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07화 (107/308)

[107] 제15장 통합 타이틀전

존 하인스가 쓰러지자 관중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최강철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어찌 보면 싱거운 승부였을 것이다.

1라운드에서 일방적인 공격을 당했으나 2라운드에 들어서면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최강철은 무적 그 자체였다.

짧지만 강력한 카타르시스의 경험에 온몸이 떨려왔다.

대적 불가다.

도전자가 비록 수준이하라 해도 2라운드에서 보여준 최강철의 복싱은 넘을 수 없는 산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돈과 시간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허리케인의 경기를 본 것만으로 충분히 이곳까지 온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을 열광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일은 경기가 끝난 후 찾아왔다.

장내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하던 최강철이 폭탄 발언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7년 전 저는 현 WBA 챔피언인 마크 브릴랜드와 아마추어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저는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신인이었고 마크는 누구나 인정하는 테크니션으로 각종 대회를 석권하던 강자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대회에서 마크 브릴랜드를 쓰러뜨렸습니다. 무명의 신인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죠. 그 후 그는 제가 프로로 전향한 84년 올림픽에서 절치부심 끝에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패배의 상처를 극복하고 정상에 올랐다는 건 그의 노력과 의지가 대단하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프로로 전향해서 WBA 세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아마와 프로를 모두 석권한 그의 테크닉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 저에게 패배했던 기억을 지워야 합니다. 수많은 관중과 시청자들 앞에서 마크, 나는 당신과의 결투를 신청코자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나를 이기지 못하는 한 영원히 패자로 살아가야 할 겁니다. 기회를 주겠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나를 이겨야 진정한 챔피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도전을 받아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관중 여러분들과 지금 텔레비전에서 저와 함께하고 있는 복싱 팬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WBA 측에서는 IBF를 인정하지 않으며 저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허리케인과 링의 마술사 마크 브릴랜드의 경기가 성사될 수 있도록 WBA를 설득시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최강철이 말을 끝내며 마이크를 들어 관중들 쪽으로 내밀었다.

관중들의 대답을 들어보겠다는 시늉이었다.

그러자 메디슨 스퀘어가든을 가득 메웠던 관중들이 거대한 함성으로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걱정 마라, 허리케인. 우리는 너를 지지한다.”

“WBA는 허리케인과 마크 브릴랜드의 시합을 승인하라!”

“우린 진정한 챔피언을 원한다. 싸워라, 싸워라!”

돈 킹이 찾아온 것은 경기를 끝낸 최강철이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의 옆에는 톰슨이 따르고 있었는데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허리케인, 잘했다.”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당연하지. 아무리 WBA가 완강해도 버티지 못할 거야. 내일부터 언론이 대서특필을 하기 시작할거다. 군불은 내가 충분히 땔 테니까 걱정하지 마.”

돈 킹이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최강철의 폭탄선언은 미리 그와 협의를 하고 내지른 것이었다.

물론 돈 킹이 부탁하지 않았어도 하고 싶던 말이었기 때문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돈 킹은 최강철이 IBF 타이틀전을 따낸 후부터 계속해서 WBA와 접촉하고 있었으나 자신들의 명줄이 달렸다고 판단한 WBA 측에서는 절대 불가를 고수했기 때문에 협상은 한 치도 진전되지 않았다.

누구든, 어떤 단체든 남이 자신의 먹이에 숟가락을 얹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인데 그들은 IBF가 자신들의 먹이를 뺏기 위해 달려드는 하이에나로 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최강철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해서 만약 이 시합이 성사라도 된다면 IBF를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은 막대한 돈을 뿌려대는 돈 킹의 로비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돈 킹,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반드시 마크와 싸울 겁니다. 만약 WBA가 끝내 통합 타이틀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IBF 타이틀을 버릴 생각이란 말입니다.”

“이봐…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

“나는 돈 킹 프로모션 소속이지만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IBF와 어떤 밀약을 했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나를 단순한 돈벌이의 도구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럴 리가 있나. 오해가 있나 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나를 믿어주게.”

