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13화 (113/308)

[113]

* * *

“와우, 이게 무슨 난리야. 도대체 몇 나라에서 온 건지 모르겠네.”

“18개국에서 중계방송한다네요. 최강철이 인물은 인물인 모양입니다.”

“허어, 일본도 왔구만. 저거 구시켄이잖아?”

“그렇군요.”

KBS의 복싱 앵커 김영국이 놀란 얼굴로 반대쪽에 중계석을 설치하는 사람들을 보며 입을 떠억 벌렸다.

해설 위원인 정민철의 말대로 콧수염을 기른 구시켄 요코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의 복싱 영웅으로 라이트 플라이급에서 13차 방어전을 성공시킬 때까지 무적을 구가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NHK에서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일본인들에게는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많다.

18개국에서 동시에 위성생중계를 하기 때문인지 시합을 하루 앞둔 시저 팰리스호텔 특설 링 주변에는 각국에서 날아온 중계진들이 준비를 하기 위해 북적이고 있었는데, 스태프진까지 포함됐기 때문에 100여 명이 훌쩍 넘어 보였다.

김영국이 몸을 경직시키며 정민철의 소매를 슬쩍 잡아당긴 것은 구시켄 요코가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죠?”

“그렇습니다.”

“저는 구시켄 요코입니다. 몇 가지 물어볼게 있어서 왔는데요. 잠시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일본의 복싱 영웅을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늘 제가 중계방송의 해설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허리케인과 관련한 일들을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아시겠지만 최강철 선수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근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김영국이 빈자리로 그를 안내한 후 정민철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구시켄 요코가 입은 연 것은 김영국이 탁자에 있는 음료수를 전해주었을 때였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뭘 말입니까?”

“한국에서 허리케인 같은 슈퍼스타가 나왔는데 당연히 축하해 드려야죠. 제가 봤을 때 허리케인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숩니다. 이런 선수를 배출했으니 한국 사람들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구시켄, 당신은 일본에서 복싱 영웅으로 우상시되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허리케인을 그리 높게 평가해 주니 당황스럽군요.”

“하하… 별말씀을. 허리케인은 저와 수준이 다른 선수입니다.”

구시켄 요코가 웃으며 말하자 김영국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촬영 기자를 향했다.

이것도 특종이다.

일본의 복싱 영웅이 자진해서 중계석까지 온 것도 의외의 일인데 최강철을 극찬하고 있으니 충분히 특종으로 다룰 수 있는 내용이었다.

“죄송하지만 구시켄, 우리는 당신과 대화하는 내용을 카메라에 담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저희들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요.”

구시켄이 기다렸다는 듯 손짓하자 일본 쪽에서도 몇 사람이 다가오더니 카메라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걸 본 김영국이 작정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시죠. 구시켄, 당신이 허리케인에 대해서 궁금한 걸 묻는다고 했으니 대담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실 우리도 일본의 반응이 궁금했거든요.”

“그렇게 합시다. 저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먼저 허리케인이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는 왜 먼 미국까지 와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죠? 제가 알기로 그는 세계 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까지 제패했기 때문에 탄탄대로의 복싱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요?”

“한국에서 말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저희가 아는 바로는 돈 킹이 이끄는 더 럼블이 아시안게임에서 최강철 선수가 히로키를 KO시키고 금메달을 딴 후 스카우트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돈 킹은 거액을 주고 최강철 선수를 미국으로 데려갔다더군요.”

“그건 저도 들었습니다. 스카우트 비용이 백만 달러라면서요. 하지만 허리케인 정도의 선수를 한국에서 놓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추어 대회를 모두 석권한 허리케인 정도라면 잡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한국의 프로모터들은 영세합니다. 일본보다 훨씬 열악한 상태죠. 그렇기 때문에 최강철 선수를 잡지 못한 걸로 압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최강철 선수가 미국으로 넘어가기를 강력하게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강한 선수들과 싸워야 단기간 내에 뛰어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저희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허리케인이 서울대생이라고 들었습니다. 맞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는…….”

구시켄의 질문은 계속되었고 김영국과 정민철은 번갈아가며 대답을 해주었다.

많은 걸 물었다.

최근에 노출되어 화제가 되었던 최강철의 학교 문제는 물론이고 가족 관계와 한국 국민들의 반응 등 여러 가지 질문이 이어졌다.

김영국이 반대로 질문을 시작한 것은 그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 다음부터였다.

“구시켄, 일본은 한국 선수의 중계방송을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요. 이번에 미국까지 날아온 이유는 뭔가요?”

“이 시합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한국 선수의 중계방송을 하지 않았던 것은 정치적인 문제나 양국 관계로 인해서가 아니라 생중계를 할 정도로 훌륭한 선수가 없기 때문이었죠. 그건 한국 측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 말씀은 최강철 선수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겠군요?”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대단한 선숩니다. 동양인으로서 웰터급을 제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하지만 허리케인은 무패를 기록하며 승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구시켄이 봤을 때 이번 경기는 어떨 것 같습니까. 미국의 전문가들은 마크 브릴랜드의 우세를 점치던데요?”

“복싱 경기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합니다. 미국 전문가들의 예상은 기술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마크 브릴랜드의 아웃복싱에 점수를 더 준 것이죠. 하지만 저는 그 예측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허리케인은 불사조와 같은 친굽니다. 그의 경기를 보면서 한국인 특유의 강렬한 투지와 에너지가 무섭도록 강하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그는 전사입니다. 링에 오를 때마다 괴력을 발휘해 왔으니 이번에도 저는 그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최근 일본에서도 웰터급에 무서운 선수가 등장했다고 들었습니다. 잠깐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호랑이 엔도를 말하는군요. 엔도 선수는 3년 전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현재 12전 12KO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번 달에 동급 동양 챔피언을 롱런했던 곤죠 선수를 KO로 꺾고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WBA 9위에 랭크되었습니다.”

