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12화 (112/308)

[112]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10일 앞으로 다가온 최강철 선수의 WBA 통합타이틀 도전전에 대한 특집 방송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정 위원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긴장되는데요. 먼저 최강철 선수의 근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최강철 선수는 지금 뉴욕에 있는 레드불스에서 합숙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워낙 성실한 선수기 때문에 외부와 일체의 연락을 끊고 훈련에 전념하고 있는데 벌써 3개월째 맹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건 마크 브릴랜드 선수도 마찬가지죠?”

“그렇습니다. 외신에 의하면 마크 브릴랜드 선수 역시 최강철 선수 못지않게 맹훈련 중이라고 합니다.”

“마크 브릴랜드 선수는 천재형으로 알려져 있잖습니까. 그동안 시합을 앞두면서 이렇게 맹훈련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던데요?”

“사실 훈련 기간이 얼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수가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훈련에 임했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마크 브릴랜드 선수는 이번 경기에 모든 것을 건 것처럼 보입니다. 앵커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크 브릴랜드 선수는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을 가지고 프로에 데뷔했으나 연전연승을 거두는 동안 불성실한 훈련 태도로 구설수에 많이 올랐었죠. 하지만 이번 시합을 임하면서 외신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훈련량이 많다는군요.”

“아, 큰일이군요. 그만큼 브릴랜드 선수가 최강철 선수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최강철 선수는 현재까지 19연속 KO승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브릴랜드가 상대했던 그 어떤 도전자보다 강력한 도전자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최강철 선수에게 아마추어 시절 패배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때보다 투지를 불사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자료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앵커인 김영국이 슬쩍 고개를 돌리자 화면에 마크 브릴랜드가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 경기장면 하이라이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KBS의 복싱 전담 앵커인 김영국은 파트너인 해설 위원 정민철과 단짝을 이뤄 수많은 경기를 중계방송한 베테랑이었다.

오늘 녹화가 끝나고 나면 이틀 후 미국으로 출발해서 위성중계를 할 예정인데 그들의 중계방송은 MBC와 합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단독으로 KBS에서 먹으려던 계획은 MBC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수포로 돌아갔지만 먼저 움직였기 때문에 공동 중계로 합의되었는데 그 덕분에 중계료를 100만 달러나 내야 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두 방송사가 끝까지 단독 중계를 고집했다면 ABC 놈들에게 최소 80만 달러씩은 쥐어줘야 했을 것이다.

“정 위원님. 마크 브릴랜드의 아웃복싱은 단단하고 화려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특히 저 레프트 잽은 일품이잖습니까?”

“인파이터들에게 마크 브릴랜드의 레프트 잽은 가공할 위력이 있습니다. 거의 스트레이트의 위력이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 무척 까다롭죠. 마크 브릴랜드의 아웃복싱은 저 레프트 잽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할 겁니다.”

“확실히 무섭군요. 레프트 잽을 맞은 가리온 선수가 휘청댈 정돕니다. 결국 가리온 선수가 패배한 것은 저 레프트 잽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레프트 잽에 많이 당했어요.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마크 브릴랜드의 스텝이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겁니다. 레프트 잽을 뚫고 들어가도 뒤로 빠지면서 날카로운 반격을 하기 때문에 고전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정 위원님이 생각하기에는 최강철 선수가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최강철 선수의 스피드는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마크 브릴랜드의 빠른 아웃복싱을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결국 아웃복싱을 잡기 위해서는 인파이팅을 해야 하는데 어떤 전략을 수립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현지의 도박사들은 승률을 50 대 50으로 보고 있다면서요?”

“전문가들은 60 대 40으로 마크 브릴랜드의 우세를 점치고 있습니다. 도박사들이 백중세를 예측한 것은 아마 최강철 선수의 강렬한 인파이팅에 높은 점수를 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반면에 전문가들은 마크 브릴랜드의 아웃복싱을 최강철 선수가 잡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마크 브릴랜드의 우세를 점치더군요.”

“정 위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최강철 선수가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최강철 선수는 항상 예상을 깨는 경기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려 왔습니다. 이번 경기에서도 저는 최강철 선수가 그렇게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는 허리케인입니다. 허리케인이 마술사 정도한테 질 리는 없잖습니까!”