돈 킹의 얼굴에서 똥 씹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최강철을 IBF 챔피언인 프레디 아두에게 도전시킨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자신이 투자한 IBF를 최단시간 내에 정상 궤도로 끌어 올리려는 욕심과 최강철의 인기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IBF 회장인 로버트와 최강철이 챔피언이 되었을 경우 세 게임을 치른다는 계약을 했고, 만약 파기할 때 500만 달러의 위약금을 물겠다는 사인을 했기 때문에 최강철이 WBA에 도전하기 위해 IBF 타이틀을 벗어던지면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내용을 최강철에게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여우 같은 놈은 벌써 낌새를 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돈 킹의 얼굴에서 다시 웃음이 떠오른 것은 오랜 관록에서 나온 경험과 경륜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IBF에 투자한 돈과 500만 달러란 위약금은 지금 최강철이 얻고 있는 막대한 인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비록 타격이 있을지 모르나 최후의 순간에는 모든 것을 버릴 각오도 돼 있었다.

“허리케인, 솔직히 말하지. 내가 탈세와 사기 혐의로 몇 년 간 쉬는 동안 복싱 세계는 밥 애런에게 전부 넘어간 상태네. 미친놈처럼 유망주들을 스카우트하고 있지만 밥 애런이 휩쓸어간 스타들에게는 상대가 안 되지. 그런 나에게 유일한 영웅은 허리케인 자네뿐일세. 나를 믿게. IBF와의 밀약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그걸로 인해 손해를 본다 해도 감수할 용의가 있단 말일세. 만약 WBA에서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네 마음대로 해. 나는 그 어떤 것보다 자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네.”

“좋군요. 그 말 믿겠습니다. 남자의 솔직한 말은 어떤 것보다 믿음을 주는 법이지요. 돈 킹, 나는 당신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이제 패는 던져놨으니 수습을 잘해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해 나갈 시간은 신뢰로 가득 차 있을 걸세. 그런 의미로 오늘 저녁은 내가 사지.”

* * *

언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최강철의 폭탄선언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는데 이번 경기를 생중계한 한국은 물론이고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해서 7개국이 동시에 떠들었기 때문에 전 세계의 복싱 팬들이 WBA의 태도를 성토하면서 시합이 성사되어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특히 토머스와 샘 프라이스는 스포츠라인과 뉴욕 타임즈에 일주일 간격으로 복싱계를 양분하고 있는 WBA와 WBC의 독점적 지위에서 오는 폐단과 오만적인 행동에 대해 터뜨리며 압박을 계속했다.

최강철의 광팬인 토머스와 샘 프라이스는 약속을 한 것처럼 번갈아가며 특집을 실었는데 시합이 성사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데스크에서 그들의 고집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면을 내준 것 또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양대 기구에 대한 기사에 이어 최강철과 마크 브릴랜드의 대결 성사를 전제로 전력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판매 부수가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에 데스크 쪽에서는 아예 적극적인 지원까지 할 정도였다.

<세기의 대결, 링의 마술사 마크 브릴랜드와 허리케인의 전쟁!>

자극적인 문구였지만 누구나 기대하는 제목이기도 했다.

토머스는 복싱 전문가답게 두 선수의 장단점을 분석하며 대결이 성사되었을 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전략을 실었는데 승자에 대한 예측까지 실어서 복싱 팬들의 흥미를 끌어냈다.

그의 승리 예측은 최강철에게 기울어 있었다.

마크 브릴랜드의 스피드가 압도적이었고 긴 리치를 이용한 아웃복싱이 현란했지만 결국은 폭풍 같은 최강철의 인파이팅에 무너질 것이란 예측이었다.

* * *

1차 방어전을 두 달 전에 끝내고 마이애미의 별장에서 쉬고 있던 마크 브릴랜드는 토머스가 쓴 기사를 읽은 후 바닥을 향해 패대기쳤다.