“상당한 강펀치의 소유자인 모양이군요.”

“칼날 같은 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뛰어난 테크닉까지 가지고 있어 당분간 동양권에서는 그를 꺾을 만한 선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최강철 선수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아직은 어렵죠. 하지만 엔도는 허리케인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입니다. 강철 같은 투지를 가졌고 경기 스타일도 비슷합니다. 당장은 아니라도 시간이 조금 흐르면 좋은 상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 *

빅 이벤트.

복싱에서는 매달 세계 타이틀전이 벌어지지만 빅 이벤트라고 불리는 경기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다.

최강철과 마크 브릴랜드의 경기가 빅 이벤트로 분류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초의 WBA, IBF 통합 타이틀전 이었고 최강철의 불꽃같은 인파이팅은 미국에서 엄청난 팬층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상대가 인파이터의 천적인 링의 마술사 아웃복싱의 천재인 마크 브릴랜드라는 것이 사람들을 열광 속에 빠뜨려 버렸다.

미국의 3 대 방송사가 이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고 18개국에서 직접 위성중계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커다란 관심 속에서 치러지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 경기에 대한 특집 방송까지 편성하면서 시합 결과를 예측했고 미국에서는 도박사들이 역대 가장 큰 배팅을 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열기에 비하면 다른 나라의 반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합 당일이 되자 한국의 도로가 텅 비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도로에는 버스만 간간히 보일 뿐 차량의 흐름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 * *

“일단 술부터 마시자.”

“왜?”

“심장이 벌렁거려서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못 보겠어. 우리 소주 한 병씩만 까자.”

“좋은 생각이시고.”

꽃다방으로 향하던 김영호와 류광일이 이제 막 문을 연 슈퍼로 들어가 소주를 들어 올렸다.

그런 후 계산을 한 후 이빨로 뚜껑을 따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현재 시간 7시 30분.

꽃다방은 8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아직 30분의 여유가 있었고 중계방송은 9시부터 시작되지만 본 경기는 10시 30분으로 예정되어 있어 각자 주머니에 소주를 한 병씩 더 찼다.

희희낙락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저번처럼 가장 앞자리에서 보기 위해 다른 놈들이 예상하지 못할 시간에 서둘러 나왔으니 그들이 표정에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하지만 꽃다방 앞에 도착한 그들의 표정이 단박에 시커멓게 죽었다.

아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꽃다방 앞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충 세어보아도 30명이 훌쩍 넘었는데 이것들이 어느새 줄까지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눈을 확인한 후 미친놈들처럼 달렸다.

꽃다방의 정원은 50명이었으니 자칫 잘못했다가는 입장조차 어려울지도 모른다.

“헉, 헉! 광일아, 세어봐. 몇 놈인지.”

“씨발, 겨우 들어가겠네. 잘못하면 일어나서 봐야겠다…….”

불과 30m 정도를 뛰었는데도 술을 마셔서 그런가 호흡이 가빠와 제대로 말을 잇기 어려웠다.

뭐가 그렇게 웃겨.

이미 줄을 서 있던 놈들이 그들을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하아, 이 자식들. 생각하는 게 똑같다.

허리에 하나씩 꽂혀 있는 소주병이 여러 놈한테서 보였는데 오늘 아주 작정을 하고 나온 게 분명했다.

최강철은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일어나 커튼을 열어 젖혔다.

사막에서 떠오른 태양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며 어둠에 잠겨 있던 방 안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눈이 부셨으나 창가에 서서 새까맣게 깔려 있는 건물들을 내려다 봤다.

인간의 힘은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라스베이거스는 모래로 덮여 있던 불모의 땅이었으나 인간들은 수많은 건물을 빽빽하게 지어놓은 채 이곳을 천국이라 부르고 있었다.

시계를 보자 아침 6시를 가리키는 중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긴장, 흥분, 두려움. 그중에 자신의 잠을 설치게 만든 것이 있나 생각해 봤지만 거기엔 정답이 없었다.

정답은 바로 즐거움이었다.

강력한 적과 도망칠 수조차 없는 사각의 링에서 원 없이 싸운다는 즐거움 말이다.

바로 오늘.

최강철은 침대 옆에 놓여 있던 물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체육복을 걸친 채 방을 나섰다.

이 시간은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사람이 없을 시간이었다.

밤새도록 도박에 빠져 있던 사람들도 새벽 6시엔 녹초가 되고 여행객들은 전부 잠에 빠져 있기 때문에 거리에서 사람 구경하기 힘들 시간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을 빠져나와 달렸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오늘 벌어질 경기에 대해서 차분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무리는 하지 않았다.

인적이 끊어진 로드를 가볍게 뛰면서 호텔 주변을 세 바퀴 돌았을 뿐이다.

마크 브릴랜드.

지금까지 상대했던 자들 중에서 가장 강한 놈임은 분명했다.

인상적이었던 그의 레프트 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루시퍼에게 최강의 운동신경과 체력을 선물 받았으나 세상에는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종종 있었다.

마크 브릴랜드의 스피드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완벽하게 피했다고 생각했음에도 귓가를 스쳐 지나가던 그의 레프트 잽과 스트레이트의 위력은 면도날처럼 예리했다.

그럼에도 아무런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은 건 자신의 가슴속에 들어 있는 심장이 강철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략이 없다는 게 그를 더욱 즐겁게 만들고 있었다.

전략이 없다는 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이 한판 승부에 모두 쏟아부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서지영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많이 맞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장담하기 어려웠다.

이 경기는 맞지 않고는 끝장을 낼 수 없으니 시퍼렇게 부은 얼굴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계란 한 판 이상이 필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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