양이네요. 내가 일부러 붙잡혀 준 거 몰랐어요?”

“왜 일부러 붙잡혀 줘!”

“내가 잡혀만 있었습니까? 저 새끼 복부를 계속 때린 건 못 봤어요?”

“허억…….”

그렇긴 했다. 하지만 클린치 상태에서 때린 공격이었기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는데 최강철은 그것을 위해 일부러 잡혀주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최소한 저 새끼 복부를 30대는 때렸습니다. 저놈은 끌어안느라 정신이 없었겠지만 지금쯤 다리가 천근처럼 무거워졌을 거예요. 이제 끝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치겠네.”

“약속한 것처럼 성일이 대가리나 막아놔요.”

거짓말이 아니다.

레프트 잽을 막아놨기 때문에 놈의 스텝만 멈추게 만들면 이 경기는 끝장을 낼 수 있다.

라운드가 거듭되면서 난타전을 벌였으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빠른 발로 도망갔기 때문에 최강철은 놈이 위기를 피하기 위해 클린치를 할 때마다 복부를 집요하게 공략했다.

왼팔을 잡으면 오른손으로 때렸고 오른손을 잡으면 왼 주먹으로 때렸다.

클린치는 두 팔을 다 잡지 못한다는 걸 놈은 간과한 것 같았다.

물론 거리를 둔 상태에서 강력하게 때린 것은 아니었으나 최강철의 숏 훅은 충분히 대미지가 쌓일 정도로 날카롭게 적의 복부를 공략했다.

걸어 나오는 마크 브릴랜드의 다리가 그의 눈에는 후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최강철은 놈에게 다가서며 어깨를 좌우로 털었다.

불쑥 앞으로 다가서는 순간 마크 브릴랜드의 좌우 스트레이트가 기습적으로 날아왔다.

슬쩍 더킹으로 피하며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날리자 습관적으로 몸통을 잡아 오는 팔이 보였다.

놈은 이제 뒤로 물러서는 대신 바짝 붙는 작전을 선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크 브릴랜드는 최강철의 팔을 붙잡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최강철이 팔을 잡아온 마크의 몸통을 거칠게 밀었기 때문이다.

따라 들어간 최강철의 왼쪽 훅이 균형을 잃은 마크 브릴랜드의 옆구리를 강하게 때린 후 빠져나오며 오른쪽 훅이 가딩을 뚫고 안면을 훑었다.

놀랐냐? 놀랐을 거야.

참으로 지루했어. 난 이런 경기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너의 선택은 그리 현명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보여줄게.

최강철의 러시는 8, 9라운드와 확연히 달랐다.

마크 브릴랜드가 붙잡을 수 없도록 거리를 유지한 채 폭격을 퍼부었는데 리치가 긴 상대에게 되도록 쓰지 않았던 전술이었다.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위험했겠지만 이젠 아니다.

클린치를 하기 위해 접근해 들어오면 뒤로 빠지며 펀치를 갈겼다.

그의 전매특허이자 폭풍처럼 터지는 콤비네이션 펀치들이었다.

마크 브릴랜드는 자신의 클린치 작전이 용이하지 않자 반격을 선택했지만 그게 그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최강철의 펀치는 각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터졌다.

한 방, 두 방, 세 방.

버티던 마크 브릴랜드의 신형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안면에 적중되는 펀치들이 쌓여갈 때마다 뒤로 물러서는 스텝은 둔해졌고 반격하는 펀치들도 힘이 빠졌다.

최강철이 슬쩍 이를 악문 것은 자신의 오른쪽 스트레이트가 놈의 턱을 흔들어놨을 때였다.

여기서 끝낸다. 이 지루하고도 재미없는 경기를 말이다.

빠르다. 마크 브릴랜드의 스텝이 무뎌진 반면 최강철의 발은 이전 라운드보다 훨씬 더 빨라져 있었다.

체력 싸움에서 확실하게 우위에 있다는 뜻이었다.

도망가는 적의 심장을 뜯어 먹는 맹수의 발톱.

최강철의 펀치들이 쉴 새 없이 터지며 마크 브릴랜드가 견고하게 구축해 놓은 가딩을 무너뜨렸다.

붕, 붕… 파바바방!

