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04화 (104/308)

[104]

* * *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자신들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특허청에 정말로 그런 특허가 들어와 있는지 확인했다.

최강철의 말은 사실이었다.

특허청에 마이다스 CKC와 최강철이 공동으로 제출한 특허 신청이 들어와 있다는 게 확인되었던 것이다.

“허리케인, 이놈 정말 특허를 출원했군. 재밌는 놈이야.”

“그놈은 제록스의 GUI와 애플의 매킨토시, 심지어 우리 윈도우 2.0까지 모두 실패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나?”

“그걸 모를 리가 있겠어. 우리에게 찾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마우스를 활용한 인터페이스나 그래픽 환경에 대한 기초적인 특허들은 이미 전부 출원돼 있는 상태야. 그렇다면 다른 거라는 건데…….”

“시간도 없었지만 단단하게 막아놔서 놈이 제출한 특허의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어. 그놈 인맥이 그쪽에 깔려 있는 것 같아.”

“갈수록 재밌구만.”

“배짱을 부릴 정도의 특허라면 우리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이야. 그런데 그게 뭔지 도통 짐작이 되지 않는군.”

빌 게이츠가 손가락을 입에 물면서 눈을 오므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폭포수처럼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최강철의 앞에서는 놀라는 척하면서 뒤로 물러섰으나 절대 그냥 합작해 줄 생각은 없었다.

설혹 뭔가가 있다 하더라고 꼬리만 잡으면 어떡하든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이 세계에서 백전노장으로 불리는 폴 앨런도 마찬가지였다.

“허리케인은 연구가 상당 부분 진척되었다고 했잖아. 사실일까?”

“그 친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운영체제의 콘셉트를 정확하게 짚고 있었어. 사실이지 않다면 그런 것을 어떻게 알겠나.”

“참 일이 더럽게 꼬이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놈이 어떤 특허를 등록했느냐를 알아보는 거야. 시간을 최대한 끌면서 알아내. 그리고 놈들의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도. 그놈은 아직 어려, 사업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한 수 아래란 말이야. 이리저리 굴려보면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이제 내일이면 그놈을 만나야 돼. 놈의 표정을 보니 우리가 거부하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기세였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건데 우리 작전이 통할까?”

폴 앨런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침을 삼켰다.

윈도우 체계는 그들이 야심차게 준비하는 프로젝트였고 MS의 사활이 걸린 미래였기 때문이다.

만약 마이다스 CKC의 연구진이 먼저 이 운영체계를 성공한다면 MS의 미래는 암담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그 와중에도 비상하게 돌아갔다.

“일단 밑밥을 깔면서 대응하지. 협상에 응하는 척하면서 그사이 내용을 알아보는 것으로 하는 게 어때?”

“해보자고. 하지만 쉽게 통할 것 같지는 않군.”

“어떤 내용인지만 알아도 방법이 생길 거야. 컴퓨터 운영체제에서 우리가 깔아놓은 특허만 100개가 넘어. 조금이라도 걸리면 우리가 먼저 개발한 거라는 증거를 제시하고 법적 공방으로 갈 수 있어. 우리가 늘 하던 방법이잖아.”

“폴, 그놈 눈 봤어?”

“무슨 눈?”

“허리케인, 나는 수시로 그놈 눈을 봤어. 어떤 눈을 가졌는지만 봐도 성격을 알 수 있거든. 냉정해, 그것도 차가울 정도로. 그런 놈은 허술하게 치고 들어오지 않아. 분명 놈은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을 거다. 그놈은 돈 킹프로모션 소속이야. 정관계에 우리 못지않은 인맥이 있다는 뜻이지. 특허청이 막힌 것은 그런 영향력이 작용했기 때문이지 않겠어? 더군다나 마이다스 쪽에는 5,000만 달러의 자금 동원력이 있단 말이지.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우리가 피해를 볼 수 있어.”

최강철이 말한 마이다스 CKC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현금이 돌아가는 것은 2,000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델 컴퓨터와 시스코의 지분은 사실이었고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5,000만 달러 정도는 쉽게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럼 어쩔 생각이야?”

“그놈이 신청한 특허가 우리 연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라면 우리는 끝장이다. 쉽게 접근했다가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어.”

“그래서?”

“일단 다시 한번 붙어보자고. 도대체 무슨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협상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 * *

최강철은 옷을 갈아입은 채 레드먼드 외곽에 있는 테니스장으로 나갔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상당한 수준의 테니스 실력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걱정하지 않았다.

전생에서 그가 유일하게 취미를 가졌던 운동이 테니스였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회사의 사장이 테니스광이라 직원들에게 무조건 테니스를 배우라고 강권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운 것이었다.

