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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월요일인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는 뉴욕의 다우 존스 주가가 대폭락한 1987년 10월 19일이 월요일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블랙 먼데이를 맞기 전인 1987년 8월 25일의 다우 존스 지수는 연초 대비 주가 상승률이 38%를 기록하는 수직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기에 이 같은 호황 분위기에서 대폭락의 조짐을 엿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2개월도 지나지 않은 10월 19일 다우 존스 지수는 전날의 2,246.74 포인트에서 이날 하루 동안 무려 22.6%인 508포인트가 떨어진 1,738.74 포인트로 마감됐다.
어떤 애널리스트도 블랙 먼데이가 왜 발생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밝혀 내지 못했다.
그랬기에 더 충격이 컸을 것이다.
호황 속에 던져진 원자폭탄의 파괴력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추풍낙엽처럼 날려 버렸으니 말이다.
시카고에서 돌아온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10월 19일.
최강철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몰려 있던 클로이와 수잔, 황인혜가 기겁을 하면서 달려왔다.
그녀들은 뒤늦게 서지영으로부터 자금을 전부 선물 투자에 올인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델 컴퓨터 쪽에서 막대한 수익금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추가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철아, 큰일 났어!”
제일 먼저 다가온 황인혜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재 시간 오전 11시.
최강철은 황인혜의 음성만 듣고도 오늘이 바로 그날이란 걸 직감으로 알았다.
“왜 그러세요?”
“주식 시장이… 주식 시장이 폭락하고 있어. 무서울 정도로 떨어지고 있단 말이야. 이게 도대체… 뭔 일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죠?”
“개장하고 나서 바로. 10분 정도 지났을 때부터 고꾸라졌다네. 지금 지영이가 객장에 나가 있어. 너 선물 투자 했다며, 그거 괜찮겠니?”
“지영 씨가 비밀을 지킨다고 말 안 해준 모양이군요. 걱정하지 말아요. 난 떨어지는 데 걸었으니까요.”
“정말… 정말이지?”
“그럼요. 너무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일들 하세요. 클로이, 델 컴퓨터는 어때?”
최강철이 시계를 바라본 후 급히 클로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델 컴퓨터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델은 어제 집으로 전화를 해서 자금 확보를 위해 내년 경에 나스닥에 상장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물어 왔던 것이다.
“공장 2군데를 더 알아보고 있어. 올해 말까지 예상되는 매출액은 8,000만 달러야. 주문은 폭주하는데 생산량이 문제인 것 같아. 공장 일손이 딸려서 추가로 공장을 확보하지 않으면 주문을 받지 못할 지경이래.”
“오케이. 시스코는?”
“시스코의 매출액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올해 순수익만 300만 달러 정도 될 거야.”
“좋네, 클로이가 관리 잘해줘.”
“어디 가?”
“증권거래소에 가보려고. 이따가 지영 씨와 다시 돌아올게.”
“응.”
최강철이 뉴욕증권거래소에 들어서자 객장이 비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울부짖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낙담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움직이지 못했고 어떤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건 주식을 산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래소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패닉 상태다.
증권거래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전광판을 가득 채운 주식들이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12시 현재의 주가 지수는 2,011이었으니 2시간 반 만에 235포인트가 빠졌다.
하지만 이건 시작이다.
지금도 주가는 정신없이 빠지고 있었는데 끝을 알지 못할 정도의 두려움이 객장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지영 씨, 나 왔어.”
“강철 씨…….”
서지영은 최강철이 부르자 정신없이 달려와 안겼다.
모든 주식을 처분했음에도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무서웠던 모양이다.
“어때?”
“나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모든 사람이 주식을 던지고 있어. 이대로라면 미국이 망할지도 몰라.”
“그럴 리가 있나. 이러다가 말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하지만… 너무 무서워. 저 사람들 봐. 전부 절망하고 있잖아.”
“음…….”
들어오면서 봤지만 가까이에서 보자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지경이다.
과연 저 사람들은 오늘을 무사히 버텨낼 수 있을까?
“우린 어떡해?”
“기다려야지.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지금은 매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야.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기다리기만 하면 돼.”