읽을수록 열이 받았고 가슴에서 분노가 끓어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최강철.

오래전 일격을 당했던 그 경기는 아직도 그의 가슴속에 비수로 찔린 것과 같은 아픔을 주고 있었다.

최강철에게 패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16전 전승을 기록하며 WBA 챔피언에 올랐으니 자신의 복싱 인생은 탄탄대로를 걸어왔다고 볼 수 있었다

그때 그 사건이 없었다면 완벽한 복싱 인생이었다.

최강철의 인터뷰를 보면서 가슴이 떨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더없이 정중한 인터뷰였으나 오히려 그것이 더욱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나를 이기지 못하면 당신은 진정한 챔피언이 아니다. 기회를 주겠다. 그러니 나의 도전을 받아달라.

인터뷰가 끝나자 마크 브릴랜드는 마시고 있던 맥주병을 던져 창문을 박살 내버렸다.

나는 전사다. 한 번의 실패로 화려한 영광에 상처를 입었으나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 않았고 불굴의 의지로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나는 너 따위로 인해 챔피언의 지위를 의심받을 만큼 약한 챔피언이 아니란 말이다.

눈앞에 최강철이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싸우겠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거의 패배는 아직 어렸을 때의 실수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다시 붙는다면 무참하게 놈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싸우고 싶었으나 그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그의 코치인 마일스가 적극적으로 말렸고 프로모터인 밥 애런까지 나서서 그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이유를 들었다.

“마크, 지금은 네가 저놈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 저놈은 지금 너를 향해 일부러 도발을 하고 있는 거야. 네 분노를 이끌어내서 시합을 성사시키는 전략을 펴는 거란 말이다. 그런 걸 뻔히 알면서 말려드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나는 말려들어도 상관없어. 저 새끼만 죽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

“모든 건 때가 있는 법이야. 네 가치를 생각해 봐. 너는 1, 2경기를 더 치르고 듀란이나 헌즈와 붙으면 최소 1,000만 달러를 벌 수 있어. 저런 새끼와 다툴 때가 아니란 말이다. 더 높은 곳이 금방 다가오는데 하찮은 놈과 싸울 거냐. 마크, 정신 차려!”

“으…….”

밥 애런의 설득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는 최강철을 자신보다 한참 아래로 내려다보며 듀란과 헌즈와의 대결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맞다.

자신의 꿈은 판타스틱4로 불리는 영웅들과 싸우는 것이었다.

한 세기를 주름잡으며 복싱 팬들에게 전설로 불리는 그들과 싸우는 것은 최강철에 대한 복수심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그리고 분노보다 더 큰돈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자 점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랬기에 언론에 일체 대응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참았다.

하지만 스포츠라인의 경기 예상을 읽고 나자 또다시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놈에게 당했던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컸고 복수를 하고 싶다는 열망은 가슴속에 시퍼렇게 살아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루 종일 미친놈처럼 호수를 뛰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으나 땀으로 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참으려 했다.

돈과 명예, 판타스틱4와의 꿈에 그리던 경기를 생각한다면 대응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으니 어떤 일이 생겨도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심은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다.

텔레비전에서는 NBC의 토크쇼에 최강철의 모습이 잡히고 있었다.

-저는 이 시합이 결정되지 못하는 이유가 마크 브릴랜드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WBA가 완강하게 고집을 부린다 해도 마크 브릴랜드가 저를 겁내지 않는다면 이 시합은 무조건 성사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 선수가 모두 싸우기를 원하는 순간, WBA 쪽도 결국은 허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 세계 복싱 팬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경기를 그들이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마크 브릴랜드는 기자들과 만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는 제가 두렵기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마크가 그 두려움을 깨고 나오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복서라면 패배의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과감하게 시합에 응해야 합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겁쟁이라고…….

그래, 최강철.

싸워주지.

이젠 돈도 명예도 다 필요 없다. 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라도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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