약골이었고 운동 신경도 없었으니 당연히 실력은 초보 수준을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잘하는 것이 있었으니, 무엇을 하든 이론부터 빠삭하게 꿰차기 때문에 테니스에 대한 기술에 대해서는 프로 못지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두 사람이 백화점에서 산 흰색 옷을 입고 테니스장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반갑게 그들을 맞아들였다.

“정말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테니스장이 훤하게 밝아지는 느낌인데요.”

“과찬입니다. 빌이 그렇게 말하니까 얼굴이 붉어지네요.”

“난 사실만 말하는 사람입니다. 허리케인, 테니스는 쳐봤습니까?”

“조금 칩니다.”

“허허…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린 상당한 수준이거든요.”

“일단 연습을 조금 하다가 시합하는 것으로 하죠. 오랜만에 치는 거라서 잘될지 모르겠어요.”

초보라고 말하지 않은 건 운동 능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공을 가지고 하는 모든 운동의 기본은 얼마나 빠른 발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상수와 하수로 구분된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오랜 경험으로 무장된 고수라도 빠른 발과 체력을 지닌 사람과 붙으면 펑펑 나가떨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전생에서는 부실한 체력과 운동 신경 때문에 오랫동안 테니스를 쳤음에도 초보 수준을 면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그는 스피드와 운동 신경 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테니스 기술에 대한 탁월한 이론 지식이 있었기에 조금만 연습하면 두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코트 양쪽으로 나누어 연습 볼을 치기 전까지 그들은 누구도 사업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일종의 묵계다.

테니스를 치자고 제안한 최강철도, 그것을 받아들인 두 사람도 이 자리가 서로의 긴장감을 완화시키기 위한 도구란 걸 안다.

빌 게이츠는 최강철의 실력을 몰랐기 때문인지 공을 천천히 넘겨줬다.

하이 볼러처럼.

코트 위를 높게 날아온 공을 따라서 최강철도 힘을 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넘겼다.

투웅.

맞는 감각이 괜찮았다.

포핸드 스트로크의 기본은 변곡점에서 조금 떨어졌을 때 공 하나 아래에서 올려치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헤드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헤드업을 하게 되면 정확한 임팩트가 이루어지지 않아 실수할 확률이 커지고 강력한 스트로크를 할 수 없다.

몇 번 스트로크를 하면서 점점 공이 넘어가는 각도를 줄였다.

역시 전생과는 다르다.

천부적인 운동 신경과 반사 능력은 스트로크가 지속될수록 임팩트의 강도를 점점 증진시켜 주고 있었다.

서지영은 테니스를 잘 쳤다.

파트너인 폴 앨런과 빠르게 스트로크를 주고받았는데 폴 앨런이 연신 감탄사를 쏟아낼 정도였다.

최강철은 포핸드 스트로크와 백핸드 슬라이스만 치면서 몸을 풀었다.

테니스 기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이 두 가지 기술만 완벽해지면 웬만한 고수들은 강한 체력과 스피드로 충분히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몇 번 실수를 했으나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면서 공을 때리는 정확도가 점점 올라갔다.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면서 발리도 연습했다.

테니스 복식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리였지만 전생의 그는 발리 때문에 생고생을 했었다.

발리는 공을 끝까지 보고 정확하게 임팩트를 시켜 밀어내야 한다. 짧고 강하게.

이 간단한 이론을 알면서도 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순발력과 운동 신경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스트로크는 훌륭했다.

최강철이 전진해 들어오면서 발리를 시도하자 점점 강력한 스트로크를 보내왔는데 제대로 맞혔다고 생각했음에도 공이 떠서 라인 밖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아 점점 각도가 예리해지며 라인 안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라켓의 각도가 조정되었고 작용 반작용의 원리가 접목되면서 원하는 곳을 향해 공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빌, 이 정도면 된 것 같네요. 이제 시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럽시다.”

“그냥하면 재미없을 테니 우리 내기를 걸죠.”

“하하하… 그거 좋죠. 뭘 걸까요?”

“저녁 내기 어떻겠습니까. 최고급 식당에서 와인을 곁들여서 말입니다.”

“콜.”

빌 게이츠가 자신 있게 외치며 웃었다.

그가 봤을 때 최강철과 서지영은 그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서지영은 아무리 잘 쳐봤자 여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의 스트로크는 약했고 발도 빠르지 않아 충분히 공략이 가능했으며 최강철은 연습하면서 점점 좋아졌으나 테니스 경력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니스 경기, 특히 복식 게임은 게임에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트너 간의 호흡이 맞아야 경기에 이길 수 있었다.