코너로 몰아넣은 최강철의 콤비네이션 펀치가 기관단총을 갈기는 것처럼 마크 브릴랜드의 전신에 작렬했다.

마크 브릴랜드가 붙잡기 위해 뛰어나올 때마다 최강철은 기다렸다는 듯 몸통으로 가슴을 박아서 다시 코너로 처박았다.

“허억, 헉… 헉.”

붉게 달아오른 마크 브릴랜드의 코에서 코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고 숨소리는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숨을 거두기 전의 늑대처럼 헐떡였다.

그만 쓰러져. 더 다치기 전에…….

이제 관중들의 함성은 시저 팰리스 호텔을 무너뜨릴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막강한 공격력을 확인한 그들의 눈은 경악으로 인해 부릅떠져 있었고 솟구쳐 올라온 전율로 인해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광란에 빠져들었다.

최강철은 코너에 박혀 더 이상 빠져나오지 못하는 적의 숨결을 확인한 후 슬쩍 뒤로 물러섰다가 마지막 한 방을 준비했다.

그것은 바로 허리를 굽힌 채 얼굴을 수그린 적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강력한 어퍼컷이었다.

콰앙!

가딩을 뚫고 들어간 최강철이 그대로 안면을 직격하자 간신히 버티던 마크 브릴랜드의 몸이 스르륵 캔버스를 향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옆에서 긴장된 눈으로 지켜보던 레프리가 달려들며 최강철을 반대쪽 코너로 몰아냈으나 그는 뒤로 세 발만 물러선 후 그대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마크 브릴랜드는 쓰러졌던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꿈틀거렸으나 피니스 블로우를 터뜨렸을 때의 감촉으로 그가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이 완전히 풀린 상태에서는 몸의 균형이 제대로 작동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장하다, 마크.

나를 이기고 싶어 했던 너의 간절했던 마음이 그 꿈틀거림에서 느껴지는구나.

하지만 어쩌겠나. 이 또한 운명이지 않겠느냐.

* * *

“최강철 선수 무섭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원투 스트레이트. 복부, 날카롭게 들어갔습니다! 정 위원님,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최강철 선수가 완벽하게 달라졌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마크 브릴랜드가 클린치조차 하지 못하는군요. 밀려 나갑니다. 무서운 파괴력입니다.”

“최강철 선수, 마크 브릴랜드를 코너에 몰아넣었습니다! 미사일 같은 양 훅. 드디어 터지고 있습니다. 최강철 선수의 폭발적인 콤비네이션 공격! 마크 브릴랜드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잠시 물러서는 최강철! 앗, 어퍼컷입니다. 정확히 들어갔습니다. 마크 브릴랜드 쓰러집니다! 쓰러졌습니다! 레프리 카운트. 중지시킵니다. 레프리가 경기를 끝냈습니다! 만세, 최강철 선수가 이겼습니다! 조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최강철 선수가 링의 마술사 마크 브릴랜드를 꺾고 통합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기뻐해 주십시오! 대한민국의 건아, 대한민국의 영웅, 최강철 선수가 마크 브릴랜드를 KO로 꺾고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벌떡 일어선 채 중계하고 있던 김영국이 울부짖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나 믿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9라운드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던 최강철이 기적처럼 괴력을 발휘하며 단숨에 경기를 끝내 버리자 김영국과 정민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펄쩍펄쩍 뛰었다.

* * *

울지 말라니까.

윤성호는 제대로 기뻐하지 못한 채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대성통곡을 했다.

누가 보면 마치 부모님이라도 돌아가신 것처럼 울고 있었다.

철석같이 다짐했던 약속도 잊은 채.

차마 눈물을 철철 흘리며 대가리를 들이미는 이성일의 행동을 막지 못했다.

“이 자식아, 천천히 해.”

자신의 몸이 이성일로 인해 붕 뜨는 걸 느끼며 눈이 붉어졌다.

같이 고생했던 동료들이 다 울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꿈에 그리던 챔피언 벨트를 기어코 따냈다는 기쁨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 왔다.

왜 눈물이 나오는 거야, 이 기쁜 순간에.

하지만 괜찮다.

쪽팔림은 잠시에 불과하고 기쁨은 오래 가는 거니까 같이 울자.

우리가 같이 얻어낸 이 영광을 축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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