* * *

마크 브릴랜드는 기자들을 상대하면서 거침이 없었다.

자신감.

그렇다, 자신감이 분명했다.

번들번들한 얼굴로 여유 있게 웃으며 승리를 자신하는 그의 말투는 조금의 주저함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크, 허리케인을 이기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나요?”

“그런 게 필요할까요. 그 친구를 이기는 데는 이것만 있으면 됩니다.”

마크 브릴랜드가 왼손을 들어 올리며 빙긋 웃었다.

레프트 잽이다. 그는 레프트 잽 하나로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췄다.

하지만 그의 대답에 만족할 만큼 기자들은 단순하지 않았다.

“허리케인은 당신의 레프트 잽을 아주 우습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레프트 잽 가지고는 자기를 잡을 수 없다던데요?”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레프트 잽이 그놈을 반쯤 죽여놓을 거란 겁니다.”

“허리케인에게는 막강한 공격력이 있습니다. 상당히 위험한 선순데 그걸 막아낼 자신이 있습니까?”

“충분합니다. 허리케인은 절대 나를 잡지 못합니다. 그동안 허리케인이 각광받은 것은 상대했던 자들이 수준 이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친구들과 격이 다른 사람입니다. 이번 경기를 보시면 그 놈의 실력이 얼마나 과대 포장 되었는지 알게 될 겁니다.”

“허리케인은 5회 이내에 경기를 끝내겠다고 자신했습니다. 마크, 당신은 어떻습니까?”

“개소리요. 당신들은 곧 허리케인이 피 떡이 되어 링을 떠나는 장면을 보게 될 테니 두고 보시오.”

갈수록 흥미진진하다.

경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양 선수를 인터뷰 할 때마다 새로운 기사거리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

역대의 빅 이벤트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신경전이다.

둘이 이미 한번 붙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기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전의가 펄펄 살아 숨 쉬었다.

그랬기에 기자들의 펜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토머스, 지금 들어갈 거지?”

“당연하잖아. 오늘 거 내일 터뜨리려면 바뻐.”

“허리케인한테는 언제 갈 거야?”

“왜?”

“한 번 더 우려먹어도 되지 않겠어?”

“됐다. 이만하면 충분해. 이틀 후면 공식 기자회견이야. 그때 커다랗게 한판 붙어줄 테니까 거기나 신경 쓰자고.”

“정말 그럴까?”

“저 자식 표정 봐라. 허리케인이 앞에 있으면 당장 주먹을 날릴 기세잖아.”

“하하… 그래주면 좋겠다. 경기 전에 한판 붙으면 끝내줄 텐데 말이야.”

“지랄한다. 그러다 시합 못 하면 어쩔래? 바랄 걸 말해, 이 자식아!”

* * *

최강철은 천천히 공식 회견장에 들어섰다.

이미 회견장은 수많은 기자로 꽉 차 있었는데 마크 브릴랜드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번쩍거리며 터지는 플래시 불빛을 받으며 여유 있게 웃어주었다.

양복을 멋지게 받쳐 입고 나온 최강철의 얼굴은 구릿빛으로 타서 멋들어진 몸과 함께 건강미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반대쪽에서 진행 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마크 브릴랜드가 들어서는 게 보였다.

그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이럴 때는 반갑게 맞아줘야 한다.

“어이, 마크. 오랜만이야?”

“손 치워!”

“그놈 참,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우리 사이에 악수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미친 자식.”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자 무시를 하듯 자신의 자리에 앉는 마크 브릴랜드를 보면서 최강철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워낙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져 양측에서는 대여섯 명의 경호원을 준비해 놨기 때문에 선수들의 주변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자들이 바글거렸다.

똑같은 질문들이다.

기자들은 어떡하든 자극적인 기사를 얻기 위해선지 예민한 질문들만 골라서 해댔다.

“허리케인, 마크는 당신의 공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건 본인만의 생각이지 않겠습니까. 기자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제 주먹을 맞은 선수들은 전부 쓰러졌습니다. 저는 마크가 제 주먹을 맞고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5회 이전에 끝낸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겠군요.”

“당연하죠. 마크가 도망만 다니지 않으면 충분합니다. 저 친구 턱은 유리 턱이라 예전처럼 한 방만 맞으면 쓰러질 테니까요.”