시합이 시작되면서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들었다.

게임이 되지 않았다.

빌 게이츠는 폴 앨런과 일주일에 2, 3차례 테니스를 쳤는데 동호회 사람들 중에서 최상급의 실력을 가졌고 호흡도 잘 맞는 베테랑들이었기에 게임이 시작되자 일방적으로 최강철과 서지영을 몰아붙이며 점수를 따 나갔다.

서비스 앤 대시, 그리고 발리.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의 경기 스타일은 정석을 그대로 따랐는데 워낙 두 사람 다 발리가 좋았기 때문에 누가 후위에 서든 고전을 면치 못했다.

최강철의 스트로크가 시간이 갈수록 좋아졌으나 두 사람의 발리는 교묘하게 서지영의 옆쪽으로 빠져나가며 계속 점수를 따 나갔다.

최강철의 괴력이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세트 스코어 4:0으로 지고 있을 때부터였다.

오랜만에 게임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브와 스트로크가 안정되지 않았고 발리도 실수를 해서 점수를 잃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되자 무섭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매처럼 날카로눈 눈.

처음에는 공이 날아올 때 반응을 했으나 상대의 모션만 봐도 어느곳 으로 공을 보낼지 예측이 되자 그의 빠른 스피드가 게임을 지배했던 것이다.

“지영 씨, 코트에 바짝 붙어서 움직이지 마. 그쪽으로 오는 공만 커트하면 우리가 이겨!”

서지영의 서비스 차례에도 전위와 후위를 체인지해서 후위를 전담한 최강철은 코트 위를 무풍지대처럼 달렸다.

빠르다. 그것도 무서울 정도로 빨라 모든 공이 그의 라켓에 걸렸다.

더군다나 스트로크가 안정되면서 구석구석을 찔렀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실수를 연발하면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양 사이드로 빠져나가는 패싱샷과 로브였다.

전진해서 상대의 스트로크를 차단하며 경기를 진행해 온 그들은 최강철의 로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최강철의 로브는 스핀을 담아 라인 끝 선상에 떨어졌는데 제법 스매싱이 날카로운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손조차 쓰지 못할 정도로 정확하고 날카로웠다.

시합이 4:4로 균형이 맞춰지는 순간 최강철이 얼굴에서 웃음이 떠올랐다.

처음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서지영 쪽으로는 전혀 공을 주지 않으며 여유를 부리던 그들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급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그들에게 독약이 되었는데 최강철의 지시를 받은 서지영이 네트에 바짝 붙어 자신에게 들어오는 공을 사이드로 포칭하면서 점수를 땄기 때문이다.

“야호!”

서지영은 포칭으로 인해 왼쪽 선상을 따라 빠져나간 공이 폴 앨런을 꼼짝 못 하게 만들며 점수를 올리자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했다.

포칭은 전위가 네트에 바짝 붙어 날아오는 곳을 차단하는 기술이었다.

일종의 파리채 작전.

웬만큼 빠른 스트로크는 네트에 바짝 붙어 라켓 면만 정확하게 가져다 대도 효율적인 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서지영을 공략하는 대신 최강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마치 철벽을 대하는 것 같았다.

최강철은 모든 공을 커버링하면서 공을 넘겨 왔는데 그냥 넘기는 것이 아니라 빈틈을 골라서 공략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뛰어다니느라 숨이 턱에까지 차오를 지경이었다.

4:0으로 앞서던 경기가 역전이 되자 서지영은 팔짝거리며 뛰어와 최강철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기쁨을 숨지지 않았다.

반대로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고 지친 기색이 완연해서 초라해 보였다.

이윽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파앙!

사이드로 빠져나가는 공을 향해 정확하게 임팩트를 해서 라인 근처까지 떨어뜨린 최강철이 대시를 하면서 전진하자 예측된 경로로 빌 게이츠의 스트로크가 날아왔다.

그동안 후위에 서서 방어와 공격을 하던 최강철은 게임 매치가 되자 그동안 해왔던 전략을 버리고 거침없이 네트를 향해 전진했다.

짧고 강하게, 그리고 완벽한 폼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자신의 왼쪽으로 날아온 공을 향해 폴 앨런과 빌 게이츠의 중간으로 백핸드 발리를 쳐내자 공이 바짝 깔리며 두 사람 사이를 관통해 버렸다.

프로 선수들조차 받을 수 없는 완벽한 발리였다.

“아이고!”

“와아, 강철 씨. 최고!”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의 입에서는 비명이 흘러나왔고 서지영의 입에서는 찬사가 터져 나왔다.

게임을 끝내는 그의 발리는 예술처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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