“너무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 이러다가 시장이라도 붕괴되면 우린 원금도 찾기 어려울지 몰라.”
“그렇게 되지는 않아, 선물 시장은 덩치가 큰 기관 투자자들이 대부분 참여하기 때문에 우리 돈은 안정적으로 회수할 수 있을 거야.”
“그건 그런데… 정말 다행이야. 강철 씨 판단을 믿지 못하고 내가 주장한 것처럼 매수 포지션에 투자를 했다면 어쩔 뻔했어. 생각만 해도 끔찍해.”
“나가자.”
“조금 더 안 보고?”
“보면 뭐 해. 저 사람들 보고 있으면 가슴 아프기만 하지.”
최강철이 눈짓으로 객장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자 서지영의 얼굴이 다시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주가 지수가 미친 듯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선물 투자로 기하급수적인 이익을 보겠지만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최강철이 블랙 먼데이에서 얻은 수익금은 1,400만 달러에 달했다.
블랙 먼데이의 여파로 곤두박질친 주가 지수는 12월 만기일에도 정상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바닥을 헤매고 있었기에 무려 1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선물 투자는 마치 수천 배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선물 투자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완전히 망가진다 해도 맥시멈 7.5배의 수익률밖에 올리지 못한다.
선물 투자의 이익 계산률은 간단하다.
자신의 원금이 1억이면 최대 7.5배까지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10%만 먹어도 75%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물론 매일 벌어지는 시장에서 내일의 주가 지수를 정확히 예측하고 매도와 매수를 반복한다면 3개월 내에 수천 배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지만 최강철은 투자 후 한 번도 시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으나 불과 3개월 만에 거액의 이익금이 통장으로 들어오자 서지영은 하얗게 얼굴이 질린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황금의 손, 마이다스다. 최강철의 손은 마이다스가 지닌 기적의 손이 분명했다.
하지만 최강철은 그녀로부터 선물 투자의 결과를 보고 받으면서도 태연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결과를 알고 투자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럼 우리가 가진 돈이 전부 2,500만 달러지?”
“응, 맞아.”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세상은 무섭고도 잔인하지. 블랙 먼데이로 인해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우리처럼 막대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거야.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그들의 눈물을 받아먹으며 웃었을 게 분명하잖아. 안 그래?”
“…그래. 강철 씨 말이 맞아.”
“지영 씨, 마음 아파하지 마. 이런 게 세상이야. 나는 복싱을 하는 사람이지만 세상은 사각의 링보다 더 치열하게 돌아가.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의 눈물 속에서 이득을 얻었을지 몰라. 그러니까 우리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자.”
“알았어. 그런데 강철 씨, 이 돈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
“당연히 주식에 투자해야지. 이 돈은 지영 씨가 관리하는 돈인데 전문가께서 나한테 그걸 물으면 곤란하잖아.”
“지금 시장이 엉망인데 다시 주식에 투자하란 말이야? 지금은 시장 붕괴 상황이라 관망하는 것이 맞아.”
“주식의 성공 비결이 뭔 줄 알아?”
“…….”
최강철이 여유로운 웃음을 얼굴에 담은 채 부드럽게 묻자 서지영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이다스 CKC의 대표이사를 맡으며 거의 1년 반 동안 주식을 공부해 왔지만 주식의 성공 비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최강철이 득도한 도사처럼 질문을 던지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최강철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서지영이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주식의 성공 비결은 위기를 기회로 잡는 거야. 지금이 바로 그런 때지. 절망 속에서 핀 꽃은 생명력이 질기고 더 화려하게 피는 법이야.”
“아… 그래도 시장 상황을 더 살피다가…….”
“지영 씨, 내 말대로 해. 좋은 주식을 사서 장기 투자를 하면 실패할 일이 없을 거야.”
“좋은 주식 어떤 거?”
“코카콜라, 나이키, 버크셔 해서웨이, GE, IBM 에 투자해. 분산률은 버크셔 해서웨이 50%, 나머지는 12.5%.”
“보유한 자금 전부 다?”
“아니, 500만 달러는 여유 자금으로 남겨두고 2,000만 달러만 투자해.”
“지금 당장?”
“응,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거든.”
최강철은 데이트 삼아 서지영과 함께 주식을 매수하며 시간을 보냈다.