“퍽 유!”

최강철이 여유 있게 대답하는 순간 반대쪽에 앉아 있던 마크 브릴랜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최강철의 말을 더 이상 참기 어려운 듯 웃통까지 벗어 던졌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것 같았다.

그런 마크 브릴랜드를 경호원들이 막았다.

그냥 내버려 두면 최강철을 향해 돌진할 기세였기 때문이다.

장내의 소란이 잠재워진 것은 마크 브릴랜드의 수석 코치인 마일스가 뛰어들어 진정시킨 후였다.

하지만 기자들이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칠 리 없었다.

“마크, 방금 허리케인이 당신을 KO 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놈은 절대 나를 못 쓰러뜨려. 왠 줄 알아? 내가 저놈을 반 죽여놓을 거거든. 두고 봐. 저 자식이 링에서 엉금엉금 기어나가는 걸 보여줄 테니까!”

“마크, 도망이나 다니지 마, 이 자식아.”

“뭐라고!”

“도망가지 말고 화끈하게 붙자고 그랬다. 네가 도망만 다니면 복싱 팬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냐? 그러니까 도망 다니지 말고 제대로 싸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쪽 팔리게 도망 다니면서 점수로 어찌해 보겠다는 생각하지 말란 뜻이야.”

“야, 이 냄새나는 동양 놈아. 너 거기서 꼼짝하지 마. 죽여줄 테니까!”

간신히 진정되었던 기자 회견장은 마크 브릴랜드가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기 때문에 다시 엉망으로 변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는 그것이 특종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졌고 방송국에서 나온 놈들은 마이크를 들고 양 선수의 행동을 중계방송하면서 목이 터져라 외쳐대고 있었다.

* * *

“그 새끼 의외로 재밌네요?”

“뭐가?”

“아주 지능적입니다. 나름 프로에 들어와서 잘 나가더니 멘탈이 꽤 좋아졌어요.”

“그렇게 흥분했는데도?”

“그건 기 싸움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겁니다. 놈은 자신의 복싱 스타일이 인기 없다는 걸 잘 알아요. 그래서 더 와일드하게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별로 성과가 없었다는 뜻으로 들리는구나.”

“그렇죠, 뭐. 어차피 이 정도로 놈을 자극해서 이득을 보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더군요.”

“뭐냐?”

“놈이 준비한 게 아웃복싱만은 아니란 겁니다.”

최강철이 웃으며 말하자 윤성호와 이성일이 두 눈을 까뒤집었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최강철이 얻은 정보를 그들은 캐치할 수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아웃복싱만 해서 나를 반쯤 죽여놓겠다는 말을 할 수 없어요. 그건 다른 뭔가가 있단 뜻입니다.”

“그냥 해본 말일 수도 있잖아.”

“야수의 특징이 뭔 줄 아세요? 바로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함정을 파고 기다려야죠. 놈이 준비한 걸 일찍 꺼내 들도록 말입니다.”

“휴우, 어렵다, 어려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언제 상대의 전술을 다 알고 싸웠습니까.”

“인마, 넌 걱정도 안 되냐? 우린 준비한 게 별로 없어. 이런 시합은 처음이란 말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제대로 된 전략조차 만들지 못하다니 정말 한심하구만.”

“그놈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내 스타일은 카멜레온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놈이 어떤 식으로 나와도 대처가 가능하니까 상관없어요. 그리고 성일이가 준비한 게 있잖습니까. 나는 그게 마음에 들더군요.”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해.”

“복싱은 수많은 변수에 따라 움직인다고 관장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어쩌면 우린 전략을 만들지 않은 게 더 잘된 건지도 모릅니다. 준비한 전략이 깨지면 더욱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아니죠, 오늘이 다 지나갔으니 하루 남았군요.”

“그래, 이미 패는 던져졌으니 가보자. 난 언제나 널 믿어왔고 지금 이 순간도 너를 믿는다.”

“관장님, 우린 이 순간을 6년이나 기다려 왔습니다. 그놈이 뭘 준비했든 상관없어요. 총을 꺼내면 대포로 깔아뭉개고 칼을 준비했으면 장창으로 찔러서 박살을 낼 테니 염려 마세요. 우리가 이깁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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