온 천지에 주식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주가 지수는 20%가량 떨어졌지만 상당수의 주식들이 50% 이상 곤두박질쳐 있는 상태였다.
최강철이 고른 주식들은 낙폭이 큰 주식들을 상대로 선택한 것이었다.
특히 버크셔 해서웨이는 투자 전문 회사란 특성으로 인해 낙폭률이 무려 60%에 달했기 때문에 1,000만 달러를 과감하게 투자했다.
나중,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으로 주당 30만 달러가 넘으며 황제 대접을 받은 버크셔 해셔웨이의 주식을 주당 1,100달러에 주워 담았으니 이건 거의 횡재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머지 주식들도 마찬가지다. 나이키는 0.7달러에 불과했으나 나중에는 100달러가 훌쩍 넘게 되고 코카콜라도 그와 비슷한 폭등세를 보여줄 것이다.
물론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시간은 최강철의 편이기 때문이다.
최강철이 집으로 돌아오자 윤성호와 이성일이 가자미눈을 한 채 그를 째려봤다.
“너 바람났어? 왜 그렇게 맨날 빨빨거리며 돌아다녀?”
“무슨 일 있어요?”
“인마, 지금이 몇 시냐? 너무 늦으니까 그렇지. 외로움에 떠는 우리 남겨놓고 혼자서 데이트하고 다니니까 좋냐?”
“관장님은 데이트할 때 시간 정해놓고 하세요. 이제 10시구만 별걸 다 가지고 트집이시네.”
최강철이 째려보는 두 사람을 뒤로 밀쳐내며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서자 마시고 있던 맥주와 안주가 눈으로 들어왔다.
“이러면서 뭐가 외로워. 이성일, 너 오늘도 관장님하고 물고기 잡으러 갔다 왔지?”
“물고기는 무슨. 세월을 낚는 거지. 외로우니까.”
“어이구.”
뻔뻔한 얼굴로 대답하는 그를 보며 최강철이 맥주병을 들어 올려 뚜껑을 땄다.
그러자 두 사람이 히죽거리며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최강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요즘 뭐가 그리 바쁜 거냐?”
“돈 버느라 바쁩니다.”
“복싱하는 놈이 잘하는 짓이다.”
“투자하라고 그렇게 말해도 시큰둥하면서 그런 건 왜 물어요?”
“궁금해서 그렇지… 우리 인혜 씨가 그러던데 요즘 사업이 잘된다며?”
“투자한 게 수익이 나기 시작했어요. 내가 황금 손이거든요. 왜요, 투자할 생각 있어요?”
“흐흐… 난 있는 돈 털어서 한국에 땅 샀다. 아부지가 나중에 장가갈 때를 대비해서 고향에다 2만 평이나 샀단다. 집도 궁궐처럼 크게 지었고. 요즘 우리 부모님이 효자 둬서 호강한다며 동네 사람들한테 내 자랑을 하시느라 정신이 없단다.”
“고향이 어딘데요?”
“남원.”
“으악, 거기다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해요! 아, 미치겠네.”
“너 우리 부모님한테 바보라고 한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요…….”
윤성호가 째려보는 것을 확인한 최강철이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길게 내리 쉬었다.
참, 미치고 펄쩍 뛸 일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어떡하든 막았겠지만 이젠 너무 늦어 물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의 시선이 급하게 이성일 쪽으로 향했다.
“넌?”
“난 알뜰한 사람이야. 아부지 집 사드리고 나머지는 통장에 고이 모셔놓았다. 잘했지?”
“그나마 네가 낫다.”
“그럼 내가 누군데 관장님하고 비교를 해. 자존심 상하게.”
“시끄럽고. 그거 가지고 땅이나 사. 양재나 판교 쪽에.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야, 그런 변두리에 왜 땅을 사? 싫다.”
“이 자식아. 좀 사라면 사라.”
“싫다니까!”
“나 좀 살려주는 셈치고 사면 안 되겠니. 내가 여자 친구 소개시켜 줄게. 응, 성일아.”
“하아, 그 자식 참. 곤란하게 만드네. 알았어. 여자 친구 소개시켜 주면 생각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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